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당장 눈앞의 은행 송금 유혹에 견디지 못한 김홍수 사장은 결국 주식 매각 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정 찜찜하면 이 돈으로 KM 전자 주식을 사들이면 되잖아.’
나름 머리를 굴렸다.
윤종수 SB 지사장은 서명이 끝나자 전화로 SB 한국 지사에 지시를 내렸고, 돈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홍수 사장 계좌에 이체되었다.
무려 60억이 한 방에 이체된 것이었다.
김홍수 사장은 갑작스러운 횡재에 함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윤종수 지사장이나 데이비드 싱어 두 사람은 꽤 만족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래 감사합니다.”
번개같이 사라지는 두 사람.
김홍수 사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로 한동안 춤을 추었다. 흥분은 곧 가라앉았다. 만약을 위해서 당장 대운 증권 쪽에 전화를 걸어서 KM 전자 주식을 사들이라고 지시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가격 제한폭까지 올랐지만, 거래가 되지 않습니다. KM 주식의 수가 워낙에 적어서 유통 물량이 없는 터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웃돈을 주고 더 사들이란 말입니다.]
[설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당장은 주식 매각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장에 풀린 KM 주식 자체가 다 사라졌으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입니까? 주식이 없어서 주식을 구할 수가 없다니.]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콜린스 발표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탈리아 쪽에서 기사가 나온 후부터 상황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
김홍수 사장도 전화를 끊고 나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계좌에 찍힌 60억 때문에 즐거웠지만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KM 주식을 매입할 수는 없는 것이 불안했다.
‘아냐, 아직 시간은 많잖아.’
* * *
SB가 SB 증권을 통해서 KM 전자 지분을 사들였다. 그다음에는 주주를 상대로 돌아다니면서 블록딜 형식로 추가로 주식을 사들였다.
주식 지분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외부에 그 사실이 알려졌다. 블록딜 자체는 놀라운 것이 없었지만, 그 거래 가격 자체가 시장 가격보다 무려 2배를 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블록딜과는 너무 다른 현상이라서 기사화가 되었는데, 높은 가격을 제시한 곳에 지분을 넘기는 경쟁 입찰 방식에서도 일어날 수가 없는 황당한 거래였다.
이탈리아 관광을 즐기던 최민혁은 올리브유가 듬뿍 들어간 미트볼 맛을 음미하다가 이 뉴스를 보고받았다.
그조차 황당해서 식사를 빨리 마치고 나서 보고안을 살폈다.
SB가 먼저 시작했지만 다른 미국 5대 증권사에서 모두 미친놈처럼 KM 주식 지분을 사들였다. 심지어 한국 기관이나 은행이 가지고 있던 지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 가격이 무려 20,000원을 넘어갔다.
그러니 KM 전자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될 리가 없었다.
계속 가격 제한폭까지 오르고, 또 오르면서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오죽하면 금감원이나 증권감독위원회에서도 KM 전자의 주가를 살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만약 주가 조작 세력이 있다면 단호하게 처벌하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소용이 없었다.
KM 전자 주가의 폭등세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비디오 특허 때문일까요?”
조성돈 팀장 역시 식은땀을 닦으면서 곤혹스러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콜린스 발표 이후에 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MPEG 위원회에서 비디오 특허가 주목받은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시즈벨 외에는 없군요. 시즈벨의 움직임은 없었습니까?”
“시즈벨의 변화라면 영국을 비롯한 다른 지사에서 실장님과 우리 KM 전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것뿐입니다.”
최민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 시즈벨 쪽과 관련된 이들에게 정보가 일부 넘어갔겠네요.”
“그들이 바보가 아닌데, 우리 정보를 넘겼겠습니까?”
“바보가 아니라서 넘겼겠죠. 시즈벨 법인은 영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해관계 당사자 통해서 정보가 흘러갔을 겁니다. 특히 미국 쪽에서 관심을 뒀을 겁니다.”
하지만 최민혁도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일은 그의 계획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들이 왜 KM 전자의 주식에 탐욕을 부리는 알 수가 없었다.
‘주식 대부분은 내가 들고 있어. 시장에서 아무리 주식을 확보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이상하네.’
만약 MP3 프로젝트 가치를 안다면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최민혁 자신뿐이었다.
MP3 프로젝트 미래 가치를 잘 모르는 조성돈 팀장은 그저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아직 MP3 프로젝트 진행도 이제 겨우 선행 조사 단계인데, 그것 때문이란 말입니까? 그들이 그걸 어떻게 알고 이런 행동을 합니까?”
최민혁도 조성돈 팀장을 탓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미래 가치를 보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자들이 가진 막대한 자금을 고려하면 KM 전자 수십 개도 사고 남지.’
“아마 시즈벨이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바보는 아닐 테니까요. 그들 역시 다른 채널 통해서 상황을 알아봤을 겁니다.”
“정말 이 일이 MP3 프로젝트 때문이란 말입니까?”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네요. 이미 시즈벨 특허 외에 어지간한 것은 다 챙겼으니까요. 그중에 비디오 특허도 있습니다. 그것만 봐도 우리를 우습게 볼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 시스템 관련 특허는 우리가 따로 낼 테니까. 다만 이걸 수익으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하구나.’
최민혁은 문득 자신이 콜린스 거품을 키우고, 톰슨 멀티미디어가 기름을 뿌렸으며, 시즈벨이 폭탄을 던졌다고 가정했다.
KM 전자 주가 폭등은 전혀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문득 은행, 기관 투자자, 심지어 개인 주식 대부분이 외국계 은행에 넘어갔다는 것을 보고서 뒷장에서 확인했다. 30만 주를 소유한 김홍수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귀찮게 했던 이라서 유독 잊히지 않았다.
“쯧, 나라면 계속 홀딩했을 텐데, 멍청한 짓을 하는군요.”
20,000만 원이라면 자신도 갈등했을 거라 생각한 조성돈 팀장도 혀를 찼다.
“…아무래도 20,000원이라는 제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돈으로 필요한 주식을 사면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하지만 KM 전자 주식의 매매량은 그다지 높지가 않았다.
내놓는 물량마저 족족 누군가 다 주식을 다 긁어버렸다.
실상 가격 제한폭까지 올라도 거래량 자체가 없어진 것이었다.
최민혁은 시즈벨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쓸데없는 일을 경험하자 혀를 내둘렀다.
“시즈벨 그놈들은 아직도 반응 없습니까?”
“네.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상할 정도로 정중합니다. 이번 거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래의 시즈벨이 갑질을 했던 것을 이미 인생 1회차를 통해 확인한 최민혁은 툴툴거렸다.
“그놈들은 변하는 것이 없네요.”
“네?”
“별것 아닙니다.”
다만 대주주 주가 지분 변동을 확인하던 최민혁은 예상 밖의 한 사람을 발견했다.
“최두진 사장 지분은 또 뭡니까? 이거 혹시 잘못된 것 아닙니까?”
조성돈 팀장 역시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사실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지분을 최 실장님에게 넘겼지만, 차명으로 가지고 있던 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콜린스 발표 이전에 추가로 주식을 사들여서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
최민혁은 주주 총회 통해서 압력을 가하려고 했던 최두진 사장의 꼼수에 혀를 내두른 채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런 편법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절대로 작은 지분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최두진 사장과 첫째 큰아버지 행적도 잘 살펴보세요. 아무래도 지금처럼 그냥 있을 리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KM 지오텍TRS를 설립해서 우쭐해진 최문경 부회장은 이 일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룹 내에 떠오르는 최민혁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선수를 쳤는데, 구경하는 이들은 다들 반응이 없었다.
이보다는 죄다 KM 전자 주가 폭등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KM 산업 본사 직원조차 하루 시작을 KM 전자 주가로 시작해서 하루 퇴근을 KM 전자 주가로 마무리했다.
폭등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정도로 KM 전자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동안 단타족이 주 무대였지만 블록딜 이슈 이후에는 거래 물량도 쑥 들어갔다.
단숨에 10,000원을 돌파했고, 이 상승세는 역시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미 미국 5대 메이저 증권사가 KM 전자 지분을 박박 긁은 덕분에 이제는 개미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액면 분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무상증자 이야기도 나왔고, 유상증자 이야기도 등장했다.
증권감독위원회에서도 KM 전자의 주가 폭등에 대해서 몇 가지 권고를 제안했다. 물론 공식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KM 전자 주가가 유독 너무 튀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 이 소식을 접한 최문경 부회장 속은 미칠 것 같았다.
계륵이 될 거라고 예상한 KM 전자는 놀랍게도 금감원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유래 없는 주가 폭등에 의혹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장승일 실장 주장으로는 KM 전자의 미래 가치가 워낙에 밝아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만 합니다.”
“권 실장, 미래 가치가 확실한 우리 KM 산업 주가는 왜 그 모양인데?”
“연초 대비 50% 가까이 올랐습니다. 다른 코스피 종목에 비하면…….”
“그러면 7배나 오른 KM 전자는 뭔데? 아니 대한민국 주가조작 세력이 다 달라붙어도 이런 식으로는 못 올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설마 주가조작 세력이 끼어들었겠습니까?”
“그렇겠지. 검찰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대놓고 주가조작 할 간 큰 놈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내막을 알아야 할 것 아냐!”
“…….”
그도 살기가 가득한 최문경 부회장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도대체 양키 이 새끼들이 왜 이 난리를 치는 거야? KM 전자에 뭐가 있기에 저렇게 미친놈처럼 날뛰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그 비디오 특허 때문이란 소리가 있습니다. 이 개발을 공동 진행하는 이동호 교수의 명성이 국내를 넘어서 미국이나 유럽 쪽에도 꽤 알려졌으니까요.”
“그게 돈이 돼?”
“저도 아는 친구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만약 비디오 특허 표준이 확정된다면 그 로열티 수익만 해도 수백 억 아니 수천억이 넘을 거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게 과연 될 것 같아? 그 바닥이 여기랑 같은 줄 알아? 아주 지옥이야, 지옥이라고!”
“그런데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쪽에서 이미 이 비디오 특허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최문경 부회장으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설사 이동호 교수가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이해관계가 복잡한 비디오 특허를 유럽이나 미국 애들이 인정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최민혁 역시 이런 문제를 우려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권재홍 비서실장도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친구 이야기로는 요즘 미국이 소니를 아주 싫어한다고 합니다. 만약 KM 전자 비디오 특허가 표준이 된다면 이 연구에만 수천억을 퍼붓고 있는 소니를 제대로 엿 먹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미국에 이익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사전에 KM 전자의 지분을 확보해야겠죠. 그 일의 사전 정지 작업이란 소리도 있습니다.”
“…….”
마치 머리에 총알을 맞은 것 같은 충격에 최문경 부회장은 깜짝 놀랐다. 만약 분위기가 최민혁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었다.
미국 5대 메이저 증권사가 그 정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런 개같은. 가만 그러면 KM 전자 주식을 매입하면 돈이 된다는 소리잖아?”
“그게 지금은 주식을 매입하기 힘듭니다. 이미 기관 투자자가 가진 지분은 전부 외국계 증권사로 다 넘어갔습니다. 있다고 하면 거래되는 소액 물량인데, 그것도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KM 전자 주가 폭등은 다른 어떤 종목과는 특이하게 흘러갔다. 거래량 자체가 없는데, 주가는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다들 눈치를 챈 개미조차 물량을 붙잡은 채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돌고 있는 소액 물량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주가가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최두진 사장님이 KM 전자의 지분을 꽤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