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19화 (119/1,021)

#119

콜린스는 그런 면에서 최강의 히든 챔피언 기업이 내세울 만한 최고의 제품이었다.

디자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문 디자이너도 감탄할 만한 안정적인 화질이다. 특히 잔떨림 하나 없는 화면은 현존하는 어떤 TV보다 월등했다.

엔스 위원장은 뒤늦게야 너무도 많은 해외 업체 때문에 소니를 비롯한 대형 업체를 위주로만 살핀 것을 자책했다.

고작 사진과 제품 규격만으로 콜린스 진가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더욱이 엔스 위원장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에 대한 미국 정부 압력.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다양한 영역에서 숨김없이 그대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기는 했지만, 지난달에 미국 정부 압력에 견디지 못한 독일 고위 경제 관료가 직접 그를 만나서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결국 부스 위치를 비롯한 사소한 것으로 일본 대기업에 압력을 넣었다.

이것 때문에 소니 측 담당자는 크게 반발해서 항의도 했었다.

하지만 미국 크라크 쿠포 경제 차관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양키 새끼들.’

설사 상황이 그렇다고 쓰레기 제품을 찍어내는 미국 가전업체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소니를 무섭게 따라붙은 오성 전자가 좋은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성 전자 이번 신제품은 딱히 소니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바로 콜린스였다.

오성 전자가 이런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

“Ich kann es wirklich nicht glauben!(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로서는 여기 와서 KM 전자를 처음 알았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말없이 조용히 서 있다가 흥분을 가라앉힌 이들을 보자 최민혁 실장이 했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대로 소개해 주었다.

딱딱 핵심만 찍은 설명.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엔스 위원장도 노이즈 하나 없는 경이로운 화질을 확인했다. TV 분야만 수십 년을 파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정말 놀랍군요. KM 전자 같은 회사가 있다니, 그저 믿기지 않습니다.”

“천만에요. 저희 내부적으로도 충격을 받았을 정도니까요. 이 콜린스를 기획하신 최민혁 실장님은 우리 임직원조차 격이 다른 분으로 봅니다.”

“오, 이 모델을 기획한 분이 최민혁 실장입니까? 한번 뵙고 싶군요.”

“제가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희 담당자에게 말해주세요. 필요하다면 부스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볼 테니까.”

“감사합니다.”

조성돈 팀장은 더도 말고, 딱 선을 지키는 선에서 끝냈다. 하지만 그는 엔스 위원장을 비롯한 조직 위원회 모습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하니까.’

그런데 이미 떠났다고 생각한 임권수 부장이 슬쩍 나타났다.

“저분은 엔스 IFA 위원장 아닙니까?”

“…네.”

이미 KM 전자에 된통 당한 임권수 부장은 이 사소한 일조차 쉽게 넘기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을까요? 아니 신제품을 보고 싶은데, 좀 보여주시죠.”

“그건 곤란합니다.”

노골적인 거절에 임권수 부장은 슬쩍 부스 안을 살펴보았지만, 차단막 때문에 내부를 알 수가 없어서 입술을 살짝 깨문 채 잠깐 조성돈 팀장을 째려봤다.

그 역시 KM 기획 조정실에 있을 때 조성돈 팀장의 성정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서고 말았다.

황광수 차장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저런 것뿐입니다. 딱히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임권수 부장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오성 전자의 다음 행보가 걱정스러웠다.

‘…앞으로 피곤하겠어. 최 실장님은 이런 것 때문에 오성 전자를 살펴보라고 한 것 같아.’

* * *

IFA 전시회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에 투숙한 권태성 실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 사태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상적인 출근을 하고 있었고, 그 밑에 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자발적으로 그만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오성 전자와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현우 수석 부장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는 심지어 일도 열심히 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퇴근하면 기다리고 있는 기자를 만나서 인터뷰도 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번 소송을 위해서 변호사를 무려 여섯 명이나 고용했다.

그러니 협상을 하려고 해도 잘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타협을 보려는 상황까지 가도 김현우 수석 부장이 파토를 자주 냈다.

뒤늦게야 권태성 실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의 KM 전자 평가를 다시 확인하고서야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

두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약을 섭취하고서도 쉽게 안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임권수 부장이 황광수 차장과 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는 IFA 전시회 준비에 대해서 물으려고 했는데, 임권수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IFA 전시회에 KM 전자도 참가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중견 기업도 IFA 전시회 가치를 잘 알잖아. 독일 전시회는 바이어의 장이나 마찬가지야. 미팅, 행사, 이벤트가 절묘하게 다 묶여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준비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엔스 IFA 위원장이 직접 조직 위원회를 데리고 부스를 방문했습니다.”

“…엔스 IFA 위원장? 진짜야? 아니 왜?”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아무래도 신제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뭔가 확인하고 나서도 계속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꽤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게 뭔데?”

“그게 알 수가 없습니다. KM 전자 측에서 노골적으로 막아서 말이죠.”

“아니, 어이가 없네. 어차피 전시회 하면 다 알게 되는데, 뭘 또 숨겨?”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황당한 권태성 실장은 또 스트레스를 받자 머리가 띵했다.

다만 그도 이번 전시회 부스에 참여한 다른 사업부 쪽과 미팅을 해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임 부장, 여기 가용 인원을 다 동원해서 한번 자세히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빤질빤질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분노보다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KM 전자와 엮이고 나서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보니 황 차장 저 친구 말대로 최민혁 실장 같은 친구랑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네.’

* * *

콜린스 모델을 회사 내부에 선보이면서 일약 주목을 받은 최민혁은 시즈벨 관련 사전 작업을 마무리한 후에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자 바로 IFA 전시회 KM 전자 부스를 찾았다.

그 역시 뜨거운 IFA 전시회를 느꼈지만, 그보다는 지금 전시회 준비 확인이 더 우선이었다.

“IFA 전시회 준비는 어때요?”

엔스 위원장 방문 때문에 상기된 조성돈 팀장은 방긋 웃었다.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IFA 담당자 역시 제품에 크게 만족해서 여러 가지 편의를 제안했습니다. 아마 이번 행사 통해서 우리 회사 브랜드 가치를 크게 알릴 것 같습니다.”

“좋네요.”

먼저 이곳에 와서 사전 기획을 진행한 조성돈 팀장은 평소와는 달리 쉽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첫 시도이기는 하지만 해볼 만합니다.”

“그래요. 김부영 영업 팀은 준비를 잘하고 있겠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유럽 시장에 먼저 진출할 수도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국내보다는 유럽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유럽 전파 인증도 얼마 전에 통과되었습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콜린스 모델을 보고 난 KM 전자 직원은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영업팀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번 IFA 독일 베를린 전시회에 대한 그들 의지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번 전시회가 어떻게 보면 콜린스 데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미 큰 고비를 넘긴 프로젝트보다는 앞으로 미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사실 콜린스를 이용해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니까.’

그랬다.

굳이 최민혁이 이미 양산 준비가 끝난 콜린스를 보안이라는 명분으로 질질 끌고 있는 것도 외부의 시선을 이쪽으로 끌어들일 목적이었다.

이미 최문경 부회장은 콜린스에 반쯤 미쳐 있었다.

최민혁이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관심을 둘 리가 없었다.

‘아마 이번 전시회가 끝나고, 최병연 팀장을 내세운다면 더 나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 거야. 실상 콜린스를 개발하고, 주도한 사람이 그이니까. 적당히 난 최병연 팀장 과거 실적에 묻어가는 스토리가 좋겠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히려 유명세를 이용해서 자신을 감추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MP3 프로젝트를 더욱 쉽게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실상 누구라도 콜린스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또 진행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가능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눈치를 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오성 전자 측에서도 우리 부스를 살폈는데, 그 사람이 임권수 부장이었습니다.”

“임권수 부장이라…….”

“네.”

“저쪽에 오성 전자 부스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아무래도 계속 우리 쪽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상황에 더 만족했다.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콜린스에 더 매달릴 수록 좋아요.”

조금 예상을 벗어난 말에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렇게만 아세요. 배 과장과 정 대리는 어디 있습니까?”

“곧 도착할 겁니다. 아, 저기 오네요.”

* * *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과 같이 독일에 먼저 와서 조사를 진행한 배종대 과장과 정성근 대리를 데리고 전시회 한쪽으로 데려갔다.

“톰슨 멀티미디어는 어때요?”

이미 톰슨 관련된 자료를 충분히 조사를 해왔기에 배종대 과장은 콜린스 샘플을 보고 난 후의 흥분을 가진 채 말했다.

“톰슨 멀티미디어는 그동안 경영 부진으로 2조 2천억 가까운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나름 디지털 TV나 위성 디코더 분야에 투자해서 스스로는 미래가 밝다고 하지만 상황이 좋지가 않습니다.”

톰슨 멀티미디어 상황은 프랑스인의 자부심과는 별개로 상황이 아주 안 좋았다.

TV와 VTR를 주로 생산해 온 이 회사는 첨단 분야에 투자를 지속했지만, 수익은 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잘났다고 하지만 회사 매출만 놓고 보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매출 규모는 월등하지만, KM 전자와 판박이지.’

프랑스 정부조차 요즘은 배부른 돼지인 톰슨 멀티미디어를 공공연히 민영화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겠군요.”

“지금 톰슨 멀티미디어 노조는 수동적인 정부 지원을 맹비난하면서 시위를 벌이는 중입니다. 결국, 상황이 극에 달하면서 톰슨 멀티미디어 민영화 이슈는 공공연히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런.”

최민혁도 막상 톰슨 멀티미디어 상황을 파악하자 혀를 내두르면서 슬며시 웃고 말았다. MP3 특허를 어떻게 사들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막상 징수권을 가진 당사자 상태가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운 전자에 의한 인수합병이 결국 결렬되면서 프랑스 정부가 부실 채권을 끌어안고, 회사를 정상화시키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공기업 냄새가 풀풀 나는 톰슨 멀티미디어에서 MP3 특허권을 가져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랬고. 시즈벨 그놈들도 아마 계속해서 접근했을 거야. 그럼에도 실패했으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MP3 특허권을 가져오기 힘들어.’

“문제는 이 부실한 프랑스 공기업을 인수할 회사가 마땅치 않습니다.”

비록 톰슨 멀티미디어고 북미 TV 시장을 20%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소니같은 일본 기업은 미국 영화사에 투자를 늘려서 유럽 쪽에 투자할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압박 때문에 몸을 사리는 상황이었다.

노키아는 모바일 산업에 투자를 대폭 늘려가면서 TV 시장 투자를 대폭 줄이는 상황이라서 톰슨 멀티미디어에 큰 관심을 없었다.

최민혁은 신이 난 배종대 과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일 대운 전자가 160원에 방산 분야를 제외한 멀티미디어 부분을 인수하려 했다가 실패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생각보다는 상태가 안 좋은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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