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12화 (112/1,021)

#112

* * *

콜린스와 관련된 정보는 KM 전자 내에서도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KM 전자의 여러 조직도 선행조사만 진행했을 뿐이다.

영업 팀 역시 최민혁의 지시를 받아서 사전 검토를 했는데, 현실성이 없는 콜린스 모델 상업화 자체를 믿지 않았다.

내막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부를 매각만 하고, 인원을 계속 줄여 나가는 행태에 분노한 김부영 영업 팀장은 조정욱 인사 팀장에게 가서 이 문제를 두고 따졌다.

“아니, 정말 생각이 있는 겁니까? 도대체 왜 위로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멀쩡하게 잘 일하는 직원의 퇴직을 부추기는 겁니까?”

최근 최민혁에게 따로 지시를 받은 조정욱 인사 팀장도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지난달만 해도 또 23명이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오성 전자 인원을 빼돌렸으니.

나간 이들의 인사고과를 잘 아는 그로서 딱히 최민혁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저라고 해서 무슨 힘이 있습니까? 실장님 지시가 그러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룹 본사에 연락해서 좀 항의를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미 회장님 지분까지 다 승계받은 이가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이제 그룹 본사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지분 관련된 부분은 최민혁도 구체적으로 사내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아는 이들은 다 입을 다물었고, 모르는 이들만 쉬쉬한다.

어떤 경우는 여전히 KM 그룹 계열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설만 분분하니,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아니, 그런 사실을 왜 말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네요. 가만. 그러면 이번에 32명이나 뽑았다고 하는 소문도 진짜입니까?”

32명 채용은 특별 채용으로 진행된 일이라서 임원과 인사 팀을 제외하고는 알 수가 없었다.

“후유, 그건 또 어디서 들은 겁니까?”

“아니, 32명이나 뽑았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더욱이 정식 채용도 아니라는 소리가 있는데, 그거 특혜 아닙니까. 설마 최훈열 전무가 한 것처럼 돈 받고 뽑은 것입니까?”

최훈열 전무의 인사 관련 문제는 이미 KM 전자 내에서도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돈이 오갔다고 했으니까.

실상 최근 재판 과정에서 최훈열 전무가 돈을 받고 채용한 행위도 드러났다. 당장 밝혀진 그 규모만 해도 60억을 넘었다.

이 뉴스를 본 KM 전자 직원은 다들 분통을 터트릴 힘도 없었다.

범죄 혐의가 너무 많아서 그중에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미 KM 전자는 검찰에 탈탈 털려서 추가 압수수색은 없었다.

그 조용하던 김부영 영업 팀장의 격앙된 분노에 조정욱 인사 팀장도 인상을 찌푸렸다. 사업부 전체 회의를 앞두고 영업 팀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짐작했다.

이미 다른 파트에서도 계속 항의를 받은 터라 슬쩍 이번에 뽑은 이들 이력서를 보여 주었다.

김부영 부장은 마치 싸움닭처럼 분노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이력서를 확인하자 빠르게 넘겼다.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안 둘… 어, 최병연 팀장이라면, 대형 TV의 그 최병연 팀장 아닙니까. 가만. 이거 이전에 다 그만뒀던…….”

조정욱 인사 팀장이 슬그머니 사정을 말해주었다.

“최병연 팀장 성품이나 실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죠. 나머지 사람도 다 그 당시에 같이 그만뒀던 직원입니다. 다들 억울하게 그만둔 사람이죠. 최민혁 실장님은 그들을 구제해 준 겁니다. 그리고 다른 직원은…….”

“…….”

김부영 영업부장도 이력서를 넘기다가 오상현 과장의 이력서를 찾기가 무섭게 내밀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아니, 이 사람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침착한 조정욱 인사 팀장은 피식 웃으면서 평소처럼 서류 뒤쪽을 손짓했다.

“나머지 것도 확인하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력서 첨부 파일에는 오상현 과장의 과거 이력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학부 시절부터 리눅스가 취미였고, 심지어 석사 과정에서는 16bit CPU를 설계해서 자체 리눅스를 포팅했다.

박사 과정에서는 아예 새로운 미니 리눅스를 만들기도 했다.

30편의 논문은 전부 OS와 관련되는데, 이 논문 결과도 오상현 과장이 직접 작성하고 실험한 것이었다.

오성 전자에 입사한 후에 모바일 사업부를 시작으로 두루두루 다 경험했다.

최근 휴대폰 사업부와 관련된 프로젝트 역시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이 과정에서 최병연 팀장과 알게 되었는데, 리더십이 있는 최병연 팀장은 괴짜 오상현 과장을 자연스럽게 포용했다.

오상현 과장이 팀 내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늘 최병연 팀장을 찾아가서 하소연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 친밀해졌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상현 과장이 원래 팀에서 최병연 팀장으로 옮긴 것도 스스로 나서서 인사 팀에 요청한 결과였다.

“…대단하네요.”

“그렇죠? 저도 이력서 보고 진짜 놀랐습니다. 나머지 사람도 한번 확인해 보세요.”

“아니, 이 사람은 뭡니까? 최병연 팀장과 같이 일하고 싶어서 KM 전자로 옮겼다니…….”

“최병연 팀장이 실력을 떠나서 포용력이 탁월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불법이라? 글쎄요. 몇 억씩 주고 오라고 해도 우리 회사에 올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장승일 실장을 직접 찾아가서 항의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안국호 부장 이용해서 어떻게 덮었다는 소리가 있지만, 아직도 시끌시끌하죠.”

뒤에 드러난 이력서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다.

“도대체가…….”

“이 정도면 불만이 없으시죠? 그리고 지금 봐서는 최민혁 실장님이 의도적으로 퇴직을 부추기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꼭 나쁘게 볼 수가 없는 것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이니까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강제가 아닙니다. 돈을 주니까, 당장 그만두지 않습니까? 돈이라면 회사 내부 기밀도 다 빼돌릴 사람들이겠죠. 장 과장은 하청업체를 쥐어짜서 몇 번이나 문제가 있었어요.”

인력 문제 때문에 장 과장 문제를 덮었던 김부영 영업 팀장은 움찔했다.

“…후유, 도대체 회사 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 실장님이 원하는 것은 의지를 묻는 거죠. 지난 일을 덮어둘 수는 있지만, 회사랑 같이 갈 사람을 추리는 겁니다. 최 실장님이 그렇게 만만한 분은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도 이제는 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KM 전자 지분을 죄다 손에 넣은 사람이 최민혁이었다.

심지어 KM 그룹과의 거래도 하나씩 다 끊었다.

덕분에 영업 팀 실적은 시간이 갈수록 더 떨어졌다.

도대체 회사 오너가 된 최민혁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사 팀장은 돌아가는 판을 좀 읽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보세요.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최 실장님도 기획 팀 통해서 다 보고가 올라가니, 이런 불만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 * *

최민혁도 위로금을 통한 구조조정 결과와 관련된 사내 일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특히 영업 팀을 비롯한 각 팀의 불만에 대한 보고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이전이었다면 조성돈 팀장도 이런 일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부영 영업 팀장이 가장 심하게 반발하지만, 회사를 걱정해서 나선 문제입니다. 이미 문제가 된 이들은 다 사직서를 낸 상황입니다. 지금 각 팀에서 올라오는 구조조정 문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좋네요.”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생긴다면 문제가 될 겁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최훈열 전무나 김현우 상무 때문에 일어난 구조적인 문제를 정리한다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죠.”

“혹시나 해서 한 말입니다.”

하지만 오성 전자와 최근 있었던 일을 떠올린 최민혁은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

“고압 변성기를 비롯한 정보가 협력업체 통해서 오성 전자로 흘러간 것은 이미 확인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생길 텐데, 사전에 그런 문제를 막아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근 안산 공장을 비롯한 KM 전자 관련된 조직에 보안 설비를 계속 강화한 조성돈 팀장은 철저한 최민혁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제가 좀 지나치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더 이런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준비를 하세요. 특히 채용 문제를 그런 점을 고려해서 철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한 보상을 해줘야 하고요.”

“네.”

최민혁은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이 모든 일이 보면 최문경 부회장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의 압력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KM 제약을 비롯한 계열사와의 최근 거래도 다 깨졌고요. 아마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면 조 팀장님도 정신없이 뛰어다녔을 겁니다.”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최문경 부회장’이란 말에 주목했다.

‘설마 TV 사업부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있다는 말일까?’

“저기 실장님, 혹시 제가 모르는 다른 일도 있습니까?”

“그럴 리가요. 이미 제가 다 알려준 것 같습니다만.”

“MP3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 일도 이렇게 보안이 많이 필요한 일입니까?”

아마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콜린스 사태를 경험해 본 터라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씩 웃기만 했다.

“왜 콜린스 문제에 이렇게 집중해야 하는지만 생각해보세요. 단순히 콜린스 혁신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그 시작이 이번 콜린스 소개입니다. 사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겁니다. 이번 발표회에는 복장 자율화도 적극 권장하세요.”

“…다시 한번 공지로 알리겠습니다.”

눈치 빠른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야 국내가 아니라 외국 시장 개척이라는 화제를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경험 많은 그도 확연히 뭔가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그런 조성돈 팀장을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이번 콜린스 소개를 통해서 분위기는 극적으로 바뀔 테니까.’

* * *

김부영 부장도 조정욱 인사 팀장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기획 팀이나 최민혁 실장의 모습을 살폈지만 별다른 변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최근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이라면 사업부 전체 회의를 앞둔 시기에는 회사를 그만둔 인원이 서서히 대폭 줄어서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이제 다 떠났다는 소리겠지.’

미래도 없고, 구조조정만 하는 회사로, 심지어 상상력은 좋아서 아예 가능성도 없는 콜린스 같은 황당한 물건에 집착한다.

‘나도 그만둘까?’

뛰어난 인재를 데리고 온 점은 높이 평가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업팀 전체가 다 비슷비슷하기만 했다.

이제는 지쳐서 다 포기했다.

“최 실장님 능력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조심해!”

최근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것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이도 몸을 움찔했다.

사업부 전체 회의 발표 자료를 정리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난 분기 대비 5% 가까이 줄어든 실적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이미 영업부 전체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나왔는데, 비관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오성 전자가 아니라 대운 전자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문제였다.

30%씩 할인행사를 하는데, LC 전자나 오성 전자에서도 불평을 토로할 정도였다.

특히 오성 전자나 LC 전자도 와이드 TV의 한계 때문에 물량을 대폭 줄인 상황에서도 대운 전자는 오히려 불도저처럼 이 사업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였다.

작년에 선보인 더블스캔 방식의 36인치 와이드TV를 공격적인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가격도 대폭 인하한 것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KM 전자로서는 법적으로 고소하고 싶었다.

김부영 부장은 KM 전자 주변 상황이 가면 갈수록 악화하는 일 때문에 사업부 전체 회의에 참석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마케팅 팀장 최주호도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요즘 마케팅은 잘 돌아가나 봅니다. 대운 전자 마케팅과 비교하면 놀고 있는 것 같은데…….”

최주호 마케팅 팀장은 어깨를 으쓱한 채 보고안을 살폈다.

“별수 있나요. 실장님이 따로 찍어서 지시한 것만 하라고 하는데, 그대로 해야죠.”

“결과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니, 뻔히 다 아는데, 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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