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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66화 (365/405)

2부 106화

용과 마

이게 뭐 어떻게 된 일이지?

미르카와 짜고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빤히 바라보는데, 율호왕이 도리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족장?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이상한 놈이군.”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장난을 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세뇌 마법이라도 걸어놨나 보네.’

엘릭은 헛웃음을 흘렸다.

율호왕이 이렇다는 건 숀이나 황금사자도 이러지 말라는 법이 없잖은가?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안 온다면 내가 가지!”

갑자기 율호왕이 움직였다.

콰아아앙!

쐐애액-

‘제기랄! 생각할 틈을 안 주네!’

자신을 ‘용’이라고 생각했어도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엘릭은 양팔을 들어 마기로 몸을 강화시켰다.

콰앙!

“큭…!”

분명히 제대로 막았는데도, 적지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팔뚝을 불 속에다 담갔다가 빼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그래야지!”

하지만 율호왕은 공격이 막혔음에도 오히려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만큼 엘릭과의 싸움이 기대된다는 거겠지.

엘릭은 죽을 맛이었지만.

턱!

율호왕은 엘릭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고, 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을 거칠게 뿌렸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움직이는 맹수의 송곳니 같았다.

스스!

심상치 않은 기운.

엘릭의 뒷목에 소름이 쫙 돋았다.

본능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느낀 것.

‘맞받아쳐야 해!’

파악!

엘릭은 억지로 팔을 비틀어 율호왕의 손아귀로부터 빠르게 벗어났다.

우드득. 탈골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아랑곳할 때가 아니었다.

대신에 곧바로 자세를 갖췄다.

강체술

맹호출현 - 경(勁)

손날과 주먹이 정면에서 부딪쳤다.

콰아아앙!

강한 충격파가 터지며 서로를 거세게 밀어냈다.

“…!”

‘…역시 존재가 사기인 양반이라니까.’

엘릭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팔이 너무 찌릿찌릿했다.

아니, 용의 몸이 익숙하지도 않을 텐데 이 정도라고?

자신도 다른 몸이라지만, 그래도 마기를 다루는 건 능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율호왕은 그렇지도 않지 않은가.

확실히 괴물은 괴물이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지날수록 육체에 익숙해지겠지.

더 위험해지기 전에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기를 끌어 올리려는데.

‘왜 저러지?’

율호왕이 움직이지 않고 갑자기 자신의 양팔을 내려 보고 있었다.

뭔가 찝찝해하는 얼굴.

“뭔가 익숙한… 아니, 이상한… 뭐지?”

무언가를 떠올릴 듯 말 듯 긴가민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율호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엘릭은 순간, 율호왕의 탁한 눈빛이 맑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세뇌 마법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귀찮게, 정말…! 꺼져어어어엇!”

크허허허헝!

맹수를 연상케 하는 포효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확 하고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으… 으으…! 정말이지, 이놈의 마법은… 마음에 안 들어.”

율호왕은 여전히 고통으로 욱씬거리는 머리를 쥐어짰다.

“족장님? 정신이 드세요?”

“…너, 엘릭이냐?”

“대체 그 꼴은 뭡니까?”

엘릭은 여전히 레드 드래곤일 때처럼 붉은 머리칼을 한 율호왕을 위아래로 훑었다.

“종족 변경하기로 하셨어요? 이제 호인이 아니라 용인이신가?”

율호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딴 거 아니거든?”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잘 몰라. 폭발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이딴 꼴이니까.”

“혹시 미르카가 찾아왔습니까?”

“미르카? 아, 맞아! 기억 났다! 이 꼴이 되기 전에 미르카가 말을 걸었었지. 어떻게 알았냐?”

“저한테도 왔었으니까요.”

엘릭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역할을 강제로 쥐어 주고, 안배에다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너한텐 뭐라고 하던? 나한테는 퀘스트를 하나 주고 가던데.”

“퀘스트요?”

“성을 함락시키라고 하더군. 성공한다면 나와 전력으로 맞붙어준다면서.”

엘릭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율호왕이 충분히 혹할 만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함락이라니.

자신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아닌가?

“…그래서요?”

“어쩌긴? 꿩 대신 닭이라고 흔쾌히 승낙했지.”

“….”

엘릭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너는 나와 정반대의 퀘스트를 받았나 보군.”

“예, 뭐… 그런 셈이죠. 마족의 모습을 한 것도 미르카의 농간이고.”

엘릭은 불편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제 몸을 내려 봤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마족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하! 너희 메르빙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전 아닌데요?”

“무슨 소리냐. 너와 똑같은데.”

“…?”

“…?”

“…됐습니다. 말을 안 하고 말지.”

엘릭은 그런 마녀와 자신을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율호왕은 듣는 척도 안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에 미쳤다.

‘그럼 숀은 어디에 있는 거지?’

바로 그 순간.

쐐애애액!

용 한 마리가 군단에서부터 나와 이쪽으로 쇄도했다.

사뭇 날카로운 기세에 엘릭과 율호왕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린 드래곤이 이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보통 용종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고 약하기로 유명한 녀석.

‘그런 그린이 이만한 기세를 풍긴다고?’

뭔가 있다.

엘릭은 직감적으로 뭔가를 감지하고 마기를 바짝 끌어 올렸다.

녀석이 율호왕을 순식간에 지나치곤 엘릭의 코앞에 도달했다.

화악!

놈이 일으킨 풍압에 엘릭의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흩날리고.

촤아아악!

그린이 앞발을 거칠게 휘둘렀다.

엘릭은 몸을 회전시키면서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반격을 가하려는 찰나.

곧바로 그린의 길쭉한 꼬리가 채찍처럼 예리하게 엘릭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엘릭은 허공에다 마기를 뿌렸다.

마치 방패처럼 형성된 반투명한 구체.

까가가각!

거칠게 불똥이 튀어 오르고.

‘쳐내야 한다.’

엘릭은 오른발에 마기를 잔뜩 끌어모으면서 거세게 위로 걷어찼다.

목표는 그린의 턱.

빠아악!

그린이 아슬아슬하게 머리통을 비틀면서 꼬리 방향을 단숨에 틀었다.

찌르기에서 사선 베기로. 엘릭의 목덜미를 노리려는 것이다.

따다다당!

엘릭은 손날을 바짝 세워 꼬리를 튕겨내면서 마기를 뭉친 마탄(魔彈)을 날렸고.

그린은 용케 이리저리 피하면서 꼬리를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확실히 일반적인 그린과는 방식이 달라.’

보통 용들은 마법을 쓰려하지, 이렇게 육탄전을 감행하지 않으니까.

꼬리를 휘두르는 방식도 무척 익숙했다.

‘검술.’

그린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숀, 맞죠?”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

그린, 아니 숀이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다시 달려든 것은 그때였다.

엘릭은 숀의 눈빛에서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거….’

이는 자신과 한 판 붙자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시험이야.’

그의 인정을 받아 겨울을 완성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나도 전력을 다할 수밖에.’

쾅!

엘릭이 진각을 밟았다.

얼마 남지 않은 마기가 회오리를 그리며 솟구쳤다.

* * *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숀을 보면서.

엘릭은 눈빛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숀에게 인정받기 쉽지 않을 거야.’

애당초 숀은 엘릭이 만족스러울 만한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모습을 숨기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단순히 이기는 걸 원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엘릭은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세 갈래로 나뉘었던 손톱을 하나로 모았다.

눈에는 눈, 검술에는 검술로.

어느덧 손톱이 검의 모습을 갖췄다.

그리곤 곧장 겨울 6장의 힘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족의 몸인 탓에, 동계의 인장이 없어 이전과 같은 위력은 낼 수 없겠지만.

적어도 흉내는 낼 수 있겠지.

‘이왕 마족에게 빙의한 거 웬만하면 마기만을 사용하려 했지만.’

엘릭이 생각하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것만으론 부족할 것 같았다.

화아아아-

마기로 만들어진 검을 제외한 모든 곳에 신성력이 덧씌워지며 신체의 내구도를 끌어올렸다.

‘찌릿찌릿하네. 하지만 버틸 만하다.’

마족이 신성력을 발휘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다행히 엇비슷한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마기도 변질된 신성력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마족과 신이 본질적으로 동일할 지 모른다는 가정이 성립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미아의 마력 순환을 바탕으로 능력치를 극대화했다.

콰아아아아!

엘릭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터져 나왔다.

머리칼이 그 힘에 일렁이고.

낡은 갑옷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마기까지 그 영향을 받아, 두 검의 크기가 커지며 맹수처럼 거칠게 울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당장이라도 적을 물어 죽여버릴 기세.

그럼에도 엘릭은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두 겨울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상태라 당장이라도 몸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하트람의 힘을 받아냈다.

콰드드득!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팽창했다.

목부터 이마까지 이어진 핏줄이 선명하게 올라왔다.

체페슈의 저주가 검에 덧씌워진 것은 그때였다.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부패시키는 피의 군주의 저주.

붉은 기운이 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검 위로 드리우자, 보기만 해도 숨통을 옥죄는 듯한 불길한 기운이 마구 터져 나왔다.

턱!

엘릭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언제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도록.

하르간의 보법과 신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숀의 검술.

동파검(冬破劍)

오토 한이 겨울바람을 일으키면 그 바람을 칼바람으로 만들어 적들을 벤다고 해서 붙은 이름.

네 명의 초인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결투를 벌였을 때.

엘릭은 그의 움직임을 관찰한 것만으로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겨울 6장의 비기를 한 몸에 담아낸 순간.

“호오?”

엘릭에게 돌진하던 숀이 그 사실을 눈치채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설마 자신의 기술을 엿보는 것만으로 익힐 줄이야.

그리고 어느새 둘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 그때.

쩌저저적!

엘릭의 발아래에 거대한 눈의 결정이 나타나더니.

파아앙!

그는 그대로 결정을 박차고 숀을 향해 도약했다.

엘릭 오리지널

아발란체(Avalanche)

거센 서리 폭풍이 엘릭의 등 뒤에서 용오름처럼 일어나 마구 휘몰아쳤다.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어마어마한 양의 눈과 얼음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숀에게 향했다.

여름의 가르침대로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릴 각오를 담은 비기.

그리고.

세상이 번쩍이며.

촤아아아악!!

엘릭과 숀이 교차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갈린 승부의 승자는 명확했다.

“…!”

숀의 모든 관절이 얼어붙고 발톱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날개와 몸통이 완전히 분리됐다.

그는 그렇게 아무런 저항 없이 추락했지만.

엘릭을 바라보는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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