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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71화 (370/405)

2부 111화

용과 마

숀과 율호왕은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았다.

충분히 일리가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

“네가 더 잘 알 테니 알아서 하겠지.”

“도와줄 건 없고?”

엘릭이 괜찮다며 고개를 젓자, 둘은 알았다며 성벽으로 향했다.

직접 경계를 서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엘릭은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일단 우선적으로 원죄의 인장부터 깨우쳐야 해.’

그는 눈을 감고 자리에 앉은 채 생각했다.

그것이 메피스토의 흉내를 낼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였으니까.

다행이라면 원죄의 인장을 일깨우기 위한 재료는 전부 가지고 있다는 것.

“후우….”

엘릭은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주먹을 꽉 쥐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기운을 끌어올리자 마기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피스토와 동화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기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서.

‘전지전능.’

콰아아아아아!

마기가 빠르게 전신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춘계의 인장이 발동하며 부족한 마기를 계속해서 회복시켜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때의 감각을 기억해도 단번에 ‘원죄’에 이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 해.’

엘릭은 이제껏 끌어올린 힘을 가지고 머릿속에 다른 이미지를 그렸다.

과거, 노루스 재상에게서 뽑아냈던 새끼 마족.

그리고 그런 녀석을 잉태하게 했던 악마수의 열매.

엘릭은 바로 그 악랄함을 가진 순수 결정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맺을 나무는.

엘릭의 몸에 아주 잘 자리하고 있었다.

* * *

엘릭은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내면을 관찰했다.

그 안에는 세계수가 뻣뻣한 가지를 활짝 펼치면서 서 있었다.

뿔 달린 마족으로 모습이 변했지만, 여전히 잘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계수가 비단 몸뿐만이 아니라 심상과 정신에까지 자리한 덕분이었다.

‘이그를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가 감히 세계수를 악마수로 만들겠다는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원죄의 인장을 얻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석나무와 악마수의 차이점은 단 하나였다.

마나와 마기 중에서 무엇을 영양분으로 삼느냐.

지금껏 마나와 마기를 동시에 흡수하던 세계수였으니, 한쪽의 비중을 높인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마나가 훨씬 많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마족이 되며 어느 때보다 마기가 충만한 지금이라면 충분히 세계수의 성질을 바꿀 수 있을 터.

콰아아아아-

엘릭은 심상을 그리면서 지금껏 일으키고 응축했던 모든 마기를 세계수의 뿌리를 향해 내보내기 시작했다.

꿈틀!

그러기 무섭게 이그가 반응했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량의 마기를 단번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마기를 흡수하는 모습.

쫘아아악!

심지어 점점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탓에, 춘계의 인장마저 가속해야 할 정도였다.

“후우…!”

엘릭은 계속 호흡하며 마기를 내보내는 데 집중했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순식간에 등이 축축해졌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그런지,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엘릭은 정신을 강하게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기를 보내기 위해서.

그러한 노력 덕분일까.

콰드드득-

마기는 뿌리를 거쳐 줄기를 타고 위로 뻗어 나가면서 끝끝내 가지 끝까지 다다랐고.

봄이 찾아온 듯, 그곳에서부터 하나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꽃잎들은 심연과도 같은 어두운 색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이 자리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엘릭은 다시금 집중에 박차를 가했다.

아직 열매를 맺은 건 아니니까.

안정화가 된다면 모를까, 여기서 조금이라도 힘이 부족하다면 기껏 피워놓은 꽃들이 전부 시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지.’

콰콰콰콰!

엘릭은 최대한 마기를 긁어모아 세계수에 주입했다.

그렇게 얼마나 힘을 쏟아부었을까.

어느덧 세계수는 완전한 악마수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마기를 내뿜으며 어둡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하기 무섭게, 꽃잎이 나풀거리며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투둑!

그리고 그 꽃 중심에서 새하얗고 작은 열매가 맺혔다.

검게 물든 세계수의 가지와 확연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크기는 보잘것없이 작은 상태였다.

‘아직이야….’

엘릭이 계속해서 기운을 불어넣었다.

부여되는 마기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열매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조금씩 크기가 커졌다.

‘조금만 더…!’

아직은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

그때, 백옥같이 하얗던 열매가 위에서부터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됐다!’

그리고 완전히 색이 변했을 때.

툭!

열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뒤를 이어, 여러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에 자라난 무수히 많은 열매가 우르르 떨어졌다.

“하아….”

거기까지 보고 나서야, 엘릭은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세계수가 마기를 먹어 성질이 변한 지금부터는 조금 전처럼 무리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는 바닥에 널리고 널린 악마수 열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름처럼 괴상하게도 생겼네.’

열매는 색만 다를 뿐, 크기는 사과와 비슷했다.

하지만 유독 두드러지는 점이 하나 있었다.

겉면이 주름진 것이 마치 절규하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는 것.

어딜 봐도 전혀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은 모습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엘릭은 망설임 없이 열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작!

그리고 그 순간.

“…!”

체내에 순도 높은 마기가 보충되며 전신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더니,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엘릭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크윽…!”

엘릭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워낙 순식간에 강한 힘이 들어온 탓이었다.

그렇게 호흡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복식 호흡을 하길 여러 차례.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되자,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엄청나잖아?’

몸의 여기저기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확실히 메피스토의 흔적이 남은 악마수의 열매라 그런지 효과가 확실했다.

그리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지지직!

오른팔에 작은 불꽃이 튀기며 무언가 그려지고 있었다.

엘릭은 단번에 그것이 인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장이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끼 산양의 모습.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엘릭은 직감적으로 인장이 지닌 진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질고, 악독하다.”

그래서 악성(惡性).

화악!

그 순간, 인장 위로 검은빛이 발했다가 사라졌다.

인장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성공이다.’

엘릭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인장의 트리거를 알아내기 위해 메피스토에게 그렇게 부탁을 해도 알아내지 못하던 것이, 이제야 겨우 힌트를 얻게 된 셈이니.

그는 더 자세한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인장에다 마기를 쏟아부었다.

후우웅!

순간적으로 마기가 가속하며 터질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기를 증폭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모양.

인장을 확인까지 한 이상, 더는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인장을 성장시키려면 앞으로 갈 길이 멀었으니까.

“좋아, 그럼 계속 먹어볼까?”

엘릭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세계수가 있는 심상으로 들어갔다.

먹을 열매들이, 아주 많았다.

* * *

그 뒤로, 엘릭은 계속해서 열매를 주워 먹었다.

부족하다 싶으면 마기를 공급한 뒤, 열매가 맺히면 먹고의 반복.

그럴 때마다 인장이 성장하며 마기의 질이 달라졌다.

들어오는 마기가 달라진 만큼 열매에도 변화가 생겼다.

‘뭔 크기가 거의 멜론만 하냐.’

엘릭은 근처에 있는 다른 열매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이건 모양이 꼭 람부탄처럼 생겼고.’

단순히 사과와 같은 외형뿐 아니라, 갖가지 모습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체적으로 담겨있는 마기량 자체가 전과 달라서, 성장 속도도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는 것?

그렇게.

어느덧 새끼였던 인장 속 산양은, 멋들어지게 뿔이 자란 성체가 되었다.

* * *

“여기, 선물이에요.”

엘릭이 다짜고짜 바구니를 내밀며 말했다.

“…뭐?”

숀과 율호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안엔 모양이 제각각인 검은 사과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엘릭이 한 게 있다면 집무실에 처박혀 있던 것이 전부.

그런데 갑자기 밖으로 나와서는 선물이라고 이런 것들을 내미니 황당할 수밖에.

심지어 이 근처엔 과일을 구할 만한 나무도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바구니 속 과실은 흠집 하나 없이 상태가 아주 좋아 보였다.

율호왕이 신기하다면서 과일을 이리저리 살피던 중이었다.

“음?”

그를 따라 엘릭의 선물을 관찰하던 숀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열매에 담긴 마기가 범상치 않은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일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악마수의 열매 아니냐?”

“네, 맞습니다.”

엘릭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양이 좀 되는데 병사들한테 좀 나눠주시죠.”

“그러기야 하겠다만… 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숀이 알기로 악마수는 흑의 설원 깊은 곳에서나 존재하는 나무였으니까.

특히 이런 열매는 공급 받는 마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크기가 커지고, 끝끝내 마족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런 허허벌판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절대 아니었다.

“메피를 좀 족치니까 나오던데요.”

“메피스토펠레스를?”

“네.”

엘릭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숀은 순간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메피스토는 안배에 들어올 수도 없을뿐더러, 그가 협박한다고 해서 순순히 들어줄 마족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멀뚱멀뚱한 그의 얼굴을 보면서.

엘릭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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