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50화 (150/1,021)

* * *

최민혁도 느긋하게 국내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살피는 중에 최민수의 황당한 사건을 보고받았다.

‘진짜 멍청하네.’

MP3 프로젝트 관련해서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내부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MP3 프로젝트는 KM 전자의 다른 팀과도 서로 연관이 없어서 오가는 이가 없었다.

있다고 하면 인사 팀인데, 보통으로 MP3 프로젝트 팀원이 인사 팀을 방문했다.

최민수가 그걸 제대로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제대로 걸린 것이었다.

그래서 좀 아쉬웠다.

“허훈 과장 그 친구는 의외로 조용하네요.”

조성돈 팀장은 허훈 과장의 최근 근무 태도 기록을 가져와서 직접 보여주었다.

“평소와 별반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일도 다른 직원보다 더 잘하는 편이고, 회사 내에서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일태 이사는요?”

“뜻밖에도 ETRI에 아예 눌러앉은 채 프로젝트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곧 있으면 가시적인 결과도 나올 것 같습니다.”

“위성 프로젝트인가요?”

“네, 무궁화 위성 발사입니다. 내년 7월이면 디지털 위성방송을 가정에서 시청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위성입니다.”

무궁화 위성 방송은 세계 두 번째 디지털 방식 방송이다. 모두 24개의 방송 채널로 기존 아날로그 방송을 뛰어넘는 화질을 보장한다.

사실 이와 관련된 압축 포맷이 MPEG2 방식이다.

조성돈 팀장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보고를 받았다.

“우리 비디오 특허도 이미 검토 중이라고 이동호 교수에게서 연락받았습니다. ETRI도 거기에 자극받아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실상 검토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위성 디지털 방송은 영상 압축이 필수였다. 특히 최근 최민혁이 추가로 공개한 공간 압축 기술은 그들로서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영상 신호를 3Mbps로 압축해서 전송할 수가 있는 까닭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한국 방송사가 디지털 방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마 장기적으로 볼 때 꽤 매력적인 프로젝트인 것은 분명했다.

지금은 접시형 안테나와 디코더 개발에 집중하는 중인데, 이미 충분한 샘플도 나왔다. 이와 관련된 한국 대기업의 경쟁은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오성 전자, LC 전자, HY 전자, 대운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뒤늦게야 KM 전자의 저력을 확인했다.

그들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로열티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대상이 KM 전자였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도 살짝 들뜬 목소리로 최민혁을 다시 쳐다보았다.

“지금 실무진 선에서는 다들 실장님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그들도 이제야 실장님의 능력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일태 이사가 이 일을 주도했으니, 그의 입김이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다. 설마 최민혁이 디지털 위성 방송 원천기술에 영향을 줬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흥미롭네요.”

“이일태 이사의 성과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LC 정보통신과 MPR사를 설득해서 프로젝트 진행을 더 빠르게 만들었으니까요.”

“흠.”

최민혁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일태 이사의 행보에 오히려 입맛을 다셨다. 딱 봐도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놈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한 성과가 있다면 아무리 최민혁이라도 이일태 이사의 목을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계속 주시하세요.”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의 보고를 받고 나서는 김명준 과장을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와서 최민수에 대한 보고를 또 받았다.

그 내용 중에는 최민수를 부추긴 이가 허훈 과장이 아니라 김기범이라는 점이다.

“최민수가 출소한 이후에 김기범을 안 만난 것으로 아는데, 상황이 바뀌었습니까?”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독 자주 연락해서 만납니다. DL 그룹도 최 실장님 때문에 부산하던데, 아무래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데이콤 소동 이후에 김용만 전무의 입지도 좋지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여파는 김기범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김기범 주변에 인력을 더 보강해서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아무래도 제가 한국에 없는 상황에서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 * *

김기범도 뒤늦게 최민수가 MP3 프로젝트 사무실로 몰래 들어가려다가 걸렸다는 것을 듣고 나서는 혀를 내둘렀다.

‘병신 새끼.’

아니, 어떻게 자사 다른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걸릴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하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만나는 몇 놈을 데리고 고민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고등학교 동창 때부터 똘마니 노릇을 하던 김진영이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내놓았다.

“기범 형이 최민혁 잘 안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괜찮은 애 하나 이용해서 마약과 강간으로 묶어 버리는 것은 어때요?”

“응? 다시 이야기해 봐.”

“아, 크게 파티 한번 벌이고, 거기에 민혁이를 초대하는 거죠. 그리고 마약을 탄 술을 먹여서 괜찮은 애 하나같이 엮어 버리는 거죠. 강간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면 지가 어쩔 겁니까.”

“호오.”

김기범은 뜻밖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꼈다. 잘나가는 재벌 3세 최민혁이 여자를 안 밝힐 리가 없었다. 아니, 누구보다 최민혁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 최근 와서 좀 변한 것 같던데…….’

한국대 휴학 전에 만나본 최민혁은 그가 아는 최민혁과 너무 달라서 가끔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상상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 본성이 어디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가만 요즘 뜨는 애 중에, 아, 걔가 좋겠다.’

클럽 파티는 어렵지 않았다.

이미 몇 번 해본 일이니까.

다만 김기범은 지난번에 최민혁이 석방된 것을 다시 떠올리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당시 일 때문에 한동안 가슴을 조아렸다.

다행히 검찰의 칼날은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지.’

그 파티는 김기범 자신이 주도한 것은 맞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이의 지원을 받아서 일을 벌인 것이니까.

원래 주기적으로 클럽 파티를 했는데, 최근 최민혁 때문에 그 일도 하지 못했다.

‘민혁이 새끼 때문에 되는 일이 없네.’

쌓인 욕정이 새삼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자 김기범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약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하자 사촌 김현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욕을 많이 들었지만, 김현탁 역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알았다. 최민혁 그 새끼 때문에 일을 진행한다고 했지? 안 그래도 집에서 그놈 때문에 계속 연락을 받았는데, 잘됐다. 나도 한국에 들어갈 테니, 그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 놔.]

[네.]

* * *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을 통해서 김기범이 새로운 클럽 파티를 준비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특히 이번 파티에 연예인까지 끌어들였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돈이 꽤 들 텐데, 그 정도 여유가 있나?’

의아한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기범에게 파티 참석 제안을 받았다.

[갑자기 웬 파티?]

[너 요즘 잘나가잖아. 그래서 이 형이 축하 겸해서 파티를 하는 거야. 설마 파티 죽돌이 최민혁이 안 온다고 하지 않겠지?]

‘파티 죽돌이’란 말에 최민혁도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인생 1회차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망나니 재벌 3세를 뛰어넘은 역대급 망나니 재벌 3세였기 때문이다.

‘하긴 인생 2회차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기범이랑 클럽을 돌고 있었을 테니.’

최민혁은 지난 인생 1회차를 추억하다가 새삼 김기범과 관련된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에는 의아했던 부분도 지금에서는 하나씩 추리할 수가 있었다.

‘하긴 이 새끼가 옆에서 날 작업했으니, 내가 폐인이 될 수밖에 없었지.’

거기에 여자도 끊이지 않고 공급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사채 때문에 끌려온 일반인도 있었다. 최민혁은 그 유혹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가죠. 약속 장소와 시간은 문자로 따로 보내주세요.]

[그래야 민혁이지!]

국제전화를 끊은 최민혁은 뒤늦게 지난 마약 클럽 사건을 떠올렸다.

“마약 클럽 CCTV 파일 말입니다. 혹시 그거 아직 가지고 있죠?”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저도 과장님이 걱정하는 거 잘 압니다. 당시는 제가 문제를 키워봐야 좋을 것이 없어서 덮어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굳이 과거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파일을 지금 볼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 * *

김명준 과장도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CD 몇 장을 최민혁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클럽 마약 사건의 모든 동영상 파일이었다.

불필요한 장면은 다 편집이 되었고, CD 안에 있는 것은 당시 클럽 마약과 관련된 모든 장면을 다 담고 있었다.

최민혁은 주로 김기범의 동선을 위주로 확인했는데, 나머지 관련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CCTV에 찍힌 내용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거기 멈추어 보세요.”

“여기 말입니까?”

“뒤로 좀 더, 네, 거기.”

외부 CCTV 카메라에는 김기범이 차량 안에서 누군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면서 물건을 받았다.

차량은 곧 떠났지만, 다행히 운전사의 얼굴이 아슬아슬하게 찍혔다.

흐릿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는 힘든 화질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당사자를 빨리 알아챘다.

‘DL 화재 김희찬 부사장의 장남인 김현탁 부장이잖아?’

화면을 다시 바뀌자 김기범이 가방을 여는 장면이 나왔다.

그 가방 안에는 꽤 많은 마약이 들어 있었다.

최민혁은 힐끗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아니, 저걸 왜 검찰에 알리지 않은 겁니까?”

김명준 과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저게 마약이라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어이가 없는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긴 당시 문제를 키워봐야 큰 의미가 없어. KM 그룹이나 DL 그룹이 같이 손을 썼을 거야. 박두영 부장검사도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수사를 할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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