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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90화 (389/405)

2부 130화

동부

얘기도 끝나고 목적지도 정해졌겠다.

엘릭은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를 시켜 별의 종군을 불렀다.

그러는 사이, 이너니티는 투구를 쓰며 말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엘릭 님. 청백의 신께서는 이번 일을 절대 잊지 않으실 겁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저는 먼저 움직여 보겠습니다.”

“이왕이면 같이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엘릭의 말에 이너니티는 몸을 돌리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요? 하지만 엘릭 님께서는 떠날 준비를 따로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사자 소집회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적진에 들어가는 일인 만큼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이너니티는 바로 이 부분을 말하는 거였지만.

도리어 엘릭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이너니티는 한순간 어쩐지 엘릭이 장난을 앞둔 개구쟁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충한 생각이로군. 어찌 공작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너니티는 곧 그 생각이 틀린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으니.

“크게 준비할 건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럼 혹시 워프 게이트라도 쓰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저도 좋습니다. 직접 가는 것보다 그 방법이 훨씬 빠를 테니까요.”

“아뇨.”

하지만 엘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더 대단한 겁니다.”

“…?”

이너니티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찼다.

워프 게이트보다 훨씬 더 편하고 좋은 이동 수단이라니.

그런 게 있었나?

아무리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청백의 신을 모시는 회당에 오랫동안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껏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같이 가시지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엘릭 님.”

“부르셨습니까?”

별의 종군, 브라이언과 아테가 들어오자, 헤르만과 안드레는 엘릭의 말뜻을 눈치 채곤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장난기가 도지셨군….’

‘아무리 우리 주군이긴 하지만 이럴 때는 참 어린아이 같으시단 말이지.’

* * *

이튿날.

“….”

이너니티는 동부성 앞마당에 자리 잡은 풍경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어떻습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으흐흐!

엘릭이 바로 옆에서 이너니티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음침한 웃음을 터뜨렸다.

기대했던 대로 이너니티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너니티는 거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팔이 힘을 잃은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엘릭 님.”

“예?”

이너니티가 곧 진지한 눈빛과 함께 엘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대단하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랬습… 니다만?”

“후우….”

이너니티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와다다 쏘아내기 시작했다.

“대단? 대단이요? 저건 그냥 대단한 게 아닙니다. 어제의 말씀보다 어어어어엄청 더 대단하지!”

“…?!”

정말 순수하게 감탄한 모습.

어제까지만 해도 이너니티의 경건한 모습만 봤기 때문일까.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정작 엘릭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걸 만드신 겁니까?”

이너니티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곳엔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비행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르카의 별장’이라고도 불리던 비행선.

감찰국이 미르카의 무덤을 도굴하면서 만들기도 했었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원전’을 바탕으로 탄생한 비행선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엘릭은 비행선을 처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전에 별의 종군을 부른 것도 비행선을 가동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기 위함이었고.

“아아! 감히 제 어휘력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군요. 물론, 청빈과 검소를 미덕으로 삼는 청백의 신께서는 과하다며 불같이 화를 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태어나 이만큼 ‘엄청나다’ 싶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인상적이긴 엄청 인상적이었나보다.

말을 하는 내내 도통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이 어느 때보다 밝게 반짝였다.

“벌써 이런 걸로 놀라시면 섭섭합니다만.”

“더, 더 놀랄 게 있단 말씀이십니까?”

“겉만 번지르르해서는 돈만 잡아먹는 하마일 뿐이니까요. 백번 말해 뭐하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엘릭이 비행선 방향으로 직접 이너니티의 등을 앞으로 밀었다.

헤르만과 안드레도 그런 이니너티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뒤따랐다.

비행선의 게이트가 열리고, 승강기를 타고 그 위에 올라타자마자.

“어….”

이제 이너니티의 턱은 투구 아래까지 튀어나왔다.

‘어, 어찌 이럴 수가…!’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던 엘릭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비행선의 크기만큼.

내부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수많은 기계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돌아가는 거대 구조체.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발현되는 마법들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허…! 현대 마도공학의 기술로 이런 게 가능했었다니.’

마치 머나먼 미래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부 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뿐이었으니까.

‘머나먼 고대 마도시대 때에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어 있었다는 전승이 있긴 하지만… 그 진위 여부는 전혀 알 수 없으니.’

이너니티는 뛰는 가슴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감찰국이 먼저 세상에 꺼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실제로 보니 소문이 많이 부실했었구나.’

오랫동안 속세에서 떠나 있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세와 완전히 단절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속세의 일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비행선을 보면서 이렇게 놀라워할 정도로.

그러니 마탑과 감찰국의 대립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화두가 바로 이 비행선이었다.

하지만 목격자가 워낙 적고, 마탑이 이 일에 대해 대부분 함구한 탓에 알려진 바가 극히 적었다.

기껏해야.

-거대한 기체가 왕국 하나 정도는 날려버릴 정도의 화력을 뽐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비행선의 크기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따위의 정보만이 들어올 뿐이었으니.

당연히 그동안 ‘헛소문’ 취급을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엘릭의 비행선을 보고 나니 소문이 오히려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성채로 봐도 무방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 안에 탑재된 무기들도 웬만한 공성(攻城) 급 무기들을 대체하고도 남을 테지.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이런 전략 병기가 한 개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 개인이 ‘정의’를 아는 메르빙거였으므로.

“후후후….”

‘…비록 웃음소리는 악당이 따로 없는 것 같지만.’

물론, 이너니티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보여드릴 것이 많습니다. 따라오시죠.”

그렇게 엘릭의 비행선 가이드가 시작됐다.

* * *

‘신이시여….’

이너니티는 오늘 하루 동안 청백의 신을 몇 번 찾았는지 도저히 숫자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것들투성이였으니.

병사들의 침실.

식당.

수련장.

심지어 가장 아래층에는 포로 수용소도 있었다.

“…이렇게 전체 구조를 제게 다 공개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그러다 보니 이너니티는 이제 얼떨떨해질 지경이었다.

이만한 전략 병기라면 외부에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신교 동맹의 소속이라고 해도, 다른 발은 사자공가에 걸치고 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왜… 입니까?”

“아무리 뜯어보셔도 혼자서 약점을 파악하긴 불가능하실 테니까요.”

“….”

이너니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이만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정말 첩자 노릇을 하시려구요?”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농담입니다. 하하.”

이너니티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등 뒤로 진땀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이건 대규모의 군대를 이송할 수 있는 수송선이다. 그 자체로도 이미 엄청난 전력을 지닌 전략 병기이기도 하고.’

비행선은 이미 이동하는 성채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지형의 구분을 전혀 받지 않는 성채.

진격도, 퇴각도 이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왜 엘릭 님께서 준비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겠어.’

이런 것과 전쟁을 치르는 것 자체가 오히려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이만한 걸 얼마나 보유 중이신 겁니까?”

“말씀드리기 조금 부끄럽긴 합니다만.”

‘남들은 이거 하나만 줘도 감사하다고 연신 절을 할 판인데 뭐가 부끄럽다고…?’

기만이다.

기만이 분명했다.

‘그래도… 두어 개가 더 있는 정도가 아닐까.’

물론, 그것만 해도 엄청난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열 기 정도?”

“….”

이너니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딱 하나.

제국을 제패하기라도 할 셈인가?

그렇게 이너니티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는 동안.

별의 종군을 비롯한 동부군 상당수가 비행선에 올라타면서 비행선이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숨어 있던 다른 비행선들까지 속속들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동부성을 뒤덮더니, 저만치 먼 곳으로 사라졌다.

* * *

워낙에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광경이기 때문일까.

엘릭의 비행선이 나타날 때마다, 지상에 있던 마을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놀라면서 비행선을 바라봤다.

“저, 저게 뭐야?”

“용 아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저 모습이 어떻게 용이냐?”

“그럼 대체 뭐야! 저렇게 거대한데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거냐고!”

분명 구름과 비슷한 높이에서 비행하고 있음에도 크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위엄.

태양을 가리며 하늘을 가르는 비행선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저기 무슨 문양이 그려져 있는 거 같은데?”

“어? 저거…?”

그러다 누군가가 외쳤다.

“메르빙거 문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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