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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72화 (371/405)

2부 112화

용과 마

‘무슨 일이 있었군.’

숀은 엘릭이 집무실에 있던 근 며칠간 뭔가를 깨달았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봤던 엘릭은 그런 마법사였으니까.

단순히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경지가 오르는 정도인데, 거기다 참고까지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보니 너무 부러워 죽겠군. 제기랄.’

숀은 메르빙거의 재능을 속으로 욕하면서 물었다.

“세계수를 이용해 악마수를 깨운 거냐?”

“맞습니다.”

“허!”

역시 메르빙거는 메르빙거였다.

숀이 혀를 찼다.

“원래라면 세계수를 완성하고 보석부터 여는 게 순서 아니냐?”

“전 그냥 이렇게 하니까 되었습니다만.”

“….”

“무슨 문제라도?”

“…아니다. 됐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그럼 사계의 열매는? 그것도 생략됐나?”

“그건 또 뭡니까?”

“…악마수를 맺은 놈이 사계의 열매를 몰라?”

“네.”

“대체 순서가 어떻게 된…!”

숀은 머리를 쥐어 쌌다.

아무리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이놈의 메르빙거는 영 수수께끼투성이였다.

아니다. 이건 따지자면 미르카의 잘못이었다.

이런 곳에다 던지기 전에 기본기부터 가르쳐줬어야 하지 않은가?

‘그냥 알아서 잘해 봐라, 뭐 그런 건가….’

방목을 하는 것도 메르빙거의 특성인가?

“얘기하자면 길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평범한 열매와 달리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이다.”

그것들은 보석 열매와 비슷하지만, 사계의 속성을 품고 있었으니까.

순도는 물론이고 그곳에 들어있는 마력의 격 자체가 달랐다.

“아, 그래요?”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엘릭은 아직 사계의 안배를 전부 마치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계의 열매를 더 물어보는 건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여유라도 있으면 모를까.

딱히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악마수 열매를 나눠줘 마족들을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다만.

“그래도 평범한 열매라니. 그 말은 좀 듣기 영 거북하네요.”

“…응?”

“아무래도 이게 단순한 악마수 열매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거 하나만 반으로 갈라 보세요.”

…얘가 또 뭘 보여주려고 저러는 거지?

숀은 영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들고 있던 열매를 반으로 쪼개보았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허…!”

겉보기에는 분명히 악마수의 열매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안엔 새빨간 루비가 들어있었다.

오직 마기로만 가득 차 있어야 할 열매가 어째서?

숀은 어서 답을 알려달라는 듯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엘릭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후후. 어때요? 확실히 다르죠?”

엘릭이 가슴을 당당하게 펴며 말했다.

“보석과 열매를 섞어 보려고 꽤나 애먹었다구요.”

악마수의 열매를 먹으면 마기가 성장하고, 보석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마력이 성장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성질은 비슷해도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것.

엘릭이 지닌 세계수는 하나이다.

이걸 스위치 누르듯이 악마수와 보석나무, 두 가지를 계속 번갈아 가면서 성질을 바꿀 수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안 된다면 제약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엘릭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능하기만 하다면, 두 기운을 동시에 쓰는 엘릭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텐데.

“뭐… 보시는 것처럼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서 보석과 열매를 섞으려고 여러 고민에 빠졌고.

결과는 절반의 성공.

마력과 마기를 동시에 품은 열매를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다.

다만, 완벽한 융합은 아직 여러모로 무리인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은 과육과 씨를 분리하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병력 강화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과육에 마기가 상당한 것은 물론, 씨에 마력 또한 포함돼 있으니 효과는 확실할 거다.

적어도 용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숀과 율호왕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기를 정화시켜 만든 거라. 두 분에게도 해가 되진 않을 거구요.”

“….”

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세계수를 악마수로 만들어 열매를 맺게 한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과일을 만들어버리다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모르는 건지.

정작 당사자인 엘릭은 제법 태연한 모습이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표정.

동시에.

‘그러면서도 우리까지 배려하다니. 대단하긴 하군.’

보통 대부분의 이런 이들은 사소한 것들을 놓치기 마련이니까.

그만큼 엘릭의 시야가 넓다고 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아이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엘릭이 만들어낸 이 열매만 있다면.

‘어쩌면 완전한 부활(復活)도 가능할지 모르겠군….’

숀의 동공에 들고 있는 악마수가 또렷하게 맺혔다.

* * *

엘릭의 말대로, 숀과 율호왕은 마족들에게 열매를 나눠주기 위해 병사들에게 향했다.

흠칫!

한 번 숀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어서일까.

그가 다가오자 병사들은 하나 같이 몸을 떨며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받아라.”

숀이 무심하게 들고 있던 상자에서 열매를 툭 던지자, 그들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량이 부족해 있는 것도 겨우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이건…!”

열매를 받은 마족이 감격하는 표정으로 숀을 바라봤다.

주변에 있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

“먹을 거다!”

“식량이 도착했어!”

“아아, 다행이야.”

이미 숀에 대한 공포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대신에 숀와 율호왕이 들고 있는 상자에 시선이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모습.

“모두에게 나눠줄 정도의 충분한 양이니, 가만히 앉아서 차례를 기다려라.”

숀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경고하듯 말했다.

이들이 얼마나 먹을 것에 굶주려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기존에 숀이 보여줬던 모습 덕분에, 병사들은 곧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일반 시민들 또한 마찬가지.

질서가 어느 정도 잡힌 뒤에야, 두 사람은 열매를 하나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족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둘이 나눠주는 열매를 받았다.

그러기 무섭게 그들은 곧장 자기 입으로 열매를 가져갔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몇몇은 같이 데려온 아이들에게 먼저 먹이기도 했다.

숀과 율호왕은 아직 양이 많으니 급하게 먹지 말라며 사람들을 다그치면서도, 엘릭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이 양식은 모두 마왕께서 주신 거니 그분께 감사드려라.”

“아아!”

“마왕님께서 저희에게…!”

“어디서 이런 걸 구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기에도 많이 바쁘셨을 텐데. 흑흑!”

병사와 시민들이 하나 같이 감동한 눈빛으로 변했다.

꽤 오래 굶었음에도, 먹는 걸 잊고 엘릭이 있을 집무실을 바라볼 정도.

용 군단을 막아준 것도 모자라, 굶주린 자신들에게 먹을 것까지 구해주다니.

이제 마족들 사이에서 엘릭은 단순한 지도자나 성주가 아니었다.

그 이상.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 하는 존재.

그들의 머릿속에 엘릭의 존재는 그렇게 각인됐다.

어떻게 보면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준 셈이니까.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족들은 받은 열매를 먹으면서, 끊임없이 엘릭을 떠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 * *

엘릭이 마족들에게 열매를 나눠주기를 며칠.

그는 조금씩이지만 자신의 마기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해. 어제보다 양이 늘었어.”

악마수의 열매를 수확한 이후, 엘릭은 계속해서 세계수에게 마기를 주입하는 중이었다.

그 탓에 체내에 보유한 마기의 양이 이제 거의 바닥났던 것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 양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물을 팠더니 지하에서부터 우물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신앙이야.’

인간들의 관념이, 신과 사계 그리고 대마왕들을 만든 것처럼.

엘릭이 구해준 마족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면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단지 마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과 함께 영혼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정신이 고양되는 기분.

예전에 메피스토와 하나가 됐을 때의 감각과 아주 비슷했다.

더군다나.

육체와 연결된 세계수의 기운이 전과 달라졌다.

마나 회로가 넓어진 것은 물론 마기의 순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상태.

심상을 그려보니. 훨씬 더 두터워진 이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엘릭과 함께 성장하는 만큼, 이그 또한 마찬가지로 성장한 것이었다.

‘신이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건가?’

엘릭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족들로부터 신앙을 얻은 지 고작 며칠.

그럼에도 그로 인한 영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만일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더 나아가 더 많은 수의 마족이 자신을 추앙한다면.

그로 인해 그들의 관념에 영향을 끼친다면.

어쩌면 정말로 신으로 초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피식.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엘릭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마족의 신앙도 신앙이라 부를 수 있나?’

어불성설이 아닌가.

인간들에게 악이 되는 존재인 마족에게 신앙이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마족들의 신앙을 받는 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전 마족이 우러러보고.

메피스토조차 이름을 꺼낼 때 존대하며 예를 표하는 존재.

엘릭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마신(魔神).

언젠가 메피스토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들이야말로 신이 되다 만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마신이라 부를 법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어떻게 보면 한 끗 차이였다.

지금과 같이 마족들이 엘릭에게 신앙을 갖는 정도에서 그치면 거기까지이고, 만일 그 이상이라면 신이 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엘릭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늘고 있는 마기를 느꼈다.

‘아니면.’

엘릭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다 마신이 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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