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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402화 (401/405)

2부 142화

가을

엘릭과 황금사자의 결전 이후.

소문은 대륙 전체로 빠르게 퍼졌다.

온갖 기사들이 대서특필되어 쏟아져 나왔다.

<대륙의 최강자 황금사자의 사망>

반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세계제일인 황금사자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졌다.

그를 사망케 한 자는 다름 아닌 엘릭 메르빙거로, 평소 사자공가와 마탑 간의 갈등이 위와 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단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엘릭 메르빙거의 무서울 정도의 성장세로, 절맥증을 치료한 지 단 몇 년 만에 황금사자를 넘어섰다는 건 쉽게 믿을 수 없는 사실로….

<향후 닥쳐올 사자공가의 미래는?>

사자공가의 중심이었던 황금사자가 사망하며, 벌써부터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강함을 따르던 사자와 기사들은 그 이름을 버리고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으며, 비단 사자들뿐만이 아니라 일반 기사들 또한 빠르게 줄고 있다고 전해진다.

황자이자 흑사자인 크롬헬이 황금사자의 뒤를 이어받았지만, 당분간은 위와 같은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4대 세력의 몰락, 앞으로의 구도는?>

제국을 지탱하던 4대 세력 중 두 개가 붕괴되었다.

황자 크롬헬이 황금사자의 의지를 이어받긴 했으나, 지금의 상황으로만 봤을 땐 감찰국의 길을 그대로 걷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현재 남은 세력은 마탑과 신교 연맹으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세계에 큰 변화가 생기기에, 과연 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온 대륙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기사들 외에도.

<메르빙거의 완전한 부활>

<차세대 최강자는 누구인가?>

<여전히 묵묵부답인 황실. 그들의 선택은?>

등등.

최근 엘릭이 벌였던 일로 대륙 전체가 완전히 들썩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기사들을 확인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스륵-

그는 신문을 책상 위로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일을 시작점으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부른다.

제국 제일의 공적.

세계를 바꿀 자.

버림받은 이들의 왕.

변혁을 꿈꾸는 망상가.

자유와 혁명의 선발대.

.

.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별명은 따로 있었다.

-자유혁명군의 총수.

파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된 격랑은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는 수준이지.”

지금껏 세상은 황금사자와 별의 마도사라는 거대한 두 강자의 그림자 아래에 멈춰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변화를 만들어낼 우스던은 죽고 없고.

황금사자는 자신의 목표에만 집중할 뿐, 대륙 전체를 흔들 만한 일을 벌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엘릭 메르빙거.

우스던의 손자인 그가 황금사자의 목숨을 거둠으로써 멈췄던 시대의 물결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강자들이 영원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며 구시대의 끝을 알리고.

앞으론 신시대가 열리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물결의 주인은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파리스가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엘릭과 크롬헬, 황실과 관련하여 떠들던 신문지들이 마구잡이로 구겨졌다.

그의 눈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껏 자유 혁명군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건, 황실을 수호하는 황금사자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가 죽은 지금이 적기였다.

감찰국도, 사자공가도 몰락한 지금.

황실과 제국을 지키던 방벽이 모두 허물어진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들의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레펜트.”

파리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레펜트를 불렀다.

평소라면 장난스러운 말투로 되물었을 레펜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전군에게 전해라.”

묵묵히 고개만 숙일 뿐.

“출정을 준비하라고.”

“알겠습니다.”

휘리리릭!

레펜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답하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드디어 바라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홀로 남은 막사 안.

“드디어 왔구나.”

파리스는 구겨진 신문에 시선을 고정하며 중얼거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의 시대가.”

구겨진 사진 속 엘릭의 얼굴이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후우우웅!

거대한 비행선들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엘릭을 태운 비행선들.

그는 사자공가를 나오자마자 곧장 황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가 그렇게 황실을 향해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동부로 돌아가던 중, 황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황제와 대면하여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내용의.

사자공가와의 일도 마쳤겠다, 엘릭은 가급적 동부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차마 그러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여전히 속을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엘릭이 가장 의문인 점이 있다면 바로 황제의 속내였다.

그는 엘릭의 가문이 힘들 때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황실에 마족들이 들어온 상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황금사자와의 갈등이 격화된 이때에도 마찬가지.

자칫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전화에 휩싸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수수방관만 할 뿐이었다.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하지만 황제와 무슨 대화를 나눌지 깊게 생각하는 엘릭과 달리, 가신들은 사뭇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주군,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황제가 굽히기 시작했군요.”

“맞습니다. 황실을 지탱해주는 두 세력이 약해지니, 이제야 주군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듯합니다.”

“더 이상 지난날의 핍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껏 엘릭은 황실에 의해 지독히도 시달려 왔으니까.

가장 최근에만 하더라도 삼공이라는 사절이 찾아와 대놓고 눈치를 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좋다고 한들, 엘릭은 긴장을 풀 생각이 없었다.

“다들 진정해.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리고 상대는 황제야. 수십 년 동안 능구렁이를 품었던.”

최근 몇 년간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러면서도 황제의 자리를 지킬 능력이 있다는 소리다.

감찰국이 오랫동안 생체 실험과 마족을 숨기고 있던 것처럼.

황제 또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꽁꽁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재 황실과 척을 진 것이나 다름없는 엘릭을 자신들의 본거지로 부를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황실에다 모종의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니 만일의 사태에 준비하기 위해선….’

추계의 인장을 완성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조가 남긴 안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엘릭이 자신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생각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사계가 완성되는 셈이니까.

아직 그가 깨운 추계의 인장은 ‘완성’이 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해.”

엘릭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미르카의 안배에서 원죄의 인장을 만들어냈을 때처럼.

“후우, 그럼 시작해볼까?”

엘릭은 추계의 인장을 매만지며 마력을 계속해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인장이 빛을 발하며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해갔다.

***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쉬지 않고 비행한 덕에, 어느덧 저 멀리서 황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엘릭은 방에 들어간 이래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중해야 하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란 신신당부까지 있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신들은 나오지 않은 그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하아… 황금사자와의 대결 때 얻은 것을 바탕으로 명상 중이라고 하시니 무작정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러니까 말일세. 주군이 더 강해지는 일이니 좋은 일이다만….”

그렇게 말한 가신이 슬쩍 외부를 바라봤다.

이전보다 황도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제 도착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만일 이대로 엘릭이 나오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황제의 부름에 응한 당사자가 나오지 않아버리니.

하물며 황실과의 사이가 영 좋지 않아 최악의 경우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걸 사전에 막아줄 수 있는 존재는 엘릭밖에 없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깨워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맞겠지?”

“아무렴. 주군께서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바라지 않을 걸세.”

“그래. 내 생각도 그렇네. 그럼….”

그렇게 의견을 맞춘 가신들이 엘릭의 방문을 두드리려던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너니티가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금사자와의 전투 이후, 엘릭이 크롬헬을 통해 자신의 형제들과 신도들을 모두 구해줬기 때문이었다.

크롬헬이 황금사자를 데리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대한 조건이었다.

워낙 수가 많아 한 번에 이동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신교 동맹으로 가고 있을 테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한편, 그의 말에 가신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중에서 헤르만이 앞으로 나오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너니티? 너도 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나?”

“알지요. 그렇기에 괜찮다는 것입니다.”

“…뭐?”

헤르만이 계속 말해 보라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가신들도 어서 자신들을 이해시켜달라는 눈치였다.

이너니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작께서는 신들을 만나 계시를 받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

“…?”

“…?”

그런 그의 말은 가신들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를 정도.

“알아들은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께 예배를 드릴 시간이라.”

이너니티는 그런 가신들의 표정을 한 번 훑어보면서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훌쩍 방으로 떠났다.

“자, 잠깐….”

가신들이 더 설명하란 듯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어느새 그는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자리에 남은 헤르만과 가신들만이 두 눈을 끔뻑거릴 따름이었다.

***

그 시각.

화아아악!

눈을 뜬 엘릭은 자신이 심상 세계 속에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상대로군.’

가을은 안배의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

즉, 이는 곧 자신의 심상 속이 곧 안배의 장소라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진즉 깨달은 엘릭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겨울 6장이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네. 다 봤어. 황금사자. 싸움.”

“아주 화끈하게 싸워주더군.”

“덕분에 간만에 재미있는 구경했다. 옛날 생각도 하고.”

하나 같이 안도하는 모습.

다른 누구도 아니고 황금사자가 상대다 보니 꽤 조마조마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축하해. 안배. 드디어 끝냈네.”

미아가 다가오며 말한 건 그때였다.

엘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배를 끝냈다.

이는 곧 시조를 만날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어떻게 만나냐는 것이었지만,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이곳이 가을의 안배를 마무리하는 장소인 만큼.

가을을 만난다면 얘길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엘릭의 생각대로.

“엘릭. 따라와. 가을이. 기다린다.”

그는 이곳에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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