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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0화 (40/1,021)

< #040 >

핸드폰은 마치 벌떼처럼 계속해서 징징 울리면서 그를 자극했다.

‘도대체 이 무슨......’

정재순 사무원이 다시 가져온 여러 언론사의 신문을 하나둘씩 읽으면서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 때문이다.

권명수 부장판사는 이번에 울리는 수화기를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뜻밖에도 법원 행정처장 밑에 있는 한 사무관이었다.

[가능하면 이번 최훈열 전무 구속 영장은 좀 더 면밀한 확인을 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구속 영장을 기각하라는 의미를 알아들은 권명수 부장판사도 나직이 탄식했다.

“알았습니다.”

그의 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놓인 사태도 마냥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 발단이 되는 검찰의 최훈열 전무 구속 영장 신청서를 눈앞에 뒀다.

판사를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던 적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이 구속 영장을 기각시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언론의 마녀 사냥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자기 평판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비리 판사로 한국 법원 역사에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다.

‘하필이면 내가 영장을 발부한 이들이 최 전무의 종범이라니.’

뒤늦게 후회해보았지만, 검찰에게 당했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사무원에게 받은 신문 중에 ‘전관에 대항하는 정의의 검사 박두영 부장검사는 누구인가?’란 타이틀 기사를 집어 던지면서 이를 갈았다.

‘박두영 부장검사 이 새끼가 감히 날 엿 먹여!’

아직도 애까지 데리고 나와서 시위하는 중년 여인의 모습이 잘 잊히지 않았고, 결국 최훈열 전무 구속 영장을 승인했다. 대신 뒤에 이어질 보복이 떠올라서 가슴만 타들어 갔다.

‘엿 같네.’

***

[와와와와와와!]

[최 전무!]

[구속!]

마치 몇만 명의 관람객이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서울중앙지법 앞을 뒤흔들었다.

이번 시위 참석자는 서로 얼싸안은 채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된 것에 환호했다.

몰려온 기자들은 전례가 없는 이 일에 미친 듯이 취재하기 바빴다.

대형 언론 방송국 차량이 나와서 그들과 직접 인터뷰하면서 이 일에 대해서 보도했다.

조용히 차량으로 퇴근하던 권명수 부장판사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기 싫었지만, 이 엄청난 광경에 식은땀마저 흘렸다.

구속 영장이 발부될 시점에 몰려온 시민의 숫자는 무려 사천 명이 넘었던 것이었다.

권명수 부장판사는 마침 남수현 변호사에게 걸려온 전화를 고민하다가 받았다.

[판사님, 너무한 것 아닙니까?]

냉랭한 남수현 변호사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당황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판사님은 평생 그 일만 한 것 같습니까. 변호사할 때 과연 현직에 이는 이들이 판사님에게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대답을 포기한 그는 잠시 차량을 멈춘 후에 차창을 내려서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함성 쪽으로 핸드폰을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뉴스 안 보십니까. 아니면 신문에서 확인을 해보세요. 여기 몰려온 시민 숫자가 사천 명이 넘습니다. 더욱이 시민단체도 아니고, 일반 시민이 몰려와서 저러는 겁니다. 제가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수현 변호사는 목소리를 바꾸었다.

[.....제가 확인한 후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후유.’

순순히 물러난 남수현 변호사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관예우도 따지고 보면 조직의 룰을 지키기에 가능하다.

만약 권명수 부장판사가 그 룰을 어기면 설사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남수현 변호사 말처럼 제대로 대우받을 수가 없었다.

‘피해가 좀 적기만을 바라야지.’

그는 아직도 최 전무 구속 구호를 남발하는 시민을 보면서 판사 생활 25년 동안 처음 경험하는 일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

최훈열 전무는 갑자기 변해 버린 분위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찾아온 수사관에 체포되었고, 휠체어에 탄 채로 중앙지검으로 향했다.

그렇게 침착하던 남수현 변호사가 반쯤 공황에 빠져서 이곳저곳에 계속 전화해서 알아보아도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처장님, 제가 딱 이번 한 번만 부탁했지 않습니까. 이미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일인데, 어떻게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장황한 상대방 이야기를 들은 남수현 변호사도 고개를 푹 숙였다.

“최 전무님, 죄송합니다.”

“......”

수갑마저 찬 최훈열 전무는 수사관에 끌려가는 상황이라서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중앙지검 앞 포토라인에 도착했다.

몰려온 기자 숫자는 무려 백 명이 넘었고, 메이저 방송사에서도 빠짐없이 다 나왔다. 자기 앞에는 수십 개의 마이크 뭉치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는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한영일보 범용구 기자는 전쟁 못지않은 정도로 살벌한 취재 경쟁에서 눈치 빠르게 기자 틈 사이를 빠져나와서 질문했다.

[이번 KM 전자 관련 범죄 혐의를 모두 인정하시는 겁니까?]

[......]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범용구 기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차입금을 얻기 위해서 KM 전자 돈을 빼돌려 정·재계 로비에 썼다는 점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

최훈열 전무는 이상할 정도로 분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올라서 범용구 기자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았다.

그때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펑펑 소리를 내면서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범용구 기자는 자신을 따른 동료가 쾌재를 부르는 것을 보자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비록 최후의 만찬 기사는 놓쳤지만, 이번 특종을 제대로 건졌다.

‘대박!’

남수현 변호사가 다급하게 나서서 귀에 속삭였다.

최훈열 전무는 어금니를 부러지도록 깨물면서 입을 열었다.

[......검찰에서 성실하게 조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법정에서 밝히겠습니다.]

기자 중에 한 사람이 빠져나와서 최훈열 전무 얼굴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혹시 판사를 매수할 생각입니까?!]

[이 새......]

욕설을 가까스로 참은 최훈열 전무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다시 째려봤다.

하지만 특종을 노리고 있던 기자들은 이 장면에 쾌재를 부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보다 못한 이재상 비서가 막아서고서야 혼란이 가라앉았다.

[물러나 주십시오!]

***

출근용 차에 탑승한 최민혁은 포토라인에 선 최훈열 전무의 라이브 방송 모습을 보면서 예지몽 속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자신의 모습이나 최훈열 전무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난 그 정도가 아니었군. 이제 겨우 한 걸음 다가선 건가?’

복수하고 나면 허탈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상쾌해서 쾌감마저 느꼈다. 그 충실함을 충분히 맛보기 위해서 눈을 감은 채 음미했다.

운전대를 잡은 김명준 과장이 보다 못해서 슬쩍 한마디 했다.

“이제 최 전무 일도 다 끝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미뤄뒀던 일을 해야죠. 참 KM 전자 주가는 어때요?”

“반등해서 현재 3,100원입니다.”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올랐어요?”

“아무래도 최훈열 전무가 구속되면서 오히려 악재가 해결된 상황입니다. 불확실성이 사라진 덕분에 오히려 주가가 오른 것 같습니다.”

“쯧.”

최민혁은 혀를 차면서 우선 기조실 움직임을 다시 확인했다.

“어수선하기는 한데, 주로 최훈열 전무 재판 과정에 어떻게 해서라도 형량을 낮출 계획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쪽저쪽 아는 지인 통해서 계속 알아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미 구속된 상황에서 재판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건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마침 차량은 KM 전자 본사 앞에 도착했는데, 본사 분위기는 겉으로는 봐서는 첫 출근 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임직원이 최민혁을 보자 보인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특히 회사 경비와 안내를 하던 임직원은 모두 우르르 몰려와 이 열로 늘어선 채 정중하게 최민혁 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출근하다가 그 광경을 본 임직원 역시 놀라기는커녕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사장이 나타났을 때도 보이지 않던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

엄격한 예기마저 보이는 이 아침 행사를 처음 경험하는 최민혁은 눈만 끔뻑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도 최근 최훈열 전무 마무리에 총력을 기울인 터라 회사 내부 변화를 알지 못했다.

최민혁은 살짝 인상을 찡그린 채 이런 행동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경비팀장은 마치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처음 회사에 출근할 때 모습과 지금 모습은 너무 차이가 났다.

‘나 이거야 원.’

생뚱맞은 상황에 최민혁은 결국 이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직원을 돕는 길이라는 것을 느끼자 빠른 걸음으로 실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다른 임직원은 최민혁을 보기가 무섭게 마치 사신이라도 본 것처럼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

‘승전한 장군에 대한 예라고 좋게 생각하자. 우습게 아는 것보다는 기강이 서 있는 것이 차라리 훨씬 났잖아.’

***

갑작스러운 회사 분위기에 의혹을 느낀 최민혁은 결국 그나마 안면이 있는 오혜정 비서를 불러 우선 회사 분위기부터 물었다.

“요즘 회사에 별일 없죠?”

그녀는 다른 임직원과는 달리 오히려 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런가요? 아 기약 없이 연기된 사업부 회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 사장님은 이번 사태 때문에 KM 그룹 본사로 가면서 다시 연기되었습니다.”

KM 전자 본사와 안산 공장 임직원 수십 명이 구속되면서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오영근 사장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관련이 있는 임원은 혹시라도 자신 역시 수사 대상이 될 것을 대비해서 미친놈처럼 뛰었다.

이런 와중에도 KM 전자와 관련된 언론 특종은 하루 단위로 해서 계속 터지면서 회사 업무 자체를 완전중지 시켰다.

특히 이제는 차입금이 진짜 문제가 되어서 연기되거나 아니면 취소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결국 작년에 세운 경영 기획안은 처음부터 새로 짜야 할 상황이다.

최민혁은 대충 자신의 직속 상사(?) 현황을 파악하자 아침에 있었던 일을 넌지시 질문했다.

오혜정 비서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최 전무 라인에 대한 구속 수사에 실장님이 손을 썼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러니 임직원으로서 실장님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실장님이 무서워서 절 귀찮게 하는 사람이 다 사라져서 정말 회사 일이 즐겁습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제가 무슨 음모를 꾸몄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혜정 비서는 천연덕스럽게 반문하는 최민혁 행동에 가까스로 미소를 참았다.

“최훈열 전무에 대한 말이 많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구속될지는 누구도 상상 못했습니다. 결국, 이익을 본 사람은 실장님이 유일했고, 다들 최 실장님이 최 전무를 쳐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감옥에 보낸다는 소문이 돈 겁니까?”

“네!”

그녀도 단순히 그런 소문이 아니라 둘째 큰아버지도 구속해서 매장한 최민혁 실장의 독한 솜씨에 다들 벌벌 떤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는 않았다.

실상 활력이 넘치는 오혜정 비서는 실상 날아갈 것 같았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힌 최훈열 전무가 구속되어서 구치소에 갔기 때문이다.

최민혁도 자신이 한 일을 떠올린 후에야 직원 분위기를 이해했다.

“기획팀 분위기는 어때요?”

“다른 팀에 비해서는 좀 덜하지만 역시 실장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면 조성돈 팀장님을 호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오혜정 비서를 통해서 연락받은 조성돈 기획팀장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나타나서 최민혁 눈치를 봤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만 봐도 최민혁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잘 드러났다.

처음 접하는 조성돈 기획팀장 시선에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갑자기 왜 그런 얼굴을 하십니까?”

“그게 아무래도 이번 최훈열 전무 구속을 뒤에서 손을 쓴 분이 최 실장님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일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 조성돈 기획팀장도 안산 공장에서만 수십 명이 구속되어서 잡혀 들어간 상황을 만든 최민혁에게 부담을 느꼈다.

최민혁은 가능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 채 기획실에서 진행한 일을 대략 확인했다.

“이런 말 해서 그렇지만 최훈열 전무와 그 라인이 모두 구속되면서 공장뿐만 아니라 본사 역시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TV 사업부에서는 기존 부품 업체에 대해서 전면 검토를 통해서 대대적으로 업체를 바꿀 예정입니다. 그 때문에 일본 부품 업체의 압박이나 정부의 가격 인하 정책에도 상당한 이익을 볼 것 같습니다.”

“인원은 어때요?”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닙니다. 대신에 업무 로드가 가중되어서 불만이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은 괜찮다는 말이군요.”

“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 #04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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