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14화 (114/1,021)

#114

김부영 영업 팀장도 입을 딱 벌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단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뜬금없는 이야기하는 최구만 과장을 욕했고, 다음에는 최민혁의 황당한 복장에 내심 비난했으며, 장황한 이야기에 내심 욕설이 나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제품으로 나타났다.

앞의 부정적인 부분을 이제 머릿속에서 지운 지가 오래였다.

사업부 전체 분위기가 조금 전까지와는 아주 달라졌다.

최민혁은 신이 나서 목소리를 올렸다.

[이 콜린스 모델은 최근 대운 전자에 나온 임팩트에 비해서도 50% 가까운 성능 향상을 보였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명공이 만든 예술 작품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디자인입니다. 품질과 디자인 측면을 다 잡았고, 가장 기본에 충실한 대형 TV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 회사도 비관적인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다들 콜린스 모델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또 다른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게 또 뭐야?!]

특히 앞쪽에서 일어난 이들 때문에 뒤에 있던 실무진도 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콜린스를 한 번 살폈다가 이 모델에 대해 발표를 하던 최구만 과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그들이 어떤 결과를 내놓았는지도 깨달았다.

더불어 최민혁 실장이 왜 굳이 저 자리에 올라왔는지도 이해했다.

다시 콜린스를 몇 번이나 본 이들은 하나씩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회의실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커졌다.

김부영 영업부장은 이미 콜린스에 대한 것을 들었기에 저게 무슨 모델인지 잘 알았다. 다만 3년 후에나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모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최민혁은 흥분이 가득한 임직원의 시선을 받으면서 세 사람을 다시 띄웠다.

[이 세 분이 있었기에 이 콜린스 모델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를 부탁합니다.]

폭발적인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일어선 임직원은 뒤늦게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제까지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그들 눈빛에는 오로지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기대가 가득했다.

물론 의문은 너무도 많았다.

[아니, 도대체 언제 저 모델을 개발한 거야?]

김부영 영업부장도 충혈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다시 쳐다보면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손뼉 쳤다. 이제까지 최민혁에 가졌던 불신 따위는 다 잊어버렸다. 이제는 최민혁이 경영의 신처럼 보였다.

최주호 부장이 넌지시 툴툴거렸다.

[최 실장님에 대한 불만이 그렇게 많던 분 행동이 조금 전과는 판이합니다.]

[크흠,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무안한 김부영 영업부장은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어깨너머로 손뼉을 치고 있는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달랑 청바지만 입고 있는 모습도 이제는 양아치가 아니라 새로운 경영 혁신을 주도하는 진정한 경영자로 보였다.

그리고 그건 다른 임직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영근 사장을 비롯한 문형섭 부사장은 마치 해머로 한 대 맞은 사람처럼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언제…….]

최민혁도 열광하는 임직원을 보면서 같이 박수를 쳐주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사업부 전체 회의 분위기를 보면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으음, TV 사업부 매각이 쉽지 않겠어.’

* * *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진입 장벽이 단계적으로 철폐되면서 대기업이 이 사업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장승일 실장도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그 미래에 대해서 확신하지도 못했고, 과연 오성, HY, LC, 대운 전자와 같은 거대 기업과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노골적인 조언을 따라서 이 사업 분야를 살폈다.

TRS와 PCS가 바로 새로운 신 사업안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솔직히 PCS가 괜찮을 것 같지만, 오성, LC, 대운, HY 전자가 이 영역만큼은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것을 보자 난감했다.

대안은 TRS가 될 텐데, 이것도 선뜻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꾸준하게 살피면서 대안이 있지 않을까 확인했다.

그 와중에 최민혁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고, 덩달아서 MP3 사업에 대한 것도 살펴보았다.

이 부분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용욱 회장에게서 이번 KM 전자 사업부 회의에 참석해서 분위기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장승일 실장은 별생각 없이 KM 전자 대회의실을 향해서 걸어갔다.

뒤를 따른 구길모 차장은 MP3 관련해서는 불만이 많아서 툴툴거렸다.

“장 실장님이 최민혁 실장님을 인정한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도대체 MP3에 대해서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계속 확인해 봐.”

“답이 안 나오니까요. 차라리 최 실장님에게 직접 자문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랬지. 그런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소리만 해.”

“허.”

장승일 실장도 불만을 표시하면서 사업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사업부 회의는 중반을 넘어서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장승일 실장은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단상에 올라가자 집중해서 분위기를 살폈다.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최민혁 실장은 일단 시선을 끄는 것에 성공했다.

그 이상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단상 뒤쪽에 있던 커튼을 양쪽으로 치우면서 콜린스라는 신모델을 내보였다.

“……?”

장승일 실장도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세히 확인하고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다행히 시력이 좋아서 단상 위의 물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길모 차장을 비롯한 이번 미팅에 같이 참여한 천경구 과장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냉정했다.

“디자인 못지않게 품질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대형 TV는 가격이 비싸서 소니와 당장 비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제대로 맥을 못 추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장승일 실장은 임직원의 열광을 받는 최민혁을 물끄러미 뒤에서 지켜보다가 슬쩍 그가 단상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잽싸게 회의실을 나갔다.

다른 일행 역시 그 뒤를 따라서 허겁지겁 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뒷수습을 고민하던 최민혁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전화 연락도 받지 않았다.

‘기가 차네.’

* * *

사업부 발표 이야기는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KM 전자 본사 직원에게도 알려졌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라서 처음에는 다들 믿지 않았다.

그런데 사업부 회의 동영상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콜린스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나온 물건처럼 기존 제품과는 격을 달리했다.

더욱이 이미 양산 단계라는 것도 뒤늦게 밝혀지면서 의문을 표시하는 이도 많았다.

특히 영업 팀은 마치 전쟁터처럼 시끌시끌했다.

“진짜 너무하네. 아니, 어떻게 양산 준비까지 다 끝내 놓은 거야?”

“공장 쪽에 연락하니, 모르겠다고 앵무새처럼 반복만 하더라. 도대체 이놈의 회사는 왜 직원에게도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한 거야?”

“장 과장은 불과 지난주에 사직서를 냈는데, 속이 많이 탈 거야.”

“…….”

김부영 영업부장은 영업 팀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콜린스 영업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소니와 붙어도 해 볼 만해.’

그러면 기존 모델처럼 굳이 국내 시장에서만 매달릴 이유는 없었다.

즉 기존 판로처럼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KM 전자 해외 영업망이 너무도 부실하다는 점이다.

문제가 산더미 같아서 최민혁 실장이 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는가에 대한 의문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다.

다음 날이 되어도 KM 전자 직원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최민혁은 이미 콜린스 이후 회사 분위기를 예상한 터라 가능하면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침 출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침부터 장승일 실장이 먼저 실장실을 찾아왔다.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실장실 중앙에 놓여 있는 콜린스 모델을 발견했다. 최민혁에 허락을 구한 후에 다급하게 콜린스 모델 전원을 켰다.

대운 전자의 최근 모델 제품 규격을 떠올리면서 색 재현율부터 시작해서 색 순도를 확인했다. 명암 대비 향상 정도와 외광반사율도 체크했다.

전반적인 성능 자체가 대운 전자 신제품보다 월등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외각의 화면 안정도다. Slim TV가 되면 전자총을 다루는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감에도 그런 단점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오성 전자에서 내놓은 37인치 대형 모델보다도 성능이 더 안정되었다.

아니, 소니의 독특한 화질과 비교해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니 모델의 두께를 고려하면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어지간한 일에도 크게 감정을 보이지 않던 장승일 실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새삼 오혜정 비서가 가져온 냉수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혜정 비서는 마치 자신이 한 일 양 보석 같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답변을 기다렸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 언제 이런 신모델을 개발한 겁니까?”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이 실장으로 일한 기간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시간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최훈열 전무가 이런 제품을 이미 개발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맞지가 않았다.

최훈열 전무가 콜린스 반 정도의 성능을 가진 제품을 개발해도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장승일 실장은 계속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다가 최근 최민혁이 최두진 사장 지분뿐만 아니라 최용욱 회장 지분까지 사들인 것을 다시 떠올렸다.

특히 김현우 상무를 자기 발로 나가게끔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그 일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생각이 또 틀렸다.

‘하지만 이 모델이라면… 동기로 충분해.’

“실장님, 그러면 회사 지분은…….”

최민혁은 강하게 부정했다.

“지분 매입 후에 개발을 시작한 겁니다. 다만 개발이 쉽게 된 것은 기존 대형 TV 엔지니어의 뛰어난 실력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아세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거지만이고 더 이상 질문하지 마세요. 담당 엔지니어가 답해줄 겁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할아버지에게 이 모델을 가지고 가서 보여주세요. 그러면 만족하겠지.”

장승일 실장도 뻔뻔한 최민혁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콜린스 판매 이후의 KM 전자 주식 가치 변화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최소한 회장님에게 사정을 설명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델이 정식으로 출시되면 뻔히 주가가 오르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모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민혁은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행이라면 오영근 사장을 비롯해서 아직도 흥분한 문형섭 부사장 이하 다른 임원도 아침부터 실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민혁은 잽싸게 오혜정 비서에게 최구만 과장을 호출하라고 지시했고, 거기에는 최병연 팀장을 비롯한 이번 일에 관련된 사람도 포함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담당자가 오면 여러분의 의문을 풀어줄 겁니다. 아, 다시 말하지만 전 기획실장으로 콜린스 모델 기획만 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제품이 나온 것인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그럼에도 오영근 사장을 시작으로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 실장,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미 보고를 드렸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콜린스 개발 현황에 대해서는 왜 보고를 안 한 건가? 최소한 임원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보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인 나도 말인가?”

“우리 회장님 때문입니다. 설마 오영근 사장님이 회장님 전화에 입을 다물 겁니까? 이 자리에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최 회장님도 못 믿는다는 말인가?”

그는 힐끗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믿지 않은 최민혁의 행동에 다소 실망했던 장승일 실장도 한편으로 수긍했다. 만약 최용욱 회장이 이 정보를 알았다면 자칫 최문경 부회장에도 그 정보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다음은 온갖 음해 공작이 이어질 것이 뻔했다.

“…또 최 부회장인가? 젠장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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