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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98화 (397/405)

2부 138화

금발과 녹안

어느덧 두 사람의 과거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아무것도 없이 암흑만이 남은 곳에서.

두 사람의 기운이 충돌했다.

쿠구구구궁!

곳곳에서 심상 세계의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처음으로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는군.”

황금사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을 뽑았다.

단지 그뿐이었음에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예기는 엘릭의 살갗을 저리게 만들었다.

실로 날카로운 기세였다.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

그땐 단순히 압도적인 힘으로 누르려 하는 것만 같았다면.

지금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더욱 치밀해진 것 같았다.

느껴지는 기운 하나하나 전신을 물어뜯을 것만 같이 살기를 품고 있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반드시 끝을 보겠다는 황금사자의 의지가 느껴졌다.

콰앙!

엘릭과 황금사자가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

얼마나 지났을까?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럴수록 심상 세계에서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엘릭과 황금사자의 기운을 버티지 못해 모든 곳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쩍쩍 갈라진 균열로 가득했고.

바닥은 잦은 화산 폭발과 황금사자의 검흔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전투의 열기가 식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열되고 있었다.

콰아아앙!

다시금 두 사람이 충돌했다.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느덧 엘릭은 겨울 6장 모두를 빙의시키고 런치 컨트롤을 2단계… 아니, 그 이상인 3단계까지 발동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라 원죄의 인장까지 발동하면서 마기마저 다루는 중이었으니.

등 뒤에 펼쳐진 날개 중 한쪽은 검게 물든 상태.

아무리 지난 2년 동안 끝없는 단련을 통해 극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육체에 막대한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으니.

황금사자는 그런 엘릭의 모습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투덜거렸다.

“과연. 시조와 마신을 모두 품겠다더니. 이제는 마기마저 잘 다루는 건가?”

메르빙거가 마기라니.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구나.

황금사자는 가볍게 실소를 날리더니 그대로 허공을 수직으로 베었다.

검날이 지나간 대로 하늘이 번쩍이며 번개가 떨어졌다.

“【솟아나라】.”

엘릭은 돔 형태의 얼음벽을 소환해내 이를 막아냈다.

콰아아아앙!

얼음이 산산조각 나며 희뿌연 수증기가 낮게 깔렸다.

엘릭은 자신의 신형이 숨겨진 틈을 타 기운을 터뜨렸다.

엘릭 오리지널

아발란체(Avalanche)

겨울 6장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엘릭의 기술.

몇 번이고 터뜨린 화산 폭발 탓에 뜨겁기 그지없던 심상 세계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쩌저저적!

“…!”

황금사자의 갑옷 사이사이가 얼어붙을 정도.

콰앙!

그리고 엘릭이 자리를 박차고 나서자.

그는 거대한 눈사태 그 자체가 되어 황금사자를 덮쳤다.

콰르르르르르!

다량의 눈이 주변을 휩쓸고 거대한 얼음 조각이 바닥에서 정신없이 솟아올랐다.

얼핏 보면 피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어 보였지만.

번-쩍!

황금사자는 모든 것을 뚫고 우레와도 같은 속도로 엘릭의 코앞에 도달했다.

“무슨…!”

설마 자신의 기술이 이렇게 쉽게 뚫릴 줄은 몰랐는지, 엘릭은 짐짓 놀란 표정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촤악!

엘릭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황금사자의 검을 피해냈다.

따악!

그러곤 황금사자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손가락을 튕겨 다시금 바닥에서 용암을 터뜨려냈다.

하지만.

촤촤촤촥!

황금사자는 일보(一步)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용암이 터지기도 전에 마법이 무력화됐다.

아까와 비슷한 상황.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하계의 권능

유성우

황금사자는 어떠한 마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엘릭이 마법을 쓰려하기 무섭게 검을 휘둘러 이를 없애버렸다.

검뢰가 번쩍일 때마다 마법이 모조리 파훼되고 지면이 깡그리 밀리니.

엘릭이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었다.

빠득-

엘릭이 이를 악물었다.

‘언제부턴가 계속 반 수 정도씩 밀리고 있어.’

마치 그가 자신이 다음 마법으로 무엇을 쓸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황금사자가 엘릭의 전투 방식에 점점 적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안으로 보니 더욱 확실했다.

그는 엘릭이 마법을 사용하려 하는 즉시 마나의 결을 베어 마법을 파훼하고 있었다.

엘릭의 비기와 권능이 취소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법이 안 된다면…!’

무명신(無名身)

무명보(無名步)

엘릭은 하르간에게 배운 신법과 보법을 사용했다.

그의 움직임이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며, 순식간에 황금사자의 뒤를 잡았다.

강체술

맹호출현 – 파(破)

그리고 있는 힘껏 주먹을 뻗었지만.

터억!

“…!”

황금사자는 이 또한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육탄전도 나쁘지 않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바로 옆에서 나타나 엘릭의 머리를 향해 발을 뻗었다.

후웅!

엘릭은 황급히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공격을 피해냈다.

런치 컨트롤과 하르간의 보법을 사용했음에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라니.

황금사자는 그런 엘릭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무려 천 년이다. 설마 내가 검술만 익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곤 엄청난 속도로 엘릭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퍼버버벅!

“….”

엘릭은 막기에 급급했다.

얼음창으로 다양한 무술을 펼쳐봐도 마찬가지.

아무리 숀과 하르간에게 검술과 보법을 배웠다 해도, 황금사자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건 경험의 차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통해 경험을 쌓았어도, 천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온 황금사자와는 당연히 격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완성되지 않은 사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한껏 비웃음까지 던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촤촤촤촤!

엘릭은 지금도 계속해서 황금사자의 공격을 막으며 생각했다.

‘분명 이 차이를 좁힐 방법이 있을 텐데.’

이 또한 시조의 길을 선택한 선조들이 걸어온 길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의 상대는 오직 힘을 추구하는 마족들이었으니까.

늘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며 승리한 선조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분명히 그들이 걸어온 길에 정답이 있을 것이다.

엘릭은 사계들을 떠올렸다.

-오토 한, 아르세우스, 미르카.

이어 그들이 가진 상징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남은 것 하나.

-가을.

황금사자가 말했다.

완성되지 않은 사계로 자신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추계의 인장을 얻지 않는 이상, 현재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떻게 인장을 깨우치냐는 것인데….’

동부에 머무르는 동안.

미르카의 말대로 가을의 안배를 가만히 기다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배는커녕 추계의 인장을 얻기 위한 아주 작은 단서조차 얻지 못한 상태였다.

스스로 찾아보려고 해도 마찬가지.

지금까진 때가 되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잠자코 있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감이 오지 않는다고 한들, 지금만큼은 반드시 추계 인장의 힘을 깨우쳐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황금사자를 결코 이길 수 없을 테니까.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한다.

엘릭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여기서 패배한다면 단지 혼자 죽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부에 있는 가신들.

흉의 일족과 수인족.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사벨과 리아 등.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엘릭은 황금사자가 반격해오지 못하게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추계의 인장을 깨울 수 있을까?’

가을, 가을….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을이 ‘대자연’에서 가지는 의미를 떠올려 봤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시원함? 날씨?

수확기?

천고마비?

이런저런 것을 떠올려 봤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니면 뒤집어서. 대자연의 순환에서 가지는 의미를 짚어본다면?’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곡식을 심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는 동안 곡식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이어 가을이 되어 곡식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그제부터 곡식을 수확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연이 가진 기본적인 섭리.

‘…무르익는다고?’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 엘릭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왠지 모르게 ‘무르익는다’는 표현이 가슴에 확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덧 엘릭은 가정을 꾸렸고.

가문의 발판이 될 동부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가문은 다른 세력에게 밀리지 않을 군사력을 갖추게 된 상태.

마침내 멸문의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즉, 점점 엘릭이 꿈꾸는 모습으로 가문이 무르익는 중이었으니까.

“아!”

그 순간, 엘릭은 미르카가 기다리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드디어 눈치챌 수 있었다.

곡식이 충분히 무르익어야 수확할 수 있듯.

추계의 인장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했다.

무르익기를.

수확할 수 있는 때가 오기만을.

그리고 수확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그가 곧 메르빙거이며, 메르빙거가 곧 그일지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껏 숱하게 익혔던 기술과 마법, 그리고 검술까지.

사계가 하나의 대자연이 되어 끊임없이 순환하듯.

엘릭 또한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화아아악!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찰칵-

체내에서 무언가가 맞춰지고 있었다.

부족한 조각이 합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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