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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27화 (127/1,021)

#127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는데, 콜린스에 대한 홍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IFA 조직 위원회 쪽에 계속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광고보다는 차라리 그게 효과가 월등하니까요.”

“하지만 이미 기조 연설자가 다 정해진 마당에 그게 바뀔 수가 없잖아?”

“그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최 실장님조차 이 일이 성사되자 고개를 갸웃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정원 과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결과는 간단했다.

“그냥 찔러 본 거였어? 그런데 그 일이 성사되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

STB 사업부를 담당했던 이정원 과장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진행하는 새 프로젝트 중에 비디오 특허 부분이 꽤 큰 의미가 있다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단순히 그냥 특허가 아니라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고 하니까요. 거기에 콜린스 관련 특허 역시 가볍게 볼 것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IFA 조직 위원회에서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닐까요?”

박상기 차장도 곤혹스럽기만 했다.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이정원 과장이 자신이 조사한 자료 몇 가지를 직접 내놓았다. MPEG 위원회가 워낙에 느린 조직이라서 아직 제대로 된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 비디오 특허를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잠정 결론이 나 있습니다.”

“…놀랍네.”

박상기 차장만이 아니라 기획 팀 전체가 혀를 내두른 채 이정원 과장의 자료를 돌려 보았다. 그저 놀랍기만 했던 것이다.

MP3 프로젝트 관련해서 선행 작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그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에 기가 찬 것이다.

‘결국 최병연 팀이 지난주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이 일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구나.’

* * *

사실 기획 팀도 조성돈 팀장이 일을 주도했기 때문에 중요한 내막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MP3만 해도 아직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잘 몰랐던 것이다.

자료를 조사한다고 해서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조성돈 팀장은 감을 좀 잡고 있었지만, 그것도 독일에 있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그는 박상기 차장에게서 뒤늦게 몇 번이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최민혁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최소한 기획 팀은 실장님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임기석 부장이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설립된 독일 연락사무소를 둘러보는 최민혁의 생각은 달랐다.

“모름지기 쉽게 얻는 것은 없는 법이죠. 그냥 다 떠먹여 주면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있어요. 전 기획 팀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기획 팀조차 현재 MP3 프로젝트가 어떻게 흘러가지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지금처럼 일은 잘되어 갈 테니까요. 여기 독일 연락사무소처럼 말이죠.”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에슈본은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로 수많은 기업들에 잘 알려졌다. 그 덕에 혁신적인 기업이 다양하고 존재하고 있다.

독일 진출 기업 대다수는 연락사무소 형태로 시작해서 몇 년 후에는 법인으로 변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민혁은 KM 전자 연락 사무소에 해당하는 한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본 후에 이곳 사무소 사장실에 느긋하게 앉았다.

조성돈 팀장 역시 콜린스 수출 때문에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새삼 발 빠른 최민혁의 행보에 감탄했다.

“이곳에 공장도 설립하실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방긋 미소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획 팀 내부도 내버려둔 채 굳이 이곳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콜린스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나쁘지 않죠. 일단 시장조사 목적으로 움직이면서 공장 부지를 한번 알아보세요.”

“그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럽에 설사 콜린스를 판다고 해도 AS 같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독일 전역에 콜린스가 판매된다면 그 후속 조치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지금은 콜린스가 인기를 얻어서 잘나간다고 해도 후속 모델이 그럴지는 또 모른다.

조성돈 팀장은 연이은 제품 히트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TV 사업부 매각을 아직도 기정사실로 하고 있으니.’

특히 유럽 시장에서 과연 콜린스가 얼마나 지속해서 팔려 나갈지도 검토를 해야 한다.

그런 일 중의 하나만 잘못되어도 누적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

최민혁은 변화무쌍한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보면서 크게 웃고 말았다.

“하하하, 조 팀장님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은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거겠죠?”

“네? 그거야…….”

“오성 전자 기획 팀이라면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뻔히 아니까, 지금은 지켜보기로 하겠죠. 하지만 위기가 닥칠 때를 노려서 숨통을 노리겠죠.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기대에 맞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민혁은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에스본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10년 후에는 한국 기업이 죄다 이곳으로 몰려온다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유럽의 생산 거점이니까.’

“으음, 이렇게 생각하세요. 현재 우리 KM 전자 수준에서는 콜린스 이후 차기 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콜린스를 가지고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콜린스가 정말 대단한 판매량을 기록해야 하는데, 꼭 수치상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요. 거품도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설마 이곳 연락사무소를 시작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유럽을 공략하는 척할 생각입니까? 영업을 이용해서 사상 최대의 주문량을 부풀리기 하면서요?”

“부풀리기라뇨. 실제로 오더가 들어오고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공장을 대규모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쉽게 생각해 보세요. 우리 회사 규모로는 콜린스를 다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 수요를 맞추려면 공장을 수십 개나 설립해야 하는데, 나중이 문제겠죠. 만약 콜린스 경쟁 제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니까요.”

공장 건립에 1년. 즉 그 시간이 지나면 오성 전자는 이미 복제 제품을 만들거나 아니면 가격을 인하해서 공격할 확률이 높다.

오성 전자만이 아니라 소니 같은 회사가 더 문제였다.

더욱이 추가로 막 뽑은 잉여 인력도 처치 곤란한 상황에 놓인다.

무리하면 할수록 나타나는 또 다른 문제점.

“가장 심각한 것은 콜린스 제품의 품질 저하입니다. 마구잡이로 찍어내다 보면, 불량품이 쏟아질 겁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 제품은 손을 쓸 수가 없어요.”

“하,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민혁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그게 우리 KM 전자의 근본적인 한계죠.”

“하,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공장 임직원을 기름 짜듯이 쥐어짜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지금까지는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사실 첫째 큰아버지가 아니라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말에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김명준 과장은 이상야릇한 얼굴을 한 채 대회를 듣기만 했다.

최민혁은 그제야 한마디 했다.

“탐욕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흠칫 놀라며 주춤했다. 최민혁에게 설마 이런 이야기를 들을지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IFA 전시회를 통해 콜린스 홍보가 대성공하고 나자 욕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부품 수급이나 생산 카파를 감안할 때 우리 회사가 최대한 공급할 수 있는 콜린스 물량은 50~70만 대 내외죠. 이 정도만 팔아도 매출이 2조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상은 욕심을 버리란 말입니다.”

“…그건.”

너무 앞뒤가 꽉 막힌 듯한 최민혁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조성돈 팀장은 뒤늦게야 KM 전자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꾸준하게 제품을 팔아먹으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곧 다가올 IMF지. 아마 여기서 회사 규모를 키웠다가는 그때 공중분해 당하겠지.’

최민혁은 굳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공장을 설립할 것처럼 움직여 보세요. 마치 KM 전자가 유럽 공략을 위해서 사활을 건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말이죠. 필요하다면 대규모 투자를 받는 것처럼 움직여도 좋습니다. 조성돈 팀장님은 가능한 모든 계획대로 움직이면서 언론에도 정보를 흘리세요.”

“…그냥 시늉만 하라는 말씀이군요.”

“IFA 전시회 기조연설 덕분에 콜린스 평가는 한없이 높기만 하죠. 벌써 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으니, 그걸 더 키우란 말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체념했다.

“…그 기세를 이용해서 TV 사업부 매각 소문을 흘리고, 비싼 가격에 팔아치우자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매출 2조에 거품이 잔뜩 낀 사업부를 오성 전자는 얼마에 인수해야 할까요? 심지어 슬림 TV 원천기술도 있는 사업부를 말이죠.”

천문학적인 TV 사업부 매각 대금을 대충 상상한 조성돈 팀장도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 차기 브랜드는 이미 결정 나 있으니까요. 최병연 팀장 능력이라면 잘 풀어나갈 겁니다. 이미 보고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콜린스에 대한 집착을 여전히 떨치지 못한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미래를 모르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제가 장담하지만, 최병연 팀장이나 최구만 과장이 스스로 콜린스를 버릴 결정을 하게 될 겁니다. 그들은 결국 MP3를 선택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병연 팀장에게는 제가 따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래요.”

* * *

조성돈 팀장에게서 다시 연락을 받은 최병연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뉴스 틀면 나오는 콜린스에 대한 열기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는 조성돈 팀장의 지시 때문이다.

심지어 추가로 받은 지시에는 MP3 프로젝트 개발에 전력을 다해 달라는 몇 번의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이곳 독일이나 유럽에서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최민혁 실장의 의도에 최병연 팀장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의 놀라운 리더십을 경험했다.

그래서 의문을 더 가지지 않았다.

물론 그 내막을 잘 모르는 조창호 차장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녹화된 최민혁 실장의 연설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너무 거기에 얽매이지 마. 최 실장님에게서 독일 일은 단순한 행보의 의미가 있을 뿐이지, 실제로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니까.”

“……?”

고개를 갸웃한 조창호 차장은 별것 아닌 정보를 하나씩 모아 보자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MP3 프로젝트 관련된 정보를 찾아서 조합하고서야 더 확신했다.

“참 묘하네요.”

최병연 팀장도 피식 웃고 말았다.

“저런 자리 가서 중요한 정보를 떠벌리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적당히 떡밥만 풀어야 그다음 일도 쉬워지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조창호 차장은 이미 MP3 관련된 기술 자료와 기존 특허를 하나씩 살피면서 이미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감을 다잡았다.

굳이 최민혁이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이미 구상했다.

심지어 최병연 팀장에게서 최민혁 의도를 듣자 그제야 유레카를 외쳤다.

“아, 최 실장님이 왜 콜린스보다 이 프로젝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거 잘하면 진짜 돈 되겠습니다!”

두 사람과는 달리 한철수 차장은 뒤늦게 MP3 관련 자료를 확인한 터라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요?”

조창호 차장이 설명했다.

“단순히 MP3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최 실장님이 하는 일은 단순히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 이 포괄적인 기술을 다 확보하는 겁니다.”

“무슨 말이죠?”

“쉽게 말해서 지금 당장은 휴대폰에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어도 나중에 이 기기에서 음악을 플레이어하려면 이 MP3 권리에 대한 로열티를 내야 해요.”

최병연 팀장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모바일 기기에 다 적용된다는 소리야?”

“네. 그게 이 MP3 플레이어의 목적일 겁니다. 지금처럼 특허만으로는 힘들지만 MP3 플레이어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비슷한 제품에 전부 다 적용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쉬울까? 우리 국내 업체가 마구잡이로 막 베끼는 것은 잘 알잖아. 뭐, 오성 전자가 그중에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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