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4 >
하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검찰 총장 임명 당시 청문회에서 그의 과거 비리가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황당한 것은 그럼에도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서 여론을 환기하고, 야당의 반대를 무시한 채 임명을 강행해버렸다.
‘아마 박두영 부장검사가 주가 조작 세력에 대해서 특혜를 줬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당시 주가 조작 규모가 심해서 언론에서도 난리법석이었는데, 가만 이 대통령이 그때는 국회의원도 아니었잖아. 아, 선거 자금 때문에 펀드 매니저 출신 보좌관을 밀어 넣을 수도 있겠구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최민혁 시선에 박두영 부장검사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봅니까?”
최민혁은 미래 꿈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결국 살아남은 박두영 부장검사를 이중첩자로 활용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과거, 현재, 미래의 다양한 비리에 대해서 알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앞으로 잘 지내고 싶습니다.”
“네?”
박두영 부장검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고, 김명준 과장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첫 만남은 좋지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영상 원본이면 됩니다.”
“당연히 줘야죠. 김 과장님, 바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도 망설였지만 품에서 이미 준비해둔 CD를 내밀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아예 노트북을 꺼내서 그 파일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파티에 참석했던 재벌 3세의 얼굴이 숨김없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
심지어 클럽에 참석한 여자를 상대로 강제로 추행하는 장면도 있었다.
동영상 파일은 클럽 내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전부 다 취합한 것이었다.
‘대박!’
재벌 3세 중에는 재벌가 승계를 할 수도 있는 이들이 있을 테니, 이 클럽 마약 섹스 파티 증거는 보험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야 이 동영상 파일이 정상적인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누군가 따로 촬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결국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놓았다.
“제가 숨겨둔 감시 카메라를 다 파괴했으니, 이 내막을 아는 사람은 더 없습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최민혁은 슬쩍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제 한 배에 탔으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아, 그러지요.”
떨떠름한 박두영 부장검사도 이 동영상으로 자신을 압박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지금 당장은 동영상 파일 확인을 위해서 떠나버렸다.
이번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은 김명준 과장은 평소와는 달리 툴툴거렸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될 겁니다.”
최민혁도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정작 비리가 있는 박두영 부장검사 미래를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고, 굳이 자기 능력으로 떠올린 박두영 부장검사 주가 조작 세력 비호 비리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주가 조작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분명히 이 시기였던 걸로 기억하니까. 주가 조작 세력과 직접 엮이지만 않는다면 돈 벌기 딱 맞잖아.’
***
박두영 부장검사는 동영상 파일을 다시 확인해서 편집되지 않은 파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 동영상 원본을 가진 최민혁을 걱정했다.
다행이라면 최민혁이 자신과 잘 지내보자는 말을 기억해서 성급하게 건드리지 않았고,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최민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빙빙 말을 돌려서 경고를 해두었다.
최민혁은 그의 내심을 훤히 들여다보았고, 겉으로 가볍게 웃어 주면서 헛짓하면 미래 꿈을 통해서 떠올린 몇 가지 혐의로 매장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굳이 박두영 부장검사를 선택한 진짜 이유지.’
그는 우선 KM 그룹에 대한 큰아버지 영향력을 줄이고, 이들과 맞서는 데 필요한 현금을 얻기 위해서 주식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작전주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주가 시세 현황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신문에 드러난 종목을 통해서 뭔가 아릿한 것이 떠올랐다.
‘이상하네.’
시력에 이상이 생겼나 싶어서 눈을 비벼보았지만, 이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고 있던 오성 전자의 일주일 후 주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연상이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최민혁은 오히려 화들짝 놀랐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자신은 이 시기에 구치소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구치소에서 한 일이 없으니, 당시 한 거라고는 신문만 봤다.
그 기억 일부분이 종목과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쉽다면 그가 본 종목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다.
이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작전 종목 위주로 살폈다.
‘이제 대충 감이 오네. 가만 한동안 떠들썩했던 종목이.....맞아, 무광약품이었구나.’
무광약품은 자본금이 100억으로 주식수가 적고, 대주주의 지분율이 다른 종목에 비해서는 높았다. 심지어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 내부 사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시선을 모으는 것은 신약품개발설이다.
그는 즉각 김명준 과장에게 이 무광약품에 대한 조사를 맡겼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주식 투자를 하려는 겁니까?”
“네.”
눈치를 보던 김명준 과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 많은 종목 주가는 부풀려져 있습니다. 특히 시세조종행위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세력도 있습니다.”
“압니다.”
김명준 과장은 절대로 모른다고 확신해서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증권감독원의 검사 인력이라고 해봐야, 백 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증권 관련 업종 직원 수는 수십만 명에 달해서 제대로 감시도 못 합니다. 현재는 증권 회사의 자율 규제에 맡겨 두었지만, 이거야말로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겨두고 알아서 먹으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 과장님에게 조사를 맡긴 겁니다.”
“......후유, 알겠습니다.”
***
김명준 과장은 단순히 경호원만이 아니라 따로 최병문 지원받아서 만든 작은 정보 팀을 따로 관리했다. 이 팀의 역할을 밝은 면이 아니라 어둠 속의 적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최병문 사후 팀원이 속속 떠나가기는 했지만, 핵심 인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팀의 능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운 증권에서 무광 약품을 지속해서 매수한 것을 찾아냈다.
“차명 계좌 50개를 이용해서 주당 1만 8천원 선에서 계속 매입 중입니다. 이들 행동은 전형적인 주식 매입 행위입니다.”
“작전 세력이란 말이죠?”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좋네요.”
“설마 여기에 손을 댈 생각입니까?”
“재벌가 망나니가 해야 할 가장 기본이 바로 주가 조작을 통한 시세 차익입니다.”
“네?”
“하하하, 농담입니다. 투자자가 하는 게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서 고가에 주식 파는 것 아닙니까. 딱 그것만 하려고요.”
“하지만 그럴 자금이 있습니까?”
“아니 세상에 투자를 자기 돈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아파트와 지분으로 대출받으면 충분합니다.”
“이 아파트는 그렇다고 해도 주식 대출은 그룹 비서실에서 알게 될 겁니다. 그건 문제가......”
“큰돈이면 그렇죠. 하지만 어차피 무광약품은 자본금이 크지 않아서 주가 한계가 명확합니다. 그러니 한 40억, 아니 50억만 대출받을 겁니다.”
“그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큰아버지 최문경은 오히려 더 부추기려고 할 겁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이니까. 만약 50억을 주식으로 날려버리면, 할아버지에게 이 명분을 이용해서 제지분을 다시 거둬들이려 할 겁니다. 그러니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당장은 힘들겠지만, 제약을 걸기에 딱 좋죠. KM 전자에 대한 영향력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KM 전자 전무 둘째아버지라면 손뼉을 칠 일이죠.”
‘아마 숙모 김여정이 최민수 이용해서 클럽 마약 사건을 부추긴 것도 이 일의 연장선이겠지. 김기범이 그 틈을 노려서 KM 그룹을 노리는 것이고.’
“아무리 같은 가족끼리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제가 상속받은 지분 가치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그는 갑자기 변해버린 최민혁이 익숙하지 않아서 잠깐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진지한 최민혁 눈빛을 보자 더 설득할 수가 없었다.
“후유, 알겠습니다.”
“아, 가능하면 은행 통해서 둘째 큰아버지 최훈열 전무 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죠.”
“......네.”
***
주식 대출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KM 그룹 지분이라면 더 쉽다. 다만 대출 은행 지점장으로서 요즘 무섭게 재계에서 치고 올라가는 KM 그룹 이사가 뜬금없이 주식 대출을 받는 것이 정상인지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대출 소식은 곧바로 최훈열 전무를 통해서 권재홍 비서실장 귀에 들어갔다.
올해 비메모리 투자 명분으로 7천억 투자 유치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최문경 부회장은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50억이라고?”
“아파트 대출 10억 포함해서 모두 50억입니다.”
“흠.”
만약 대출 액수가 100억이 넘었다면 당장 태클을 걸었겠지만 50억은 이야기가 달랐다. 하물며 10억은 아파트 대출금이었으니, 40억에 불과했다.
이미 대출 은행 지점장 통해서 이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으니, 리스크도 크지 않았다.
“해줘.”
“네? 하지만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회장님 귀에도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해주라는 거야. 아버지가 알면 당장 그 대출 자금에 대해서 따질 거야. 그때쯤이면 손실이 막대하겠지.”
‘혹시라도 주식 투자에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란 질문 따위를 권재홍 비서실장은 하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세히 감시하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마. 그냥 내버려두고, 멀리서 상황을 지켜만 봐. 중요한 것은 대출금이고, 그걸 갚지 못하면 자연히 우리 귀에 들어올 테니까. 아니면 증권 담당자에게 미리 손을 써 놔.”
“알겠습니다.”
***
최문경 허락이 떨어지자 대출은 아주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최민혁은 대출금을 김명준 과장에게 넘겨서 분할 매수를 진행하게 했다.
“가능하면 차명 계좌로 나누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아, 10억은 제 통장에 따로 입금해주고요.”
“그 돈은 주식이 아니라 다른 쪽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주식 투자할 겁니다. 대신에 이 10억 가지고 따로 투자해보려고요.”
“네?”
“40억이면 작전 세력보다 크게 떨어지는 금액이 아니에요. 그 돈으로 만약 수익이 크게 나면 의심받을 테니까. 그러니 10억으로 손해를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재벌 3세가 돈 장난하는 거로 생각하겠죠?”
일단 10억 손실과, 40억 대박 근거가 뭔지 김명준 과장은 할 말이 많았지만 경호원이지, 투자 전문가가 아니라서 참았다.
“......진심입니까?”
최민혁도 심각한 김명준 과장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굳이 시시콜콜 다 풀어서 설명하는 이유가 굳이 그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는데, 앞으로 일을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당장 결과가 없으니, 그로서는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으음, 이번 한 번만 제 말대로 해보세요.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다시는 이런 식으로 일 처리 하지 않을 테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말리고 싶은 김명준 과장도 차마 최민혁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가 지시를 받았던 일은 최민혁 경호원이고, 조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이런저런 걱정을 한만큼이나 김명준 과장은 능력이 있었다. 정확히는 밑에 정보팀의 실력이 대단했는데, 그들은 차명 계좌 수십 개를 만들어서 몰래 무광약품 주식을 사들였다.
다행이라면 주가 조작 세력이 이제 겨우 목표한 물량을 반쯤 채운 시점이라서 주가는 그렇게 크게 오르지 않았다.
이들 세력이 의도적으로 악성 찌라시를 마구잡이로 뿌렸다.
이번 신물질 개발 실패 때문에 수백 억의 손실을 봤다는 소리가 나오자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고, 뒤늦게 거래량이 늘어난 것을 보고 들어온 개인 투자자는 손절매하고 빠져나갔다.
김명준 과장 팀은 이 시기를 틈타서 시장에 나온 물량을 조심스럽게 매입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너무도 절묘해서 주가 조작 세력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혈액순환개선제 아스파라톤 특허 출원이 된 상황에서 찌라시를 믿지 않은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대주주 사이에 치열한 지분 경쟁이 일어난 시점이었다.
그러니 단순한 대주주 대리인을 통한 주식 매입이라고 봤다.
“주식 14만주를 평균 매입가 2만원에 모두 사들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단순한 투자자로 그쪽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문제 될 리가 없습니다. 그건 김 과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휴우, 잘 알겠습니다.”
< #00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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