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37화 (137/1,021)

#137

최민혁은 굳이 자신의 구체적인 플랜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두 사람도 최민혁의 의도를 알자 특허 매각에 대해서 더 불안해하지 않았다.

콜린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MP3 특허 역시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젊은 거인을 이렇게 만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나서 영광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심 기쁜 최민혁.

지금 협상이 쉬운 것 같아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인생 1회차 때만 해도 칼하인츠 교수는 아예 자신과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콜린스를 기반으로 삼아서 원천기술을 확보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서 새삼 기분이 좋았다.

‘시즈벨 협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도 쉽게 풀려갈 거야. 정말 잘됐다.’

한편으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1회차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톰슨이나 칼하인츠 박사 태도 봐서는 콜린스 모델이나 비디오 특허가 없었다면 계약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어. 단순히 돈만 보고 이들이 MP3 특허권을 매각할 리가 없을 테니까.’

* * *

칼하인츠 박사와 디이터 교수가 흔쾌히 MP3 특허권을 매각하자 나머지 계약 협상은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은 모든 일이 순탄하게 마무리되자 기꺼이 톰슨 미디어와 만나서 MP3 조건을 포함한 최종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는 내심 이 자리에서 환호하고 싶었다.

‘드디어 MP3 특허 권리를 얻었다.’

“감사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할 말입니다.”

드리 포달리 부사장은 콜린스 프랑스 독점 판매권 때문에 잔뜩 흥분했고, 다른 톰슨 이사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콜린스 독점권을 잘만 활용한다면 톰슨 멀티미디어 영업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이제까지 구상했던 전략 전환점을 넘겼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그도 계획을 짜기는 했지만, 막상 일이 터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톰슨 자사가 가진 MP3 원천기술을 쉽게 내놓을 수 없을 수도 있었다.

만약 이번 특허 매각을 적극 반대한 이가 있었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톰슨 임직원 중에는 당장 자기 밥그릇을 걱정하느라 MP3 특허 관련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이가 없었다.

중간에 실무진에서 다시 검토를 해봐야 하지 않느냐고 의견을 올린 이도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되어 버렸다.

‘생각보다는 쉽게 해결했어.’

그 역시 티에리 이사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챘다.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MP3 특허를 얻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몇 년 후에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수익 구조를 개선한 톰슨 멀티미디어라면 이런 제안 자체를 안 받겠지.’

특히 콜린스가 큰 역할을 했다.

기존 KM 전자 제품이라면 톰슨이 이렇게까지 적극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 마무리를 빨리 진행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 * *

톰슨 그룹의 사정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군사용 레이더를 비롯한 항공관제 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톰슨 멀티미디어는 프랑스인의 자부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톰슨 그룹 민영화가 진행되면 방위전자산업분야는 알카텔 알스톰이나 라가르데르 그룹에 넘어가게 되는데, 전자 사업 부분은 한국 대운 전자를 비롯한 오성 전자가 후보로 올랐다.

물론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카더라 소식만이 무성했다.

올해 물밑 작업을 시작으로 내년에 본격적인 지분 매각을 진행하려는 꼼수였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톰슨 노조는 하루도 쉬지 않고 톰슨 본사로 가서 시위했다.

프랑스 언론 역시 오히려 노조를 두둔해서 톰슨 그룹의 방만한 경영 문제를 씹었다.

그 와중에 KM 전자와 톰슨 멀티미디어의 협약은 이런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소위 말하는 윈윈 전략.

이 과정에서 KM 전자의 모습은 프랑스 정치권에 막대한 로비를 벌이는 대운 전자나 오성 전자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 정부도 KM 전자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단순히 쳐다보는 관점을 벗어나 프랑스 언론매체를 이용해서 KM 전자를 적극 홍보했다.

[침몰하는 톰슨 멀티미디어 흑기사로 나선 KM 전자!]

[혁신의 아이콘 최민혁 실장은 난파하는 톰슨 호를 구조하다!]

대놓고 밀어준다고 해야 할까.

관영 프랑스 언론 전체가 KM 전자와 최민혁을 과하게 빨아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언론 역시 여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르몽드지 첫 면 전체가 IFA 기조연설을 하는 최민혁 사진으로 도배됐을 정도였다.

이유는 바로 콜린스는 죽여주니까.

실제로 콜린스를 봤던 프랑스인은 열광했다.

자연스럽게 프랑스 주변의 스페인, 그리스, 독일 주변으로 이 뉴스가 무섭게 퍼져 나갔다.

한편으로 유럽 시장을 장악하는 소니에 대항마로 KM 전자를 생각하는 언론도 있었다.

최민혁은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다가 이 분위기에 혀를 내둘렀다. 시간이 지나면 콜린스에 대한 관심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미 국내 홍보 팀을 통해서 알아본 조성돈 팀장 역시 당황했다.

“오히려 국내 홍보 팀이 더 황당해합니다.”

“홍보 팀에서 손쓰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네.”

뒤늦게 몇몇 언론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해봤는데, 위에서 압력을 받아서 기사를 썼다는 것을 알아챘다.

최민혁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렇게도 풀려가네요.”

“그러게요.”

“국내 반응은 어때요?”

“이미 실장님 기조연설 이슈는 시간이 지나서 가라앉았는데, 갑자기 다시 뜨는 상황에 국내 언론 역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도대체 프랑스 언론이 왜 도를 넘어서 설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한번 잘 주시하세요.”

MP3 특허권 때문에 무리를 거듭한 최민혁도 자신이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자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기조연설이나 콜린스 이슈가 좀 가라앉기를 원했던 것이다.

‘골치야.’

* * *

콜린스 이전만 해도 KM 전자의 상태는 생각보다는 안 좋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런 KM 전자의 문제점을 내세워서 틈틈이 계속 공격했다.

그 와중에 문제가 된 것이 많았는데, TRS도 한 분야였다.

장승일 실장은 나름 최민혁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이 TRS 업무 분장을 고민했고, 자연스럽게 KM 전자에 맡기려고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콜린스 사태 이후에 KM 전자가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 TRS는 KM 산업에서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이야기를 아예 무시한 채 미국 지오텍을 찾아가서 펜실베이니아 상용 서비스 시연회에 참가했다.

이 시연회 사전 서비스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합작 회사 설립을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최용욱 회장도 최민혁 기조연설 이후에 무섭게 KM 전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자 무조건 최민혁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최민혁를 만나서 이 안건을 협의하려고 했는데, 연락 자체가 잘되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콜린스 이후에 무섭게 성장하는 KM 전자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다.

KM 전자 임직원으로서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이 왜 중요한 일을 내버려두고 프랑스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물론 단 한 통화의 전화도 최용욱 회장에게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최용욱 회장이 결국 수차례 전화를 걸어서야 최민혁과 통화했다.

[TRS는 첫째 큰아버지에게 주세요.]

[야, 이놈아, 너 TRS 통신사업이 뭔지 알아? 그 사업을 왜 반도체에서 하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야?]

[괜찮습니다. 저 지금까지 많이 먹었습니다. 인제 그만 욕심을 내야 합니다.]

TRS 통신 사업 몰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민혁은 그저 간단하게 답만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하태평인 최민혁의 모습에 결국 열 받은 최용욱 회장은 애먼 오영근 사장에게 전화해서 항의했다.

[오 사장,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어떻게 내가 오성 전자의 안건민 회장을 통해서 KM 전자의 프랑스 경영 전략에 대한 것을 들어야 해?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이건 죄송하고 말고가 아니잖아. 자네라도 최소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말해줘야지. 정말 이따위로 할 거야?]

[그게 최 실장이 저에게도 제대로 보고를 안 해서…….]

[자네 정말 사장 맞아? 아니, 어떻게 사장이 밑에 직원이 하는 것도 몰라?]

[앞으로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영근 사장의 처지에선 황당한 전화였지만 오히려 씩 웃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이 최용욱 회장에게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었다.

‘저러니 사장 알기를 우습게 알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관심이 나쁘지는 않았다.

프랑스 언론의 콜린스 띄우기 뉴스 소식을 안 것은 딱 이 시기.

오영근 사장도 이때서야 비로소 유럽 언론이 콜린스와 최민혁 실장 사태를 알게 되자 황당했다. 뒤늦게야 몇몇 언론에서 프랑스 언론 사태의 진실을 알게 되자 주변의 잡다한 지방방송을 꺼버렸다.

사내 방송을 통해서 KM 전자와 멀티미디어 협상을 알렸다.

[이번 협상을 통해서 우리 KM 전자는 톰슨 멀티미디어와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계약과 더불어서 콜린스 3만 대 물량 계약까지 체결했습니다.]

무려 1,200억 가까운 매출 물량이다.

KM 전자는 잔치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두가 환호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예상했던 양산 물량이 10만 대였는데, 이 물량의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었다.

죽어라고 10만 대 부품만 준비했던 선행개발 팀의 김창호 부장은 이 물량 폭탄을 맞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늘어난 3만 대와 밀려드는 유럽 물량 7만 대 부품 수급 때문이다.

즉 자고 일어나니, 10만 대 물량 수급을 더 해야 했던 것이다.

김창호 부장은 최구만 과장, 김갑래 과장, 윤선기 대리를 쥐어짜서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중형 1팀의 안선종 팀장이 이 일에 같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미처 예상도 못 한 양산 문제가 터져 나왔다.

다행이라면 최병연 팀이 나서서 이 문제를 같이 봐주었다.

“후유, 김 과장, 부품 바꿀 때 신뢰성 테스트를 신경 쓰라고 했잖아. 대용량 커패시터 경우에는 신뢰성에 영향을 많이 줘.”

커패시터 하나 바꾼 것 때문에 노이즈 문제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CRT 경우에는 이격 문제로 재조립을 해야 했다.

이미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계속 터져 나온 것이었다.

김창호 부장은 결국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김부영 부장에게 항의했다.

[김 부장님, 지금 정신이 있는 겁니까? 아니, 영업 계획을 이따위로 세우면 어떻게 합니까? 갑자기 10만 대나 물량을 늘리면, 그걸 어떻게 채운다는 말입니까? 아직 이쪽 일도 제대로 안 끝났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톰슨 측에서 저렇게 적극 나올지 몰랐습니다. 더욱이 톰슨 계약 이후에 눈치만 보던 이들도 다 달라붙었습니다. 그런 상황까지 저희가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10만 대.

유럽 공략이 처음인 영업 팀이 예상할 수 있는 수량이 아니었다.

[최 실장님의 기조연설 이후에 콜린스 반응이 폭발했고, 톰슨 계약 체결 이후에 신뢰를 확보한 바람에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아니, 항상 최 실장님 핑계만 댈 겁니까? 김 부장님이 사전에 준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해외영업 팀이 취약하면 사람을 더 뽑으면 되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김부영 팀장도 변명하고는 싶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지금 진행하는 모든 영업이 KM 전자 영업 팀 입장에서는 전혀 가보지 않았던 길이었다.

안선종 팀장이 옆에서 다독거려 주었다.

“김 부장, 너무 영업 팀 괴롭히지 좀 마. 최문경 부회장도 지금 정신 못 차리잖아. 오죽하면 KM 지오텍 합작사 설립도 이번 일에 묻혀서 호들갑을 떨고 있겠어?”

실제로 최문경 부회장이 회심의 한 수로 생각한 KM 지오텍 사업은 톰슨 계약 폭탄을 맞고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했다.

최민혁은 물론 조성돈 팀장을 통해 안산 공장의 혼란에 대해서 원칙적인 태도만 취했다.

[다시 말하지만 무리하게 양산할 이유는 없습니다. 계약금을 받은 오더를 우선순위로 해서 제품을 판매하면 됩니다.]

변함없는 최민혁의 행동 지침.

애초에 콜린스 프로젝트를 말없이 지금까지 만든 이의 규정이었다.

그제야 다시 최민혁의 또 다른 행보를 눈치챈 안산 공장 임직원은 조용히 침묵했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콜린스 초대박에 탐욕을 부렸다는 것을 스스로 돌아본 것이었다.

‘역시 최 실장님은 뭔가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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