* * *
위성은 첨단 정보 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중요한 통신 수단이다. 이 기술을 잘만 활용하면 새로운 방송 서비스 시장을 열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시스템은 MPEG 표준화에 기반으로 두고 있다.
MPEG-2가 그 하나이고, 이와 관련된 디지털 TV와도 연동된다. 세부적으로 비디오, MPEG-1 오디오, 채널 코딩을 포함해서 다양한 기술이 존재한다.
다만 이런 작업은 아직 MPEG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한창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단적으로 미국 정부가 직접 이 위성 기술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최민혁도 이전이라면 이 복잡한 이권이 엮여 있는 위성 사업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당장 비디오 특허와 공간 압축 기술도 이 위성 기술에 적용된다.
벌써 열다섯 가지 특허.
다행히 최민혁은 이 열다섯 가지 특허를 통해 경험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열 가지 정도는 이 위성 기술과 관련된 핵심 특허를 떠올렸다.
‘이러면 이야기가 다른데…….’
위성 사업은 애초에 최민혁의 계획에 없던 일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 보기에 어려운 것이 열다섯 가지 특허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다. 심지어 열 가지 특허를 더 추가해서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원천기술을 만들어 놓고 구경만 하는 멍청이가 될 수는 없잖아?’
이런 응용이 가능해진다면 아마 MP3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도 마찬가지지.’
최민혁은 그제야 이일태 이사의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로 시선을 돌렸다.
이일태 이사가 늘 이사회에 나와서 하는 변명.
충분히 합리적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이 위성방송 공략에 발 빠르게 움직였고, 일본조차 백기 투항을 한 채 이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위성 시스템 밑바닥에 걸려 있는 스펙 때문이다.
이 일에 대한 국제 표준이 이미 MPEG 위원회에서도 진행되는 중이다.
자칫 한국만 따로 놀았다가는 정작 이 시스템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어, 아니네 했다가는 그냥 장비만 만들어놓고, 끝낼 상황이 된다.
그러니 ETRI를 비롯한 관련 연구 팀도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완급 조절을 했다.
물론 이들도 나름 MPEG 위원회를 통해서 특허를 계속 출원 중이다.
이런 활동이 서로 다 맞물려 있기 때문에 위성 사업과 관련된 국산화 역시 다 제동이 걸린 것이었다.
애초에 이런 일에 관심이 없던 최민혁은 이일태 이사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다시 이사회를 열었다.
이일태 이사도 지난 이사회에서는 최용욱 회장의 허락을 받은 상황에서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에 대해 쌓인 분노가 터진 것이었다.
이사회가 끝나고 나서야 자책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실장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현재 KM 전자 오너는 최민혁이다. 그런데 오너에게 감히 대든 것이었다.
이일태 이사는 숨을 죽인 채 눈치만 봤다.
원종상 전무는 한숨을 내쉰 채 여전히 침묵했다.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의 성정을 잘 알기에, 다시 연 이사회에서 그가 뭔가 크게 사고 칠까 싶어서 예의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민혁은 이사회에서 곰곰이 고민하는 척하다가 불쑥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그 위성 사업 말입니다. 생각보다는 꽤 의미가 있는 것 같더군요.]
[네? 그거야 그렇습니다.]
[이일태 이사님 의견도 있고 해서 제가 그쪽으로 자세히 조사를 해봤습니다.]
이일태 이사 얼굴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이일태 이사는 최민혁의 표정을 보면서 위성 사업의 미래와 어려움에 대해서 장황하게 털어놓았다.
특히 위성 사업 리스크가 얼마나 크고, 자금이 얼마나 많이 깨지는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위성 사업은 실로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알게 모르게 관여하는 기술이라서 기술도 얻기 쉽지 않습니다.]
최민혁은 별 표정이 없었다. 그는 문형섭 부사장의 따가운 시선에도 이일태 이사의 말을 끝까지 듣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는 여러 가지 어려움 점이 많겠군요.]
[후유, 말도 마십시오. 아주 죽을 지경입니다. ETRI 위성 사업부 박재호 실장을 쥐어짜도 나 몰라라 하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ETRI 자체가 공기업 성격이 강하고, 거기에 엔지니어 자존심이 워낙에 강하기에 설득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 때문에 압력을 받는 이일태 이사는 다른 대기업과는 또 달랐다. 그는 연구원을 계속 독촉할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은 그런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제가 그 위성 사업을 도와주면 어떻겠습니까?]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최민혁의 제안에 이일태 이사는 기겁했다.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일태 이사님 나름 위성 사업의 어려움에 대해서 당위성을 말했고, 저도 그 부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위성 사업을 직접 도와주고 싶습니다. 본인도 저번 이사회에서 저보고 무능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지도 이번 일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지난 이사회에서 제가 주제넘은 점은 이 자리에서 사과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만큼 위성 사업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중요한 프로젝트에 실패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 하지만 그 일은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최 실장님이 끼어들면…….]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일태 이사님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시고, 저 나름 한번 그쪽을 알아볼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둘 중에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회사에는 이익이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이사님도 도움이 될 겁니다. 어때요?]
말을 빙빙 돌리는데, 사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하는 프로젝트를 내가 먹겠다는 뜻이다.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은 최민혁 말의 속뜻을 파악하자 반박하지도,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위성 사업이 그렇게 중요한가를 고민할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 위성 디지털 방송이 세계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일이라서 시장이 어떤지 그들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 추론만으로 보면 당장은 꽤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시장이 딱히 커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만약 최민혁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이일태 이사가 어떻게 될까.
과장급 이하 직원이라면 다른 사업부로 보직을 옮기든지 하면 되겠지만, 이사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쉽게 말해서 나가란 소리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이일태 이사는 크게 당황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성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은 힐끗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지금 최민혁이 지난 이사회 때문에 이일태 이사에게 분풀이하려고 한 말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위성 사업이 정부, 대기업, ETRI, 심지어 외국 기업이 복잡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일태 이사가 고래 싸움에 끼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만만한 ETRI 연구원을 괴롭히는 것 정도다.
최민혁의 태도를 봐서는 단순히 그냥 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문형섭 부사장은 패닉에 빠져서 얼어 있는 이일태 이사의 안색을 보면서, 아무리 최민혁이라도 지금 끼어들어서는 위성 사업에서 재미를 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 실장도 할 일이 많지 않나. 굳이 다른 사업부일까지 끼어드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까. 전 이일태 이사가 본인 일은 잘하고 있는 것처럼 하도 당당하게 나서기에 한 말일 뿐입니다. 뭐, 본인이 제안을 받겠다고 하면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콜린스 때문에 산적한 일이 산더미처럼 많네. 거기에 우리 오디오 사업부도 마찬가지야. 자네가 살필 일은 많아. 그런데 굳이 위성 사업부에 나설 필요는 없네.]
오영근 사장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심지어 이일태 이사는 머리를 아래위로 크게 흔들면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최민혁 행동은 위성 사업에 아예 관심이 없던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이번 기회에 전 위성 사업이 정말 힘든 일인지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절 무능하다고 하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싶고요. 그러니 이번 일은 좀 살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최민혁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열받았네.’
문형섭 부사장이나 오영근 사장도 혀를 내두른 채 더 조언하지 못했다.
이일태 이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몸을 사렸다.
그 역시 최민혁이 자기 일을 쉽게 처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한 행동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굳이 MP3 플레이어층에 대해 딴죽을 건 것도 그 내막을 알기 위함이니까.
오영근 사장이 보다 못해서 한마디 했다.
[오늘 이사회는 이정도로 하지. 최 실장님도 산적한 일이 많으니 진정하게나. 이일태 이사도 마찬가지야. 괜한 일을 만들지 말고, 지금 하는 위성 사업에 최선을 다해. 정말 최 실장이 끼어들지 않도록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일태.
하지만 최민혁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영근 사장도 그런 최민혁의 모습에 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이 사태를 만든 이일태 이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기에 조심 좀 하지.’
* * *
최민혁은 이사회가 끝나기 무섭게 이동호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이동호 교수는 최민혁의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갑작스러운 행보에 고개를 갸웃했다.
“위성 방송이라…….”
위성 방송에 사용되는 지금의 시스템은 과거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방식이다. 따라서 이동호 교수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지금 최민혁 실장의 의뢰를 받아서 하는 연구도 위성 방송에 다 적용된다.
실제로 이쪽과 관련된 미국 연구소 쪽과도 연락하면서 프로젝트 일부를 같이 진행했다.
보안 문제 때문에 미국 정부가 이것저것 다 간섭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더욱이 지금 쌓여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위성 사업 쪽에는 집중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 위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최민혁에게서 들은 줄은 몰랐는데, 뒤늦게 위성 사업부가 KM 전자에 있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KM 전자가 위성 사업 쪽 일까지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위성 사업이라기보다는 위성 방송 디코더 쪽 사업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셋톱도 그 연장선의 하나입니다. 꼭 대기업이 아니라고 해도 중견 기업 쪽에서 이 분야에 많이 끼어들었습니다.”
[166]시장 자체는 작아서 중견 기업이 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대기업은 워낙에 협소한 이 분야에 쉽게 끼어들지 않았다.
이동호 교수도 위성 방송 디코더 분야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고작 그런 일에 관심을 둘 리가 없었다.
“그러면 굳이 최 실장님이 나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디코더 쪽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위성 방송 시스템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이동호 교수님이 지금까지 연구한 모든 원천 기술을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 분야 쪽으로 연구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고, 우리 연구소가 그 일까지 하기에는 지금도 무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벅찹니다.”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까?”
이동호 교수도 평소와는 달리 적극적인 최민혁의 행동에 잠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방문한 것 같지가 않았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한국대 후배 교수 중에 그 일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면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제가 말은 해놓겠습니다.”
“아뇨. 지금 바로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
이동호 교수는 최민혁을 따라온 임기석 부장이나 최병연 팀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이미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던 터라 최민혁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화가 단단히 나셨네.’
그걸 이동호 교수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었다.
“뭐, 제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미 위성 사업부가 있다면 그쪽 담당자가 와서…….”
“저희 위성 사업부는 디코드 쪽에 치중해서 이쪽 위성 시스템과는 별개입니다.”
“그렇다면야…….”
* * *
송한성 교수는 이동호 교수 후배로 한국대에서 위성 시스템 쪽을 전담했는데, 무인 시스템이나 드론과 같은 국방 과제도 맡았다.
그는 국방 과학 연구소 과제도 도맡아서 진행했는데, 한국대 내에서도 이 분야에 한해서만큼은 주목을 받아 왔다.
다만 다혈질인 성격 탓에 다른 한국대 교수와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그가 따르는 이라면 선배 이동호 교수였다.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손발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동호 교수가 미국 대학과 여러 과제를 연구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송한성 교수에게 도움을 많이 줬다.
송한성 교수는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열다섯 가지 특허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았고, 이를 위성 관련 연구에 적극 반영했다.
칼하인츠 박사보다 더 빨리 움직였기에 그의 연구는 꽤 성과가 나왔다.
이동호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시스템 안정화에 성공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송한성 교수와 만나 짧게 이야기하고 나서도 이 결과물을 볼 수가 있었다.
“최 실장님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는 최민혁의 나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이룩한 성과로만 평가했다.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최민혁은 더 쉽게 이동호 교수의 성과물을 적용한 위성 시스템을 좀 더 쉽게 살필 수가 있었다.
“잘 아시겠지만 방송 위성의 가장 큰 문제는 출력이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고장이 많이 나는데, 전원 시스템이 진짜 문제입니다.”
푸념이지만 큰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방송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고출력으로 말미암은 방송 시스템의 오류는 생각보다는 더 심각하다.
이런 제약 때문에 고용량의 데이터를 위성과 주고받게 되면 열처리가 쉽지 않다.
단순히 열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파워 시스템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런 위성 파워 시스템 전문가는 국내에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따라서 고출력 문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된다.
즉 고용량 데이터는 반드시 그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압축 기술이다.
최민혁이 추가로 넘긴 공간 압축 관련 특허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최근 그 문제를 극복한 송한성 교수는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대단한 겁니다. 이 공간 압축 코딩 덕분에 일단 고출력을 반으로 줄여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다만 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서는 출력을 다시 높여야 합니다. 방송 채널에 제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패기에 찬 송한성 교수의 열정은 이동호 교수와는 좀 달랐다. 그는 이동호 교수 도움을 최대한 활용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
최민혁은 솔직히 위성 분야 쪽은 잘 몰라서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런 그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온 것에 감탄했다.
‘이게 나비효과일까?’
막상 이런 문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비디오 특허를 단지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기술은 새끼를 쳐서 벌써 위성 사업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살짝 갈등하기는 했다.
하지만 굳이 열다섯 가지 특허, 아니, 심지어 MP3 관련 오디오 기술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위성 방송 영역이다.
굳이 소극적으로 나설 이유는 없다.
현실에서 실제로 적용된 것과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연구한 결과에 차이는 크니까.
최민혁은 기존 열다섯 가지 특허, MP3 관련 특허, 그리고 방송 위성과 관련된 열 가지 특허를 포함한 서류를 송한성 교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혹시 선물이면 제가 감사…….”
하지만 그는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미 이동호 교수에게 받은 자료는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자료는 아니었다.
그중에 열 가지 특허는 대부분이 방송 위성 시스템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 관련 기술은 송한성 교수가 지금까지 고민한 부분이다. 그 역시 이동호 교수의 도움을 얻어서 시스템을 테스트 중이지만 그 사이사이 한계를 쉽게 넘지는 못했다.
놀랍게도 최민혁이 내놓은 기술 자료는 바로 그 부분을 정교하게 분석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역시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면 이 자료를 내놓지 못한 것들이다.
이동호 교수 연구 결과물을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토대로 인생 1회차 지식을 뽑아낸 것이니까.
송한성 교수는 송수신 관련 시스템 자료를 멍하니 살피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공간 압축과 관련해서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제대로 기준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떡하니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 연구만 해도 2~3년에, 족히 수십억은 퍼부어야 할 일이었다.
“이, 이게 다 뭡니까?”
“우리 회사에 있는 위성 사업부 쪽에서 이제까지 연구한 성과물입니다.”
“제가 KM 전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연구는 중견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기업에서는 들어가는 돈에 비해서 수익성이 적어서 손대는 회사도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한 송한성 교수는 자신이 준 서류 일부를 받아서 살피는 이동호 교수를 쳐다보았다.
“설마 선배님은 알고 계셨던 겁니까?”
“몰랐어.”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글쎄.”
그는 힐끗 최민혁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의문은 이미 차고도 넘쳤다. 어차피 물어본다고 대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최민혁은 오히려 이런 이동호 교수를 걸고넘어졌다.
“사실 이동호 교수님 도움이 컸습니다. 그쪽에서 한 연구 성과를 저희 위성 사업부 내부에서 검토해서 살을 붙였으니까. 지금의 연구 성과는 다 그런 이유로 나온 겁니다.”
“…….”
송한성 교수는 정말 질문이 많았지만 일단 참았다. 그 역시 이동호 교수를 통해서 의아한 부분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회사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테스트가 쉽지 않습니다.”
“ETRI 위성 팀이 도와준다면 어떨까요? 무궁화 기술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쪽에서 말이죠.”
“네? ETRI라면, 아, 걔들 말하는 거군요. 걔들 쥐뿔도 모르는 놈들인데, 가만 시스템은 있을 테니, 흠, 만약 그쪽에서 도와준다면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굳이 걔들이 하려고 할까요?”
“할 겁니다. 아니, 하게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