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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화 (101/1,021)

#101

그가 아는 최훈열 전무는 실로 집요한 인간이었다. 더욱이 최용욱 회장 직계라서 일반 임직원은 건드릴 수도 없었다.

‘배후에 최문경 부회장이 있어서 더 어려울 텐데,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어떻게 처리한 것일까?’

아니, 설사 핏줄이라고 해도 감옥에 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구만 과장도 음모론까지 넣어서 말한 터라 신뢰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최병연 팀장은 그 부분 때문에 어떻게 그 일을 판단해야 할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렸다는 것에 만족했다.

지난 앙금이 조금씩 풀려가던 것을 살피던 조성돈 팀장은 기회가 되자 슬쩍 끼어들었다.

“사실 제가 최구만 과장에게 이 자리를 부탁했습니다. 최민혁 실장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시 회사로 돌아올 생각은 없습니까?”

“네?”

“지금 오성 전자에 만족했다면 거절해도 됩니다. 다만 그렇지 않다면 한 번 다시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최훈열 전무도 회사에서 사라졌고, 경영권도 완전히 최민혁 실장님이 얻었습니다. 과거와 같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이미 최훈열 전무 재판 때문에 KM 전자의 변화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던 그는 되레 질문을 했다.

“…설마 최두진 사장 지분을 말하는 겁니까?”

조성돈 팀장은 마치 자기가 한 일인 양 어깨에 힘을 줬다.

“실장님과 긴밀한 관계의 투자 업체에서 그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님의 KM 전자 지분도 증여를 다 받았습니다. 비록 기관 투자자 지분이 좀 있지만 이제 외부 간섭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맙소사. 그러면 KM 그룹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된 겁니까?”

“네.”

“하지만 그런 내용은 기사로 본 적이 없습니다.”

“기조실의 장 실장님이 언론에 손을 썼습니다. 아마 잘 찾아보면 몇몇 기사가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최용욱 회장의 지분 증여 소식은 언론에서 짧게 언급되고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일반인이 알 리가 만무했다.

“…놀랍군요.”

재벌가의 지분에 대한 집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최병연 팀장은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내친김에 분명하게 말했다.

“이제는 설사 최용욱 회장님이라고 해도 법적으로는 KM 전자 경영권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네요. 아니, 아직 후계 승계 구도가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그만큼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이 출중한 겁니다.”

최병연 팀장이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KM 전자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변했나 보군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최 팀장님은 회사를 스스로 나간 것은 아니니까요. 지난 일을 돌이켜 봐도 최 팀장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제안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난감합니다.”

그는 안선종 팀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미 최구만 과장도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KM 전자로 돌아간다고 해도 TV 설계 팀에 합류하기도 불편하고요.”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마치 이런 대화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공격적으로 나갔다.

“실장님은 다른 일을 맡길 계획입니다. 그분이 굳이 이렇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 것은 최 팀장님이 그만큼 믿을 만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그도 머쓱한 표정을 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한철수 차장은 생각이 좀 달랐다.

“아니, 부장님은 도대체 뭘 그렇게 생각해요? 안 그래도 계속 오성 전자에서도 구박받는데, 이 제안 받아들이세요. 아, 맞다. 저도 가능하죠?”

조성돈 팀장은 한고비 넘겼다고 판단하자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입니다. 아니, 아는 분이 있으면 전원 다 데려와도 됩니다.”

“이상하군요. STB 사업부를 매각했다는 소리도 있던데, 갑자기 그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까?”

참다못한 최구만 과장이 슬쩍 끼어들려다가 조성돈 팀장 시선을 받자 물러나고 말았다.

조성돈 팀장은 보안 때문에 자세한 것을 말할 수가 없었다.

“조금 뜬금없는 제안이라는 것을 압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고민해 보세요. 하지만 제가 지켜본 실장님은 충분히 믿을 만한 분입니다. 능력도 있고요. 그건 저기 나오는 최훈열 재판 뉴스를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TV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우트 제안이라…….’

* * *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에게서 스카우트 관련 보고를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조급하게 쪼지는 마세요.”

“하지만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최병연 팀장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 정도라면 연구소를 맡겨도 문제가 안 될 겁니다.”

“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죠. 아직 나이가 있으니, 굳이 관리직을 할지는 모릅니다.”

“네? 설마요?”

“팀장님도 임원 진급시켜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할 분 아닙니까. 그분도 비슷할 겁니다.”

“아직 제가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이제 서서히 생각을 해보셔야죠. 그러니 MP3 플레이어에 대한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진행해 보세요. 프로젝트 기획안도 올리고, 사전 개발도 병행해서 같이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은 여전히 머뭇거리기만 했다.

최병연 팀이 돌아왔을 때 그들이 할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콜린스 모델은 이미 양산 단계에서 기획, 마케팅과 같은 작업이 남아 있어서 엔지니어와는 그다지 관련도 없었다.

결국 기존에 남아 있는 TV 사업부 연구원과의 관계도 문제다.

잘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밥그릇 하나인 상황에서 쉽지가 않을 것이라 봤다.

‘하긴 TV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공언한 마당이니, 걱정될 수밖에 없지.’

최민혁은 아직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보면서 미루어 두었던 몇 가지 지시안을 슬쩍 내밀었다.

특히 그중에는 MP3 특허 매입에 대한 안건도 있었다.

“시작은 MP3 특허 매입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쉽지가 않을 겁니다.”

최병연 부장의 스카우트를 진행하고 있는 조성돈 부장도 이전과는 달리 자못 심각하게 최민혁의 지시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저작권 소유권자인 브라운호퍼 연구소와 톰슨 멀티미디어 때문입니까?”

“프랑스 국영기업인 톰슨 멀티미디어는 아쉬운 것이 없는 회사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적자가 사상 최대인 상황인 톰슨 멀티미디어라면 쉬운 상황이 아니지. 대운 전자에서 공짜로 인수하려고 했던 회사니까.’

예상 밖의 지시에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공기업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곳에서 특허권을 매각할까요?”

“과거라면 불가능하죠. 그런데 지금 톰슨 멀티미디어 사정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 점을 파고들어야 할 겁니다. 톰슨 멀티미디어의 경영진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브라운호퍼 연구소는 어떻게 할까요?”

“그쪽은 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쪽이죠. 애초에 연구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특허 관리도 톰슨 멀티미디어에서 진행하는 점을 신경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토끼처럼 귀를 쫑긋한 채 듣고 있는 김명준 과장을 향해서 피식 웃고 난 후에 최민혁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더 자세한 안건을 말하지 않았다.

“MP3 특허 매입이 시작입니다. 아마 그러면 최병연 팀장이 돌아와도 크게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콜린스 따위는 신경 쓸 틈이 없을 테니까요.”

“네.”

조성돈 팀장은 잠깐 그 자리에 멈춘 채 멍하니 최민혁을 잠깐 쳐다보았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일 진행에 감복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TV 사업부를 도대체 어떻게 매각할까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지도 않았다.

이제는 의심보다 오히려 호기심마저 생겼다.

‘도대체 MP3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기에 TV 사업부를 매각하려는 것일까?’

* * *

올해 와서 정부가 TRS사업과 PCS 사업 신규 사업자를 선정키로 함으로써 한국 대기업은 죄다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오성 전자 기획실 역시 아예 따로 파트를 나누어서 검토를 진행했는데, 이와는 별개로 이 분야 단말기도 따로 개발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장이라서 개발자가 꽤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최병연 팀장은 비록 TV 설계 경험이 많기는 했지만, 선행 개발 엔지니어로 나쁜 대상은 아니었다.

KM 전자에서 이직해 온 터라 기존 오성 전자 직원과는 차별 대상인 셈이다.

결국 오성 전자 조직은 알게 모르게 최병연 팀장을 압박했다.

최병연 팀장은 꼭 자신만이 아니라 같이 이직해 온 팀원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

그것을 가로채 버린 것이었다.

결국 오성 전자 내에서 이리저리 치인 최병연 팀장도 이제는 서서히 지쳐갔다.

최병연 팀장이 구조조정 이후에 불이익을 당한 이야기는 그가 이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팀 내에서 말들이 많았다.

PCS 단말기 개발할 때 같이 일했던 칩 엔지니어 조창호 차장도 한철수 차장에게서 스카우트 제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넌지시 찾아왔다.

“설마 이직하는 겁니까?”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에이, 우리끼리 다 아는데, 뭘 숨기고 말고 그럽니까.”

“한 차장이군.”

“하하하, 한 차장님이 오죽 답답하면, 저에게 하소연합니까? 팀장님은 너무 고루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싫더라고요.”

“실없는 소리 마.”

지난 프로젝트 때문에 아직도 피로에 쩔어서 피골이 상접한 조창호 차장은 이 일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

“진지합니다. 솔직히 그런 꼴을 당했는데, 화가 안 나면 더 이상하죠. 안 부장 그 새끼가 아예 찍어서 최 팀장님 실적 가로챘는데, 화가 안 나면 그게 사람입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어.”

안국호 부장은 오성 그룹 직계도 아니고, 고작 방계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오성 직계인 양 떠벌리고 다니면서 숨김없이 그대로 로열가라고 주장했다.

물론 설사 방계라고 해도 오성 전자 핏줄과 관련이 있어서 다른 일반 임직원보다는 그 권력이 월등했다.

조기 진급을 거쳐서 최연소 부장에 오른 것이 그 증거였다.

이상하게도 최병연 팀장을 원수 대하듯 괴롭혔다.

바로 최병연 팀장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시기를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최병연 팀장은 생존을 위해서 죽어라고 노력했으니, 둘 사이는 더 벌어질 수 없을 대로 벌어졌다.

이미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워서 고민을 하던 최병연 팀장도 개구쟁이처럼 치근거리는 조창호 차장이 싫지는 않았다.

조창호 차장 역시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성격 때문에 오성 전자 내에서 이런저런 더러운 꼴을 당했기 때문이다.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지.’

둘이 성향이 비슷비슷하니,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PCS 프로젝트 역시 성공적으로 잘 끝난 것이 그 이유다.

두 사람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회사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출중함을 넘어서서 초월적인 능력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강해서 쉽게 고개를 숙이는 타입도 아니라서 오성 전자 내에 라인도 없었다.

아니, 괜찮은 제안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성 전자 내의 사내 정치와는 동떨어진 두 사람이 제대로 대우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창호 차장도 당연히 이직을 고민했다.

“최 팀장님은 저보다 더 억울하지 않습니까?”

“내가 뭐 잘났다고 회사를 이리저리 옮기고 다니겠어? 지금은 오성 전자로 왔으니, 여기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

“그런 꼴을 당하고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이야, 최 팀장님은 이런 면이 좋다니까요. 절대로 남 탓을 하는 경우를 못 봤습니다.”

“조 차장, 자네랑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

“하지만 이제는 움직여도 같이 갑니다. 최 팀장님이 가면 저도 가는 겁니다. 아셨죠?”

“알았어.”

피식 웃는 최병연 팀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성 전자에서 알게 된 조창호 차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박쥐 같은 외형을 하고는 있지만, 소심한 성격에, 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진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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