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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73화 (372/405)

2부 113화

용과 마

그로부터 며칠이 더 흘렀다.

이젠 세계수에 힘을 주입하고도 상당한 양의 마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당연하지만 엘릭은 이 힘을 가만히 놀게 놔두지 않았다.

애당초 악마수의 열매를 먹어 인장을 각성해 마기를 증폭시킨 건 메피스토를 흉내 내기 위함이었으니까.

마기에 여유도 생겼겠다, 이젠 그 힘을 온전히 인장이 쏟아 부을 차례였다.

“후우….”

그는 자리에 앉아 호흡하며 마기를 운용했다.

체내에 흐르는 힘이 악성의 인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왔다.

우우웅!

아직 인장을 진화시키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하루가 멀다고 늘어가는 마기량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반면, 외형에서만큼은 변화가 일어난 상태였다.

“엘릭. 수련을 잘 되고….”

흠칫!

간만에 엘릭을 보러 온 숀이 제자리에 굳어 놀랄 정도였다.

처음에 봤던 인상과 다르게 눈매는 날카로워진 지 오래였고, 귀를 살짝 덮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으니까.

“음? 숀 언제 온 겁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숀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양옆으로 자라 말려 있는 뿔이었다.

일자로 곧게 뻗어 있던 과거와는 확연히 상반된 모습.

그리고 산양과 같은 뿔은 꼭 누군가를 연상케 했다.

얼굴 생김새도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수련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당사자인 엘릭은 그 사실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방금 오긴 했는데 모습이… 많이 변했군.”

“제가요?”

“그래, 꼭 메피스토를 닮은 것 같은데?”

“…저 놀리시는 거죠?”

“진담이다만.”

그 못생긴 얼굴을 닮았다고?

엘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고, 숀이 보란 듯이 곁에 있던 손거울을 건네주었다.

“아니, 뭔, 이런… 젠장….”

엘릭은 얼굴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쥐어뜯었다.

인장이야 그렇다 치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데 생김새까지 닮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메피스토가 들었으면 면전에 대고 욕을 해댈 일이었지만.

엘릭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이 떠나가라 오열했다.

* * *

잠시 뒤.

“…하아. 서둘러서 여길 빠져나가던가 해야지, 원. 그보다 여긴 어쩐 일로?”

엘릭은 엄지와 검지로 콧잔등을 어루만지면서 숀에게 물었다.

원래라면 그는 한창 마족들을 훈련시키고 있어야 했으니까.

악마수의 열매를 나눠준 이후. 마족들은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 숀과 율호왕의 힘든 훈련에도 곧잘 따라주고 있었다.

몇몇은 숀과 율호왕이 놀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했고.

그런데 굳이 시간을 내 이곳에 왔다면 어떤 용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슬슬 병사들에게 얼굴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지. 너무 오랫동안 여기 박혀 있어서 다들 자네가 무사한지 궁금해 하더라고.”

“아, 그럴만 하네요.”

집무실에 틀어박힌 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 병사들의 사기도 올릴 겸 해서 나와 달라는 모양이었다.

‘내 성장을 보면 충분히 자극도 될 거고.’

엘릭도 계속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셨기 때문에 나쁠 것이 없었다.

“좋습니다. 바로 가죠.”

엘릭은 곧바로 숀을 따라 훈련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째 숀이 더 기대하는 눈치다?’

훈련을 맡길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하기 싫다고 징징대더니.

뭐가 좋다고 저렇게 입꼬리가 씰룩씰룩대는 걸까?

의문은 곧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확 풀렸다.

“…이게 뭐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떤가? 대단하지?”

“이 사람들이 그때 그 병사들이라고요?”

“당연하지. 하하하. 이 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을 것 같으냐?”

숀은 자신만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련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앳된 모습이 남아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건장한 장정이 된 모습이었다.

청년들은 척 보기에도 믿음직한 전사가, 그리고 노인들은 허리가 곧게 펴진 채 백전노장의 기세를 풍겼다.

더군다나 여자 마족들 또한 기사가 되어 힘을 보태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하지만 단지 신체 능력이 향상됐다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래. 나와 율호왕의 가르침이 제대로 효과를 보이고 있지.”

엘릭의 시야에 마족들이 대련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

처음 봤을 때처럼 겁에 질린 눈빛을 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용 군단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

독기를 가득 품고 훈련에 매진하는 군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나하나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정예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자신의 외형에 관한 사실도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얼굴이 더 못생겨졌지만 뭐 어떠한가.

성장한 마족들만 봐도 배가 부른데.

한 병사와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그는 엘릭을 보자마자 당황하지 않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마왕님께서 오셨다, 전군 차렷!”

즉시, 병사들이 훈련을 멈추고 엘릭이 있는 쪽을 향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경례!”

“충!”

“충!”

그리고 이어진 말에 각자 무기를 앞으로 세웠다.

군기마저 완벽하게 잡혀있자, 이제야 제대로 된 군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엘릭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그가 경례를 받아주자, 병사들은 무기를 내리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잠깐의 고요.

이어, 엘릭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뿌우우우우우-!

적들이 나타났다는 의미의 뿔 나팔 소리가 성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때처럼 용들이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다.

이번에 반드시 끝내버리겠다는 듯이.

하지만 동요하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각 잡힌 자세로 엘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됐군.”

엘릭은 그런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참에 적들에게 훈련의 성과를 보여준다. 너희들은 달라졌고, 내겐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더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필요 없다. 그동안 너희들이 당한 분노를, 원한을 전부 적들에게 쏟아 부어라!”

“우리는 방어가 아닌 공격을 할 것이다. 전군 자리로!”

쿵, 쿵, 쿵, 쿵!

엘릭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훈련받은 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공성 병기를 준비하고, 성벽 위로 올라 적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기사!”

이어진 말에 성벽에 일렬로 선 기사들이 랜스를 역수로 쥐고 투창의 자세를 취했다.

화르르륵!

그녀들의 랜스에 짙은 마기가 매섭게 타올랐다.

그리고 용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진 그 순간.

엘릭이 목소리에 힘을 실어 외쳤다.

“쏴라!”

파바바바방!!

마기가 가득 실린 창이 날카롭게 용들을 향해 쏘아졌다.

* * *

콰아아아-!

용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마구잡이로 가르면서 날아들고 있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피해만 입고 퇴각했음에도.

그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지난 전투에서 겪었던 것들에 대한 대안책을 이미 상당히 많이 마련해둔 탓이었다.

그러던 그때, 저 멀리 마족의 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에 있던 마족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웃기지도 않는군.”

선두에 있던 용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대비를 한다고 한들,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다른 용들 또한 마찬가지.

선두에 있던 용과 같은 생각인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용 중 누구 하나 패배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눈빛.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의 전투로 적들의 전력은 이미 전부 파악한 상태.

풍기는 기세가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나, 병사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단 한 명.

마족들의 사령관만큼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상대하기 위해 합류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고대의 용이시여.]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용의 물음에 곁에 있는 녹색의 거룡(巨龍)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에인션트 드래곤.

일반적인 용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크며.

몇 배 이상의 마력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고룡.

오직 저들의 사령관 하나를 잡기 위해 여섯 마리의 에이션트 드래곤 전부가 참전한 상태였다.

이러니 맞붙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할 수밖에.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콰콰콰콰-!

성벽에 일렬로 선 마족들이 마기를 가득 담은 마창(魔槍)을 날렸다.

그것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일직선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몸도 풀 겸 저런 장난감 정도는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그린 에이션트는 콧방귀를 뀌며 혈혈단신으로 군단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마창이 코앞까지 도달하자, 그는 우렁찬 포효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크와아아아아!

그러자 어마어마한 기운이 전방을 향해 터져 나왔다.

마족이 날린 무기들을 일제히 허공에서 파쇄시킬 기세.

하지만.

[무슨…!]

창은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린 에이션트의 기운을 버텨내면서 쭉쭉 날아드는 모습.

잘 벼려진 창끝이 용의 비늘보다도 더 날카롭게 보였다.

콰콰콰콰-

기운과 창이 맞닿은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거센지, 마창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로 소닉붐이 마구 일어날 정도였다.

그린 에이션트는 다시금 힘을 터트렸지만, 그럼에도 창은 끝끝내 기운을 꿰뚫고 그에게 다다르고 말았다.

[…!]

쾅쾅쾅쾅!

쿠르르르릉-

콰르르르…!

수십 겹의 보호막과 마창이 부딪치고 박살나길 여러 차례.

시커먼 폭연이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창은 쉬지 않고 날아와 보호막을 계속 두들겨댔고.

결국 얼마 있지 않아 방어막이 모조리 무너지고 말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뒤에 있던 그린 에이션트는 그대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 용언이 통하지 않…!]

『어째서긴.』

그린 에이션트는 절대적으로 믿었던 자신의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다가, 뒤늦게 귓가에 꽂힌 음성을 듣고 말았다.

나지막하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서늘케 하는 목소리.

‘마왕… 아니, 마신!’

저 머나먼 성곽 위로.

거대한 산양의 뿔을 가진 늑대가 이쪽을 주시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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