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54화 (154/1,021)

* * *

최민혁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제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일이라서 박두영 부장검사를 만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수사는 미묘하게 흘러갔다.

대규모 마약 밀매 사건이 대수롭지 않은 것인 양 바뀐 것이었다.

그래도 김기범은 구속되고 말았다.

김현탁 부장은 놀랍게도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대신에 이상수 과장이 수사를 받았다. 그는 물론 자신은 화물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겨우 두세 줄 나오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이를 대신한 기사는 차세대 패널에 관한 기사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PDP TV 개발과 관련된 이슈다.

일본의 소니, 후지쓰, 마쓰시타와 같은 업체는 40인치 PDP를 내놓았다.

화면 두께가 고작 7.5cm에 불과한 이 제품은 50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가격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다른 CRT에 비해서는 여러 면에서 경쟁력 우위를 보였다.

기존 브라운관의 고질적인 화면 크기나 부피를 극복한 셈이다.

특히 벽걸이 TV는 일본과 같은 협소한 가옥에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기존 LCD가 색상, 해상도, 밝기 등에서 취약하자 이 PDP로 방향을 돌린 셈이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은 심지어 기자 인터뷰에서 PDP의 강점을 나열했다.

[이제 CRT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다음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것은 PDP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PDP의 장점을 나열하면서도 특히 일본 소니 가전업체의 행보를 예를 들었다.

기자도 물론 반박했다.

[최근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이 IFA 기조연설에서는 LCD가 차세대 패널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와는 상반된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LCD도 나름의 강점이 있지만, 액정이 가진 특성의 한계 때문에 PDP보다는 많이 떨어집니다. 최민혁 실장이 콜린스 개발에 성공했다고 해서 차세대 패널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콜린스 성공에 취해서 제대로 알지 못 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PDP가 LCD보다는 강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LCD의 느린 반응이라는 걸림돌을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기자는 그런 점을 알지 못했다.

아니, 자료 조사 과정에서 확인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최민혁 실장은 LCD가 차세대 패널이라고 말만 하지 정작 그쪽으로 투자 자체를 안 합니다. 정작 CRT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최민혁 실장이 그냥 말로만 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즉 최민혁 실장은 여전히 CRT를 KM 전자의 핵심 사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중견 기업의 한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딱히 대놓고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빙빙 돌려서 최민혁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KM 전자의 성장세는 PDP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KM 전자의 주가 폭등이 어느 정도 진정되기를 원한 것이었다.

[지금 KM 전자의 주가 폭등은 외국계 투기 자본에 의한 거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개인 투자자는 큰 손해를 입을 겁니다.]

[오늘 날짜로 벌써 65,000원을 돌파한 KM 전자 주가에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말씀입니까?]

[투자는 투자자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만 실적이 받쳐주지 않는 KM 전자의 주가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자 역시 권태성 실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황당한 것은 이 인터뷰 기사를 대한민국 언론이란 언론에서 다 짜깁기해 내보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KM 전자를 찍어 누르려고 한 모양새였다.

심지어 이 기사는 지면 1면을 다 차지했고, 그 중앙에는 최민혁의 IFA 기조연설 사진을 올렸다. 지면 30%를 차지하는 이 사진은 마치 록 스타의 열광적인 무대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최민혁에 대한 이슈가 소용돌이치면서 대규모 마약 밀매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KM 전자는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더 황당한 것은 KM 전자의 주가다.

권태성 실장의 인터뷰 이후에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 매물이 쏟아지면서 50,000원 초반까지 밀렸다가 외국계 증권사사 매수세가 터지면서 60,000원을 가볍게 돌파해 67,000원에 도달한 것이었다.

진정한 롤러코스터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장세였다.

“…….”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을 통해서 보고받으면서도 이걸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았다.

KM 전자는 완전히 TV 가전업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원한 그림대로 되기는 했는데, 주가가 참 거지같네. 올라도 너무 오르잖아.’

약간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 내부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유럽에 가 있는 동안에 보고를 받았던 내용 중에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다.

‘민성일 과장이라…….’

* * *

마케팅 팀 민성일 만년 과장은 콜린스 이전에 사내 구조조정 때문에 한동안 숨조차 쉬지 않은 채 살았다.

과장 승진에서 벌써 몇 번이나 빠뜨려서 이제는 밑에 밀리는 신세였다.

KM 전자에서 제대로 평가도 못 받아서 이직도 쉽지가 않았다.

줄줄이 나가는 동료를 보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권고사직을 받을까 말이다.

KM 전자가 망해간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푸념하겠는가.

“정말 딱해서 못 봐주겠네. 아니 그렇게 마음 졸일 거면 왜 회사에 다녀. 당장 때려치우고, 차라리 치킨집이나 해!”

회사 매출이 떨어지면 결국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아니, 지금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니, 오늘 당장 잘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콜린스가 툭 튀어나오면서 망해가는 KM 전자는 한국 그 어떤 기업보다 더 성장성이 높았다.

그는 얼마 전에 콜린스 기획 덕분에 승진한 최준형 대리에게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사원급도 곧 과장이 되고도 남을 상황.

‘그만둬야 하나?’

다행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그에게 그만두라고 압력 넣는 이는 없었다.

하도 불안해서 조정욱 인사 팀장을 찾아가서 면담까지 해보았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실장님은 내 사람인 이상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절대로 자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최병연 팀장을 다시 데려왔겠습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직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실장님이 강제로 구조조정한 이들 대다수는 회사에 피해를 주거나, 사익을 추구한 이들입니다. 조직 전체에 충격을 줘서 갈등을 부추기죠.”

“그렇다면 전…….”

“과장님은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니, 운이 좋았던 거죠. 지금은 절대로 우리 회사에 입사조차 힘들 정도이니까.’란 말을 굳이 내색해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조정욱 인사 팀장도 여전히 초조한 민성일 과장을 힐끗 살피기 시작했다.

그도 미처 간과한 사실이다. 최민혁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막 잘라낼 때만 해도 미친 군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고민하는 민성일 과장을 보고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으음, 아직도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구조조정된 사람을 잘 보면, 쉽게 말해서 회사 기밀을 빼돌리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임직원의 경우가 그 대상입니다.”

“STB 사업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뇨. 그쪽은 더 심합니다. 거의 김현우 상무가 아는 인맥으로 다 채운 사업부니까요. 회사 돈만 축내고, 조직에 기생하는 기생충이었으니까요.”

조정욱 인사 팀장은 이 문제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과거 STB 사업부의 근무 태도 일부를 직접 보여주었다. 일주일에 고작 3일 출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뭐, 일을 안 하는 것은 좋다고 하죠. 그런데 다른 사업부 임직원에게 깽판을 치거나, 심지어 욕설까지 했던 이들도 있습니다.”

“…이게 다 사실이었군요.”

민성일 과장도 알음알음 다 들은 사실이었는데,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알자 놀랍기만 했다.

조정욱 인사 팀장은 민성일 과장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여전히 번민하는 민성일 과장을 위해서 다른 대안을 내주었다.

“콜린스 개발을 주도한 최구만 과장은 들어보셨죠? 그분이 요즘 하는 게 뭔지 압니까? 아날로그칩 설계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기존에 해 왔던 일이 TV 전원 설계인 것을 고려하면 특이하죠.”

“대학 다닐 때 그쪽 전공은 아니었고요?”

“전혀 아닙니다. 실습 설계 비용만 해도 일반적으로 배우기 어렵죠. 당장 실무를 통해서 배우니까요. 그건 설사 대학원에 가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놀랍군요.”

민성일 과장도 혀를 내두르다가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요. 우리 사업부에서 아날로그 IC 설계해야 하는 제품도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제 말은… 자기 적성에 안 맞으면 따로 기획 팀에 신청을 해보세요. 만약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회사에서 교육 지원을 해줄 테니까요.”

“…대단하네요.”

사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민성일 과장은 생소한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회사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다고는 알았지만 이런 일까지 있는지는 몰랐다.

그는 불안을 떨쳐 버린 후에는 일단 마케팅 일에 충실한 채로 자기 진로에 대해서 고민했다.

문득 마케팅이 자기 적성과 맞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생긴 것이다.

회계학 전공인 자신이 마케팅을 선택한 것은 돈 계산이 싫어서였다. 따지고 보면 막연하게 좋아한 마케팅이란 업무도 막상 해보고 나서야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벌써 업무 경력만 7년이 넘게 쌓인 후에 뒤늦게 후회를 하니, 착잡했다.

‘진짜 병신 같네.’

민성일 과장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최주호 마케팅 팀장과 면담했다.

최준호 팀장은 마케팅 외에 이것저것 많이 알아서 그런지 민성일 과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회사 같으면 이런 면담을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야.”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어. 그럴 수도 있지. 아, 아니다 싶었는데, 돌아가기 힘든 경우이니까. 그렇다면 하나만 묻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건가?”

“아무래도 회계 전공이니, 그쪽 일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 일은 그 자신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조정욱 인사 팀장도 따로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가지 점을 지적했다.

“대학 시절에 숫자가 싫다고 치를 떤 사람이 민 과장님인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지금의 마케팅 팀에 있는 것 아닙니까?”

학창 시절을 떠올린 민성일 과장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때는 아는 게 없지 않습니까. 회사 일이 뭔지 모르니, 그냥 겉멋만 들었던 겁니다.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제가 참 한심합니다.”

고개를 숙인 민성일 과장의 번민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실상 이런 일은 민성일 과장만 해당하지 않았다. 뜻밖에 자기 직무를 고민하는 이들은 많으니까. 그들 결정은 대부분이 정해져 있었다.

퇴사다.

아마 최민혁 실장이 오너가 아니었다면 민성일 과장은 대다수 기업이 하는 것처럼 회사를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독특한 최민혁 실장을 보스로 둔 조정욱 인사 팀장은 결국 유럽에 가 있는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최민혁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결과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대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세요. 7년 동안 마케팅 팀에서 해온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해서 보는 시야가 더 넓을 수도 있습니다!]

조정욱 팀장과 마케팅 팀장은 결국 민성일 과장과 면담을 다시 했다.

다행히 박경진 재무 팀장이 미국으로 가면서 재무 팀에 빈자리가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성일 과장이 과연 재무 팀에서 잘 적응할까 싶었다.

그런데 딱 일주일 만에 최훈열 전무와 김현우 상무의 새로운 비자금 출처를 발견했다. 몇 번의 자금 세탁을 거친 이 결과는 검찰이나 KM 전자 감사 팀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KM 그룹 감사 팀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미처 간과한 자료였다.

민성일 과장은 의외로 숫자에 강했다. 그는 업무 파악을 한 후로 숫자를 딱 보는 것만으로 자금 흐름을 이해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를 토대로 해서 기획 업무에도 큰 도움을 줬다.

그러면서도 MP3 프로젝트와 같은 기밀에 대해서는 또 입이 무거웠다.

민성일 과장은 재무 팀으로 옮긴 후에 뜻밖의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깜짝 놀란 조정욱 인사 팀장을 보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제 직장 생활에 다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조정욱 인사 팀장도 이 독특한 시도에 흥미를 느꼈고, 곧 조사에 착수했다. 내부적으로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을 골라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업부 구조조정에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도 했다.

민성일 과장은 조정욱 인사 팀장을 도와주면서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을 둘러싼 유럽 행보에도 깊은 관심을 뒀다.

심지어 KM 전자 주가를 둘러싼 흐름을 다른 사람과는 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최민혁 실장이 유럽에서 사용하는 자금 흐름을 통해서 그 일을 확인한 후에 시즈벨에 대해서 조사하고서야 이해를 한 것이었다.

‘마케팅 했던 경험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는구나.’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주변 평가에 대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이 경험한 최민혁 실장은 진짜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으니까.

그런 그조차 최근 시작된 최민혁 시리즈 기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온통 최민혁 연대기 식으로 나온 기사 내용은 좀 과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대기업 회장 사진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최민혁은 아예 규격 외 인물로 취급해서 다루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 좋았다. 출근길에 사람들이 최민혁에 대해서 소곤거리는 것에 집중했다.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그러게 말이다. 몇 번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재벌가 인물인 줄은 몰랐어.]

[재벌 3세는 마약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망해 가는 KM 전자를 살렸다고 하던데, 그 말도 빈말이 아니었어.]

민성일 과장은 자기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전철에서 내려서 최민혁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다른 팀원과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본사는 어수선했다. 처음에는 장관이나 찾아오나 싶어서 본사 입구에 들어가서도 한쪽으로 물러났다.

때마침 나타난 것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는 김명준 과장과 조성돈 팀장을 포함한 몇 사람과 같이 출근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한 KM 전자 임직원도 뒤늦게야 최민혁을 발견했다.

그들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망해가는 KM 전자에 변혁을 일으킨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니까.

자고 일어나면 KM 전자에 대한 인식이 휙휙 바뀌어 있었다.

회피 1호라 불렸던 기억에서 이제는 선망의 기업이 된 지 오래였다.

혁신 기업이 되면서 최근 대학생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대운 전자나 HY 전자를 젖히고, 무려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니 임직원이 어깨에 힘을 팍팍 줄 수밖에.

직접 최민혁과 마주친 이들은 마치 왕을 보기라도 한 양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바다처럼 최민혁을 위한 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때는 STB 사업부를 매각한 것 때문에 폭군의 경영자라는 악명으로 자자했던 최민혁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민성일 과장 역시 자기 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회사 퇴직 후에 뭘 먹고 사냐며 처절하게 고민했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자존심 때문에 되레 당당히 소리쳤지만 회사 그만두고 살 길이 막막했던 그 기억이.

그런데 최민혁 실장 덕분에 다시 인생 2막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민성일 과장은 그 감정에 견딜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

작은 박수 소리를 처음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옆에 있던 다른 임직원은 엄숙한 민성일 과장의 얼굴을 보자 전염이 된 것처럼 박수 쳤다. 작은 박수 소리는 곧 옆에 임직원에게로 한 사람씩 퍼져 나갔다.

그것은 곧 KM 전자 본사 1층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번졌다.

2층을 오가는 직원도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자 이 박수에 동참하면서 환호 소리도 이어졌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치 콘서트 무대에서 톱스타를 만난 것처럼 맹렬하게 열광했다.

“와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과 뜨거운 시선에 최민혁은 다른 임직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최민혁은 자기의 손짓에 함성이 더욱 커지자, 크게 당황했다.

‘이게 또 뭔 일이래?’

김명준 과장 역시 눈을 끔뻑이면서 힐끗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는 심지어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는 민성일 과장을 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뒤에 따른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야 민성일 과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뜨거운 열기는 이미 다른 임직원에도 퍼져 나가면서 대다수는 비슷한 눈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망해가던 KM 전자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 이전에 그들이 감내했던 고통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최민혁도 김명준 과장 귓속말을 듣고야 천천히, 아니, 부담스러워서 조금 빠른 속도로 실장실로 향했다.

‘민성일 과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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