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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69화 (368/405)

2부 109화

용과 마

여태껏 세상에 알려지기로.

마법은 원래 오직 용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등 기술이었으나.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이 ‘태초의 용’으로부터 마법을 전수 받고, 이후에 인간의 마법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마법을 만든 건 인간이란다.

그것도 메르빙거.

‘아니… 정말 우리 선조들이 인간이 맞긴 맞나?’

만약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마법의 뿌리는 소수 일파에서만 쓰이던 주술에서 비롯된 게 분명했다.

기존에 알려진 상식에 완전히 반하는 내용.

엘릭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만일 이 내용을 그대로 들고 아카데미에서 발표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엘릭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흥분된 마음을 달래면서 계속해서 책자를 읽어 갔다.

「…마법이 생겨나자,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식으로써 활용하자는 쪽과, 마법을 신봉하여 지배를 위한 더 큰 힘으로 사용하자는 쪽.」

「확연히 다른 두 성향이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두 파벌은 이러한 의견 차이만 존재할 뿐. 큰 내분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두 개의 성향.’

이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각각 현재 어떤 형태로 남았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었다.

「메르빙거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규모를 확장하여, 어느새 세계에서 그들을 대항할 수 있는 곳이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대륙을 크게 개척하여 인간들로 채우는 것도 메르빙거였으며.」

「그 과정에서 용의 주인이 되고 거인의 왕이 되는 것도 메르빙거였다.」

「이때를 가리켜 우리는 말한다.」

「신화 시대(神話時代).」

“….”

엘릭의 가슴이 점점 무거워졌다.

「대륙에서도 소수에 불과했던 인간들이 대륙의 지배자가 된 시대.」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태동하고, 영웅담과 서사시가 전개되었던 시대.」

「인간이 가장 영예로웠고.」

「인간이 가장 비정했으며.」

「인간이 가장 참혹했던.」

「모든 것이 모순적이기만 했던 시대.」

.

.

「신화가 발전하면서 생활상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문화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탄생했다.」

「문명이 발전하고 개념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개념에 인간들의 믿음이 모이면서 신성을 얻어 저마다 다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앙을 바치기 쉬운 창천, 사랑을 말하는 자애 등이었다.」

‘신교 동맹에서 나에게 손을 내민 것도 이런 것 때문이었구나.’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메르빙거가 인류를 이끈 선지자 집단이고, 이로 인해 당대의 신들이 하나둘씩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라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시 메르빙거가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이때에 신들이 다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애와 창천의 신이 나에게 호의적인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렵네.’

팔락!

엘릭이 책장을 넘겼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들을 찾아 나갔다.

좀 더 많은 것들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

그의 시선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신앙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계절에 대한 믿음도 가져다주었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 사계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러했다.」

「반대로 순수한 공포를 가져다주는 음울한 개념도 여럿 생겨나니. 난교와 광기 그리고 종말이었다.」

‘이건 대마왕들의 진명이잖아? 앞에 건 사계고?’

그는 자신이 본 게 맞나 싶어 방금 본 구절을 다시금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신과 마.

분명 서로 다른 존재들이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인간의 관념에서 비롯된 존재들.’

용과 마가 거울을 마주한 관계인 것처럼.

두 존재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였다.

인간에게 이로운 ‘선’이면 신.

인간에게 해로운 ‘악’이면 마.

오직 이롭냐 해롭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본질은 같다.

어쩌면 이롭다, 해롭다의 차이도 시대에 따라서는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메피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흥! 신이라고 뭐 우리와 다를 바가 있는 거 같으냐?

-본왕과 같은 대마왕들은 신이 되다만 존재들이며.

-마의 근간의 되는 무지와 몽매 역시 결국 인간들의 관념에서 비롯되니.

-네놈들이 그렇게 울부짖는 신들과 큰 차이가 없단 말이다.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었는데. 역시 뼈가 담긴 말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이 얘길 신교 동맹에서 들으면 난리가 나겠는데.’

감히 신성한 신들과 역병과도 같은 마족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게 아니냐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을까?

차라리 거기서만 그치면 다행이지.

이단에 물들었다면서 성전을 선포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아….”

엘릭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법의 시초부터 인간 문명이 발전한 과정.

그리고 신과 대마왕들의 관계까지.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메르빙거라는 사실이지.’

그들이 인간들에게 마법을 일깨우고 힘을 쥐여 주면서 지금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지금 이 세계의 문명은 결국 자신의 가문이 뿌린 씨앗에서 발아된 과실이라는 것.

“하!”

그렇게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뭐가 이렇게 하나 같이 방대하고 장황하기만 한 건지.

자신은 그저 무너져가던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래서야 막중한 책임감만 얻을 뿐이지 않은가?

‘이런 건… 조부님께서나 짊어지시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같은 이기적인 작자가 정말 가문의 업을 이어도 되는 걸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한편으로는 선조들이 하던 일 따위, 자신이 알게 뭐냐고 항변하고 싶다가도.

또 막상 그러기에는 가문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커도 너무 컸다.

“….”

게다가 그는 그동안 정신적으로 모난 곳은 있어도 이따금 사계들이 보였던 ‘무게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인간들의 관념에서 사계와 대마왕들이 나온 건 알겠는데….’

메르빙거를 가문으로 만든 시조님.

마족들의 시초인 마신.

이 둘은 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그리고 하나 더.

‘왜 메피의 ‘원죄’는 보이지 않는 거지?’

지금껏 몇 권의 책자를 훑었지만, 메피스토와 관련된 내용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대마왕들의 진명이 나오는 순간조차도.

파라락!

엘릭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밤새도록 책을 읽어 갔지만.

끝끝내 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 * *

“후우… 여기에도 없네.”

엘릭은 너덜너덜해진 책자를 옆으로 밀어내곤 의자에 몸을 기댔다.

무심코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동이 트고 있는 게 보였다.

밤새도록 정신없이 책을 검토한 모양이었다.

오른편에 쌓여있던 책자들은 어느새 반대편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서재에 있는 책은 한 번씩은 다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한 상태.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녹음(綠陰)의 죄악>

‘녹음, 녹음이라….’

푸른 잎이 우거진 수풀, 혹은 숲을 의미하는 단어.

시조님이 ‘대자연’을 의미한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깨나 의미심장한 제목이었다.

엘릭이 마지막 책자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그쪽으로 손을 뻗던 그때였다.

쿠우웅!

아래에서 강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책상이 마구 흔들리면서 쌓아 올린 책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뭐지? 공격인가?’

엘릭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사내가 용의 군단을 이끌고 다시 돌아온 모양.

문제는 이제까지 아무런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기운을 끌어올리며, 황급히 폭발이 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뭐야, 저거?”

먼지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는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예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병사들을 공격한 대상이 용 군단이 아닌 숀이었다는 점이었다.

“다음 덤빌 놈은 누구지?”

그가 짝다리를 짚으면서 껄렁대는 모습으로 손을 까닥였다.

하지만 말투와 다르게 풍기는 기세는 만만치 않았으니.

뒤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몸을 흠칫 떨면서 그의 눈을 피했다.

“하아…. 훈련을 시킨다더니, 이런 짓을….”

엘릭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싱글싱글 웃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였다.

마족을 두들겨 패는 손맛이 있는 것일 테지.

저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숀도 메르빙거이긴 메르빙거인 모양이었다.

“다음은 누구냐니까?”

숀이 양손에 쥔 검을 휘두르며 다시금 병사들을 재촉했다.

그들은 숀의 작은 움직임에도 잔뜩 몸을 움츠리며 반응했다.

엘릭의 활약으로 사기가 고무되었었다고 해도, 병사들 전부 상태가 그리 좋지 않던 상황.

그런데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니 움츠러들 수밖에.

‘잡을 애들을 잡아야지.’

엘릭이 숀을 말리려던 그때였다.

“너희들 모두 지금으로선 2차 공세도 막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율호왕이 어느새 숀의 앞으로 나서면서 병사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위엄에 찬 목소리.

과연 한때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일국의 왕을 연상케 하는 위엄이었다.

몇몇 병사들은 겨우 용기를 내서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마왕이 있지 않냐고 말하고 싶겠지? 마왕이 모두 너희들을 지켜줄 거라고.”

율호왕은 단칼에 그들의 말을 잘랐다.

“웃기지 마라. 마왕이 너희들을 지켜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

“….”

“….”

“굴러라. 살고 싶으면. 버텨라. 너희 가족들을 지키고 싶다면.”

병사들은 저마다 흠칫 놀란 채로 서로 간에 눈치를 보기 바빴다.

율호왕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족들을 지키지 않을 텐가?

여기서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 아니, 마족이 어디에 있을까.

패악(?)을 부리던 메르빙거에게 쫓기고 또 쫓겨서 겨우 도착한 장소가 바로 이곳인데.

만약 이곳을 잃는다면 그들은 모든 터전을 잃고 만다.

가족들도 자신들도 모두 죽고 말 테지.

“강해져라. 어떻게든 살고 싶고, 가족들을 지키고 싶다면.”

“…!”

“…!”

“…!”

율호왕의 목소리가 마족들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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