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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75화 (374/405)

2부 115화

용과 마

악마수의 열매를 먹었다면 육체의 성장은 물론, 마기량도 증가했을 텐데.

충분히 마기를 활용해 각자가 가진 고유의 인장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무투파였다.

하지만 율호왕은 그렇다 치더라도, 숀은 겨울 6장. 마법에도 꽤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지식을 나눠줬으면 마족들이 알아서 터득했을 텐데.

하지만 마족들은 하나 같이 숀이나 율호왕과 같은 전투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숀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야 선택과 집중이지.”

“아.”

“애당초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잖아?”

엘릭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확실히 무투와 마법을 동시에 가르치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긴 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같이 붙잡으려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용들은 의외로 몸이 약하단 말이지. 마법에는 능하고. 그럼 약점을 공략하는 게 낫잖아?”

빠악!

그 순간, 전사들이 용의 날개를 꺾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용들의 날개가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크헝헝헝!

확실히.

숀의 말대로 호기롭게 근접전을 펼친 용들의 결말은 영 좋지 못했다.

덩치만큼은 마족들의 몇 배는 되지만.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그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눈 깜짝할 새에 비행 수단이 사라진 용은 허공에서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추락했다.

그럼에도 전사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상하좌우가 마구 반전되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용의 비늘을 붙잡고 계속해서 무기를 휘둘러 용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콰아아앙!

결국 용은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엄청난 크기의 먼지를 일으켰고.

그 속에서 전사들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엘릭은 신기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건 또 처음 아는 사실이네.’

넘치는 위압감만큼이나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하긴 그러니 그만큼 마법에 능통하게 된 것일까?

‘그럼 그 약한 몸뚱이로 이렇게 다짜고짜 육탄전을 감행하려 했던 건데… 대체 그동안 얼마나 얕보였던 거야?’

만일 조금이라도 마족들을 제대로 인지했다면, 이렇게 무리해서 성으로 쳐들어오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러는 사이.

후우우웅!

용 군단이 단체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후퇴해라!]

[다시 재정비한다!]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겠다 판단하고는 퇴각하려는 것이었다.

너무 고도가 높아 전사들이 더는 추격하지 못하는 상황.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엘릭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후우웅!

그가 손을 앞으로 뻗어 기운을 일으키자, 용들의 그림자가 크게 일렁였다.

흉신의 인장.

그리고 동계의 인장과의 연계.

“【속박해라】.”

촤르르르륵!

그림자 속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쇠사슬이 무더기로 솟구쳐 올라 용들을 팔다리를 꽉 붙잡았다.

[이건 또 무슨?]

[겨, 겨울…?!]

도망치려던 도중 발목이 붙잡히자.

용 군단은 비명을 지르며 쇠사슬을 끊기 위해 악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날개를 크게 펄럭이고, 팔다리를 힘차게 흔든다 해도.

엘릭의 마법은 쉬이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거나, 아예 날지도 못하게 날개를 칭칭 감아버렸다.

그리고.

동계의 권능

절대영도

쩌저저적!

속박된 용들에게 매서운 눈보라가 불어 닥쳤다.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며 사방이 눈과 얼음으로 가득 찼다.

[아, 안 돼!]

[크아아악!]

자신들의 몸이 빠르게 얼어붙는 모습을 본 용들이 발악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꼬리부터 날개까지 전부 꽁꽁 얼더니. 이내 추락하기 시작했으니까.

엘릭은 거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화악!

그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폭염의 인장이 나타나며 강하게 빛을 발했다.

이어, 안배로 넘어오기 전 미르카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손을 위로 뻗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미르카가 그랬던 것처럼.

엘릭의 주변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여름의 힘을 발동할 때마다 폭염의 인장은 더욱 강하게 빛을 내뿜었다.

동시에 그 형태가 이리저리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화륵!

인장에서 순간적으로 불이 타올랐다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곳엔 하계의 인장이 자리했다.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폭력적으로 휘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이게 미르카의 힘이란 말이지.’

폭염의 인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마력.

엘릭은 거칠게 날뛰는 힘을 단숨에 제어했다.

그리곤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냈다.

하계의 권능

유성우

삽시간에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마법진에서 엄청난 수의 불덩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그 크기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하나하나가 거의 용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의 열풍이 불어 용들을 집어삼켰다.

쿠쿠쿠쿵-

콰르르릉!

용들은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후끈 달아오른 온도에도 얼음 사슬은 좀처럼 깨지질 않았다.

한 손에는 여름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겨울을.

절대 양립할 수 없을 두 개의 기운을 같이 다루는 모습은 괴기(怪奇)하게 보일 정도였다.

[…!]

[…!]

[…!]

용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의 향연 앞에서 정신이 아늑해지는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쿠르르르릉-

붉은빛과 함께 용들이 모두 묻혀 사라졌다.

* * *

연전연승.

조금도 밀리지 않고 용 군단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 나가자, 마족들 사이에서 엘릭에 대한 신앙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맹목적인 믿음.

광신(狂信)이었다.

‘마왕님만 믿으면 된다.’

‘싸우라면 싸우고, 도망치라 하면 도망친다.’

‘생각은 버리고 오직 그분의 명령에만 따른다.

‘그렇게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작은 의심조차 없는 무한한 신뢰.

굳이 묻지 않아도, 엘릭은 그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신앙심이 올라갈수록 격이 상승하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툭, 투둑!

심지어.

“크윽! 뭐지?”

이마 정중앙에서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더니 뿔 하나가 더 돋아났다.

엘릭은 놀란 얼굴로 새로 자란 뿔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악!

곧바로 등 뒤에서 검은 날개가 몇 쌍이나 크게 솟구치면서 주변을 가득 휘감았다.

진정한 마왕의 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아니, 그를 가리켜서 단순히 ‘마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전장에 드리운 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웬만한 마왕들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

실제로 지금 가진 힘이라면 아자젤이나 릴리스 같은 대마왕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신(神).

그래. 정말 여기서 그는 신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족들이 그에게 무한하게 바치는 신앙은 실시간으로 그를 신의 반열로 끄집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엘릭은 스스로의 변화에도 적잖게 놀라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날 더 이상 이길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

엘릭에게서 비롯된 그림자는 이제 성채를 완전히 물들일 뿐만 아니라, 하늘 전체를 뒤덮으면서 거대한 마신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용들조차도, 그 거대한 마신의 형상 앞에서는 아주 작고 초라할 뿐이었다.

실제로 아직도 많은 숫자의 용 군단도 이제는 더 이상 접근할 생각도 못 하고 있었고….

엘릭은 이제 그림자에 반쯤 육체가 동화된 채로 전방을 주시했다.

남아있는 용 군단에서 다른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골드 드래곤의 위에서 가만히 전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메르빙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툭!

메르빙거는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간단한 산보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공간이 접히면서 엘릭과의 간격이 좁혀졌다.

파라락!

엘릭도 검은 날개로 한껏 홰를 치면서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다 정중앙에 도착했을 때.

엘릭은 메르빙거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나와 똑같이 생길 수가 있나?’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미묘하게 다른 줄 알았더니.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뜯어보니 그냥 실제 자신의 얼굴과 완전히 똑같았다.

엘릭을 이리저리 살피는 건 메르빙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흐음?”

그러다 메르빙거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묘한 어투로 말했다.

“너, 이 안배를 겪는 후손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뭐?’

엘릭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만 같았다.

안배.

아주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안배가 뭐였지?

나는 왜 저 메르빙거를 보고 ‘나와 똑같다’고 생각한 거지?

그럼 나는 어떻게 생긴 거지?

아니, 그보다.

‘내가… 누구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 기분이었다.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인데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나는 안배를 받는 엘릭 메르빙거. 메르빙거 가문의 후손.’

흐릿한 기억의 파편 속에서 원하는 답을 찾아 떠올렸지만.

그마저도 모래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멍해지며 마치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 홀로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닌가? 나는 누구지?’

그러다 문득 제 몸에 시선을 돌렸다.

머리에 달린 세 개의 뿔.

등에 달린 날개와 수많은 인장.

그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무언가 떠올랐다.

‘나는… 메피스토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메피스토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괴리감이 있었으니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

그렇다면.

나는.

‘진짜… 마신이었던가?’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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