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화 (98/1,021)

#98

임권수 부장은 아직 최민혁에 대해서 잘 모르는 터라 반박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임 부장은 KM 그룹에 있었다면서 이게 단순히 운으로 보여?”

그는 오히려 소리쳤다.

“제가 아는 최민혁 실장은 최용욱 회장님이 보낸 낙하산일 뿐입니다. 지분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것도 최문경 부회장님이 의도한 겁니다. 그래야 더 쉽게 KM 전자 지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임권수 부장은 자신이 최민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늘어놨다.

전 회사의 오너 일가에 대한 이면이라서 거북한 황광수 차장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무하네.’

“전 최민혁 실장이 본가로 올 때부터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시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 이야기도 전부 다 과장이거나 거짓입니다. 아마 최용욱 회장이 손자를 위해서 쇼를 하는 겁니다.”

실상 최문경 부회장이 최민혁 실장을 끌어들인 과정에 대해서 일반인은 알 수가 없었지만, 기조실만큼은 달랐다.

겉으로는 장승일 실장을 따르는 척하면서도 내심 불만을 품은 임권수 부장은 그런 정보 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막을 잘 모르는 권태성 실장도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저게 합리적이야.’

하지만 권태성 실장조차 최민혁이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최용욱 회장이 남은 지분마저 증여했다는데 그런 말이 나와?”

이번에는 임권수 부장이 깜짝 놀랐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최용욱 회장이 KM 전자 지분까지 넘겼다는 말입니까. 최문경 부회장이 그걸 용납했을 리가 없습니다!”

권태성 실장도 찜찜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고, 오성 그룹 전략 기조실에서도 의아해서 확인하는 정보이기도 했다.

“하긴, 워낙 비밀리에 진행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야. 나도 국세청장 통해서 알게 된 정보이니까.”

어차피 오성 전자 기획실에서도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서 최근 어물쩍 자기 지분을 넘긴 최용욱 회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가 막힌 것은 1,600원 기준으로 주식을 다 넘긴 거야. 자산 대비 고려해서 6,000원이 넘는 주가를 1/4 가격으로 넘긴 거야. 아마 세금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세이브될 거야.”

임권수 부장 입은 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권태성 실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에 대한 갑작스러운 정보가 왜 나왔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다.

‘최 부회장 솜씨군.’

“자네도 몰랐나 보군. 임 부장 말은 잘 알겠어. 좋아. 다 그렇다고 하세. 그러면 최훈열 전무가 구속된 것은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최 전무가 너무 숨김없이 그대로 범죄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최 전무를 구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한 권태성 실장은 굳이 자신이 짐작한 것을 말하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다가 난감한 얼굴의 황광수 차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황 차장 생각은 어때?”

따가운 임권수 부장의 시선을 느낀 황광수 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게 싫어서 KM 그룹을 떠났는데, 설마 오성 전자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줄 몰랐다.

“제가 알기로 장승일 실장은 전관과 심지어 중앙지검 차장검사에까지 압력을 넣었고, 담당 판사를 간접적으로 협박했습니다. 그런데도 실패했습니다.”

“맞아.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니까.”

“이걸 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작업을 누가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증거는 없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이 바로 최민혁 실장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또 일어났습니다. 한 번은 우연이겠지만 두 번은 의도된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그는 끼어들려는 임권수 부장의 입을 막은 채 질문했다.

“그러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최근 입수한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뜻할 겁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알게 된 최문경 부회장이 흘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당한 최민혁 실장이 우리에게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 그런데 왜 최민혁 실장이 오성 전관까지 이용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걸까?”

“감추고 싶은 것이 있을 겁니다. 바로 이거죠.”

그가 손에 든 것은 최민혁이 오성 전관에 보낸 서류였다.

“…확실히 3만 대 CRT 물량이라면 보통 일은 아니지. 오성 전관과는 기존에 거래도 없었다고 했잖아. 뭔가 냄새가 나. 자세한 것은 파악했나?”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막상 사람을 보내서 파악하려고 해도 일이 간단하지가 않았다. 김명준 과장이 KM 전자의 보안을 대폭 강화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새로운 CRT를 굳이 오성 전관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지 알아야 했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LC 전자나 소니 측과도 이미 만났다고 합니다. 즉 CRT 3만 대가 아니라 다 합치면 10만 대 이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임권수 부장은 황광수 차장이 자신에게 말하지도 않는 것을 권태성 실장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권태성 실장은 그런 두 사람의 갈등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STB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얻은 비디오 특허를 떠올렸다. 오성 전자 특허 팀에서 요즘 뜨겁게 떠오르는 이슈다.

기존 비디오 특허를 분석해서 추가한 특허 숫자만 벌써 50건을 넘었다.

비디오 특허를 토대로 해서 지금 들어간 프로젝트 역시 10개가 넘었다. 프로젝트당 개발비만 20억이 넘을 정도로 큰 프로젝트였다.

‘정말 최민혁 실장이 이 비디오 특허에도 손을 댄 것일까?’

사실 증거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어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권태성 실장이 넋을 놓고 있자 임권수 부장이 넌지시 말했다.

“차라리 KM 전자 직원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어떨까요? 저희가 직접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스카우트 업체 통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직원을 이용해서 한번 떠보자는 건가?”

“네. 스카우트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최소한 신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돈의 유혹이라면 쉽게 거부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좋아. 자네가 한번 진행해 봐. 단,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해. 괜히 언론을 통해서 정보가 흘러나가면 자네 역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은근슬쩍 오리발을 내미는 권태성 실장의 행동에 임권수 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내부 알력에 회사를 옮긴 황광수 차장은 전 직장에 대해서 수작을 부리는 임권수 부장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까?’

* * *

헤드헌팅 업체 글로벌 휴먼 이만용 사장은 오성 전자 출신으로, 지금은 오성 전자에 필요한 인력을 구해주는 일을 주로 한다.

다른 스카우트 업체와는 달리 오성 전자라는 물주가 있기에 글로벌 휴먼은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을 이루었다.

평소처럼 오성 전자 라인을 통해서 KM 전자에 대한 것을 살폈다.

‘KM 전자 기획실이나 안산 공장 쪽이라…….’

KM 전자는 10대 그룹보다는 고만고만한 회사이지만 최훈열 전무 소송 때문에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신제품 관련 정보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KM 전자는 거의 망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회사였다.

다만 그는 KM 전자에 대해서는 장승일 실장 스카우트와 관련해서 제법 안다. 심지어 임권수 부장 이직에도 직접 손을 썼다.

솔직히 오성 전자의 제안을 거절한 장승일 실장을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실패도 있기에 이만용 사장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섰다. 제일 먼저 노린 상대는 역시 대리급이나 과장급 인물이었다.

이전에 KM 그룹 임직원을 조사할 때 팀 내부적으로 말이 많다고 알려진 정성근 대리를 표적으로 삼았다.

KM 본사 앞에서 죽치고 있다가 퇴근하는 정성근 대리를 따라붙었다.

“저기 말 좀 물어도 될까요?”

“네?”

요즘 콜린스 부품 수급 검토 때문에 골치가 아픈 정성근 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앞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만용 사장은 느긋하게 자기 명함을 내밀면서 소개했다.

“사실 제가 작은 헤드헌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네.”

“아, 미행했다고 오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KM 전자 기조실에 있었던 임권수 부장의 소개로 알았을 뿐입니다. 정성근 대리님이 대단한 인재라고 추천까지 받았습니다.”

“…네.”

명함을 확인한 정성근 대리는 더 황당해져서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이렇게 스카우트 대상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팀 내에서 제법 꽉 막힌 축에 들어갔다.

“저기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전 이렇게 스카우트 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뇨. 제 생각은 다릅니다. 워낙에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팀 내부에서 견제와 알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소통에 좀 문제가 많은 것을 잘 아니까요.”

무덤덤하게 자기 단점을 토로하는 정성근 대리는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이만용 사장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맞추어야 했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부를 계속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성근 대리는 여전했다.

“제가 인사고과에서 소통 부분만 최하 등급을 받았습니다. 뻔히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왜 거짓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네요.”

‘아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

감정이 상한 이만용 사장도 혀를 내둘렀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달라붙었습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없을까요? 그렇게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끝냈을 일이다.

“회사 기밀이나 뭐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정성근 대리의 놀라운 능력 때문입니다. 정말 믿어 주십시오.”

“혹시 신제품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이만용 사장은 속으로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눈치가 빠른 정성근 대리는 넌지시 콜린스와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 그냥 신제품 만들고 있다는 것만 흘렸다.

“저도 신제품 관련해서는 잘 모릅니다.”

“아, 정말 신제품과는 무관하다니까요.”

정성근 대리는 묘한 느낌에 상대를 무시하려다가 문득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게 궁금해져서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좋습니다.”

* * *

KM 본사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근처의 커피숍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정성근 대리는 상대 입만 보면서 제안을 묵묵히 기다렸다.

“말씀해보세요.”

괴팍한 면에 실망했지만 한편으론 과묵한 정성근 대리의 태도에 흥미를 느낀 이만용 사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KM 전자에 뛰어난 인재가 많습니다. 장승일 실장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황광수 차장에 대한 평가는 오성 인사 팀도 관심을 둘 정도입니다. 기조실의 임권수 팀장도 오성 기획실로 이직했습니다.”

별생각이 없던 정성근 대리도 임권수 팀장 이야기가 나오자 호기심을 드러냈다.

“정말 임권수 팀장이 지금 오성 전자 기획실에 가 있습니까?”

“아, 처음에는 다른 오성 계열사가 있다가 얼마 전에 오성 전자 기획 팀으로 옮겼습니다. 최근 구조조정 때문에 오성 전자 기획실도 많이 변했는데, 그중에 신설된 팀으로 옮겼습니다. 아마 정성근 대리도 오성 전자로 이직하면 그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겁니다.”

조금 과장스럽기는 하지만 임권수 부장의 예를 들면서 자세한 설명을 이어 갔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혹할 내용이었다.

특히 연봉을 비롯한 각종 혜택은 KM 전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승근 대리는 그 어지간한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제가 그렇게 뛰어난 인재는 아닌 걸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지금 받는 급료로 KM 전자에 있는 것은 착취나 마찬가지입니다. 오성 전자로 이직하면 일단 기본 연봉이 6천, 아니, 7천부터 시작할 겁니다.”

“7천이라…….”

거의 두 배가 넘는 연봉 제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정성근 대리는 물끄러미 상대를 쳐다보았다.

이만용 사장은 기회가 왔다가 생각하자 침을 튀겨 가면서 오성 전자로 옮길 때 얻을 수 있는 상세한 혜택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직과 동시에 과장으로 승진도 가능하다는 제안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정성근 대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황당했다.

“저기 이 사장님, 잠깐만요.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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