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17화 (117/1,021)

#117

지금까지 설마 그럴까,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 제법 대단한 놈이야라고 생각했던 최민혁 솜씨는 그의 상상을 가볍게 초월했다.

“흉악한 새끼.”

새삼 최민혁의 꼼수에 두려움마저 느꼈다.

“하면 이번 사업부 발표에서 나선 것도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는 거네?”

“비서실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눈치를 보던 권재홍 비서실장이 깨알 같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심지어 협력업체도 부품만 조달했을 뿐, 전체적인 내용은 몰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게 TV 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노하던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안을 찾았다.

“가만. 아직 시간은 있을 것 아냐. 이런 물건을 쉽게 양산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미 검토를 했던 권재홍 비서실장은 찬물을 최문경 부회장 얼굴에 뿌렸다.

“그게 이미 서너 곳 업체로 나누어서 진행 중입니다. CRT만 해도 LC 전자, 소니, 오성 전과, 오리운 전기로 나누어서 만약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품도 그래?”

“네. 대림 전자 같은 경우에 계약서 내용을 보면 그물처럼 엮어 놔서 그쪽에도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만약 중간에 헛짓하면 배상금으로 수백억을 토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콜린스 내부와 관련된 원천 기술은 전부 특허로 엮여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고 합니다.”

“기술 회피를 해도 안 된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질적 하락이 불가피합니다. 기술적으로 도저히 양산할 수도 없습니다.”

어이가 없는 최문경 부회장은 결국 오성 전자를 거론했다.

“…오성 전자 그 병신들은 이제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었대?”

“…이번에 32명의 엔지니어가 KM 전자로 이직한 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김현우 상무가 여론몰이하면서도 그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콜린스 모델은 아예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답변에 최문경 부회장은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퍼줘도 독사 같은 오성 전자 새끼들이 아무것도 못 했다는 거야?”

“그게 알다시피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주도한 것을 아는 사람은 KM 전자 내에서도 오영근 사장도 모를 정도로 극소수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오성 전자에서 알 턱이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최문경 부회장은 물끄러미 콜린스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가격이 설사 좀 비싸다고 해도 소니 물건을 살 바에는 차라리 이 제품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애가 탔다.

저게 사실은 다 자기 물건이니까.

놓친 물고기가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초대형이었다.

“정말 방법이 없어?”

“그게 알다시피 주식 대다수를 최민혁 실장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부회장님의 지시에 따라서 기존 거래도 다 줄여놓아서 완전한 계열 분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손을 쓰기가…….”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뒤늦게 유레카를 외쳤다.

“바로 그거야. 이상하잖아. 민혁이 그놈이 사전에 정보를 알지 않고서야 헐값에 주식을 사들일 수가 없지. 그거 내부자 거래잖아!”

“하지만 회장님이 지분 증여한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있다고 한다면 최두진 사장 지분인데…….”

“그거지. 그거야말로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서 사기 친 거잖아!”

이미 최두진 사장에게 전화해 봤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최두진 사장은 아예 이쪽과 연락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철저하게 알아봐.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이런 물건을 3개월 만에 만들었다는 개소리를 하면 그걸 누가 믿어?”

“네.”

‘직접 콜린스를 보내서라도 한번 시도는 해봐야겠어.’

* * *

“허허허.”

지난주까지 해외로 도피해 있던 최두진 사장은 국내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자기 앞에 놓인 콜린스 물건을 보자 그저 웃기만 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받은 민상수 부장은 조심스럽게 최두진 사장에게 지금까지 진행된 일을 말해주었다.

“사장님의 지분 거래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라면 이미 콜린스에 대해서 알았을 겁니다.”

“끄응.”

최두진 사장은 아무런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콜린스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미쳤지.’

내심 쾌재를 부른 민상수 부장은 목소리를 은근히 낮추었다.

“최 사장님은 최민혁 실장에게 사기를 당한 겁니다.”

“흠.”

하지만 그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이미 최용욱 회장에게 어찌 된 상황인지 다 들었기 때문이다.

‘쯧, 문경이 이놈의 꼼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그도 이미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상대로 수작 부렸다는 것은 이미 알아챘다.

그게 김현우 상무 때문이란 것도.

이런 모델이 판매된다면 KM 전자의 가치가 어떻게 될 지는 뻔하다.

KM 전자가 가치가 상승할수록 김현우 상무는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눈을 잠깐 감은 후에 김현우 상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KM 전자가 승승장구할 때 상무라는 직급을 이용해서 온갖 짓을 다 할 것이다. 그게 결국은 KM 전자를 갉아먹는 것이다.

콜린스 덕분에 도약할 KM 전자 처지에서는 상당한 리스크였다.

‘나라도 그 녀석을 쳐내겠지.’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느낀 소감은 최민혁에 대한 원망 따위가 아니었다.

‘최병연 팀 전체를 다시 KM 전자로 데려왔다고 했던가?’

오히려 콜린스를 이용해서 분탕질을 주도한 민상수 부장에게 더 화가 났다.

“문경이 그 녀석이 이러라고 그러던가?”

“네?”

“내가 민혁이 그 녀석에게 사기를 당했으니, 고소를 하라고 해? 그렇게 해서 KM 전자 분탕질을 부추기는 건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서 헐값에 주식을 인수한 겁니다. 그러니 사장님이 피해를…….”

“민 부장.”

“네?”

살이 포동포동 찐 민상수 부장은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전혀 눈빛 하나 바뀌지 않는 최두진 사장에 깜짝 놀랐다.

이미 최민혁에게 지긋지긋하게 당해본 최두진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 민혁이 그 녀석이 사기를 쳤다고 하자. 그러면 민혁 고 녀석이 그런 대비도 하지 않고 이런 일을 벌였겠어?”

“그거야 회사 내부 정보를…….”

“훈열이가 할 때는 왜 몰랐대? 현우 고놈도 이런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어. 오영근 사장도 몰랐다고 하던데, 그러면 아는 게 이상하잖아.”

“하지만…….”

“아니, 그렇잖아. 다 모르는데, 민혁이 그놈은 또 어떻게 알았어? 뭐로 검찰에 내부자 거래하고 고발을 할 거야?”

“그거야…….”

민상수 부장도 머리를 굴려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KM 전자 임원 중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연구소장도 몰랐고, 공장장도 금시초문이었다.

이걸 내부자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

‘씨발.’

“지금 조용히 나가면 걸어서 나갈 수 있게 하겠네.”

“…알겠습니다.”

최두진 사장은 민상수 부장이 떠나자 민기식 변호사를 쳐다보며 넌지시 말했다.

“최 실장에게 내부자 거래로 고소해서 이길 수가 있을까?”

“아마 힘들 겁니다. 딱 봐도 내부자 거래로 걸릴 것을 염려해서 손을 쓴 흔적이 보이니까요. 일정이 이렇게 늘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더욱이 이런 디자인은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최두진 사장도 너무 유니크해서 마치 미래에서 온 TV같은 콜린스를 다시 한번 살폈다.

“그렇겠지?”

“하지만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항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최민혁 실장에게는 꽤 부담될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있으니까요. 뭔가 양보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이대로 그냥 조용히 물러나기에는 호구 같습니다.”

“좋아. 민혁이 그놈이 독일 갔다고 하니, 돌아온 후에 일정을 잡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는 물끄러미 자신 앞에 놓인 콜린스 모델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최민혁 그놈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구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그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새삼 판 지분이 아까웠다.

‘이놈의 자식을!’

* * *

최민혁은 시끌시끌한 인천공항 분위기를 읽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최문경 부회장, 최용욱 회장, 최두진 사장이 보일 반응을 떠올렸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는 주사위를 던진 마당.

다음 계획이 우선이었다.

‘먼저 독일로 출발한 조성돈 팀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아마 오성 전자 기획팀도 그곳에서 만날 확률이 높으니까. 아니 당연히 만나야지.’

그는 독일 IFA 전시회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임기석 부장을 따로 호출했다.

갑자기 연락받고 허겁지겁 나타난 임기석 부장.

“제가 요즘 정신이 없네요.”

그리고 내놓은 것은 MP3 원천기술과 관련된 또 다른 기술 자료다.

MP3 특허 외에 여기서 파생된 다양한 몇 가지 특허가 있었는데, 후일 특허 괴물 업체인 시즈벨이 이것을 이용해서 대당 3~5달러 로열티를 받아 챙긴 것이기도 했다.

“…이게 뭡니까?”

“앞에 부분은 현재 시즈벨이 가지고 있는 오디오 관련 특허인데, 몇 년 전에 나온 것이라서 권리 범위가 모호할 겁니다. 뒤에 있는 자료는 시즈벨 특허보다 구체적인 MP3 기술 자료입니다. 파생된 특허로 시스템에 적용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놀랍군요.”

이미 비디오 특허 사건을 경험한 임기석 부장은 이제 최민혁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동호 교수와 머리를 맞댄 채 작업하면서 새로운 비디오 특허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즈벨이라는 업체는 그 역시 들어본 바가 있었다.

임기석 부장은 새삼 논란 얼굴로 최민혁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뜨거운 시선에 헛기침했다.

“시즈벨 특허는 따로 분석하고, 이 기술 자료는 특허로 출원해 주세요. 만약 특허 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입니다. 즉 단순히 출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즈벨을 압박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란 뜻입니다.”

“설마 시즈벨과 싸우려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할 수만 있다면 특허를 사들이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미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허를 사기 어려울 겁니다. 개들의 밥그릇이니까요. 하지만 이 특허로 협상할 수 있겠죠.”

“특허 지분 이익 협상을 하시려는군요.”

“그렇죠. 어차피 이 특허는 전부 다 MP3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시즈벨 역시 내막을 알면 무조건 자기 고집을 피우기 어려울 겁니다. 가전을 주로 하는 우리 회사 차원에서는 물고 늘어지면 그들도 방법이 없어요.”

“차라리 돈을 더 주고 특허를 사들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최민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지적 재산권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회사예요. 단순히 돈 몇백만 달러에 그 가치를 넘기지 않습니다.”

아직은 시즈벨이 지적 재산권을 이용한 수익 창출이 활발하지 않았다. 지금은 지적 재산권을 모으면서 천천히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내막을 대충 눈치챈 임기석 부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즈벨이 그런 회사인지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하세요. 특허 출원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 우선입니다. 특히 유럽, 미국을 먼저 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임기석 부장은 자료를 챙겨서 일어난 후에 새삼 최민혁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허리를 숙였다. 그 역시 이제야 최민혁의 놀라운 혜안을 깨달은 것이었다.

공항 안으로 동행하던 김명준 과장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봤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

“김 과장님은 할 말이 있나 보군요.”

“…아뇨.”

“하하하, 따가운 시선이 없어서 시원섭섭합니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은 여전히 최민혁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독일행 비행기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임기석 부장은 새삼 최민혁이 준 자료를 다시 살피면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콜린스 때문에 이미 KM 전자 내부는 하루도 조용하지 않았다.

정작 최민혁은 그런 KM 전자를 내버려 둔 채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도 아직 일정이 남아 있는 IFA 전시회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콜린스가 끝이 아니었어.’

* * *

CES 전시회는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에 열리는데, 가전 및 IT 시장 동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CES와 비견되는 MWC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데, 휴대폰을 비롯한 모바일 관련 제품이 주 대상이다.

이 전시회와 함께 세계 3대 전시회를 이루는 IFA는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되었다.

CES와 함께 세계 양대 가전 박람회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장소가 독일이라서 유럽 시장의 가전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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