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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60화 (359/405)

2부 100화

여름의 안배

그러는 동안.

엘릭은 심안을 통해 계속해서 강자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더욱 확실하게 기술을 분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제 충분히 버틸 만해.’

조금 전과 다르게 표정도 한결 편안해진 상태였으니.

인장이 진화하며 마력의 회복력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이었다.

그뿐이랴.

신화 속 나무라는 이름과 걸맞게.

이그드라실이 몸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마법의 위력마저 강화시키고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흐르는 마력을 계속 정제하여 마력 회로 곳곳에 계속 불어넣고 있었으니.

덕분에 처음보다 훨씬 강한 냉기를 방출하고 있어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엘릭의 눈이 열심히 네 명의 강자를 쫓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숀과 황금사자였다.

비슷한 자세로 둘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떨어지는 미르카의 불덩이를 피해 숀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나의 검이 막히기 무섭게 반대편에 있는 검이 황금사자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황금사자는 가볍게 머리만을 움직여 이를 피하더니, 순식간에 숀과의 거리를 좁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간극(間隙).

검조차 휘두르기 어려울 듯한 거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검술을 사용할 수 없으면 격투술을 사용하면 되니까!

파지지직!

굳게 말아 쥔 황금사자의 주먹에, 환한 뇌전이 맺혔다.

황금사자 비기

사자의 권(拳)

사방으로 뇌전이 마구잡이로 튀었고.

황금사자가 주먹을 그대로 앞으로 뻗었다.

콰아앙!

숀이 재빨리 왼손에 들려 있던 검면으로 이를 막고자 했다.

“큭…!”

퍼어어엉-

하지만 검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폭죽처럼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나 숀은 겨우 그 정도로 당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팽이처럼 돌리면서 오른손에 있던 검으로 황금사자의 목을 노렸다.

“그대로 돌려주지.”

콰쾅!

강한 충돌과 함께 황금사자의 견갑(肩甲) 부위가 부서져 위로 튀어 올랐다.

‘빨라.’

서로 비슷한 기술로 겨루는 중이라 그럴까.

엘릭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마투술을 연상할 수 있었다.

녹야 또한 휼을 잡기 위해 그를 모방해 만든 기술이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술과 격투술, 그리고 체술이 물처럼 연계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익혔던 여러 기술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나도 그것들을 하나처럼 합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기술이 아닌.

그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럼으로써 만들어지는 온전한 자신만의 기술.

-엘릭 오리지널.

훗날, 그의 비원을 구현한 영역과 함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크하하하하! 좋구나! 계속해봐라!”

아무리 밀리고 쓰러져도.

호탕하게 일어나 두려움 없이 반격하는 율호왕에게는 투지와 정신력을.

“귀찮게 하지 말고 제발 꺼져!”

상황에 따라 유려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미르카에게는 마법의 흐름을 배웠다.

엘릭은 제 나름대로 전투의 경험이 많다고 자부했지만.

아주 약간의 군더더기도 없이 효율적으로 마력을 분배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마법을 쓰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더 높은 경지.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단지 보고, 깨우치는 걸로는 안 된다.

‘적어도 그때와 같은 느낌이 필요해.’

엘릭은 식인 늑대를 삼키면서 느꼈던 메피스토와의 일체감을 상기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전신에 끓어 넘치고.

모든 것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기분.

엘릭은 그때의 감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짧다면 짧은 순간이지만, 몸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개화의 인장과 이그드라실의 영향으로 육체와 마나 회로가 강화된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당시의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았다.

콰아아아아-

엘릭의 몸에서 녹색의 기운과 함께 마력과 마기가 일렁였다.

잡힐 듯 말듯,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경지.

엘릭은 그 너머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확!

그리고 그 감각에 손끝이 닿는 순간.

“…음?”

미르카의 뜨거운 기운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용암이 흐르는 지하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미르카의 모습이 바로 연상됐다.

막힘없이 유연하게 마력을 활용하는 모습.

그리고 그 순간.

“아…!”

엘릭은 깨달을 수 있었다.

뜨거움은 막는 것이 아니다.

흐르게 하는 것이지!

후웅!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엘릭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고 있던 보호막을 해제했다.

콰아아아!

기다렸다는 듯이 열풍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여름’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엘릭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열풍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츠츠츠-

엘릭의 뒤쪽 목덜미에 불길이 타오르는 형태의 새로운 인장이 새겨졌다.

그것이 지닌 의미를.

엘릭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타올라라】. 그리고.”

사납게(暴).

“【뜨거워져라】.”

불타오르는(炎) 모습.

그래서 폭염(暴炎).

따악!

엘릭은 미르카가 보여주었던 것과 똑같은 자세로 검지와 엄지를 거세게 튕겼다.

그 순간, 정신없이 싸움을 이어 나가던 네 명의 절대자가 서 있는 지반이 붉게 변하며 격진이 일어났다.

쿠쿠쿠쿠!

우르르르-

“…!”

“…!”

“…!”

“…!”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는 위력.

화들짝 놀란 그들은 본능적으로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부터 뒤쪽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기 무섭게 거대한 폭발과 함께 어마어마한 불길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네 사람은 곧바로 방금 마법의 사용자가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다.

엘릭 메르빙거.

“너…?”

“대체…!”

경악에 가득 찬 모두의 시선이 엘릭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엘릭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서 있을 뿐.

파직, 파지직!

손끝에서부터 붉은 불길이 여전히 스파크처럼 튀어 오르고 있었다.

숀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처음 여기서 엘릭을 만났을 때에 느꼈던 기세는 정확하게 자신보다도 아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 보인다.’

자신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취.

대체 그사이에 뭘 깨달은 걸까?

‘그사이에 있었던 거라고는 우리들이 막무가내로 싸움박질 하는 것밖에는 없었을 텐데. 그럼 정말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그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모든 것의 원류(原流)가 메르빙거라고 한들,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모양이 달라진 지류(支流)들을 일일이 거슬러 올라가 원천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해냈다는 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재능을 지녔다는 뜻!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황금사자는 무언가 언짢은 투로 눈살을 찌푸리면서 엘릭을 노려보고 있었고.

율호왕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빛내는 중이었다.

황금사자 다음엔 너라는 느낌의 눈빛.

‘형제여. 나는 역시 그대를 믿었다.’

한편으로 아주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보다도 가장 크게 놀란 건 바로 미르카였다.

“…저게 말이 돼?”

엘릭의 뒤쪽 목덜미에 선명하게 보이는 폭염의 인장.

‘심지어 혹서(酷暑)도 아니고 폭염이라고?’

동계의 인장이 혹한의 인장이나 삭풍 등을 합치면서 탄생했듯이.

원래대로라면 하계의 인장도 혹서의 인장을 중심으로, 다른 인장들을 추가하면서 발전을 시켜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다리는 모두 건너 뛰고 곧장 폭염의 인장을 손에 넣었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준비된 안배를 실행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사계들조차 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

이렇게 되어서야 기존의 안배는 그냥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럼 이 뒤에 마련된 다른 안배들은? 준비해뒀던 것들은 또 어떻게 되는 거야?’

천 년 후에 나타날 ‘예언의 아이’를 위해 이곳저곳에다 안배를 마련하고자 생고생을 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노고가 가장 많이 들어간 것을 감안한다면.

이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미르카는 순간 자신도 울컥하고 말았다.

재능이 뛰어난 후손과 제자의 탄생은 모름지기 마법사에게 있어 기쁜 일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지, 너무 뛰어나면 억울해지는 법이었다.

한편.

엘릭은 자신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싱긋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야 저한테 관심을 가져 주시네요? 어휴. 이렇게 관심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서야….”

엘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말투와 다르게 손을 가볍게 앞으로 뻗었다.

양팔엔 이글거리는 불길이 타오르는 중이었다.

여름의 안배에 들어온 이래.

엘릭은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저도 이제 그 판에 끼어도 되겠습니까?”

“….”

“….”

너무나도 당당한 엘릭의 태도에 잠시 네 사람은 말문이 턱 막혔다.

잠깐 사이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것도 모자라 곧바로 싸움에 끼려 한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황금사자만큼은 놀란 표정을 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표정이 굳어있었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척!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도 그였다.

파아아앗-

한쪽 발을 내딛자, 그의 검에서 거친 뇌전이 이글거렸다.

땅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오면서 검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마치 엘릭의 허리춤을 갈라버리겠다는 듯.

주변에 있던 다른 강자들이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격.

“이런…!”

“엘릭!”

숀과 율호왕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공격이었는지.

둘은 뒤늦게 황금사자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아무리 엘릭의 경지가 올랐다고 한들, 당장 실전에 들어서는 건 또 다른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황금사자.”

엘릭의 두 눈은 다른 어느 때보다 타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꼭 다시 한 번 더 붙어보고 싶었어.”

마치 폭염의 불길처럼.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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