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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1화 (51/1,021)

< #051 >

원종상 전무도 도움을 받은 최두진 사장이 극구 김현우 상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하기 싫은 말을 계속 꺼냈다.

“최 실장을 어떻게 해서라도 견제를 해야 앞으로 편할 겁니다. 안 그러면 계속해서 김 상무님을 공격할 테니까요.”

“그 말 잘했습니다. 도대체 최 실장 그 새끼는 나랑 무슨 원수라도 졌습니까. 왜 나만 죽으라고 공격하는 겁니까?”

“최훈열 전무 구속도 최 실장 솜씨라는 소문이 맞는다면 경영 승계 때문이겠죠.”

“아니 그러면 대주주 인맥인 나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것 압니까. 이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개새끼 같지 않습니까?”

“그게......좀 이상하죠.”

두 사람 다 뒤늦게 최민혁이 왜 김현우 상무를 대놓고 공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이 쉽게 KM 전자 입지를 다지는 방법은 최훈열 전무가 사라진 이상 김현우 상무의 지지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도 세파를 자주 경험한 이일태 이사가 괴이하게 웃으면서 의견을 내놓았다.

“혹시 최 실장이 오수연 비서를 짝사랑하는 것은 아닐까요. 회사 내에 오다가다 봤을 수도 있죠. 그런데 뒤늦게 강간......아니 좀 약간의 오해가 있는 사건을 듣고 나서 어린 나이에 자기감정을 주체 못해서 분노한 것 아닐까요?”

“이 이사, 그건 너무하잖아. 아니 오혜정 비서도 있고, 한선화 비서도 있잖아. 두 사람 다 최 실장에게 관심 있는 눈치라고 소문이 났어. 심지어 비서실 여직원은 죄다 최 실장 그 새끼에 관심이 많아. 그런 여자를 내버려두고 오 비서까지 먹겠다고? 시발, 그건 정말 너무 하잖아!”

“......”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침묵했다. 사내에 도는 소문이기는 하지만 폭군으로 통하는 최훈열 전무가 사라진 후에 최민혁 인기가 상한가를 쳤다.

특히 대학교 1학년으로 KM 전자 기획실장까지 차지하면서 KM 그룹 승계 구도에서 나름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일은 가끔 다른 언론에서 언급할 정도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김현우 상무는 자신의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자 폭언을 쏟아냈다.

“최 실장 그 새끼는 회사 들어와서 한 일이라고 아무것도 없잖아. 그런데 뭐가 그리 잘났다고 떠받는지 분통 터져 죽겠습니다. 솔직히 내가 VCR 신제품 생산 밀어붙인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압니까. 원종상 전무님은 말 좀 해보세요!”

비록 TV 사업부나 오디오 사업부에 못해도 꾸준하게 매출을 내고 있는 멀티미디어 사업부 원종상 전무도 김현우 전무 의견에 공감했다.

“하긴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TV 사업부가 좋아진 것도 최훈열 전무가 한 시행착오를 걷어냈기 때문으로 원래 잘 나가던 사업부니까요. 그 과실을 최 실장이 운 좋게 먹은 거죠.”

“그렇죠? 좋습니다. 내일 제가 사장님을 직접 찾아가서 항의할 겁니다. 같이 가서 좀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

최민혁이 실제로 회사 들어와서 한 일은 최훈열 전무 제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구조 조정에 가까운 일만 진행했다.

최민혁이 따로 새로운 사업을 스타트 시킨 것과 같은 과시적인 실적은 없었다. 굳이 와이드 TV 사태를 겨냥해서 이슈를 만든 것도 그것을 덮기 위함이다.

이게 보통 사람에게는 잘 먹혀들어가도 매출과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실사파인 문형섭 부사장 같은 경우는 잘 먹히지 않는다.

임원회의 당시는 워낙에 와이드 TV에 대한 기획과 분석이 획기적이라서 박수를 처 주었던 것뿐이다.

김현우 상무가 갑자기 나타나서 최민혁 실장의 실적이 뭐가 있냐고 따지자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오영근 사장 역시 경영자답게 김현우 상무에 대한 감정은 나빴지만 그렇다고 맞는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TV 사업부도 서서히 안정되고 있고, 다른 사업부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네. 그런 실적마저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어.”

TV 사업부를 비롯한 본사 압수 수색 이후에 KM 전자는 때 아니게 홍역을 앓았는데, 그 덕분에 부정과 부패가 획기적으로 사라졌다.

문형섭 부사장은 심지어 오디오 사업부 이익이 무려 8% 가까이 늘어난 것까지 말하지 않은 채 그저 듣기만 했다.

김현우 상무는 허리까지 숙여가면서 지난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척했다.

“오 사장님, 제가 다시 지난 임원회의 때 무례했던 것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때 일은 열 받아서 실수했습니다.”

애초에 김현우 상무 행실을 잘 아는 오영근 사장은 눈살만 찌푸렸다.

“그건 알았네.”

그는 슬쩍 커피만 홀짝이는 문형섭 부사장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결과도 없는 최 실장이 과장해서 나서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문 부사장님도 입이 있으면 한번 말씀해보세요. 저보고 늘 실적이 없다고 구박했던 일은 다 잊은 겁니까? 저 그래도 VCR 결과를 도출했고, MPEG 표준화 작업과 관련된 특허와 논문도 꽤 냈습니다!”

물론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밑에 연구원을 갈아서 만든 결과였다. 그런데 VCR 실적은 아직 나와 봐야 아는 것이고, 영양가 없는 특허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도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 당장은 김현우 상무가 한 일까지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못했다.

“자네는 선행 조사 기간까지 합쳐서 STB만 벌써 2년 가까이 돈을 퍼부었어. 기반이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VCR 사업까지 병행했지 않나. 하지만 최 실장은 이제 회사에 출근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어. 당장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야.”

김현우 상무는 회사 들어와서 실적 자체가 없었다. 그나마 최두진 사장 영향력을 이용해서 실적이 나오고 있는 VCR 사업은 원래 전임자가 했던 실적을 가로챘을 뿐이었다.

“아니 제가 언제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까. 최 실장이 자꾸 자신은 없는 실적 타령만 하면서 절 공격하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걸 좀 자제시켜 달라는 겁니다!!”

두 사람 다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다른 두 사람의 시선도 의식해서 김현우 상무 지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흠, 알았네. 확실히 지나친 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네.”

“좋습니다.”

***

최민혁은 아침부터 자신을 찾은 오영근 사장, 문형섭 부사장, 심지어 두 사람이 실장실로 갔다는 소식을 듣자 찾아온 김현우 상무를 비롯한 두 사람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섯 임원을 보면서 놀라기는커녕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던 다섯 사람이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자신을 찾은 것이 우습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습니까?”

문형섭 부사장은 짜증스러운 눈으로 계속 독촉하고 있는 김현우 상무를 포함한 세 사람을 힐끗 살핀 후에 최민혁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최 실장은 아직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러니 당분간은 업무 파악하면서 지켜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STB 사업부 검토 때문입니까?”

“뭐 아니라고 말 못하겠네. 자네가 기획실장 자리에 앉고 나서 한 일은 잘 알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조직을 다독거린 것은 인정해. 그런데 알다시피 기획실장이란 자리가 꼭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냐. 스스로 기획실장이 된 후에 한 결과가 없지 않은가?”

“저보고 실적을 내란 말입니까. 신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새로운 캐쉬 카우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실상 지속시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뻔히 그 난이성을 잘 아는 문형섭 부사장은 민망해서 슬쩍 시선을 피했다.

최민혁은 힐끗 다양한 욕망을 담은 다섯 사람의 시선을 하나하나 응시하면서 양손을 위로 펼쳤다.

“이거 제가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은 것 맞는 겁니까? 이제 실장 명함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뭔가 내놓으라고 하다니.”

오영근 사장도 민망해서 슬쩍 시선을 피했고, 문형섭 부사장 역시 민망해서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자신이 무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거 뭐 거꾸로 된 것 같습니다. 나이 어린 제가 열정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여러분이 혈기에 넘쳐서 설치는 절 막아야 하는 것 압니까? 아니 오히려 날뛰라고 부추기다니, 참 세상 일은 요지경입니다.”

문형섭 부사장은 힐끗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른 세 사람 분위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최 실장 자네 능력은 이미 다 아네.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자네에게 과시적인 실적이 필요해!”

오로지 실적주의만 따지는 문형섭 부사장이 기획팀 말장난을 아예 평가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존 조직 재정비와 경쟁업체 능력을 제대로 분석한 최민혁 실장을 그만큼 높이 평가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솔직하게 시인한 최민혁은 애초에 KM 전자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분을 가능한 고가에 팔아치우고 손 털고자 했기에 실적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흙탕물 속에 뛰어들었으니, 뭔가 내놓기는 해야 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뒤에서 눈을 번들거리는 김현우 상무에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제가 설마 아무런 신사업에 대한 계획도 없이 이렇게 설치겠습니까. 나름 다 대안이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기 전에 회사를 좀 먹는 벌레들을 치우고 싶었을 뿐입니다.”

“뭐야?!”

김현우 상무는 결국 분노했고,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한 채 최민혁에게 삿대질했다.

“최 실장, 지금 보자 보자 하니, 너무 한 것 아냐. 설마 그 벌레를 나를 지칭하는 거야?”

“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그 벌레가 찔려서 스스로 벌레라고 자인하는 겁니까?”

울화가 치민 김현우 상무는 고함쳤다.

“야, 최 실장, 내가 뭐 큰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잖아. 최소한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결과를 내고 나서 딴소리를 해. 입만 살아서 물에 빠져도 주둥이가 둥실둥실 뜰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둘째 큰아버지도 아니고, 남남인 김현우 상무를 앞에 두고 최민혁이 이런 개소리를 바로 앞에서 듣고서 참을 리가 없었다.

“별 거짓 같은 소리 다 하시네요. 아니 기획실장이 그러면 손실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해서 신사업 스타트하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겁니다. 절 탓하기에 앞서서 최소한 김 전무는 발정난 개처럼 강간 미수 같은 문제만 만들지 말고, 명확한 실적을 내보여서 같이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증명부터 하란 말입니다!”

“이, 이, 개......”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김현우 상무는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문형섭 부사장도 처음에는 김현우 상무 편을 들었지만, 최민혁이 언급한 ‘신사업’ 이야기에 깜짝 놀라서 오영근 사정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뭔가 있어.’

지금까지 최민혁이 회사 들어와서 한 일보면 실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그런 이가 그냥 빈 소리로 저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

‘정신 나간 재벌 3세라면 모르지만 저렇게 똑똑한 대주주가 자기 회사에 손실 입히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그 계획이 가능성이 있다면 김현우 상무를 쳐내려고 한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이봐, 김 상무, 진정 좀 하게. 자네는 정말 우리 두 사람도 우습게 보는 거야?”

진짜 분노로 미칠 것 같은 김현우 상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제 하소연했다.

“문 부사장님, 아니 이건 정말 너무 편파적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 사람아, 서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야지.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법이네. 일단 자네들은 가 있게. 사장님이랑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정말입니까?”

“아, 그래. 내가 입만 싼 놈팡이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그래. 내 성격을 자네라면 잘 알 것 아닌가?!”

“......네.”

서슬 퍼런 문형섭 부사장 태도에 분한 김현우 상무도 이제까지 툭하면 자신을 씹어 먹은 문형섭 부사장을 믿었다.

그래도 김현우 상무는 나가면서 최민혁을 증오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콧방귀를 뀌면서 가볍게 비웃어 줘서 실장실 밖으로 내보낸 후에 허탈한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어느 정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물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김현우 상무 태도를 보자 두 사람을 마냥 믿지만은 않았다.

‘우리 둘째 큰아버지를 박 부장검사 이용해서 제거한 것은 신의 한 수였어. 김 상무처럼 치고받고 싸우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을 테니까.’

“대안이 있습니다.”

문형섭 부사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게 뭔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두 사람 표정이 일그러졌다.

“......최 실장, 정말 너무 한 것 아닌가. 난 KM 전자의 부사장이고, 여기 옆에 있는 분은 KM 전자 사장님이네. 아니 어떻게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하나?”

“그런 두 분 귀가 얼마나 얇으면 김현우 상무 사탕발림에 속아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거야......미안하네.”

“됐습니다. 그냥 이대로 조금만 참아 보세요. 알기 싫어도 아실 테니까요.”

두 사람은 그제야 최민혁이 뭔가 놀라운 기획안을 따로 준비했다는 것을 확신했고,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언제 그런 물건을 준비한 걸까?’

“......힌트라도 줄 수 없겠나?”

< #05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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