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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전자가 혁신적인 콜린스 모델로 프랑스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KM 전자의 콜린스는 가전 3사의 그 어떤 모델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다.]
[전 세계 TV 시장을 장악한 소니조차 콜린스 모델에는 충격을 받았다.]
[KM 전자 주가 20,000원을 돌파하면서 그 상승세를 이어갔다.]
비행기 탑승 전에 구한 몇몇 언론의 KM 전자 기사를 본 안현우 팀장도 혀를 내둘렀다. 콜린스 모델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독일 IFA 전시회를 기점으로 콜린스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벌써 톰슨 멀티미디어와 손을 잡고 프랑스 쪽에 가장 먼저 공급하기로 했는데, 이미 초도 물량 5,000대가 프랑스로 보내졌다.
이 계약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영국, 이탈리아의 바이어 역시 협상을 포기한 채 일방적인 제안을 계속 내밀고 있었다.
‘물건이 없어서 기다려 달라고 전화만 하고 있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것도 영업 전략이겠지.’
비록 KM 전자 브랜드가 글로벌시장에서 영향력이 없어서 제약이 있다고 해도 그 열기는 심상치 않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안현수 팀장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까지 콜린스 관련 기사를 계속해서 탐독했는데, 보면 볼수록 흥미를 느꼈다.
이미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이런 일을 일으킬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
화려한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보다는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일으킨 일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공항에는 최민혁 실장과 조성돈 팀장이 정성근 대리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안현수 팀장은 자기 여행 물품을 챙기는 정성근 대리를 힐끗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 실장님이 설마 이렇게 나와 계실지 몰랐습니다.”
최민혁은 안현수 팀장을 공항 밖으로 안내하면서 서류를 내밀었다.
“일정이 빡빡해서요. 우선 이것부터 하나씩 확인해 보세요.”
“…이건 뭡니까?”
최민혁이 내놓은 서류는 새로운 기술 자료였는데, 디지털 음성 신호 전송 방법, 제1 및 제2주신호 성분 송수신기, 복수의 정보신호의 부호화장치, 마지막으로 복수의 디지털 정보신호 인코딩 장치에 관한 자료였다.
“임기석 부장 통해서 이미 지난달에 특허출원을 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것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다음에 내놓은 자료는 디지털 오디오 신호 전송 방법, 비트율의 감소와 관련해서 전체 마스킹 한계를 결정하는 방법에 관한 특허다.
특히 디지털 전송용 시스템과 관련된 특허는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건 시즈벨의 특허군요.”
최민혁은 뜻밖에도 상대가 이미 시즈벨 특허에 대해서 알고 있자 만족했다.
“이 특허에 대해서 아십니까?”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술 전문 특허 사무소인 것으로 압니다. 특허 로열티 지금과 관련해서 이미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미국,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법인을 만든 것으로 압니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서 만족했다.
“그러면 제가 뭘 원하는지 아시겠군요.”
“크로스 라이센스입니까?”
“네. 그것도 한 답입니다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특허 매입이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시즈벨도 우리 특허를 확인하면 다른 회사 대하듯이 하지는 못할 겁니다. 계약을 좀 더 유리하게 이끌어갔으면 합니다.”
“저기 실장님, 이게 좀…….”
“왜 자신 없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안현수 팀장도 공항에서 보기가 무섭게 일로 자신을 휘어잡는 최민혁 실장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당연히 싫지는 않았다. 아니, 정말 하고 싶었다. 자신이 원한 일이 이런 것이었으니까.
다만 이 일은 오성 전자와 같은 한국 10대 재벌 기업 수준이나 되어야 할 일이다. 고작 KM 전자에서 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민혁이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우리 KM 전자도 앞으로는 단순 제조를 뛰어넘어서 원천기술을 확보한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입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진심 어린 호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민하던 안현수 팀장도 어색한 미소를 한 채 결국 최민혁의 제안을 받았다. 안현수 팀장은 차량에 탑승해서도 서류를 계속 살피며 곧 자기 일에 집중했다.
무서운 집중력.
순수하게 일에 몰입하는 그 태도에 최민혁도 방긋 웃기만 했다.
시즈벨과 계약에 앞서서 법률 전문가가 꼭 있어야 했다. 앞으로 KM 전자 행보를 위해서도 법과 공학에 대한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 대상은 안현수 팀장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역시.’
* * *
최민혁이 내놓은 특허 자료는 실상 시즈벨이 후일 얻은 특허다.
시즈벨은 미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오디오, 무선랜, 영상인식, 모바일, 네트워크, 스마트 디바이스를 포함한다.
최민혁은 이 중에 오디오 부분에서 MP3 관련된 시즈벨의 로드맵 일부분을 사전에 다 막아버린 것이었다.
애초에 시즈벨이 지금 준비 중인 MP3 특허는 그런 흐름을 따라가니까.
다만 아직은 시즈벨도 MP3 분야 지적재산권을 완전히 얻지 못했다. 큰 그림을 그렸지만 실제로 그 기술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몰랐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나름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를 위해서 노력했지만, 브라운호퍼 연구소 반대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안현우 팀장은 시즈벨 회사의 정보와 지금까지 제이미 이사가 내놓은 결과를 보면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최민혁이 왜 이 특허를 가지고 시즈벨과 협상을 하려는지 새삼 깨달았다.
‘MP3 산업이 형성된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거야. 로열티만 해도 천문학적인 이익이 될 테니까.’
물론 그 역시 최민혁이 내놓은 자료와 시즈벨의 상황을 보고서야 유추했다.
그런 점을 깨달은 안현우 팀장은 새삼 최민혁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시즈벨 특허는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이 특허는 도대체 어떻게 고안하신 겁니까?”
“우리 KM 전자의 임기석 부장님 솜씨죠. 이동호 교수 연구 팀과 같이 손을 잡고 일을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자세한 것은 임기석 부장에게 문의해 보세요.”
하지만 비디오 특허 때문에 정신이 없던 임기석 부장도 정작 이 오디오 관련 특허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는 최민혁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등 떠밀려서 이동호 교수에게 작업 지시를 내렸고, 그 과정에서 특허 출원부터 하고 만 것이었다.
그러니 이 상황을 알아도 아직 긴가민가한 조성돈 팀장은 한쪽에서 열심히 관련 특허를 살필 뿐이었다. 일단 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팠다.
브라운호프의 원천기술, 최민혁의 특허, 시즈벨이 확보한 특허가 서로 절묘하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성근 대리 역시 조성돈 팀장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는데, 머리를 싸매고 죽어라고 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안현수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제가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의 내막까지는 알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 주신 자료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러면 협상은 어떨 것 같아요?”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시즈벨에서 싫다고 하면, 우리도 맞불을 놓으면 되니까요. 더욱이 각 특허가 가지는 가치를 따로 환산하면 그들도 과한 요구를 하기 힘들 겁니다. 거기에 특허 속성을 비교해서 압박하면, 협상에 무조건 임해야 할 겁니다. 만약에 맹렬하게 반대하면 오히려 협박하면 됩니다!”
결국에는 돈 문제라는 말에 최민혁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즈벨이 협상을 깨면요?”
“우리 KM 전자는 일부 손실을 보겠지만, MP3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즈벨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건 시즈벨 스스로 자살하겠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습니다.”
특허 가지고 수익을 올리는 시즈벨 입장에서는 무조건 협상을 해야 할 일이었다.
“좋네요. 바로 그것입니다. 벼랑 끝 전술. 모 아니면 도로 가죠.”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굳이 특허로 유럽이나 미국 전체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정말 승산 없고, 어리석은 싸움이기 때문이다.
‘정 안 되면 공간 압축 비디오 특허로 협상할 수밖에 없어. 어차피 유럽 특허 관리는 다른 업체에 맡겨야 해. 차라리 세계 최강의 특허 괴물 시즈벨이라면, 나쁜 선택은 아니지. 소니나 필립스를 괴롭힐 최강의 사냥개이니까.’
* * *
포강 서쪽 강변을 따라서 자리 잡은 토리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이 점령한 곳이었다.
지금은 이탈리아의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통신사업이 발달한 곳이다.
최민혁이 굳이 이 토리노의 한 호텔에 투숙한 것은 불과 10분 거리에 시즈벨 이탈리아 사무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름 겉으로는 적극 협상에 임하려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KM 전자의 주가 폭등이나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예상치 못한 문제 때문에 이전처럼 계속 이곳에서 이탈리아 관광을 즐길 수가 없었다.
‘아쉽네. 이왕이면 1회차에서 못해본 관광이나 계속 즐기려고 했는데…….’
언제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을 해보겠나.
최민혁은 작정하고 이곳 토리노를 시작으로 바로 옆에 인접한 알레산드리아를 공략하려고 했지만 깔끔하게 접었다.
안현수 팀장이 작업 진척을 살피다가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직도 쫓아다닙니까?”
“3명으로 줄기는 했지만 여전합니다.”
최민혁도 어느 정도 사전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하자 곰곰이 고민했다. 먼저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방법은 많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당장 공항으로 갑시다.”
“네?”
“아, 제 말은 흉내만 내자는 거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척하고서 반응 보고 결정하죠.”
“설마 그게 통하겠습니까?”
“싫든 좋든 해봐야죠. 저도 여기 이탈리아 관광이나 하고 싶지만, 한국에서의 미국계 증권 회사들, 특히 SB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우영민 과장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SB 측에서 이미 몇 번이나 만나서 협상을 질질 끌면서 속내를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나갔다.
“안 됩니다.”
김명준 과장도 평소와 다른 최민혁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SB 움직임 때문이죠.”
SB는 70년대 급격히 성장한 투자회사로, 직접 투자로 수익을 올렸다. 특히 자기 자본을 이용해서 조 단위라는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1회차 삶에서 이들 SB의 몰락을 잘 아는 최민혁은 이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었다.
‘우리 KM 그룹 차입금 배후나 마찬가지지. 어이가 없는 것은 SB가 IMF 터진 이후에 막대한 손실을 봤으니까.’
물론 KM 그룹 투자 때문에 SB가 무너졌는지는 최민혁도 잘 몰랐다. 다만 한 원인이 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김명준 과장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영민 과장 이야기로는 SB가 대단한 투자회사이기는 하지만 최근 와서는 내부적으로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렇겠죠.”
최민혁도 SB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들의 내부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꼭 우리 KM 전자 때문이 아닙니다. SB에 관해서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우영민 과장에게는 그들과 일정한 거리만 유지한 채 모르쇠하라고만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도 그렇지만 옆에서 지시를 듣는 다른 이들도 최민혁 이야기에 귀를 쫑긋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SB에 대해서 왜 최민혁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회사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들도 KM 전자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생각보다는 첨예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자 시즈벨 협상에 다시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