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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58화 (357/405)

2부 98화

여름의 안배

엘릭의 얼굴이 굳었다.

이곳은 메르빙거의 안배.

여름이 낳은 심상 세계였다.

즉, 메르빙거의 피를 타고 난 사람이 아니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장소라는 것.

그런데 외인인 황금사자가 들어왔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그러고 보니…!’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금사자와 미르카가 서로 아는 관계였을 거란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닮았어.’

지금 이렇게 보니 황금사자의 외양이 어쩐지 자신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뭇 비슷한 면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메르빙거 특유의 금발과 녹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전체적인 느낌.

품위가 그러했다.

특히 검을 들었을 때에 흘러나오는 투기는 어쩐지 누이, 헤이즈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설마?’

엘릭은 문득 든 가정에 미르카를 돌아봤고.

“맞아. 네가 한 생각.”

미르카는 엘릭의 생각을 읽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도 메르빙거야. 마법을 버린 배반자이긴 하지만.”

“…!”

* * *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그토록 닮은 외형은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절대 아닐 거라고 무시해왔었다.

만일 정말 같은 가문 사람이고 ‘가족’이라면.

선조의 무덤을 파거나 자신과 헤이즈를 외면하지 않았을 테니.

‘조부님을 모른 척 하지도 않았을 테고.’

하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미르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 때문에 용암 속에다 파묻어버린 거였는데… 그걸 헤치고 올라와? 정말 지독하다, 지독해.”

엘릭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황금사자가 자신의 일족이었고, 눈앞에서 죽은 시로가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에 착잡했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감정.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게….”

당장이라도 미르카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한가득이었다.

황금사자와 자신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가 ‘마법을 배신했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하지만 당장 묻지는 못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이쪽을 주시하던 황금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콰아아앙!

그는 전신에서 방대한 양의 기운을 터뜨리며 우레와도 같은 속도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속력.

쿵! 쿵! 쿵! 쿵!

그의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땅거죽이 뒤집히며 굉음을 터뜨렸다.

미르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그쯤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발톱을 드러내!”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불길이 주변 온도를 단번에 끌어올렸다. 운석이 나타나 그대로 황금사자에게 처박혔다.

“….”

황금사자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검을 아래로 거세게 내리쳤다.

금색의 검기가 공간을 불안정하게 가르며 운석을 향해 날아갔고.

둘이 격돌하자 지금이라도 심상 세계가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떨려왔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여름 비기

유성우

미르카가 전력으로 힘을 끌어올린 만큼, 율호왕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유성이 떨어졌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이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황금사자의 검에서 불규칙한 기운이 흘렀다.

파직, 파지지직!

황금사자가 그대로 검을 위로 올리자 엄청난 두께의 뇌전이 하늘로 쏘아졌고.

그 자리엔 뿌연 유황가스와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검을 아래로 내렸을 때.

황금사자 비전

사자 송곳니

하나하나 막대한 기운을 품은 번개가 떨어지며, 엄청난 속도로 선두에 있던 유성부터 차례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콰릉, 콰릉, 콰르르르릉!

이만한 위력은 상상조차 못 했는지, 미르카의 표정은 사뭇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단숨에 모든 유성을 부순 번개가 이번엔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칫!”

여름은 인상을 찌푸리며 땅에서 용암을 일으켜 보호막을 만들었다.

해일처럼 일어난 용암과 번개가 충돌했다.

퍼어어어엉!

그럼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미르카가 뒤로 연거푸 쭉쭉 밀려났다.

쐐애애액-

그 사이, 황금사자가 미르카와 간격을 좁히고자 했다.

“어딜!”

여름은 재빨리 손을 뻗어 황금사자의 발밑에서 화산 폭발을 일으켰다.

땅이 부풀어 오르더니, 그를 향해 이글거리는 용암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퍼퍼퍼퍼펑!

쉴 새 없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용암에, 황금사자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아아앙!

어느새 불길을 뚫고 나타난 황금사자가 미르카와 충돌했다.

천재지변을 일으킬 것 같은 힘들이 부딪히자 어마어마한 열풍이 일어나 세상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온통 붉어졌다.

숀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사람을 이렇게 앞에다 세워두고.”

그는 양팔을 교차하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개의 검을 뽑으며 난입했다.

“둘이서만 재미 보는 건 좀 그렇지 않아?”

파아아앗!

수십 개의 칼바람이 열풍을 난도질하면서 황금사자와 미르카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쿵!

율호왕도 강하게 앞발을 내딛으면서 주먹을 거세게 앞으로 내질렀다.

신 강체술

황호추산 - 파(破)

콰아아앙!

주먹이 닿은 자리.

공간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면서 열풍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과 동시에 송곳처럼 예리한 충격파가 그들에게 날아갔다.

하나면 모를까, 두 개 모두를 상대하기에는 버겁다고 판단했는지 황금사자와 미르카는 서로 밀치면서 뒤로 바짝 물러섰다.

미르카는 짜증 섞인 얼굴로 숀과 율호왕을 바라봤지만.

정작 두 사람은 뭐가 잘못되었냐는 투로 의기양양하게 있었다.

“귀찮은 것들 투성이군. 짜증나, 정말!”

안식을 방해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안배까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르카는 서서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에이, 누님. 애도 아니고 뭐 뜻대로 안 됐다고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숀은 싱글싱글 웃다가 슬쩍 황금사자를 돌아봤다.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

하지만 이상하게 두 눈빛만큼은 예리했다.

“그보다 그쪽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마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걸 봐서는 메르빙거의 적통은 아닌 것 같은데…. 그 검술, 어디서 배웠지?”

“….”

황금사자의 검술은 아주 패도적이면서도 예리하다.

하지만 숀은 그 속에 담긴 진의(眞意)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주 익숙했다.

하지만.

황금사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벙어리가 된 듯.

입술만 꾹 다물 뿐이었다.

“아니면 오러를 연공할 수 있는 그 독특한 호흡법… 역시 메르빙거의 냄새가 많이 나는데. 혹시 이쪽 마법을 바탕으로 개발했나?”

“….”

“대답할 생각이 아예 없나?”

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

“네가 쓰는 검술. 내 것과 아주 많이 비슷한 거 같은데. 맞나?”

이번 질문은 앞선 것들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숀이 익힌 검술은 원래 그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한때에는 메르빙거와도 견줄 만큼 대단한 성세를 구가했던 곳.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가문은 숀을 마지막으로 혈통이 끊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숀이 메르빙거에 의탁하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를 마지막으로 가문의 검술은 대가 끊겼어야 옳았다.

그런데 미르카와 달리, 숀은 황금사자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사자공가에서 개발했다고 알려진 오러연공법이 본가의 마법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엘릭은 엘릭대로 생각이 많아지는 중이었다.

숀이 뱉은 말에서 놓칠 부분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엘릭은 문득 청사자 헤르만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상할 정도로 나와 잘 맞았었어.’

마법사와 기사가 다른 만큼, 써클과 체인의 작동 방식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엘릭은 그런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아니, 오히려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해서 놀랐었다.

당시에는 헤르만과 푸른 매까지 전부 엘릭의 재능을 칭찬했지만.

사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마투술도….’

오거스틴으로부터 배운 녹야의 마투술은 휼을 잡기 위해 그를 모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즉, 마(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

보석 숲에서 메피스토에게 들은 것처럼.

메르빙거와 마족.

이 두 존재의 본질이 같다면 마투술을 쉽게 익힌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외에도 기존에 알던 사실들이 새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나도…!’

마법에 재능이 없어 무술로 방향을튼 헤이즈.

그녀가 그토록 재능이 넘쳤던 이유도.

회사자를 만나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여준 것도 자신과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았다.

‘다시 보니 황금사자가 사용하는 뇌전 기술도 가주 비전인 뇌벽의 세와 비슷해.’

지끈!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짚이는 구석이 많다 보니, 머리가 절로 아플 지경이었다.

엘릭이 고민에 빠진 사이, 숀은 의외로 담담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이전에 한 질문들은 형식적이었다는 듯.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채앵-

숀이 들고 있던 두 검을 고쳐 쥐었다.

움직임에 따라 칼날이 번쩍이며 예기를 뽐냈다.

“뭐, 상관은 없다. 어떻게 내 검술을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자라 한다면 제자라 할 수 있으니 스승으로서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그는 자세를 낮추곤 황금사자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러다 보면 말할 생각이 들을 수도 있으니까.”

쾅!

그렇게 움직인 숀을 따라 율호왕이 움직이고.

미르카와 황금사자도 힘을 뽑아 올리는 가운데.

‘…정말 저들의 모든 것이 메르빙거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내가 익힐 수 있는 것들이라면. 배우고 싶다.’

엘릭은 난장판이 되어 얽히는 그들을 보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꽉 쥔 주먹이 땀으로 가득 찼다.

갈망.

열망.

희망.

모든 감정들이 그의 눈가에 어렸다.

한때 세계를 제패하다시피 했던 절대자들이 서로를 보며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다.

절대 밀리지 않는 기세 싸움.

저들의 기술은 여태 성장의 벽에 막힌 엘릭에게 새로운 지평을 선물해줄 것이다.

그러니.

‘훔치자.’

엘릭은 미르카의 마법 뿐 아니라, 율호왕의 강체술과 숀의 검술, 황금사자의 기예까지 전부.

이 기회에 자신의 것으로 전부 만들어버릴 생각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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