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화 (8/1,021)

< #008 >

최민혁이 사전에 선수 쳤다.

“이명운 의원이 이번 총선을 준비하는데, 총알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란 거 다른 쪽 통해서 들었습니다. 전 그쪽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박 부장검사님 문제를 해결할 겸해서 나선 것뿐입니다.”

“끙.”

앓는 소리를 한 박두영 부장검사는 눈만 껌뻑거렸다. 이명운 의원이 특별히 부탁한 작전 세력의 투자관리자는 이명운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자신과는 대학 동기였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결국 서울 남부지검 증권 수사팀 박상희 부부장검사에게 부탁해서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기는 했지만, 앙금이 많이 남았다.

‘설마 남부지검에도 선이 있다는 말인가?’

그로서는 황당한 일이다. 애초에 KM 그룹에서 부탁받은 일 때문에 이미 최민혁을 조사했다. 운 좋게 선친 유산을 상속받은 말 뿐인 재벌 3세에 불과했었다.

최민혁은 상대 표정이 진지해진 것을 보자 부드럽게 웃었다.

“아마 그 후배분이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 마음이 많이 상해있을 겁니다. 그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겁니다. 그래서 괜찮은 소식도 하나 전해드립니다.”

그는 옆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당황한 김명운 과장이 조사한 이성종합건설 주가 조작에 대한 증거 서류를 꺼내서 그에게 슬그머니 내밀었다.

“아마 이 작전세력에 대한 것이라면 그분도 만족할 겁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님 역시 마찬가지고, 저도 유대 관계를 느낄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음.”

박두영 부장검사는 주가 조작 세력의 증거를 확인하자 침음성을 터트렸다. 그는 도대체 최민혁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정보 능력에 경계를 흩트리지 않았지만 뒤늦게야 KM 그룹 상속자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썩어도 준치란 건가?’

마약 사건은 후환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민혁은 마치 그의 고심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지난 일은 몰라서 일어난 일입니다. 앞으로 관계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박두영 부장검사 표정은 뒤죽박죽일 정도로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이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최민혁은 이 만남에 꽤 만족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영문을 몰라서 계속 자리에 있다가 결국 금덩이를 챙겨서 일어났다. 그는 앞으로 최민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KM 내부 그룹 후계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걸까? 젠장맞을 괜한 일을 했어. 그래도 상희가 이 자료를 꽤 좋아할 것 같아.’

***

서울 남부지검 수사팀은 최근 주가 조작 세력을 정리해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한 놈을 놓아준 일 때문에 심란한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그다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또 다시 박두영 부장검사 연락을 받자 바쁘다고 핑계 댔다.

그런데 직접 찾아온 그가 내놓은 이성종합건설 주가 조작 세력에 대한 증거를 보자 눈빛을 반짝였다.

“선배, 이게 뭐야?”

“지난 일이 마음에 걸리더라. 그래서 그 보답으로 가져왔다.”

“허, 설마 그쪽에서도 작전주 관련 수사를 하는 거야?”

“그럴 리가. 그냥 내가 아는 라인 통해서 얻은 정보일 뿐이다.”

그런 것치고는 증거는 구체적이고, 주가 조작 세력의 움직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모여서 회의한 녹취록까지 있었다.

김명준 과장이 보안팀을 동원해서 몰래 모아온 자료이지만 알 리가 없는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남부지검 건물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박두영 부장검사 얼굴만 쳐다보았다.

“선배, 미안해. 이런 자료를 여기서 그냥 받다니.”

“그러면 지난 일은 잊는 거다?”

평소에는 차가운 얼굴을 해서 다가가기 힘든 박두영 부장검사가 다시 한 번 자기 눈치를 보자 박상희 부부장검사도 쓰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지난 부탁은 이제 잊었으니까.”

“고맙다.”

하지만 박두영 부장검사는 평소와는 많이 다른 후배 얼굴을 보고서야 이번 증권 조작 브로커 수사에 압력 넣을 것을 상대가 신경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말이 사실이었구나.’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믿을만한 후배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견디는 타입이었다.

계속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외압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그때는 박상희 부부장검사가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의지가 되기는커녕 혹시라도 내사가 들어갈 때는 오히려 뒤통수를 칠 소지가 다분해 보였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살짝 흥분해서 자료를 살피는 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매듭지었다.

“이명운 의원 부탁받아서 한 일이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 총선 당선은 확실하고, 앞으로도 계속 커갈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빚을 지웠다고 생각해줬으면 해.”

그는 받은 서류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거면 충분해. 그리고 난 정치 쪽하고 엮이고 싶지 않아. 대신 선배가 그 일을 해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자식. 내가 쏠 테니, 목요일 저녁에 식사나 같이 하자.”

“어.”

그도 교묘한 박상희 부부장검사의 말에 혀를 내두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불쑥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최민혁이라고 알아?”

“뭐하는 사람이야? 설마 이번 주가 조작 사범 중의 하나야?”

“아니다. 아, 지금은 사고로 죽은 KM 그룹 막내의 서자야. 혹시라도 만날 일이 있으면 나에게도 연락 해.”

“그게 뭐 어렵겠어.”

‘역시 모르는구나. 최민혁 그놈은 누굴 통해서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앞으로 최민혁 그놈은 조심해야겠어.’

***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다시 증권 수사팀 인력을 최대한 모아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곧바로 이성종합건설에 대한 내사와 동시에 수사를 진행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르안 사무총장이 뇌물혐의로 구속되어버렸다.

라오스 건설 수주가 백지화 기사가 뜨기가 무섭게 이성종합건설은 하한가를 찍으면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서울 남부지검 수사팀은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주가 조작세력을 수사했는데, 이들 중에는 김기범과 최민수도 포함되었다.

두 사람이 각각 투자한 금액이 모두 90억과 60억으로 무시할 금액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들과 같이 움직인 금액이 다른 종목을 포함해서 모두 250억에 가까웠다.

박상희 부부장검사팀은 이 두 사람이 포함된 재벌 3세는 모두 주가 조작 세력으로 간주해서 대대적으로 압수 수색을 했다.

이 사실을 그제야 안 김기범 패거리는 자기 부모의 도움을 얻어서 수사를 피하려고 했지만 지난 마약 사건처럼 덮어버리기에는 자금 규모가 너무 커서 그럴 수가 없었다.

뒤늦게 찬물을 뒤집어쓴 KM 그룹에서도 법무팀까지 꾸려서 남부지검을 제 집안처럼 방문했지만, 이번만큼은 김기범 패거리가 수사를 피하고자 오히려 배후에서 압력을 넣었다.

결국 희생양이 된 사람은 이번 주식 매입에 행동 대장 역할을 한 최민수였다. 그는 주가 조작 혐의로 결국 구속되어버렸다.

최훈열은 결국 최용욱 회장의 연락을 받자 본가로 향했다.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은 힐끗 서재로 들어서는 최훈열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법무팀장 이야기로는 상장사를 상대로 고의로 시세를 조작해서 거액의 불법이득을 챙긴 재벌 3세나 부유층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번 주가 조작은 재벌 3세를 비롯한 경제단체 임원, 공인세무사 등과 같은 고위층이 다수포함 되어 있었는데, 주가 조작 사범에 연루된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는 한국 경제 전체를 좀 먹을 정도라서 봐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른 놈은?”

“그게......”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장승일 기조실 실장도 당황했다. 최민수가 뜻밖에 주가 조작 세력에 연락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어차피 작전 세력 배후에 다른 재벌 3세도 있었는데, 그들 통해서 정보를 얻자 차라리 서로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겁이 많은 최민수는 한마디로 거절했지만, 문제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마치 주가 조작을 공모한 듯한 증거가 남아 있었다.

김기범은 뒤늦게 주가 조작 규모가 커져서 수사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덜컥 겁이 나서 슬그머니 손을 떼버렸다.

결국 검찰 수사팀에서 증거가 불명확한 김기범이 아니라 증거가 명확한 최민수를 주가 조작의 종범으로 구속했다.

요컨대 주가 조작 세력 배후도, 김기범이 주도한 재벌 3세도 다 빠져나가면서 최민수를 검찰 입에 던져준 것이었다.

“이 병신 같은 놈!”

“죄송합니다.”

“손실은 얼마야?”

“투자 대비 -50%인 점도 있지만 당장 수사팀에 돈이 묶여서......”

“됐다. 그만 해.”

돈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이런 엽기적인 사건에 손자가 엮인 것에 두통을 느낀 최용욱 회장은 고개를 한없이 숙인 최훈열과 가벼운 미소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김여정을 보자 냉소했다.

“잘하는 짓이다.”

“죄송합니다.”

“자식새끼 교육은 하냐?”

“그게 사실......”

“할 말은 있고?”

“......없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주가 조작도 다 좋아. 그런데 민수 이놈이 어떻게 60억이란 큰돈을 가지고 주식에 투자한 거야. 가만......설마 네놈이 뒤에서 민수에게 자금을 대준 거야?”

“......네.”

너무 울화가 치밀어서 냉수잔을 벌컥벌컥 석 잔이나 들이킨 최용욱 회장은 가슴을 탁탁 쳤다.

“훈열아.”

“네, 아버지.”

“너 정신이 있기는 한 거야? 도대체 뜬금없이 주식은 또 뭐야? 우리가 지금 주식 쪼가리로 돈 벌 수 있는 단계야. 너 정말 경영이 뭔지는 알아?”

“아버지, 그게......”

“내가 이번에 정리하고 있는 그룹 부동산은 도저히 너에게 못 넘기겠다.”

“아, 아버지, 그것과 이것은......”

“네놈 하는 짓을 봐라. 주식에 투자해서 그룹 기둥뿌리까지 뽑아먹겠다. 그런데 현금성 자산을 어떻게 네놈에게 넘기냐?”

잔소리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실 10억, 20억 정도라면 주식으로 수익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규모가 100억, 200억 넘어가면 이야기가 다르다.

덩치가 커질수록 오히려 주가를 희석해서 움직일 여지가 별로 없어진다. 즉 이때부터는 수익을 벌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미국 나스닥에 투자했으면 내가 이해라도 하겠다. 뭐, 이성종합건설? 그건 웬 듣도 보도 못한 기업이야!”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최훈열은 식은땀마저 흘렸다. 아차 잘못했다가 그룹 내의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 수도 있다. 형 최문경은 어차피 장남이라는 위치가 있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셋째 최동영은 이야기가 달랐다.

최용욱 회장은 그 모습이 꼴 보기도 싫었다.

“내가 일단 알아보마. 아마 집행유예로 이끌어낼 수 있을 거다. 다만 여론 때문에 몇 달 정도는 구치소에 있어야 할 거다.”

김여정이 재빨리 항의했다.

“아버님!”

“닥쳐!”

“하, 하지만 우리 민수는......”

“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아. 재벌에 대한 도덕적 해이 문제가 계속 나오는 시점이라서 당장 빼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가서 자중하고 있어.”

“후유, 알겠습니다.”

이미 여러 채널 통해서 알아본 최훈열 전무도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징징거리는 김여정을 억지로 데리고 서재를 나섰다.

그들 모습에 복장이 터지는 최용욱 회장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이 좋아서 그룹을 총괄하는 기조실 실장이지만 최용욱 회장 지시에 묵묵히 따르기만 하는 장승일 실장은 머뭇거렸다.

“자네는 또 왜 그래?”

“죄송합니다.”

“이제는 자네도 할 말 하고 싶으면 해. 언제까지 그렇게 소심하게 살 건가.”

KM 전자 전 기획실장이 자기주장을 극구 우기다가 결국 그 다음 날에 잘려버린 사건을 잘 아는 장승일 실장은 계속 눈치를 봤다.

“아닙니다.”

“그 사람도 참. 그래, 자네 생각은 왜 사태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하는가?”

“그게 아무래도 최민혁 도련님의 주식 대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갑자기 민혁 이야기는 왜 나와. 가만 민혁이 그놈도 주식해?”

“DL 차남 김기범에게서 40억을 빌려서......”

“뭐 40억이라고? 도대체 김기범 그놈은 무슨 마음으로 40억을 빌려준 거야? 가만 설마 주식을 담보로 그 돈을 빌려준 건가?”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장승일 실장을 요령껏 계속 설명했다.

“......불과 한 달 만에 70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두 사람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최용욱 회장은 뒤늦게 의미를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

“뭐야? 한 달 만에 70억을 벌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민혁 그 녀석의 투자의 신은 아니잖아. 작전주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벌 수가 없어.”

“그런데 사실입니다. 기조실 조사팀조차 매우 놀랐으니까요.”

“허, 이거야 원 안 믿을 수도 없고,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해? 민혁 그 녀석이 투자에 대한 재능이라도 있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조실 내부에서 조사한 바로는 제약 주가가 운 좋게 폭등했는데, 그 흐름을 잘 탔다는 것이 분석 결과입니다.”

제약 주가가 지난달까지 폭등한 것은 주식 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시기에 40억 투자를 행동으로 옮겨서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운으로 70억을 벌어? 기조실 요즘 제대로 돌아가기는 하는 건가?”

“그게 좀......”

< #00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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