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화 (36/1,021)

< #036 >

박두영 부장검사는 바쁜 걸음으로 몽촌토성을 벗어나는 최민혁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왜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일까?’

***

박두영 부장검사 역시 처음과는 달리 사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인지한 터라 중앙지검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일단 구속 영장 명단을 추려서 죄질이 나쁜 이들부터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근 부쩍 이 사건으로 연락하는 사람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권명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별히 신경 쓸 인물이 없자 그 즉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중앙지검 수사관 일부는 1차로 권종현 서울은행 역삼 지점장을 비롯한 관련자 5명을 모두 현장에서 구속했다.

이미 수사관이 알린 소식 듣고 나타난 기자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특히 한영일보는 무려 네 사람이나 보내서 사건을 취재했다.

그저 은행 범죄 행위 기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사관은 2차로 KM 전자 안산 공장에 내려가서 점심 먹고 나오는 신연식 과장을 증거 인멸의 위험성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그 자리에서 쇠고랑을 채웠다.

“!”

기자의 카메라가 마치 스토커처럼 그의 얼굴을 찍어댔다.

그래도 최훈열 전무에게서 전화를 받고 안도하고 있던 신연식 과장은 상상도 못한 일로 패닉에 빠져서 기절해버렸다.

우르르 몰려온 기자와 수사관 모습에 놀라서 그 모습을 발견한 안선종 팀장조차 경악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압수 수색이 있었던 후라 검찰 수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놓고 몰려와서 체포할 줄은 그도 예상 못 했다.

출장 나가서 뒤늦게 압수 수색을 들은 대형 TV 개발 1팀 팀장 남건식은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수사관에게 체포되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출장이 무슨 도주의 우려 사유가 됩니까?!”

이미 은행 계좌를 확인한 수사관은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남건식 당신이 국외 법인 쪽으로 자금을 빼돌린 차명계좌와 관련된 증거를 이미 확보했습니다.”

“!”

깜짝 놀란 남건식 팀장도 당황해서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기자도 이번에는 깜짝 놀랐고, 우르르 벌떼같이 몰려가서 남건식 팀장을 찍었다.

수사관도 대놓고 촬영하는 기자에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위에서 받은 지시가 있어서 참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중앙지검 가서 이야기하시죠. 물론 이미 언급한 것처럼 변호사는 지금 선임하셔도 됩니다.”

“후유, 알겠습니다.”

남건식 팀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기자는 몸을 숙여서 당황한 그의 뻔뻔한 얼굴을 마구잡이로 찍어댔다.

이 기사는 다음 날 기사로 나갔고, 뒤늦게 시민도 관심을 뒀다.

“KM 전자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

두 사람이 체포된 후에 일단 사건은 정리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수사관은 3차로 안산 공장에 있는 직원 중에 두 사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14명의 직원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체포했다.

이들이 체포된 모습은 언론을 통해서 즉시 뿌려지기 시작했다.

이 기사를 본 시민은 그제야 인상을 구긴 채 KM 전자 안산 공장 사태를 주시했다.

메이저 방송에서도 관심을 뒀고, 이 사태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안산 공장 직원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KM 전자 주가는 다시 3,700원까지 추락하자 회사가 당장에라도 파산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안선종 팀장은 최민혁이 방문한 이후에 그가 한 말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최민혁 실장의 움직임은 없었다.

본사에서도 특별하게 눈에 뜨이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압수수색이 마치 요식행위인 것처럼 전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부드럽지만 우유부단한 김창호 부장은 불안했다.

“이거 최 실장님이 그냥 말만 한 것 아닐까요. 조 소장이 복귀해서 벼루고 있던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아예 대놓고 사표를 받을 생각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이 무거운 안선종 팀장은 뒤늦게 후회했다.

“기다려 봐야죠. 저 때문에 괜히 김 부장님만 마음고생 하십니다.”

그래도 고집이 있는 김창호 부장은 피식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정 안되면 그만두고 오성 전자 알아보면 그만입니다.”

“하긴.”

안선종 팀장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일단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1차로 압수수색이 시작할 때만 해도 은행과 관련이 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 KM 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차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드디어 시작되나 싶었다.

하지만 3차로 열여섯 명의 직원을 모두 체포하자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4차로 해외 출장 나갔다가 때마침 돌아왔던 조상도 연구소장이 도주 우려와 증건 인멸 때문에 체포되었다.

“!”

안선종 팀장은 그제야 얼마 전에 무덤덤하게 말한 최민혁 실장 모습을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상돈 연구소장과 최훈열 전무에 대해서는 앞으로 신경 안 쓰셔도 될 겁니다. 아마 이 안산 공장에 내려와서 여러분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최민혁은 딱히 심각한 분위기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보통 업무 미팅하듯이 간단하게 말했는데, 결과는 안산 공장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김창호 부장도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설마 최 실장님 솜씨입니까?”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맙소사 고작 그 약속 말하는 겁니까?”

“네.”

그는 아직 최훈열 전무가 남았지만 그다음 순서라는 것을 느끼자 새삼 최민혁 차장의 모습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나이를 떠나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김창호 부장을 비롯한 소형 TV팀 역시 다들 최민혁 실장에게 진심으로 감동했다.

요즘 기운을 차린 최구만 과장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최 실장님이 파워가 있다고 해도 중앙지검에 직접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까?”

안선종 팀장도 심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그렇겠지. 그게 상식적인데, 뭐 실장님의 행보를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잖아. 그렇게라도 이해를 해야지.”

“그런데 죄가 조금만 있어도 모조리 다 구속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알아보니, 불구속 기소 받아도 충분한 사람이 있었어요.”

“좀 심하지. 아니 많이 심한가.”

아니나 다를까 연이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거부감을 느낀 한 근로자가 쇠고랑을 채운 채 끌고 가는 조상도 연구소장을 보다 못 해서 검찰 수사관에게 항의했다.

“이거 너무 합니다. 어떻게 보이는 족족 다 수갑 채워서 잡아가는 것은 검찰의 강압 수사 아닙니까.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인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미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주의를 들은 김대영 수사관은 순순히 압수수색 결과를 털어놓았다.

“이들은 대림전자와 같은 협력 업체 통해서 부품 대금 부풀기를 진행했고, 회사 자금을 횡령했습니다. 그 금액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모두 250억이 넘습니다.”

“네?!”

질문한 이도, 옆에서 불안해하던 이도 다들 입을 딱 벌렸다.

김대영 수사관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다.

“그 250억은 어떻게 보면 KM 전자의 공금입니다. 그 공금을 모두 20개 협력 업체와 짜고 다 빼돌려서 착복한 겁니다.”

“그, 그러면 이제까지 회사 적자 난 것도 모두 조 소장 때문이란 말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셔야 할 것은 워낙에 사건 규모가 커서 조사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하 250억이 넘는 횡령액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했습니다.”

“맙소사.”

충격을 받은 안산 공장 근로자는 그제야 차가운 눈으로 조상도 연구소장을 쳐다보았다.

그때 나선 사람이 붉게 상기된 얼굴의 최구만 과장이었다.

“설마 조 소장 당신이 그 부품 대금을 착복하기 위해서 내가 최병연 팀장님이랑 갈등하도록 이간질까지 시킨 거야?”

정확히는 팀 내의 갈등을 부추겼다. 분란이 생기면 그것을 명분으로 최병연 팀장을 쳐낼 수가 있었다.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는 최구만 과장은 조상도 연구소장에 속았던 것이다.

두 사람이 비록 화해하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

조상도 연구소장은 말하지 않았다.

뒤늦게야 연구소 내부의 갈등 고리가 되었던 일이 모두 KM 전자 안산 공장을 마음대로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최구만은 절규했다.

“어떻게, 어떻게 조 소장, 당신이 사람 새끼이기는 한 거야?!!!”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갔다. 실제로 조 소장에게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다들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몰렸다.

조상도 연구소장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대영 수사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사관님, 이대로 계속 있을 겁니다.”

“아, 이런.”

김대영 수사관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흥분한 안산 공장 근로자를 설득했다. 다행히 그의 말은 잘 먹혀들어갔다.

하지만 분노한 안산 공장 근로자의 욕설과 막말을 막지는 못했다.

[이 개만도 못한 쓰레기야!]

생각도 못 한 사태에 승냥이처럼 먹이를 노리던 기자들은 자신의 카메라로 이 사태를 찍었다.

이 뉴스를 지켜본 많은 시민은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무슨 놈의 회사가 완전히 콩가루잖아!]

이 뉴스 때문에 반등한 다른 KM 계열사와 달리 KM 전자 주가는 3,500원 밑으로 하락했고, 결국 3,400원까지 하락폭을 이어갔다.

***

조상도 연구소장 구속이 되면서 어느 정도 수사가 끝이 나나 싶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 결국 제보를 한 사람도 나왔다.

그 대상은 정홍순 공장장이었다. 그는 사태가 심각하자 납작 몸을 낮춘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화살을 피해 가나 싶었다.

그런데 그는 최훈열 전무 라인과는 달리 거래대금을 차명 계좌로 만들어 빼돌렸다. 이 비자금은 뜻밖에도 각종 인허가 관련해서 지역 공무원과 경찰에게도 전달되었다.

몇 년에 걸친 비자금 규모가 무려 100억이 넘었다.

심지어 공장 직원 채용에도 관여해서 모두 10억이 넘는 뇌물을 받아 챙겼다.

여기에 연루된 이들은 정홍순 공장장 라인으로 꼽히는 10여 명이었다.

최훈열 전무가 안산 공장을 쥐고 흔드는 틈을 파고들어서 틈새 공금을 횡령한 셈이다.

이 사건은 지역 뉴스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KM 안산 공장의 명성을 전국에 떨쳤다.

KM 전자 주가는 3,200원까지 추락했다가 가까스로 3,300원으로 반등했다.

안산 공장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런데 잔치 분위기인 소형 TV팀은 주가 폭락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작은 파티를 벌였다.

“우리 실장님, 진짜 최고야!”

“설마 중앙지검 수사관을 보내서 죄다 쓸어버리다니!”

그들은 숨겨놓은 술병으로 술잔마저 돌리면서 이 순간을 즐겼다. 3년 동안 지독하게 당했던 일이 새삼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 그 앙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안선종 팀장은 시원하게 외쳤다.

“자, 이제 일해야지!”

“네, 부장님!”

비록 TV 사업부 연구소가 풍비박산이 났지만 남아 있는 연구원 대부분은 자기 맡은 소임을 다 하는 이들이었다.

오히려 방해만 하던 이들이 빠져나갔으니, 연구소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다.

“이게 잘 된 건가?”

침울하던 공장 분위기 역시 비슷했다. 혹시라도 또 잡혀가는 사람이 있어서 걱정하는 이들도 막상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오히려 일을 방해하거나 분란을 일으켰던 이들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잡혀간 이들 덕분에 일의 양은 많았지만, 업무 효율이 높아진 덕분에 딱히 힘들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최민혁 실장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우리 최 실장님, 진짜 대단해!’

***

KM 전자 안산 공장 구속 사태에 대해서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 숫자가 16명을 넘기자 시민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가 추가로 10명이 더 구속된 후에는 혀를 내둘렀다.

[무슨 놈의 공장이 범죄자만 있는 건가?]

구속 수사는 여기까지 아닐까 기대한 시민의 예상과는 달리 수사의 불길은 이번에 대림전자를 비롯한 모두 20개의 협력업체로 이어졌다.

이들은 거래대금 부풀리기 통해서 비자금을 조성도 했지만, 사문서를 조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손실 처리해서 분식회계까지 저질렀다.

구속은 불가피했다.

다시 이들 업체 직원 구속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여론은 다시 더 나빠졌다.

이 구속 사태는 하루 단위로 해서 계속 뉴스에 보도 나갔고, 어지간하면 한 번 보면 넘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마저 나왔다.

그리고 한영일보는 딱 적절한 시기에 이 구속 사태와 지난 X 보고서 사태를 서로 같이 엮어서 한부철강을 뺀 기사를 내보냈다.

[KM 그룹의 천문학적인 차입금 진행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은행 불법 대출과 협력 업체와의 거래대금 부풀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딱히 비자금이라는 말이 언급되지는 않았고,  정·재계 로비로 사용되었다는 말은 표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백억이 넘는 돈이 사라졌는데, 그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의심은 점점 커졌다.

[이거 설마 불법적인 차입금 로비를 위해서 KM 그룹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것 아냐?]

KM 그룹 차입금에 대한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최민혁도 이 사태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도 최훈열 라인은 예상했지만 정홍순 공장장 라인은 미처 몰랐다.

그 방법 역시 공장 인원 채용에 손을 써서 최훈열 전무보다 회사에는 더 큰 타격을 주었다.

‘......황당하네.’

< #03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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