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9화 (39/1,021)

< #039 >

목을 뒤로 젖히면서 뻗던 수사관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남수현 변호사는 마치 두 사람을 동향 후배인 것처럼 부드럽게 대했다.

수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

그렇게 당당하던 최해진 검사 역시 허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했다.

그 모습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남수현 변호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오직 박두영 부장검사만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최해진 검사뿐만 아니라 다른 검사를 째려보았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커지면서 대폭 늘어난 수사관, 평검사, 부부장검사 할 것 없이 사단장을 마주한 신병처럼 모두 저자세였다.

훈훈한 분위기에 최훈열 전무도 마침 사람이 바뀐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오만함을 다시 찾았다.

최훈열 전무 조사에 칼을 갈던 수사 검사의 날카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지난 일에 대해서 자신이 진심으로 실수했다는 것처럼 허리를 굽혔다.

맞은편 건물에서 이 모습을 촬영하던 두 사람은 최대한 많이 사진을 찍어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대부분 사진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렇지 않은 사진도 있었다.

“서, 성공했어!”

거리와 초점 때문에 고생하던 우영민이 운 좋게 사진을 찍었다.

고성능 카메라는 분노한 박두영 부장검사, 비열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검사와 수사관, 마치 왕실 경호단장 행세를 하는 남수현 변호사, 마지막으로 왕 노릇을 하는 최훈열 전무를 절묘하게 담았다.

서로의 감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예술 명작은 독특한 인간의 다양한 오욕칠정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초심자의 행운을 건진 것에 혀를 찬 문영식은 자신이 찍은 고만고만한 사진과 비교하면서 툴툴거렸다.

“정말 재주도 좋습니다.”

“그렇지? 카아, 대박이다. 그런데......”

팔짱을 한 채 앉아서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최훈열 전무와 남수현 변호사 눈치를 보면서 머리를 숙인 채 눈치를 보면서 같이 웃는 담당 검사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었다.

“......이거 제대로 수사하는 것 맞아?”

하지만 문영식은 연이어서 찍힌 카메라 화면을 살피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아닙니다. 저도 우리 보스 이야기 듣고 긴가민가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착잡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굳이 이런 지시를 내린 이유도 이제는 알겠습니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계속 살피던 우영민은 이대로 갔다면 불구속 기소에 연이어서 어쩌면 혐의없음이라는 황당한 수사 결론마저 생각했다.

“나도 종범 수십 명이 다 구속되었는데, 설마 주범을 풀어줄까 생각했어. 그런데 만약 종범 한 사람을 주범으로 만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아.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최 실장님 지시대로 이 사진을 언론사에 뿌려야지.”

“설마 이번에도 기자를 직접 만날 겁니까?”

“그런 위험한 짓을 할 수는 없지. 이미 한 번 만나서 모습을 보여주면 된 거야. 이번에는 정해진 장소에 미끼 사진을 던져서 넘기고, 돈 받고 나서 다시 원안을 던지는 것으로 가자.”

“......굳이 돈까지 받아야 합니까?”

“그게 좋아. 우리가 돈을 노리는 파파라치가 되어야 기자들도 의심을 덜 할 테니까. 안 그러면 정말 수상하잖아?”

“......알겠습니다. 저기 이번에는 얼마를 받을 겁니까?”

“1억.”

“좀 많지 않을까요?”

“아니 한영일보라면 3억을 불러도 줄 거야. 하지만 너무 부담을 주지 말자고. 우리도 언론사를 계속 이용하여야 하는데, 욕심을 정도껏 부려야지.”

문영식은 ‘여전히 욕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는 이가 나올 거다.’라고 하자 이 만찬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 적나라한 자기감정을 잘 보여준다.

우영민이 찍은 사람은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최민혁은 미래 모 언론사의 특종을 아이디어로 해서 지시 내렸지만 실제로 확대된 사진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박이네요.”

박두영 부장 검사와 남수현 변호사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 인물의 모습이 마치 베드로, 요한, 유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 걱정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더 심각한 상황을 표현한 사진을 보면서 탄식했다.

“아무리 검찰이 썩었다고 해도 설마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습니다.”

“전관예우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한집안이라도 공사 구분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루 이틀 쌓인 적폐가 아니니까요. 뭐 꼭 검찰 탓을 하기 힘들죠. 검찰 조직의 독립이 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까.”

사진만 보면 전관예우라는 관례에 대항하는 듯한 박두영 부장검사 모습은 마치 정의의 검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 사진은 딱 최민혁 자신이 주문한 사진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주문해서 초정밀 망원 카메라를 동원했다고 해도 이런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네.’

“그런데 실장님이 박두영 부장검사를 상당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동업자로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사진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처음에는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겁니다.”

“그 말씀은......”

“띄우기를 겨냥한 적당한 경고죠. 뭐, 과시욕이 있는 박두영 부장검사라면 좋아할 겁니다.”

“그렇군요. 언론사에는 저녁쯤에 이 사진이 넘어갈 테니, 내일 기사로 나갈 겁니다.”

“아, 그리고 검찰 반대편에 선 시민단체나 검찰의 횡포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쪽에도 흥신소 이용해서 이 사진과 같이 영장 전담 판사가 전관 압력을 받아서 최훈열 전무 구속 영장을 기각할 거라고 해주시고요.”

“......설마 그렇게까지,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을까요?”

“부패한 정치권력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보유한 검찰의 횡포 역시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피해를 본 시민은 이를 갈고 있는데, 구속 영장을 기각시킨다는 말을 들으면 분노가 폭발할 겁니다. 아마 중앙지검이나 법원에 쳐들어가서 시위를 벌이겠죠.”

“......영장 전담 판사에게 압력을 넣을 생각이시군요.”

“아마 시위를 보면, 심적으로 많이 갈등할 겁니다. 아직 법원이 적폐가 완전히 망가진 정도는 아니니, 바른 판단을 내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명준 과장은 잠깐 이 사태를 꾸민 최민혁에게 지금까지 일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또 신문 타령할 것 같아서 질문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신문에 보면 이런 사건을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일까?’

***

최훈열 전무 사건에 구속 숫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수사 인력도 늘어났다.

박두영 부장검사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최훈열 전무 1차 소환 조사 후에 여유를 좀 얻어서 시킨 설렁탕을 아낌없이 다 먹었다.

다른 수사관이나 검사 역시 이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서 한결 여유를 가졌다.

그런데 김종도 차장검사가 기묘한 표정을 한 채 나타났다.

정신없이 일하던 이들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김종도 차장검사를 눈치를 보다가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자 슬그머니 하나둘씩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자기 맞은 편 자리에 와서 떡 앉은 김종도 차장검사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오늘 신문 하나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있지. 그렇지 않고야 내가 여기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잖아.”

여전히 남아 있던 검사와 수사관은 잔뜩 굳어 있는 김종도 차장검사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자 우르르 사무실을 다 빠져나갔다.

텅텅 빈 사무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눈만 껌뻑껌뻑하다가 자기 책상 앞에 놓인 신문 일면을 봤다. 한영일보 일면의 1/4을 차지한 큰 사진과 그 밑에는 이 사진에 관해서 설명하는 기사가 가득했다.

“!”

하지만 그는 그 사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인물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최 실장 짓은 아니겠지?’

분노할 것이라는 김종도 차장검사는 뜻밖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 역시 끊었던 담배를 베어 문 채 나직이 탄식했다.

“박 부장검사, 자네 이제 완전히 찍혔어.”

“......”

‘사법부의 전관 적폐에 반발하는 정의의 검사라니. 이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이상하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이 사진만 봐도 검찰에 좋을 것이 없는데, 김 차장검사님은 괜찮다는 말입니까?”

이 기사 때문에 검찰에 대한 여론은 수직으로 떨어졌고, 심지어 아침부터 이 신문 기사에 대한 항의 전화가 연이어졌다.

“어, 난 괜찮아. 그거 알아? 나 지검장에게 칭찬을 들었다니까.”

“네?”

착잡한 김종도 차장검사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생각을 해봐. 내 지시가 없고서야 이번 사건을 담당한 부부장검사까지 저렇게 저자세일 수가 없잖아. 그러니 겉으로는 꼴통 흉내를 내면서 알게 모르게 검찰 규칙을 잘 따른다는 거야. 이게 믿어져?”

“그 말씀은......”

“어, 반대로 말해서는 자네는 겉으로는 돈만 아는 검사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법을 지키기 위한 사람이라고 보더라.”

“하아.”

참담한 박두영 부장검사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 몰랐던 거야?”

“알 리가 있습니까. 그리고 남수현 변호사의 지나친 월권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최 전무 수사하고는 무관했습니다.”

그랬다.

사진에는 정확한 내막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단편적인 한 일면만이 나왔을 뿐이다.

김종도 차장검사도 괴상한 표정으로 박두영 부장검사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일단 검찰에 대한 여론이 너무 나빠. 그러니 이번 사건은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정의의 검사인 자네가 총대를 메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야 할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권명수 부장판사가 최훈열 전무 영장 기각시킨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사실 소송 사기 문제 때문에 남수현 변호사에게 압박받던 김종도 차장검사는 자신이 원한 대로 풀려가는 것에 오히려 만족했다.

“하긴. 이 난리에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겠지.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허 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어. 자네가 정의의 검사고, 난 부패한 차장검사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박두영 부장검사는 분명히 최민혁 실장 솜씨라는 것을 느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김종도 차장감사가 사라지고 난 후에 물끄러미 신문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 1/4 가까이 차지한 박두영 부장검사의 고뇌와 번민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었다.

‘......정의의 검사라니.’

내심 툴툴거렸지만,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멋지게 나왔네.’

***

한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판사 4명 중의 한 명인 권명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요즘 들어서 계속 이곳저곳에서 오는 연락 때문에 한동안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법원 앞이 시끄러워서 법원 안으로 들어와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뒤늦게야 법원 사무원 정재순이 내놓은 신문 기사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KM 전자 최훈열 전무 사건을 담당하는 전 동부지검장 남수현 변호사와 담당 검사의 오붓한 관계는 무엇을 의미할까?]

기사 내용은 최훈열 전무가 받고 있는 최근 불법 은행 대출, 횡령, 분식 회계 등과 같은 범죄혐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구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종범은 이미 범죄 혐의 입증이 되었음에도 담당 수사관이나 검사는 주범 최훈열 전무 변호사에게 마치 직장 상사인 것처럼 행동했다. 과연 이 수사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토로했다.

[아니 과연 이번 사건의 권명수 영장 전담 판사가 주범인 최훈열 전무에 대해서 제대로 구속 영장을 발부할까? 외압을 받아서 결국 영장을 기각시키지 않을까? 그렇다면 수십 명의 종범은 구속되고, 그들에게 지시한 종범은 불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판사의 고유 직무인 재판에 대해서 언론이 직접 비판하고 있었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분노로 방방 날뛰는 권명수 판사 행동에도 9급 법원직 사무원 정재순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밖을 내다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괜한 소리 하지 말라고 타박했다가 정재순의 강한 주장에 사무실을 나와서 맞은 편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삼백여 명의 시민이 몰려와서 시위를 벌였다. 특이하게도 전문적인 시위꾼이 아니라 아기를 업은 주부, 자영업하는 사장, 심지어 앳대 보이는 대학생이 나와서 구호를 외쳤다.

[최 전무!]

[구속!]

아무리 봐도 일반인으로 보이는 터라 서로 합이 맞지 않아서 시위는 서투르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법원에 대한 분노는 가볍지가 않았다.

딱 보는 것만으로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권명수 부장판사는 조용히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서 고민에 빠졌다.

< #03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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