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7화 (37/1,021)

< #037 >

예지몽에도 KM 전자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도 저런 범죄행위는 드러나지 않았다.

‘역시 장 실장의 솜씨일까. 하,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광범위한 범죄를 막았을까. 실력 한 번 진짜로 끝내준다. 하긴 오성전자 기획실에서 본부장으로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은 양반이었으니.’

최민혁은 호기심 때문에 박두영 부장검사를 잠깐 다시 만나 보았다.

“제가 묻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KM 전자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최훈열 전무는 정말 경영자가 맞습니까. 그 사람이 한 거라고는 전부 다 불법뿐이었습니다!”

그 역시 툭 하고 건드리기만 했는데, 범죄 행위가 와르르 쏟아지자 크게 당황했다.

사건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예상을 벗어난 구속 영장 발부 때문에 중앙지검 내에서도 말이 나왔던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론이 너무 나빠져서 이제는 박두영 부장검사가 멈추고 싶다고 해서 그만둘 상황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결국 한 걸음 물러났다.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쩔 수가 없죠.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죠.”

“설마 또 다른 계획은 있는 겁니까? 미리 저에게 말을 해주셔야 합니다.”

“......있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도 움찔했지만, 아직 진행되는 일을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본인에게 이득일 테니까.’

박두영 부장검사는 결국 여죄를 악착같이 더 파헤칠 수밖에 없었고, 횡령 규모는 수사 인력이 보강되면서 계속해서 불어났다.

***

김명준 과장도 이제 뉴스를 털면 나오는 ‘KM 전자 차입금 게이트’뉴스를 보면서 눈치를 봤다.

“......사전에 알고 계셨습니까?”

“솔직히 본사 분위기도 아직 긴가민가한데, 공장 사정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사태는......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좋게 생각하세요. 이제까지 틈새시장을 꽉 쥐고 있어서 안정된 상황이 유지되었고, 고인물이 썩듯이 썩어간 것뿐입니다. 그게 수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다 드러난 겁니다.”

그랬다.

KM 전자는 결코 부실한 회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알짜배기 회사다. 다만 제한된 매출 시장 덕분에 직원이 열심히 일하던, 적당히 하던 매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직원은 결국 타성에 젖어 갔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제한된 파이에 대한 갈등이 커져가면서 부실이 커졌다.

최용욱 회장은 누구보다 KM 전자 뿐만 아니라 비슷한 성향의 KM 그룹의 한계를 잘 알았기에 막대한 차입금을 이용해서 회사 체질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KM 그룹에 안주한 덕분에 새로운 사업도 쉽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 도박이겠지.’

그런데 신규 사업은 새로운 시장과 강력한 경쟁자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게 기존 사업처럼 순탄하게 될 리가 없다.

기획한 성장 동력 엔진이 실패한다면 그 여파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

최민혁도 예지몽과는 달리 KM 전자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고, 앞으로 계획을 좀 더 면밀하게 보강했다.

그리고 이 사태 탓에 KM 그룹 주가는 크게 흔들렸다.

다만 KM 그룹 주가는 폭락 이전 주가에서 -4% 정도 하락하는 선에서 그쳤고, KM 산업은 오히려 반등을 거듭해서 전고점을 넘어섰다.

심지어 대대적인 압수 수색 때문에 기업 신뢰성 악화로 차입금이 힘들 것이라는 호재(?)가 터지자 오히려 주가가 더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KM 전자는 예외였다. 협력 업체와의 불법이 알려지면서 숨겨진 부실이 더 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3,300원에서 잠깐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3,100원까지 추락하더니, 줄줄 흘러내려서 2,900원을 한 번 찍고 나서 3,000원 초반에 안착했다.

최민혁으로서는 썩 내키지 않은 주가 횡보였다.

“3,000원 밑으로는 안 떨어지네.”

내막을 잘 모르는 김명준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식 동호회 사람들도 KM 전자 오디오 사업부가 얼마나 탄탄하고, TV 사업부 역시 꾸준한 매출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팔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매수하려는 사람도 많은데, 워낙에 팔려고 하는 이들이 없어서 거래가 안 되고 있습니다.”

주가 매수자는 3,000원에서 살려고 하고 있고, 팔려는 사람은 3,500원, 3,700원, 심지어 4,000원 이후에 매물벽이 두텁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KM 전자가 얼마나 탄탄한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수백 억을 빼돌렸는데, 그래도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것이 KM 전자의 저력이었다.

‘우리 사채업자 대주주가 지분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텐데, 일단 최 전무 구속 이후까지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어. 정 안되면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고.’

***

압수 수색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급한 대로 소환 일정을 뒤로 미룬 채 자신의 인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구하던 최훈열 전무도 분노했다.

“김 의원 이 개새끼는 그렇게 받아 처먹고 나서 이제 모른 척하겠다는 거야?!”

비자금을 받았던 이들도 나름 미안하다고 의사 표현을 했었다.

“최 전무, 자네에게 받은 것이 있어서 나도 중앙지검에 알아봤어. 처음에는 힘써 주겠다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 사정은 또 달라. 자네도 안산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않나?”

안다.

최훈열 전무는 황당하게도 뉴스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전광석화 같은 중앙지검 태도와 검찰 소환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기 위해서 안산 공장에 소홀한 것 때문에 안산 공장과 연락조차 못 했다.

정확히는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계획까지 고려해서 아예 의도적으로 연락을 받지 않았다.

뒤늦게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본사뿐만 아니라 안산 공장 관련자가 모두 구속되자 패닉에 빠져 버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더욱이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박두영 부장검사가 이때 박경진 재무팀장이 자수한 사실을 이용해서 은근히 조상도 연구소장을 압박했다.

그는 최훈열 전무가 조상도 연구소장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것이라는 증거로 설득했다.

결국 자칫하면 독박 쓸 수 있다고 위기감을 느낀 조상도 연구소장이 안산 공장에서 일어난 일을 다 자백해버렸다.

한영일보는 아예 연예나 생활 쪽을 담당하는 기자까지 다 투입해서 이 사건을 심층 취재했고, 관련 기사를 하루 단위로 내보냈다.

날이 지날수록 대규모 구속 사태는 많은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이 기사를 본 시민도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한 채 맹비난했다.

무리한 수사임이 분명함에도 여론은 오히려 검찰에 손을 들어주었다.

최훈열 전무는 심상치 않은 사태에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술에 의존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장승일 실장이 최훈열 전무를 찾아와서 이 광경을 보면서 탄식했다.

‘설마 이제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최훈열 전무는 툴툴거렸다.

“어? 장 실장이 웬일이......”

구길모 과장과 같이 전무실을 찾은 장승일 실장은 힐끗 당황한 이재상 비서에게 손짓해서 밖으로 내보낸 후에 아직도 술에 취한 최훈열 전무에게 다가가서 냉수를 내밀었다.

“우선 이거 먹고 정신 좀 차리시죠.”

“아앙, 우리 장 실장이잖아. 내가 미안했어. 내가 사과할게. 그냥 요즘 너무 많이 힘들어. 이제는 회사 일도 다 싫어!”

장승일 실장은 정신적인 고통을 잊기 위해서 술병을 찾는 최훈열 전무를 말렸다.

“제가 왜 왔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너무 늦었어. 이젠 솔직히 지긋지긋해. 난 그냥 감옥 갈래.”

자포자기한 최훈열 전무는 더는 이번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나름 어떻게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이번 사건에 집중한 박두영 부장검사의 벽조차 넘지 못했다.

수십 명의 체포가 연이어지면서 언론의 마녀 사냥을 당해본 최훈열 전무는 완전히 무너졌고, 한국 검찰 역사에도 보기 드문 수십 명의 구속 사태에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안 그래도 멘탈이 약한 최훈열 전무는 그때부터 폐인이 되었다.

장승일 실장은 오히려 시간을 좀 더 주면, 스스로 어떻게 극복하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정신이 약하다니.’

그는 이미 사건의 원점부터 따졌다.

“도대체 은행 일은 왜 그렇게 처리한 겁니까?”

이제는 지쳐서 말하기조차 괴로운 최훈열 전무는 묻는 말에 순순히 다 대답해주었다.

“나야 대부분은 지시받고 한 일이야.”

“하지만 금액이 무려 200억이라고 들었습니다.”

액수(?)를 듣자 몸을 움찔 떨던 최훈열 전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당장에라도 수사관이 닥칠 것을 염려해서 허둥지둥 전무실 이곳저곳을 쳐다보면서 정신병자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승일 실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탄식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손가락을 떨면서 담배를 피웠고,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다.

“자꾸 그러지 마. 지금 와서 말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억울해. 그 돈도 따지고 보면 최종 지시권자는 아버지잖아. 왜 나에게만 자꾸 그러는 거지?”

계열사별로 할당한 금액은 고작 30억 안팎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훈열 전무는 그 수십 배를 횡령한 것이었다.

“금액이 너무 크다고 말하는 겁니다!”

“......”

이제 좀 정신이 돌아온 그도 무안해서 슬쩍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장승일 실장도 눈치가 빨라서 눈빛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연구소 자금이나 협력 업체 돈은 왜 그렇게 많이 횡령하신 겁니까. 그리고 조 소장 이용해서 멀쩡하게 일하는 연구원을 왜 또 갈등을 부추겨서 다 쫓아낸 겁니까?”

“......”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최훈열 전무라도 더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수사 중인 내용을 아는 것이 신기했다.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설마 전무님은 감사실 통해서 내부 고발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알고 있었던 거구나. 그러면 왜 그때는 견제하지 않았던 거야?”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전무님이 전혀 듣지 않았지 않습니까?”

최훈열 전무는 버럭 소리쳤다.

“그러면 멱살이라도 잡고 하지 말라고 했어야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미안하네.”

최훈열 전무는 이제까지 자신의 옆에서 참된 충고를 한 유일한 사람이 장승일 실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기회가 있을까?’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떠올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에 검찰에서 이 사실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겠지. 당연하잖아.”

지금 진행되는 수십 명의 구속수사는 모두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 최훈열 전무는 몸을 가볍게 떨었다.

“비자금은 윗선에서 어떻게 무마한다고 해도 회사 횡령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더욱이 회계 장부도 조작했을 것 아닙니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질문해도 대답은 안 해주시겠죠?”

안색이 핼쑥해진 최훈열 전무는 뒤늦게야 장승일 실장 눈치를 보았다.

“......말할 수가 없잖아.”

장승일 실장도 착잡한 표정으로 최훈열 전무를 쳐다보았다.

그는 회장의 지시를 받는 기조실 실장으로 비록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힌 후계자인 최훈열 전무를 지켜야 했는데, 그렇다고 범죄를 덮어서 공범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장승일 실장에게 놓인 패러독스였다.

“묻지 않겠습니다.”

“고, 고맙네.”

그는 새삼 대답하면서도 장승일 실장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화를 잘 생각해보면 장승일 실장은 이미 회사 내부 횡령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조사하지 않았을까?’

착잡한 장승일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KM 그룹 기획 조정실을 책임진 책임자입니다. 회장님의 뜻을 따라서 그룹 내부 일을 조율합니다. 무조건 투서가 들어왔다가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 그렇지. 맞아. 그래야지.”

“......혹시 아버지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셔?”

“네.”

“......그랬구나.”

최훈열 전무는 왜 유독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뒤늦게야 알았다.

그는 새삼 놀란 시선으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면서 뒤늦게 가능성을 찾았다.

“혹시 장 실장이 날 구해줄 거지?”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아직 술기운이 남은 최훈열 전무는 장승일 실장이 어쩌면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의 두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장 실장, 제발 날 좀 구해주게!”

그는 차가운 최민혁 눈빛을 떠올리면서 자신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제는 오성 전자보다 최민혁 실장이 더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지 않아. 박두영 부장검사 그 새끼가 이번 일에 관여한 안산 공장 직원을 모두 다 구속해서 잡아갔어. 아무리 검찰이라도 그럴 수는 없잖아!”

“그랬습니까.”

희미한 가능성을 발견한 취훈열 전무는 결국 장승일 실장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장 실장,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주게. 나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자네 말은 무슨 일이라도 듣겠어. 장 실장, 응, 제발 부탁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방법이 있지. 정말 고마워. 역시 장 실장밖에 없어!”

< #0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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