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57화 (15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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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PDP와 LCD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출장 보고서와 MP3 프로젝트 서류를 하나씩 살피면서 고민했다.

그도 고민한 끝에 일단 MP3 관련 프로젝트를 대폭 축소해서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회의 중에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돌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원래 보고서를 줄이고 또 줄여서 보고서를 들고 오영근 사장실을 찾았다. 문형섭 부사장은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넌지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했던 일과 특허 매입에 관한 출장 보고서부터 먼저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출장 보고서야…….”

두 사람은 서로 잠깐 시선을 주고받은 후에 출장 보고서 내용을 확인했다. 지사 설립과 같은 부분은 이해했는데, 특허 매입과 관련된 부분을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고서 자체는 많은 부분이 빠져 있었다.

원래 첨부 파일이 있었는데, 최민혁이 이사회 보고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 부분을 전부 다 빼버렸다. 껍데기만 남아 있는 보고서를 두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었다.

'MP3 특허 매입? 이게 다 뭐지?'

한두 건이 아니었다. 무려 수십 건이 넘었다. 특히 톰슨 멀티미디어에서 일괄로 사들인 특허 중에는 신기한 것이 많았다.

“이게 다 뭔가?”

최민혁은 순간 두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직 MP3 플레이어도 나오지 않은 이 시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자신이 손을 대서 대폭 줄어든 MP3 관련 개발 기준서가 있었다.

최병연 팀장이 주도로 한 이 새 프로젝트는 전부 MP3 플레이어와 관련이 있었다. 그 내부의 칩, 펌웨어, 하드웨어 설계, 심지어 디자인까지 모두 다 포함했다.

프로젝트 연구비 때문에 형태는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형섭 부사장은 오영근 사장과는 달리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인상을 잔뜩 굳힌 채 복잡한 개발 관련 서류를 하나씩 다 확인했다.

그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더니, 나중에 가서는 침묵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된 개발 서류는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도, 도대체 이게 뭔가?”

오영근 사장은 처음 보는 물건이라서 고개를 갸웃하더니 문형섭 부사장 입을 쳐다보다가 최민혁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대폭 줄였음에도 문형섭 부사장 안색이 변한 모습에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그저 일상적인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으음, 쉽게 말해서 카세트 플레이어 대응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반도체 칩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가벼운 힌트였지만 그제야 문형섭 부사장은 다시 개발 기준서를 살폈다. 세세한 내용은 너무 머리가 아파서 큰 줄기만 봤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문형섭 부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이게 진짜 가능한가?”

“개발 기준서 그대로입니다. 가능하기에 플랜이 만들어진 겁니다.”

“…….”

문형섭 부사장은 뒤늦게야 MP3 플레이어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렇다고 해도 반도체 칩을 사용해 카세트 플레이어를 대체하면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정도였다.

물론 기술적인 제약 조건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놀라운 것은 MP3 관련 특허는 전부 이와 다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야 최민혁이 유럽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깨달았다.

“시즈벨이라…….”

톰슨 멀티미디어, 브라운 호퍼, 시즈벨과 같은 회사의 원천기술을 확인하고서야 최민혁이 그린 큰 그림을 알아본 것이었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가능한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문형섭 부사장은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면서 보고서를 살피다가 힐끗 오영근 사장을 쳐다보았다.

둘 다 이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제품도 없고, 시장도 없고,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 보고서는 너무 애매해서 구름 위에 붕 뜬 것 같았다.

실상 톰슨 멀티미디어나 시즈벨의 시각보다는 좀 낫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게 정말 가능하겠나? 이런 제품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

“당연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카세트 플레이어보다는 경쟁력이 월등합니다. 용량이나 모든 면에서 말입니다.”

“으음. 일단 이 서류를 좀 더 확인해 보고…….”

하지만 최민혁은 대폭 내용을 줄여서 원안과도 큰 차이가 있는 보고서마저 두 사람에게서 다 거둬들였다.

“당분간은 두 분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서류는 보안 때문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품이 나올 때 보셨으면 합니다.”

“이봐, 최 실장, 난 KM 전자의 부사장이네. 그런 나에게도 보안이라니!”

최민혁은 자신이 줄인 보고서에도 두 사람이 쉽게 포기 않는 모습을 보자 더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잘 압니다. 하지만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회에서도 적당히 줄여서 보고할 테니, 그렇게 이해를 해주세요.”

“…….”

두 사람은 그제야 남아 있는 서류를 다시 한번 살폈다.

최민혁은 냉큼 두 사람이 가진 서류를 다 거둬들여 버렸다.

“죄송합니다만 이번 일은 그만큼 보안이 중요합니다. 이해를 좀 해주십시오.”

“…….”

둘 다 잘 막던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줬다가 뺏은 최민혁의 심보에 내심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조금 전에 봤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럴듯하기는 한데, 두 사람은 한 가지 문제를 염두에 뒀다.

‘잘 팔릴까?’

과연 시장에서 반응은 뭐가 나올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두 사람은 이 부분만큼은 비관적이었다.

오영근 사장은 특히 더 그랬다.

“최 실장, 정말 이 MP3 제품이 잘 팔릴까?”

“물론입니다.”

두 사람도 꿍꿍이가 가득한 최민혁의 눈치를 보면서 차마 더 묻지는 못했다. 이미 콜린스 때 한 번 당하고 나서 그런지 괜히 부담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최민혁은 굳이 MP3 플레이어 시장과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프로젝트는 진행되고 있으니까. 개발비를 추가하는 문제도 일단 허락을 구했으니, 이제는 달리는 일만 남았어.’

최초 MP3 플레이어 mpman은 16, 32, 64MB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는데, 음악 한 곡당 4MB 기준으로 보면 최대 8곡까지 가능하다.

데이터 전송 방식도 프린트 포트를 사용해서 0.115Mb/s 방식이다. 너무 느려서 보고 있으면 울화병이 생긴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개선해서 시리얼 포트로 바꾸고, 케이블 역시 자체 케이블을 사용해서 미니 타입으로 바꾸었다.

이 부분은 테스트하는 데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내부 코어는 조창호 차장이 경험이 많은 8051 IP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조창호 차장은 이미 오성 전자에 있을 때부터 이와 유사한 시스템 개발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 시스템 환경을 쉽게 만들었다.

그 역시 15년 경력자가 아니었다면 이것만으로도 삽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성 전자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덕분에 별다른 문제없이 일을 진행했다.

사실 이런 개발 환경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PC 환경도 다 따로 만들어야 하고, 통신을 주고받는 테스트 플랫폼 역시 개별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KM 그룹 본사까지 찾아가서 항의한 것도 이런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조창호 차장은 오성 전자의 여러 부서를 돌면서 이와 유사한 멀티미디어 기기에 대한 경험이 많았던 것이다.

한창 펌웨어 작업에 정신이 없던 오상현 과장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역시 조창호 차장님! 짱이십니다!”

“역시 내가 한 대단하지.”

“그럼요. 조 차장님의 능력을 몰라준 오성 전자가 문제였던 거죠. 특히 안국호 부장 그 새끼는 악착같이 이용하려고 했지 않습니까?”

“아암, 그렇지.”

기반 환경이 잘되어 있어서 그다음 작업은 생각보다 더 쉬웠다.

여기에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브라운 호퍼 연구소의 칼하인츠 박사와 디이터 교수가 원천기술을 개발하면서 작업했던 코드를 이동호 교수를 통해서 다 넘긴 것이다.

비디오 특허에 크게 만족한 대가였다.

그 덕분에 PC 환경 역시 큰 시행착오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면 일반 RS 232 방식이 아닌 자체 방식을 사용한 터라 미니 커넥터를 따로 제작한 점이다.

독특한 미니 포트 타입이라서 문제가 좀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대림 전자 측에서 이번 일에 적극 끼어들어서 아예 KM 포트 방식의 커넥트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의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개발에는 큰 도움을 줬다.

다만 조창호 차장조차 일반적인 포트보다 더 작은 커넥트 모양에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실장님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간단한데, 막상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은 없잖아요.”

PC에 달린 일반적인 통신 방식이 시리얼과 패리얼 포트였다. 늘 그 방식을 사용한 두 사람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참 머리도 좋다니까.”

“최 실장님 선경지명은 가끔 소름이 돋습니다.”

“엔지니어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우리 마음을 잘 아는지 모르겠어.”

두 사람이 최민혁이 내놓은 다양한 아이디어에 놀란 것은 그만큼 개발이 간단하고, 시행착오가 적기 때문이었다.

그건 대림 전자 같은 기업이 굳이 이 KM 케이블 장사까지 하려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덕분에 MP3 프로젝트 진행은 생각보다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다음은 본격적인 MP3 디코드 구현이다.

MP3는 서로 다른 3개의 코덱으로 시작한다. Layer 1은 가장 간단하고, 낮은 압축률을 가졌다.

Layer2는 Layer1 보다는 공통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Layer3는 가장 구조가 복잡한데, 높은 압축률과 품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복잡한 구조의 디코더는 WAV 파일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변환시킨다. 각각의 신호를 음향학 모델을 기반으로 해서 필요한 정보만 얻는다.

여기서 무손실 압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와 관련된 것이 바로 브라운 호퍼와 시즈벨의 원천 특허다.

어떤 형식으로든지 MP3 디코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이를 응용했다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

조창호 차장조차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특허와 엮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최민혁이 준 기술 자료로 응용해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효율이 낮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거 문제네.”

최병연 팀장도 뒤늦게 효율 결과를 확인한 후에 고민했다.

안 그래도 메모리는 32MB로 정해져 있었다. 오성 전자 쪽의 반도체 영업 담당자와 만나서 이야기해 봐도 그 이상은 어려웠다.

64MB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가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결국 이탈리아에 가 있는 최민혁에게 연락을 취해 봤는데, 대답은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 외에는 없었다.

아니, 시즈벨 특허를 사용해서라도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로열티를 지급하나 싶어서 일단 지시 받은 대로 작업을 했다.

가장 최초로 한 테스트는 역시 PC 환경이다. 일단 PC 통해서 작업한 후에 MP3에 대한 감을 잡으려고 한 것이었다.

이 작업 역시 칼하인츠 박사가 초기에 만들어 놓은 코드가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이미 칼하인츠가 가장 핵심이 되는 MP3 환경을 다 만들어 놓았기에 쭉 따라가기만 하면 그다지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PC로 동작한 MP3 테스트 프로그램은 잘 동작했다.

늘 긍정적인 성격인 오상현 과장은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와아, 좋다.”

조창호 차장 역시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일을 옆에서 도와준 한철수 차장은 오히려 코웃음 쳤다.

“이미 칼하인츠 교수가 다 만들어놓은 것으로 못 만들면 이상하죠.”

조창호 차장은 소심한 성격 탓에 삐딱한 한철수 차장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이 작업만 해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곰 같은 덩치에도 오히려 소심꾸러기 같은 한철수 차장은 조창호 차장을 구박했다.

“자, 빨리 결과를 보여주세요. 이건 남이 다 해놓은 겁니다!”

그 다음은 PC 환경에서 만들어진 코드를 테스트 환경에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일이 개발의 핵심이다.

경험이 없다면 이런 삽질만으로 1년은 족히 고생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조창호 차장은 딱 일주일 만에 이 작업을 끝냈다.

“어? 진짜 끝낸 겁니까?”

“하하하, 제가 말이죠. 이런 쪽이라면 전문가 아닙니까.”

그는 따가운 눈총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어차피 오성 전자에 있을 때 써먹던 개발 환경이라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이 작업 환경에 사용된 것은 8051 IP다. 그런데 이 core IP는 이미 굴러다니는 것이 꽤 많다. 과거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오성 전자에서 다양한 삽질을 거치면서 만든 IP를 사용한 것이었다.

이 8051 IP에 MP3 디코더 IP를 결합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이미 오성 전자에 있을 때 해본 경험에, 이미 PC에서 검증된 MP3 디코더를 결합시킨 것에 불과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이 작업도 1년은 족히 넘어갈 일이었다.

그만큼 조창호 차장의 업무 능력이 보통 엔지니어와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조창호 차장이랑 같이 일해 온 오상현 과장이나 한철수 차장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이들은 그보다 PC가 아니라 칩 설계 플랫폼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신기했다.

음악 플레이어 자체는 특이한 것이 없는데, 그게 칩으로 만든 플레이어가 되어버리니, 그제야 이질감을 느낀 것이었다.

조창호 차장이 시즈벨 계약 소식을 들은 것이 딱 이 시기였다.

“대박!”

그 역시 MP3 로열티 문제 때문에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 문제가 해결되자 환호한 것이었다.

이 새로운 플랫폼 때문에 외부에 줘야 할 특허료는 없었기 때문이다.

“…….”

최병연 팀장조차 일을 시작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창호 차장이 하도 징징거리기에 일단 프로젝트를 진행하자 싶어서 진행했는데, 이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오히려 펌웨어를 작업한 오상현 과장이 불만이었다.

“일이 이렇게 간단하다니. 이러다가 쫓겨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최병연 팀장은 피식 웃었다.

“이미 개발 기준서대로 작업하면 문제가 없을 거야. 이번 펌웨어를 이용해서 오픈형 구조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지. 더욱이 DSP를 이용한 작업도 빨리 마무리를 해.”

“굳이 DSP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단일 칩으로 만들면 단가가 줄어들어서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최병연 팀장은 최민혁의 행보를 보면서 몇 가지를 느꼈다.

“꼭 아닐 수도 있어. 만약 MP3 디코드 구조를 변경한다면 칩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단가 생각하면 답이 나오잖아요.”

“아니야. 실장님이 굳이 개발 방향을 둘로 나눈 것은 이유가 있어.”

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때 마침 최민혁이 KM 전자로 출근했다.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과 문형섭 부사장 면담을 거치기가 무섭게 MP3 플레이어 개발 팀을 찾았는데, 결과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벌써 MP3 칩 구현을 끝낸 겁니까?!”

이제 추가적인 개발 기준서를 토대로 구체적인 연구비와 연구 인력을 책정할 타이밍이다. 그런데 이미 선행 개발은 끝나 있었다.

“실장님 덕분이죠. 칼하인츠 박사나 시즈벨 협상 덕분에 기존에 이미 작업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최병연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한철수 차장이나 조창호 차장도 지금까지 진행된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늘 해왔던 일을 해온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사람의 능력을 처음 접한 최민혁은 결과를 확인하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설마 실력이 이 정도였어?’

인생 1회차에서 벤처 기업을 해봤기에 신제품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아무리 사전 준비를 해놨다고 해도 케이블이나 커넥트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단 하나도 거치지 않은 세 사람은 보통 엔지니어와는 많이 달랐다.

최민혁은 지난 권태성 실장과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난 또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쉽게 말해서 개발비 중에 가장 포션을 많이 차지하는 인건비 때문이다.

지금 진행하는 개발이 만약 1년 정도 더 길어진다면 족히 수십억이 더 소요된다. 만약 개발 중에 돈을 더 깨 먹으면 개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다 사라진 것이었다.

최병연 팀장이 그제야 피식 웃었다.

“전부 다 실장님 덕분입니다. 설계도를 명확하게 구현해 놓았기에 굳이 삽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직도 테스트한다고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슬쩍 한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혹시 최구만 과장님 쪽은 어때요? 그쪽은 잘하고 있습니까?”

“조창호 차장 소개로 아날로그 엔지니어 몇 사람을 더 뽑았는데, 그들이 중심이 되어서 저희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압니다.”

“벌써요?”

“실장님이 준 아날로그 스펙이 명확해서 큰 어려움이 없었을 뿐입니다. 정작 담당자가 놀란 것은 그 스펙이니까요.”

배터리 관리 전원 IC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나온다.

TI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들이 핸드폰 시장의 변화를 반영해서 만든 것이었다.

아직은 핸드폰과 같은 모바일 시장이 막 태동하는 시기라서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이미 인생 1회차에서 모바일 기기를 만들어 본 탓에 상세한 스펙을 알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내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도움 될 줄은 몰랐지.’

사실 이 부분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돈이 없으니, 연구원 월급도 주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없으니, 결국 최민혁이 엔지니어 일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꽤 다양한 지식을 얻었는데, 최병연 팀장에게 넘긴 기술 자료에 그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병연 팀장도 처음에는 굳이 전원 관리칩이 필요한가 싶었지만 뒤늦게야 배터리 사용 시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철수 차장이 MP3에 들어갈 배터리를 알아보면서 뒤늦게 안 것이었다.

다른 모바일 기기와는 달리 사용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MP3는 극단적으로 배터리를 관리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원 칩이 있다면 굳이 메인 칩이 이 기능을 담당할 이유가 없어지고, 아무래도 CPU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인생 1회차의 MP3 플레이어보다 발전된 이 새로운 MP 플레이어에 꽤 만족했다.

“그러면 MP3 디코더 칩을 사용한 MP3 A 타입을 먼저 진행하고, 소프트웨어 디코더 타입을 사용한 MP3 B 타입은 병행하겠습니다. 두 가지 진행 과정에서 배터리 사용 문제를 면밀하게 확인해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조성돈 부장이 정리한 MP3 특허 문건을 최병연 팀장에게 넘겼다.

“아, 그리고 MP3 특허는 우리가 다 법적으로 챙겼으니, 특허료 고민은 안 해도 될 겁니다. 이제부터 입맛대로 하고 싶은 대로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세 사람도 이미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지만, 막상 최민혁이 획득한 특허 항목을 다 확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특허료를 일부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몽땅 다 긁어왔구나.’

그들은 집요한 최민혁의 행동에 새삼 다시 쳐다보기만 했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했다.

막상 그들도 MP3 샘플을 만들고 나서야 확연히 감을 잡았다.

그런데 최민혁은 이미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전에 다 알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최민혁 실장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오성 전자에서도 S급 인재의 시선을 받은 최민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느긋한 표정으로 파일을 확인하는 최병연 팀장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관록이다. 온갖 삽질을 다 경험한 때문인지 이 프로젝트도 그다지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면 된다는 태도.

최병연 팀장 밑에서 실무를 총 책임진 한철수 차장은 곰 같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코미디언을 떠올릴 정도로 말이 많았다.

“와, 최 실장님, 정말 멋집니다. 최고입니다. 그저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전 실장님에게 반했습니다. 술 한잔 꼭 해야 하는데, 오늘 어떻습니까?”

“실장님은 정말 너무 멋집니다!”

어벙해서 꼭 시골 촌사람 같은 조창호 차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기에만 급급했다.

“아, 저는 최 팀장님과는 달라요.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하나같이 독특한 이들의 개성을 확인한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굳이 더 나서서 도와줄 것은 없군요. 양산까지 잘 부탁합니다. 혹시라도 프로젝트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야기만 하세요.”

“지금도 차고 넘칩니다.”

최병연 팀장의 말처럼 지금 그들이 있는 장비실 곳곳에는 고가의 오실로스코프를 비롯한 첨단 계측 장비로 가득했다.

요청만 하면 구매 팀에서 알아서 장비를 구해다 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배후에 최민혁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늘 필요한 게 있을 테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즉시 요구하세요. 꼭 그게 아니라도 혹시 다른 팀에서 방해한다면 이야기하세요. 바로 처리해 버릴 테니까!”

“…하하하, 꼭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세 사람은 저돌적인 최민혁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몸을 떨었다. 최훈열 전무에 대해서 조치했던 최민혁의 행동을 떠올린 것이었다.

최민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제가 감사하죠. 덕분에 지금 하는 일에 탄력을 붙일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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