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4 >
“저도 검찰 쪽에 아는 지인이 있는데, 이번에 내부자거래로 로인트 전기를 수사한다는 소리가 있어요. 그러니 자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정말입니까?”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대충 듣기로 로인트 전기가 작년 6월에 13,000원에서 10월에 무려 58,000원까지 시세를 조종했어요. 시세 조작한 증권가 직원도 검찰 수사를 받는데, 내부자거래 혐의로 가족, 친지까지 수사 대상에 들어갔습니다.”
자세하지 않은 것치고는 꽤 세세하게 아는 대답에 조성근 팀장은 경악했다.
“맙소사!”
최민혁은 그제야 이 정도면 주식 거래는 접겠지 라고 내심 안도했지만 좀 더 겁을 줬다.
“개발된 신물질이라는 미공개 정보를 가족과 친지에게 알려서 시세 차익을 본 겁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죠. 차라리 조만간 우리 사주 매입과 같은 기회를 준다고 말하세요.”
그는 그제야 정성근 대리 의견을 더해서 수정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팀원에게도 자중시키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미팅 끝에 정 대리 의견을 포함해서 수정한 보고서인데, 결론적으로 와이드 TV가 당분간은 어려울 거로 판단합니다.”
뒤늦게 와이드 TV 관련 대책 보고서를 받은 최민혁은 오히려 감탄했다. 그 역시 보고서를 보고서야 이 와이드 TV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아쉽지만 그래도 떠오른 것으로 만족해야지. 앞으로도 내 능력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기획팀 기획안을 최대한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
“이번 기획안은 좋네요. 우리 한국 기업이 주로 간과하는 것이 이 콘텐츠니까요. 무시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보고서 선에서 생각한 조성돈 팀장도 진지한 최민혁 반응에 은근히 놀랐다.
“실장님도 와이드 TV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겁니까?”
최민혁은 다시 한 번 보고서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더 떠오르는 생각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다른 정보를 찾지 못했다.
“네, 저도 이 보고서를 보고서야 아차 했습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가전 3사라고 해도 컨텐츠를 마음대로 생산하지는 못합니다. 한국 산업의 근원적인 문제라서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남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 당연한 방송사에서 제대로 컨텐츠를 만들 사람은 없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고만고만한 컨텐츠만 남는 방송사 생태계에서 혁신적인 컨텐츠가 나올 수가 없다.
정성근 대리가 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마치 일어날 일을 설명하는 듯한 최민혁 말에 조성돈 팀장은 다소 놀란 눈빛으로 보고서를 쳐다보았다.
“혹시 빠진 것이 나올 수도 있기에 이 보고서를 다음 주까지 살펴보세요. 임원 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보고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예상 밖의 최민혁 반응에 조성돈 팀장도 흥분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
자기 회사 주식을 매수 후 매도해서 차익이 발생하면 회사에 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임직원 기준이 모호하다.
다만 회사 임직원이라고 해도 매수한 후에 6개월 이상 들고 있는 경우는 공정 거래로 여겨져서 반환 대상에 제외된다.
하물며 외가 쪽으로 해서 차명으로 투자한 소액 경우는 법적인 처리가 애매하다.
그래서 기획팀도 정성근 대리 의견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이 최민혁에게 이 주식 투자에 대해서 경고를 받은 다음 날에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일이 터졌다.
바로 로인트 전기 시세 조작과 관련된 이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되었다.
로인트 전기 사장이 가족과 친지에게 알린 정보가 문제였다.
이 내부자 정보로 주식을 미리 사들여서 시세 차익을 봤는데, 적게는 1억, 많게는 무려 10억이 넘는 이익을 얻었다.
결국 피해를 본 일반투자자들은 증권사 직원과 로인트 전기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건 것이었다.
평소라면 그저 지나가는 기사에 불과했지만 불과 어제 최민혁 실장에게서 경고를 들은 기획팀 직원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실장님이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자는 아니겠죠?”
“말이 되는 소리는 하지 마!”
정성근 대리 권유로 투자를 결심한 이들은 다들 슬그머니 투자를 포기했다.
배종대 과장도 겁먹고 마련한 투자금 6천만 원을 깔끔하게 접었고, 박상기 차장 역시 조용히 주식 투자를 철회했다.
친인에게 명의를 빌려서 투자를 하려던 다른 팀원 역시 깔끔하게 포기했고, 정성근 대리도 눈치껏 사들인 주식을 다 팔아 치웠다.
다만 이 결과에 박광민 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실장님은 도대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일까요?”
크게 낙담한 배종대 과장이 구박했다.
“검찰에 아는 라인이 있다고 하잖아.”
“하지만 실장님이 로인트 전기 쪽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거기에 검찰 역시 증권감독원과 비밀리에 수사하는 내용을 외부에 알렸을까요?”
“글쎄.”
“더욱이 실장님이 안다고 하는 인맥은 최훈열 전무 구속과 관련되는 중앙지검 아닐까요. 로인트 전기를 조사한 쪽은 관할이 다르잖아요. 설마 최 실장님이 검찰 조직 정보를 다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막상 최민혁 말을 다시 돌이켜보고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도 언론에 발표 전날에 이런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박광민 사원은 혼자 중얼거렸다.
“설마 언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
물론 이런 음모론은 오래가지 않아서 사라졌다.
“아니 회사에서 그런 음모론을 따져야겠어? 도대체 대학교 1학년인 실장님이 어떻게 검찰과 언론 쪽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네.”
‘최훈열 전무 구속한 배후에도 최 실장님이 있다는 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는데,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정작 겁만 주려고 했던 최민혁도 코스피 폭락으로 시끄러운 이 마당에 갑자기 로인트 전기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걸린 기사에 깜짝 놀랐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정·재계에 영향력이 최문경 부회장을 상대하는 시점에서 자칫 자신의 약점을 노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라면 이런 약점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거야.’
최민혁도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알았지만 그 다음 날 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옆에서 다 들었던 김명준 과장도 산더미 같은 질문이 있었지만, 대답을 뻔히 예상했기에 이제는 아예 묻지 않았다.
최민혁도 뒤늦게 문제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서 자기 투자에 대해서 김명준 과장에게 물어보았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 주식 투자를 진행한 투자 회사는 돌아가신 최병문 상무님이 아일랜드, 네덜란드, 버뮤다, 바하마에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실장님과 연관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회사 내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최병문 상무가 죽고 나서 대부분 자금은 다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그룹 비자금으로 넘어갔다.
지금 남은 투자 법인은 그저 법인이 유지할 정도로만 운영되다가 결국 없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민혁이 투자 대박 덕분에 다시 우영민 과장을 통해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부 다 해외 투자법인 통해서 처리한 겁니까?”
“아닙니다. 대출받은 86억은 따로 국내 지사를 통해서 처리했습니다.”
“그 수익은 얼마나 됩니까?”
“원금 포함해서 200억이 좀 안 될 겁니다.”
“와아, 그것도 크네요. 가만 이번 주식 매각 총액은 얼마나 됩니까?”
“1,350억 가량 됩니다.”
이 금액 중에 200억은 최민혁 명의였고, 나머지 금액은 최민혁이 실제 소유주인 해외 투자 회사 소유였다.
“오.”
최민혁도 감탄을 토로했다. 불과 600억이 안 되는 돈이 두 배로 늘어난 것에 놀랐고, 환상적인 일 처리에 감탄했다.
“가만 아일랜드, 버뮤다라고 했죠?”
“네. 완전히 합법적인 겁니다. 절대로 문제의 소지가 없습니다.”
최민혁도 미래 다국적인 기업이 절세 수단으로 이용해서 악명이 자자한 수법이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대단합니다. 그리고 오성 전자가 정말 효자였습니다.”
실제로 100억 이하 투자라도 주식에 따라서 등락 폭이 달라서 큰 이익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600억 가까운 투자를 단행해서 저렇게 큰 수익을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김명준 과장조차 최민혁의 신기에 가까운 투자 결과에 깊이 감동했다.
“실장님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우영민 과장도 실장님에 대해서는 경악했으니까요. 같은 시기에 이만한 이익을 준 것은 실장님이 선택한 오성 전자가 유일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김명준 과장님이 기획팀에도 신경을 써 주세요. 괜한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회사 내부 정리에도 더 신경을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참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한데,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실장님만 그럴 뿐입니다. 지금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장단 회의에 계속 나가는 중입니다.”
최민혁이 최문경 부회장 공략에 앞서서 시선을 끌 목적으로 한 일로 일어난 변화라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고, 이제부터 KM 전자 조직 내부에 적극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거 흥미롭군요. 아무래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사장님과 부사장님을 위로 해줘야겠습니다.”
“......네.”
***
최민혁은 나름 회사에 정상적인 출퇴근 하면서도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활했다. 이런 현상은 딱 최민혁 한 사람만 해당하였다.
정작 폭풍의 눈 밖에 있는 이들은 다들 패닉에 빠져버렸다.
안 그래도 초상집 분위기를 연출하던 시기에 KM 전자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대주주의 반응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최근 계속되는 KM 본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다고 정신이 없던 문형섭 부사장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주가 폭락으로 초췌한 오영근 사장을 걱정했다.
“괜찮습니까?”
어지간해서는 화를 잘 아내는 오영근 사장도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최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최훈열 전무가 구속되면서 결국 KM 그룹 사장단 회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는 뜻밖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내비친 최용욱 회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마지막 사장단 회의할 때 주름이 자글자글 늘어나서 경영에 간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최용욱 회장은 오히려 부쩍 건강했다.
이제 최용욱 회장에게서 그룹의 실질적인 지분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최문경 부회장은 큰 충격을 받아서 회의 내내 침묵했다.
늘 말 수가 적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KM 건설 최동영 상무조차 겉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최용욱 회장은 사장단 회의 내내 별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훈열 전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짧게 한 마디 했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아들에 대한 집착을 그렇게 보였던 반응과는 달랐지만 놀라는 이는 없었다. 최훈열 전무 덕분에 차입금 이야기는 거의 물 건너간 것으로 결정이 났다.
-요즘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 그룹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아. 차입금은 다시 원점에서 장승일 실장이 검토할 거다.
차입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1년 넘게 들어간 로비 비용도 문제지만 이 차입금과 관련된 계약을 다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뒤늦게 정신 차린 최문경 부회장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최용욱 회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아니라 장승일 실장에 힘을 실어준 후에 사장단 회의에서 먼저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회장을 보필하면서 떠나는 장승일 실장 등을 쳐다보면서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최동영 상무는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사장단 회의는 이들 네 사람의 갈등 때문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오영근 사장 역시 회의 내내 받았던 차가운 최용욱 회장 시선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저도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나마 회사에서 자기 말이라도 들어주는 오영근 사장을 고려한 문형섭 부사장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됩니다. 아니 사장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는 겁니까. 이 일도 따지고 보면 전부 최 전무 때문입니다!”
“그 최 전무를 방임한 것이 저니까요.”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심하게 반발하는 문형섭 행동에도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주가하락은 코스피가 900선이 무너지면서 830까지 밀린 것 때문 아닙니까. 최근 낙폭이 컸기 때문에 차익 매물이 실현된 것뿐입니다.”
“다른 종목은 어느 정도 반등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KM 전자만 와이브 TV에 대한 준비가 없어서 유독 힘을 못 쓰고 있어요. 그게 다 제 책임이 아니면 누구 탓입니까?”
“와이드 TV를 그렇게 반대한 것도 최 전무였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이면 시제품이라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대국민 사기극이 되는 와이드 TV에 손대지 않은 최훈열 전무의 결정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잡은 쥐에 불과한 사실을 미처 모르는 두 사람은 말을 흐렸다.
“이미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최 전무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구차합니다. 그리고 오성 전자 움직임은 이미 작년부터 예측된 겁니다. 그런데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사장이 사장이겠습니까?!”
“사장님......”
< #044 > 끝
ⓒ SSDH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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