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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1화 (91/1,021)

#91

“걱정하지 마세요. 마침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

오영근 사장은 콜린스 모델 보고서를 읽으면서 눈살부터 찌푸렸다. 그의 경험상 도저히 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업 팀이나 기획 팀에게서 허락을 구한 것만으로 용하네.’

“자네 의욕은 알겠지만 이런 제품 개발은 어려워.”

“만약 가능하면 어떻습니까?”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제품 개발이 가능만 하다면 나쁘지 않지.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시장도 바뀌어서 대형 TV 수요가 제법 돼. 이렇게 고급형이라면 찾는 사람이 꽤 될 거야.”

“그러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연구비만 해도 60~70억, 아니, 그 이상이 들어갈 거야.”

“아뇨.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갑니다. 기간도 최대 6개월이면 충분할 겁니다.”

허탈한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이 미친 게 아닌가 싶어서 쳐다보았다.

“…진담으로 하는 소리야?”

당당한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의 묘한 표정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실물은 곧 보게 될 겁니다.”

“…진짜야?”

“네.”

아마 오영근 사장도 최민혁 실장이 오성 전자를 상대로 보여준 놀라운 능력을 보지 않았다면 아예 보고서를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저 당당한 모습이 그 증거였다.

“조 부장도 가능하다고 한 거야?”

“거기 조 부장 사인도 있습니다.”

“으음.”

오영근 사장도 아마 최민혁 지분이 이전이었다면 도저히 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KM 전자 오너는 최민혁이었다.

오너가 저렇게 단호하게 나오는데, 반대할 수는 없었다.

“난 책임 못 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는 서명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최민혁을 새삼드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봐, 최 실장, 혹시 실적 때문에 무리하나 본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아닙니다. 으음, 한 달 안에 말보다는 결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는 무덤덤한 최민혁 실장의 말에 도저히 태클을 달 수가 없었다.

‘정말 저게 가능할까?’

* * *

최민혁도 안산 공장으로 가는 차량 안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김명준 과장이 백미러를 통해서 뒤따르는 차량을 쳐다보는 것을 봤다.

“미행입니까?”

“저희 그룹 사람은 아닙니다. 어떻게 할까요?”

“첫째 큰아버지가 또 꼼수를 부리나 본데, 아마 저들을 처리해도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또 사람을 붙일 겁니다. 그냥 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이보다 뒤에 잘 따라오는 조성돈 팀장과 배종대 과장이 탄 차량을 쳐다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두 사람과 같이 갔다.

일단 사전 협의를 통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콜린스 모델이 순탄하게 잘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금 시대의 양산 기술로 가능할까?’

그의 고심과는 상관없이 차량은 빠른 속도로 안산 공장을 향했다.

* * *

머리숱이 없는 안선종 팀장이 안산 공장 건물 앞에 나와 있었다.

그 옆에는 범생이 스타일의 김창호 부장이 조용히 허리를 숙였고, 같이 나온 최구만 과장 역시 최민혁을 향해서 인사했다.

세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 역시 듣는 귀가 있어서 최민혁이 경영권을 완전히 얻었다는 것을 들었다.

시선을 마주 보지 못한 채, 눈치를 계속 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생사여탈권자.

최민혁 지시 한 번이면 그들은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아무리 최민혁을 존경한다고 해도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가볍게 인사를 건넨 최민혁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 대형 팀 제1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이미 김갑래 과장, 윤선기 대리를 비롯한 소형TV 팀이 남아 있었다.

최민혁은 이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안선종 팀장을 쳐다보았다.

“다른 팀에게는 아직 안 알렸죠?”

“네.”

“남아 있는 다른 직원은?”

“딱히 크게 문제 될 만한 직원은 없습니다.”

“한 사람도요?”

“아, 지난 공장 압수수색 이후에 검찰에 구속된 이들 외에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때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은 다 그만둔 겁니까?”

“네. 요즘 취업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니까요. 남은 이들은 크게 문제가 없는 이들뿐입니다. 실장님 지시에 따라서 철저하게 비밀로 했습니다.”

“그것만으론 곤란합니다. 앞으로 보안을 위한 규정부터 새로 만들고, 연구소에 대해서는 노트북을 비롯한 모든 장비 규정을 강화하세요. 핸드폰을 비롯한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정하고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굳이 더 자세한 질문 따위는 하지 않은 채 회의실에 앉았다.

뒤를 따른 조성돈 팀장과 배종대 과장이 인사를 나눈 후에 각자 자리에 앉았다.

안선종 팀장은 연구원답지 않게 유들유들한 면이 있어서 회의를 부드럽게 이끌어갔다.

“콜린스 모델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는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출 서형입니다. 금속 재료를 이용한 제품은 단시간에 대량 제품을 제작할 수는 있지만, 콜린스 크기에 맞는 사출성형기가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안선종 팀장은 적절한 형체력을 갖춘 사출성형기를 직접 보여주었다.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서 최대한 에너지 절감을 하고자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있습니다.”

특이한 모형의 사출 성형기를 통해서 실제로 샘플을 직접 제작하는 자료를 보여주었다.

최민혁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빠른 일 처리에 내심 감탄했다.

‘정말 잘하네. 역시 경험 많은 인재들이라서 그런지 기대 이상이야.’

“…….”

물론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동행한 이들은 눈만 끔뻑였다. 그들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의 지시에 따라서 따라오기는 했지만, 연구소에서 벌써 이미 콜린스 프로젝트가 이미 상당히 진척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시, 실장님,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최민혁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지켜보세요.”

“하, 하지만…….”

“제가 연구 팀을 믿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들 능력은 다른 어떤 대기업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특히 대형 TV 영역에서 쌓아올린 기술력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과거 일까지 복잡하게 다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 알게 되어 있으니까.

그는 간단한 브리핑을 끝으로 최근 안산 공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임시 책임자를 구내식당에서 만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 사람씩 인사를 하는 이들은 안산 공장과 연구소 인력 중에 아직 최민혁을 만나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회사 경영권을 완전히 틀어쥔 최민혁 실장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물론 최민혁은 안선종 팀장에게 관리를 맡길 생각이기에 그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군.’

이들과의 면담을 주도하던 안선종 팀장은 시계를 보더니 방긋 웃었다.

“이제 샘플을 보러 갈 시간입니다. 아마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호오, 기대되는군요.”

“…….”

두 사람은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의 뒤를 조용히 따르기만 했다. 그들은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단순한 미팅인 줄 알았던 것이었다.

‘뭔가 더 있다는 말인가?’

* * *

최민혁은 몇몇 책임자와 같이 인사를 나눈 후에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때 연구원 두 사람이 흰 천으로 덮여 있는 샘플을 가져와서 공개했다.

마치 아이멕을 판박이처럼 닮은 TV는 외각 처리도 예술이었고, 특히 측면 곡선을 따라서 반짝이는 광택 역시 기존 모델과는 차원이 달랐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에도 처음 이 모델을 본 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 역시 막상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금형에 넣어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안선종 팀장 역시 결과물을 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저도 실장님이 처음 디자인을 줬을 때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고 나니,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디자인이 독보적이었다.

물론 웃고는 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밤을 꼬박 새우면서 강행군했다. 기존에 있던 모델을 수정한다고 해도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팬더처럼 검은 다크서클이 가득한 모습이 그 단적인 예였다.

게다가 뚱뚱 부어 있는 손가락만을 보면 이 샘플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드러났다.

최민혁은 그 모습을 시선에 담아 둔 채 분위기를 살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하나둘씩 콜린스 샘플을 보면서 감탄했다.

아니, 경악했다.

“……!!”

가장 매우 놀란 사람은 역시 조성돈 팀장과 배종대 과장이었다. 그들이 최민혁의 지시에 따라서 기획안을 내기는 했지만, 시제품이 나오는 데 최소한 2년 가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서를 내기가 무섭게 바로 짠 하고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 놀라지 않던 조성돈 팀장도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시, 실, 실, 장님, 이, 이게, 이, 게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최민혁 역시 유려한 콜린스 모델을 쓰다듬으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게 콜린스 모델입니다.”

“서, 설마 동작하는 것은 아니겠죠?”

디스플레이가 금형에 너무 딱 맞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힐끗 안선종 팀장을 쳐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안선종 팀장은 두 사람 심정을 모를 수가 없는 터라 어깨에 힘을 줬다.

“실장님이 보낸 디자인이 다행히 저희 개발 팀에서 진행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 결과를 그대로 가져왔고, 이전에 개발하다가 만 모델을 적용해서 빠르게 제작했습니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과 3주 만에 이런 결과를 도출한다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기존 대형 팀 개발 3년, 거기에 최민혁이 방치한 시간 몇 개월, 최근 3주를 합쳐서 대략 3년이 넘게 걸렸다.

굳이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안성종 팀장은 고생한 팀원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잘 알았다.

“고생했죠. 평일 새벽 3시, 4시까지 작업했고, 주말에도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를 잘 아는 저희 팀은 강행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이전에 이미 여러 가지 금형을 가지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얇은 대형 TV의 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함입니다.”

대형 TV를 설계할 때 그냥 딱 한 가지만 설계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디자인을 직접 제작해서 진행했다.

최민혁이 제안한 디자인과 비슷한 모델도 있었다.

그 샘플을 수정해서 빠르게 결과를 도출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존 샘플 양산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사출성형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안테나가 좀 문제였지만…….

“윤선기 대리가 안테나 쪽에 전문가라서 오히려 그 작업은 쉬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콜린스는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은빛 색깔을 가진 미래 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TV였다.

툭 튀어나온 전자총 부분은 디자인적으로 처리해서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TV 테두리 뒤쪽 부분은 유선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최민혁은 생각보다 더 잘 빠진 모습에 새삼 감탄을 거듭하고 말았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대형 팀 노고가 정말 많습니다. 평소에도 꾸준하게 개발한 점을 높이 평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조성돈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실장님…….”

“조 팀장님, 천천히 알아보세요.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끄응.”

배종대 과장은 질문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은 대신 콜린스 외형을 계속해서 쳐다보면서 탄식했다.

안선종 팀장은 마치 이런 두 사람을 놀리려고 하는 듯 TV 전원을 켰다. 신형 부품으로 대체된 콜린스 색감은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몇 배나 향상되었다.

그 화사한 화면에 두 사람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저 모형으로만 생각한 대형 TV가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어떻습니까. 이게 바로 우리 TV 연구 팀의 저력입니다.”

최민혁도 묵묵히 보다가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생각보다는 더 빨리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뭐 이전보다 빠를 수밖에 없는 게, 일을 방해하는 이들이 없으니까요. 최훈열 전무나 조상도 소장이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계속 이런저런 태클을 거니까요.”

“그렇게 방해가 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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