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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42화 (142/1,021)

#142

그런데 꼭 이런 시기에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 지방에 땅 투자를 좀 했는데, 가짜 뉴스에 속아서 큰 손실을 봤다.

자금이 갑자기 쪼들리는 상황이 되자 은행을 쫓아다녔지만, 대출은 좋지가 않았다.

자산이 쪼그라들면서 은행에서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나 하며 미련을 가지고 있던 최두진 사장은 지난 주주총회 일을 핑계 삼아서 아예 도와주지도 않았다.

모든 일이 꼬이자 최민혁 실장 욕만 했다.

“빌어먹을 새끼.”

김홍수 사장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부동산과 주식 중의 하나를 팔기로 했다. 처음에는 KM 전자 주식을 정리할까 싶었지만, 최민혁 실장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모습.

그가 아는 재벌 3세와는 많이 달랐다.

심지어 아는 라인을 통해서 최근에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의 지분까지 증여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이제 KM 전자는 최민혁 실장의 소유였다.

역시 지금 KM 전자 주식은 팔아봐야 돈이 되지 않았다.

‘기다려 보자.’

김홍수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KM 지분을 매각하는 것 대신에 강남에 사놓은 7층 건물을 급매로 내놓았는데, 딱 하루 만에 팔려 나갔다.

너무 속상해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이제 막 병원에서 퇴원하려고 할 찰나에 대림 전자의 이찬형 부사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이찬형 부사장 목소리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야, 홍수야, 너 혹시 KM 전자 지분 사놓은 것 어떻게 했냐? 설마 판 것은 아니겠지?]

다시 KM 전자 지분이 생각나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손실이 너무 커서 그냥 들고 있다.]

[후유, 다행이다. 난 지난주에 그 주식 담보로 돈 좀 빌려 달라고 하기에 혹시 그 주식 팔았는지 알았다.]

김홍수는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중 이찬형 부사장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기억을 뒤늦게 떠올렸다.

[네놈이 친구야?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했지? 도대체 왜 전화를 한 거야. 너랑 이제 상종도 안 해!]

[그래. 미안하다. 하지만 덕분에 KM 전자 주식을 팔지 않았잖아. 그것만 해도 다행이야. 그러니 너무 지난 일 가지고 그러지 마!]

[내가 안 그래도 신경성 위염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날 놀릴 셈이냐?]

[너 정말 몰라? KM 전자 주가 말이야.]

[말도 꺼내지 마.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병원에 있는 거잖아!]

[쯧, 그래. 손실이 많이 날 때는 그냥 묵혀 두는 것이 최고지. 그러나저러나 너 이번에 한턱 크게 쏴야 할 거다.]

[무슨 개소리야?]

[야, KM 전자 주가 확인해 봐. 벌써 5,500원까지 올랐어. 4일 연속 주가 제한폭까지 올랐고, 오늘도 마찬가지야.]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망해가는 KM 전자 주가가 어떻게 올라? 농담도 좀 상황 봐가면서 해야 할 것 아냐. 나 지금 병원에 입원한 것도 그 일 때문에 화병 나서 그런 것 몰라?]

[아, 이 새끼가 진짜 사람 말을 좀 들어. 내가 뻔히 들통 날 이야기를 왜 거짓말로 하겠냐. KM 전자 주가나 당장 확인해 봐!]

[KM 전자의 미래에 희망이 뭐가 있다고…….]

[내가 말했잖아.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이 뭔가 한다고. 편향 코일도 그렇고, 고압변성기도 이상하다고 했잖아. 신제품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었어. 그게 콜린스였어. 이번에 새로 출시한 콜린스 모델이 유럽에서 대박 쳤어. 우리 회사에도 모두 합해서 20만 개나 오더가 들어왔는데, 그것 때문에 발칵 뒤집혔어.]

‘콜린스? 그게 뭐지?’

KM 전자 이야기만 들으면 울화병이 터져서 아예 그쪽 정보하고는 담쌓은 김홍수 사장은 KM 주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주치의가 스트레스 쌓일 만한 일은 당분간 끊으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자, 잠깐만.]

그는 다급하게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서 KM 전자 주가를 확인했고, 뒤늦게야 주주총회에서 최민혁이 한 약속을 떠올렸다.

-좋습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KM 전자 주가가 하락 폭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다면 좋을 시절도 오기 마련입니다.

당시만 해도 면피성 발언 정도로 생각했던 최민혁의 약속은 생각보다는 더 훌륭하게 지켜졌다.

[갓민혁, 만세!!!]

다시 이찬형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식, 퇴근하면 바로 전화해라. 오늘 좋은 곳에 가서 한턱 쏴야 해.]

[그, 그래. 알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그쪽에서 계속 비밀로 해서 뭔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게 콜린스 신규 모델에 들어가는 부품이었어. Slim TV로 디자인이 죽여준다. 게다가 품질도 오히려 소니보다 더 낫다는 소리가 나와.]

[그렇구나.]

김홍수 사장은 허겁지겁 담당 의사를 불러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는 증권사를 방문한 뒤에야 KM 전자를 둘러싼 뜨거운 분위기를 알게 되었다.

그제야 KM 전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하나씩 확인했다.

‘맙소사.’

오늘도 가격 제한폭까지 올랐는데, 그 기세가 여기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KM 전자가 콜린스 독점 판매권을 프랑스 톰슨 멀티미디어에 넘기다!]

알고 보니 이 기사는 이미 얼마 전에 나온 기사였는데, 프랑스 언론이 최민혁 실장을 주목하면서 또다시 기사화되었다.

기사 내용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콜린스 현황을 소개한 뒤 톰슨 멀티미디어가 독점 판매권을 가지면서 프랑스에 가장 먼저 시판될 것이라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했다.

아직 콜린스는 국내 정식으로 판매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프랑스에서 더 난리였다.

‘세상에 진짜 대박이잖아!’

그 당당하기만 하던 최민혁 실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당장에 자신에게 주식을 매각하라며 당당하게 소리치던 그 모습.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약속을 완벽하게 이루어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동안 자신이 한 행동을 뒤늦게 후회했다.

‘갓 실장, 정말 대단하다!’

* *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KM 전자 주가는 기존 코스피 추세와는 많이 달랐다.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서 코스피가 등락을 거듭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주야장천 계속 올랐다.

물론 여기에 편승하는 단타 개미도 많았다. 그들은 계속 KM 전자 주식을 사고팔고를 반복하면서 시세 차익을 챙겼다.

KM 주가가 6,000원을 넘기자 살짝 부담을 느낀 차익 매물이 시장에 쏟아졌다.

KM 주가는 단기적으로 하락을 거듭했지만, 이 매물을 일거에 쓸어 담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SB(샐로먼 브러더스)였다.

이들은 KM 산업을 비롯한 몇몇 회사와 같이 SB 증권을 설립했는데, 이 SB 증권 창구를 통해서 KM 전자 지분을 쓸어 담았다.

더 황당한 것은 골드만 삭스나, 리만 브라더스를 비롯한 미국 5대 증권사가 뒤늦게 합류해서 KM 전자의 주식을 박박 긁어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KM 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관사나 은행을 직접 찾아가서 블록딜 방식으로 KM 전자 지분을 다 쓸어 담았다.

은행이나 기관 투자자도 의아했지만 거부하기 힘든 제안에 다들 주식을 팔 수밖에 없었다.

KM 주가 주가는 덕분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상승세를 기록해서 단숨에 7,000원을 돌파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5,500원이었던 주가가 롤러코스터 장세를 그리면서 춤을 춘 것이었다.

그리고 윤종수 SB 지사장은 김홍수 사장도 직접 방문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SB 한국 지사장을 맡은 윤종수라고 합니다.”

차가운 눈빛에, 정장을 입은 윤종수 SB 지사장은 전형적인 증권 브로커 모습이었다. 동행한 데이비드 싱어 SB 수석 매니저는 옆에서 조용히 자신을 소개한 후에 침묵했다.

“…아, 안녕하세요.”

김홍수 사장은 갓민혁 찬양에 정신이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했다. 그 역시 미팅 약속을 잡은 후에야 미국 국채인수로 유명한 샐로먼 브러더스에 대해서 알았다.

자신감이 가득한 윤종수 SB 지사장은 한국에서 자사의 행보에 대해서 간단하게 늘어놓았다.

“올 연초에 로버트 부회장님이 서울에서 홍재익 재정경제원 장관을 만나서 한국 진출을 직접 언급했고, 국내 기업과도 만나서 합작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이 당시에 어떤 한국 기업과 손을 잡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분분했다.

대기업 쪽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정부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오히려 KM 산업을 비롯한 몇몇 중견 기업에 다리를 놓았다.

이들을 통해서 이들이 대기업 자본과 경쟁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오성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로비가 심해졌고, 그 덕분에 재정경제원 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KM 산업은 최훈열 전무 추문으로 인한 신뢰도 저하로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최용욱 회장이 결국 나서면서 일단 일단락이 되기는 했다.

자본금 규모는 500억으로, SB가 49% 지분을 가지고 KM 산업을 비롯한 중견 기업과 개인 투자자가 나머지 지분을 사들였다.

김홍수 사장 역시 대림 전자 이찬형 부사장을 통해서 지분 일부를 얻으려다가 실패했다.

‘최두진 사장은 SB 증권 지분 일부를 얻은 것으로 아는데…….’

윤종수 SB 지사장은 장황한 설명을 통해서 SB가 얼마나 한국 시장 진출에 적극 노력하는지 피력하다가 결국 넌지시 KM 전자 콜린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홍수 사장도 그제야 뜬금없는 방문 내막에 대해서 눈치챘다.

‘쯧, KM 전자 주식 때문인가. 하긴 지금 주식 동호회가면 KM 전자 주식으로 난리니까.’

“설마 제 주식을 원하는 겁니까?”

“네.”

그는 헐값에 팔아넘긴 건물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느긋했다.

뜻밖에 이들이 KM 전자 주식에 집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갓민혁 실장이 대단했지. IFA 기조연설은 수십 번 봐도 질리지 않으니까. 이번 톰슨 멀티미디어와 프랑스 판매 독점권 협상도 대단했어. 더욱이 콜린스 정식 판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주문이 계속 쌓이고 있잖아.’

“KM 전자 주가는 저보다 더 잘 알 테고, 얼마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윤종수 SB 지사장은 매수자가 제시한 가격에 따라서 지분을 넘기는 입찰 방식의 블록딜 거래 제안을 내놓았다.

“2,000원에 30만 주를 사들인 것으로 압니다. 주당 8,000원에 사들이고 싶습니다.”

“8,000원이라…….”

마른침을 꿀꺽 삼킨 김홍수 사장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흥분을 가까스로 참았다. 모두 24억으로 자신이 투자한 6억보다 무려 4배나 높았다.

하지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행보와 관련된 기사를 아예 따로 스크랩해서 정리했다. 프랑스 르몽드지 일 면을 장식한 최민혁은 뜻밖에도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유럽의 한 파파라치가 촬영한 이 최민혁의 모습은 프랑스에 있을 때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은 이탈리아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 그 일이 이들 방문과도 관련이 있는 건가. 가만 뭔가 좀 이상하잖아.’

사실 로또 대박을 터트린 그로서도 SB 지사장의 방문은 뜬금없었다.

과연 이게 단순히 운 때문일까.

김홍수 사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주당 10,000원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김홍수 사장은 식은땀마저 흘리면서 이 제안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30억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야망에 찬 윤종수 지사장은 이번에 좀 크게 불렀다.

“주당 15,000원에도 싫습니까?”

“네?”

김홍수 사장도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크게 당황했다. 현 주가 대비 무려 2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콜린스 발표 이전에 고작 1,500원에 불과하던 주식을 무려 그 10배인 15,000원에 사들이겠다는 제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20,000원으로 결정하시죠. 그 이상이라면 저희도 포기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윤종수 SB 지사장이 KM 전자 주식 매각 계약서를 가방에서 꺼낸 뒤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김홍수 사장에게 내밀었다.

펜은 덤이다.

“…….”

얼떨결에 펜을 쥔 김홍수 사장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주당 20,000원이면 무려 60억이다.

아무리 KM 전자 주식이 급등한다고 해도 이 주가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쯤 되니 그도 뭔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60억이란 돈 때문에 그 점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뭔가 찜찜하다고 느꼈지만, 김홍수 사장은 당장 눈앞에 놓인 돈의 유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침묵하던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는 방긋 미소 지었다.

“사인하시면 돈은 지금 당장 김홍수 사장님 계좌로 입금될 겁니다.”

“까짓것 거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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