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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79화 (378/405)

2부 119화

마신(魔神)

“왜 그렇게 생각했지?”

사내, 메르빙거가 물었다.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엔 기대감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마치 엘릭이 무슨 대답을 할지 기다리는 모습.

“시조님과 마신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잖습니까?”

엘릭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어떻게 보면 보석나무와 악마수의 관계와 비슷했다.

동전의 양면.

원래는 같은 존재였지만, 엘릭이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갈라져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인격체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엘릭이 이 사실을 깨달은 건 내면세계에서 마신을 만나고, 그의 진면목을 보고 난 뒤였다.

“어째서인지 마신의 개념에서 시조님의 모습이 언뜻 보이더군요.”

그는 마신을 처음 대면했을 때를 떠올렸다.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힘과 전신에서 풍기는 짙은 마기.

분명 처음 마주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의식을 잃기 전 마주했던 메르빙거가 떠올랐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를 봤을 때 확신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마력이냐 마기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근원적으로는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하나의 존재가 갈라졌다는 사실을.

하지만.

엘릭이 알아낸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잔재가 제 무의식에 남아있는 거 같았습니다.”

정확히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메르빙거의 후손들에게.

선이냐 악이냐?

시조냐 마신이냐?

마법을 향한 지식적 탐구이냐 아니면 힘을 신봉하여 그로 인한 지배를 지향하느냐.

지금까진 대부분이 시조 쪽으로 계속 기울어왔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황금사자처럼 되거나 대마왕 쪽으로 기울었던 것 아닙니까?”

남들이 어떻게 되건 말건 오직 자신의 무력을 우선시하던 이들.

이렇듯 메르빙거라는 핏줄엔 양쪽의 가능성이 모두 존재했던 것이다.

“제법인데?”

시조의 입꼬리는 엘릭이 말하는 내내 내려갈 줄을 몰랐다.

“설마 내면세계에서 마신을 만난 것만 가지고 거기까지 알아낼 줄이야.”

그는 진정으로 감탄하는 말투였다.

“그래, 맞다. 그것은 나이지. 나는 그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이다. 동전을 말했지? 하지만 양면은 하나이면서도 영원토록 서로를 보지 못해.”

거울도 마찬가지다.

두 개의 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는 못 한다.

시조와 마신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기질은 모든 메르빙거에게 똑같이 전해졌다.

“너와 같은 메르빙거의 후손들이 특히 재능이 뛰어났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누구보다 강한 마법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체인과 같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재능.

거기에 강한 힘을 추구하는 마신의 관념이 녹아 있으니.

당연히 메르빙거 가문의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지식이냐 힘이냐. 그 두 가능성 중에 깨달음을 얻는 정도에 따라 다들 성취가 달랐고, 선악의 기준마저 달랐지.”

엘릭은 그 말을 듣고는 두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조부인 우스던 메르빙거와 황금사자.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선과 악의 기준이 달랐다.

우스던은 휼의 일족이나 수인족과 같이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 반면.

황금사자 같은 경우는 그들을 학살하거나 실험체로 사용했으니까.

그리고 사계나 대마왕들도 마찬가지.

그들을 극단적으로 선이냐 악이냐로 가릴 수는 없다.

그들의 심중에 자리 잡은 선악의 비율에 따라 자리가 결정된 것뿐이다.

“그 탓에 나와 마신의 지루한 싸움은 지금도 이뤄지는 중이다. 30년 전의 대마전쟁도 그것의 연장선이지.”

시조가 씁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무려 천 년을 이어온 전쟁.

자신이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한 탓에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피해를 준 것에 대한 감정이었다.

“….”

엘릭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그때 일어난 전쟁 탓에 부모님은 물론, 대부분의 가문 사람들마저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던 중 문득 의문이 하나 들었다.

시조의 말에 따르면 30년 전의 전쟁 또한 그와 마신 간의 갈등이 이어져 생긴 일이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말로 선을 택한 메르빙거와 악을 택한 메르빙거 간의 전쟁이었다는 뜻.

하지만.

엘릭이 알기로 가문의 사람 중에서 마족의 편에 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맞서면 맞섰지.

심지어 가문이 전쟁의 선봉에 섰기 때문에 피해도 가장 크지 않았는가?

‘황금사자조차 당시엔 황실의 소속이었고.’

그렇다면….

“…대체 당시에 마족을 이끌었던 이는 누구였던 거죠?”

엘릭이 심각한 투로 묻자, 시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보니 아무도 너에게 말해줄 사람이 없었겠구나.”

있었다 하더라도 말해줬을지는 의문이겠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더니, 이내 다시 엘릭을 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30년 전에 마족들을 이끌던 건 가문의 족보에서조차 사라진 우스던의 친동생이다.”

“…!”

엘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부님에게 친동생이 있었다니.

하지만 그보다 더 훨씬 놀라운 건 우스던이 대의를 위해 친혈육조차 적으로 돌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평화와 가족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행보엔 그러한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을 정도였다.

단순히 친구란 이유 하나만 가지고,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

전쟁에서도 대륙의 평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누구보다 앞장서 사운 이가 바로 우스던이었다.

타인에게조차 이리도 친절한데.

가족에게는 어떻겠는가?

‘그런 조부님이 가문의 사람을. 그것도 친동생과 맞서 싸웠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생전에 엘릭에게 첫째도 가족, 둘째도 가족이라 강조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엘릭이 필사적으로 가문을 세우고자 다짐했던 건.

어떻게 보면 그의 영향도 없지 않아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쌍둥이였지. 나와 마신, 그 둘처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쌍둥이.

어쩐지 그것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만약 이번에 네가 마신의 손을 잡으려 했다면.”

잠깐의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시조였다.

“내 손으로 직접 너를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

“내가 점지한 후손인 만큼, 책임도 내가 지어야 하지 않을까?”

엘릭은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두 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함.

그리고 살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저를 마지막으로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결국 끝날 테니 말입니다.”

시조는 그의 말을 듣고는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했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구나. 하지만 마신에게 한 번 잡힐 뻔하지 않았느냐?”

“아뇨. 반대입니다.”

“음? 그게 무슨 말…!”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화아아아-

엘릭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반전됐다.

완성된 원죄의 인장이 제대로 발동되며 메피스토의 기질이 드러난 것이었다.

마기가 사방으로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일전에 폭주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힘이 제대로 컨트롤 되지 않아 날뛰는 것에 불과했다면, 이번만큼은 엘릭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하늘에서 마기로 이뤄진 번개가 떨어지면서 엘릭의 그림자와 뒤섞였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는 마왕의 형상.

엘릭의 뒤편으로 산자락처럼 높게 선 그것은 늑대의 얼굴에 산양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웃었다.

신기해 죽겠다는 듯.

엘릭은 메피스토의 형상과 반쯤 섞인 채로 덤덤하게 말했다.

“제 눈앞에 있는 당신 또한 제 속에 있는 또 다른 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엘릭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런 당신을 꺾으면 제가 이기는 것이자 마신을 이기는 거겠죠.”

말을 마친 엘릭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 *

콰르르르릉-

마기가 뇌기처럼 휘몰아쳤다.

엘릭은 전신에서 힘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마신의 힘, 메피의 힘이란 말이지?’

그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힘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 그 자체가 된 기분.

스읍, 하아…!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자, 순도 높은 마기가 전신을 휘저으며 정신을 고양시켰다.

지금이라면 혼자서 대륙 하나는 어렵지 않게 씹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괜히 메피스토나 다른 마왕들의 정신이 헤까닥 도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자칫하면 이대로 힘에 중독되어 두 번 다시 헤어 나오지 못할 기분이 들었다.

엘릭은 정신을 단단히 붙잡은 채 저 멀리 있는 용 군단을 바라봤다.

그리곤 손아귀에 마기를 꾹꾹 눌러 담아 거칠게 휘둘렀다.

꾸우우웅-

마신의 형상이 엘릭의 팔을 따라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엄청난 양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아아악!]

[이게 대체 무슨…!]

거대한 마기가 수십, 수백 마리의 용을 관통했다.

그들은 단말마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격추당하기 시작했다.

[위다, 위! 결계를…!]

[커헉!]

[대체 이게 뭐 어떻게 된 거야!]

보호막을 펼치거나 반격할 틈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보호막을 설치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곧바로 엘릭의 공격에 속속들이 파괴되고 있으니.

“….”

엘릭은 속으로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시험 삼아 가볍게 공격했을 뿐인데, 용 군단의 절반 이상이 소멸하고 말았으니.

남은 건 끽해야 백여 마리.

그마저도 엘릭의 힘에 압도되어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안배라고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시조를 꺾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엘릭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손을 올려 들었지만.

멈칫.

누군가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는 느낌과 함께 팔이 우뚝 멈췄다.

가볍게 힘을 줘봐도 마찬가지였다.

강하게 고정된 팔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시조.

“아… 이게 아닌데. 난감하네.”

시선을 그에게 돌려보니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엘릭과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도… 재미있겠는데?”

쾅!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시조가 어마어마한 기운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콰르르르르!

흠칫!

엘릭의 피부가 저려왔다.

마신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위협을 느끼게 하다니.

새삼 시조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지금까지 엘릭은 마에 빠져들지 않도록 일부러 힘을 제어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조의 기세를 보니 겨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전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우….”

그는 깊게 심호흡하더니 그대로 마기를 더욱 받아들였다.

화아아악!

기존보다 상당한 양의 마기가 체내에 들어오더니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마신의 기억.

동시에.

-그래, 나를 더 받아들여라.

-저항하지 마라. 그 힘은 네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나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냐.’

하지만 엘릭은 마신의 힘을 최대한 받아들이면서도 최소한의 의식은 남겨두었다.

마신이되 마신이 아닌 모호한 상태.

번쩍!

그리고 그 순간.

엘릭이 안광을 터뜨리며 눈을 떴고.

단숨에 사계 중 삼계의 힘을 차례대로 개방했다.

겨울, 봄, 여름.

마신의 힘을 가진 만큼, 사계의 힘 또한 증폭될 대로 증폭된 상태였다.

순식간에 세계가 얼어붙고 하늘에서 폭설이 내리기 무섭게.

갑자기 날씨가 뒤집히며 얼음 위로 말 그대로 불바다가 펼쳐졌다.

엘릭은 그 힘과 마기를 담아 주먹을 앞으로 뻗었고.

어느덧 지척까지 도달한 시조 또한 웃는 얼굴로 똑같이 주먹을 뻗었다.

‘역시.’

메르빙거는 메르빙거인 모양이었다.

엘릭은 그런 시조의 눈빛에서, 순수하게 싸움을 즐기고 있는 즐거움을 엿볼 수 있었다.

“날 꺾는다고 했지?”

그러자.

“좋아 한번 해봐. 그게 내가 바라던 거니까.”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내면세계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의 강한 빛이 터지더니.

그대로 안배가 소멸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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