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350화 (349/405)

2부 90화

여름

“메르빙거가 도망친다!”

“잡아라!”

그러나 적들도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충분히 정신이 없을 만한 상황인데도, 그들의 신경은 전부 엘릭에게 향해 있던 것이다.

“거머리 같은 자식들.”

엘릭은 눈앞의 적들을 베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휼과 용아병들이 날뛰고 있는데도, 여전히 셀 수도 없이 많은 적이 남아 있었다.

적들이 산맥을 덮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날아서 피하는 게 훨씬 빠르긴 할 텐데.’

그는 얼음창으로 검사의 가슴을 꿰뚫으며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적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지상에 있는 검사나 기사들이 마음껏 검기를 날려 보낼 수 있다는 뜻.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난다면 모를까, 괜히 표적이 되었다간 오히려 위험하기만 했다.

이쪽에서 반격을 가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굳이 지상으로 내려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메르빙거어어어!”

정면과 양옆에서 검사들이 절규에 가까운 포효를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 같이 엘릭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점.

황금사자가 대체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릭을 잡을 수만 있다면 목숨까지 내어줄 기세였다.

“【솟아나라】.”

엘릭은 재빨리 정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 얼음벽을 여러 개 세웠다.

어차피 지금은 1차 포위망을 벗어나는 게 목적.

굳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후우웅!

‘돌파한다.’

그가 쥔 창에 신성력이 담기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엘릭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며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가주 비전

뇌신의 추(錐)

콰아아아아!

그는 엄청난 속도로 적들을 뚫고 지나갔다.

콰르르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빙벽이 무너져 내리며, 그곳에서 검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금 엘릭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섬광을 터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엘릭은 그 모습을 보고는 질색하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는 메피스토 또한 마찬가지.

『정말이지 질기기 그지없는 놈들이군. 무슨 마약이라도 한 건가?』

“그만큼 황금사자가 두려운 거겠죠.”

끔찍하게 사랑하던 딸을 잃었는데, 아비로서 그냥 자신을 죽이라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추종심과 협박이 적절하게 섞이지 않았을까.

무고한 이들의 목숨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황금사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이 앞은 절대 지나가지 못한다!”

거대한 방패를 든 기사들이 엘릭의 앞을 막아선 건 그때였다.

우웅!

그들의 방패에 오러가 덧씌워지며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엘릭은 피하지 않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콰아아아앙!

뒤이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어찌나 그 충격이 강한지 근처에 있던 검사들은 폭발에 휘말려 전부 뒤로 날아간 상태였다.

“후우…!”

엘릭이라고 입은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다.

* * *

마치 개미 떼가 우글거리며 자신을 감싸고 있는 듯한 포위망.

베고, 베고 또 베어도 적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래도. 엘릭은 멈추지 않았다.

“【휘몰아쳐라】.”

휘휘휘휘!

눈보라가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지며 전방에 있던 적들을 전부 얼려버리기도 하고.

“【흩어져라】.”

얼음창으로 지면을 찍어 튀어 오른 얼음 파편들을 사방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촤촤촤촤!

“끄아아악!”

“크허억!”

“이 괴물 같은…!”

“메르빙거! 메르빙거어어!”

엘릭이 머문 자리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수의 시체가 널브러지고, 거기서부터 새어 나온 핏물이 강을 이룰 정도였으니까.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저걸 두고 ‘영웅’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학살자겠지!”

그쯤 되자, 감정이 전혀 없을 것 같던 사자공가의 정예들도 슬슬 엘릭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녀석을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제국의 공작을, 그것도 인류의 영웅이 유일하게 남긴 후손을 해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죽이기보다는 제압을 해서 황금사자를 설득해보자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포위망이 구축된 지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사령부는 자신들이 오만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판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통감해야만 했다.

엘릭 메르빙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메르빙거의 가주가 우리와 같은 신세를 겪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 전혀 모르고 있었군?”

“무슨 소리지?”

“메르빙거의 현 가주가 우리와 비슷한 신세를 겪은 게 아니다. 우리가 메르빙거의 현 가주를 모방한 거지.”

“…메르빙거의 옛 유산을 활용했다는 말이 그 뜻이었군.”

“어쨌거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그리고 멀리서 그런 엘릭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1차 포위망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던 이들.

그들의 목표는 엘릭 메르빙거의 생포나 제압 따위가 아니었다.

사살(射殺).

그들은 사냥꾼이었다.

인간 사냥꾼.

그렇기에 다른 기사나 검사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기사나 검사는 정정당당한 결투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결과만을 바랐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몇이나 희생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사냥만 끝낼 수 있다면.

“…스승님을 위해.”

“스승님을 위해.”

그 순간, 엘릭이 1차 포위망을 완전히 돌파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피를 흠뻑 뒤집어쓴 몰골을 한 채로, 엘릭은 드디어 산봉우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이라면 여름의 무덤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낙뢰가 떨어졌다.

엘릭은 황급히 창을 들어 낙뢰를 옆으로 걷어치웠다.

콰르르릉!

낙뢰가 지면에 떨어지며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엘릭은 힘이 느껴진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나무 꼭대기에 올라 서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얼굴과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각각 청갑옷과 적갑옷을 입고, 창과 검을 들고 있다는 것.

엘릭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둘을 노려봤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

가진 무력 수준만 따진다면 사자 급, 5체인의 마스터로 보였다.

“…실험체군.”

엘릭은 놈들이 절대 정상적인 무도를 추구하여 탄생한 것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었다.

실제 쌍둥이가 아닌 인위적인 결과로 탄생한 이들.

그 말에 두 사람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어 보일 뿐.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형제여.”

“형제?”

엘릭은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투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제지.”

“우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메르빙거의 축복이 큰 지분을 차지하니까.”

엘릭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메르빙거의 안배를 훔친 감찰국과 사자공가의 연구 결과물을 ‘자신과 같은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자신들도 같은 메르빙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 테지.

메르빙거의 가주로서는 단단히 짜증이 나는 말이었다.

“개 같은 짝퉁 새끼들이 어디서 메르빙거를 들먹여?”

‘진짜’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가짜들이 바라는 공통 사항.

“덤벼, 새끼들아. 다시는 그 주둥이들을 함부로 떠들지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엘릭은 손을 까닥거리면서 두 사람을 도발했다.

이제 막 포위망을 뚫고 나온 탓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그 많던 마력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여기서 가짜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 하하하! 가짜라.”

청갑옷이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덮더니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차갑게 웃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너,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뭐?”

엘릭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고.

“너희 메르빙거야말로 ‘반쪽’짜리 일 텐데. 정말 모르고 있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오히려 가짜 주제에 반쪽 운운을 하는 것이 짜증났다.

“뭐, 아무것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뒈지는 수밖에 없겠지?”

휘리릭!

청갑옷이 천천히 창을 휘두르면서 기수식을 취했다.

“누가 ‘진짜’ 메르빙거인지를 가려보자, 메르빙거여.”

“그래. 그래서 널 붙잡아 스승님에게도 인정을 받는 거야.”

적갑옷도 똑같이 검을 뽑으면서 자세를 갖추었고.

파지지지직!

조금 전에 엘릭이 상대했던 것과 동일한 뇌전이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갑옷의 색깔을 닮은 뇌전들.

청뢰(靑雷)는 화난 황소처럼 정면을 비집고 들어왔고.

적뢰(赤雷)는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엘릭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놈들, 황자비보다도 한 수 위다.’

쿵!

심장이 뛰었다.

<런치 컨트롤 – 2단계>

쿵쿵쿵쿵쿵…!

엘릭의 심장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마정석을 쥐어짜면서 생긴 결과.

신성력으로 이뤄진 헤일로(Halo)가 등 뒤로 빛무리처럼 번져 나왔다.

차아아앙!

엘릭이 거칠게 얼음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대류가 크게 꿈틀거리면서 그의 주변으로 응결된 수분 덩어리가 여럿 생겨났다.

차차차차창!

뇌전들이 모조리 얼음 결정과 부딪치면서 요란하게 흩어지고.

파아아앗-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든 두 사람의 공격을 얼음창의 양 끝단이 막아 세웠다.

가가가각!

엘릭의 몸뚱이가 고랑을 남기면서 뒤로 길쭉하게 밀려났다.

런치 컨트롤을 2단계까지 발동했음에도 엘릭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대단하다는 뜻.

‘행동, 동작, 습관… 전부 황금사자와 동일해.’

엘릭은 강한 데자뷰(Dejavu)를 느끼고 있었다.

휴일란에서 마주쳤던 황금사자와 다시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 생김새도 어느 정도 황금사자와 닮은 것 같았다.

물론, 진짜 그만큼 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이 두 명은 황금사자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황금사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체라는 것을.

어디 그뿐이랴?

전신을 뒤덮고 있는 마족의 인장은 신체 기능을 강화시키고, 무장한 갑옷은 ‘여름’의 마력향이 너무 강하게 풍겼다.

놈들이 여태껏 개발한 연구의 총집합체를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 복잡한 결과물들을 한꺼번에 다루면서도 너무 능수능란하다는 거야.’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원래 동일한 원류(原流)에서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 자로 잰 듯이 딱딱 알맞게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설마설마 했는데. 너,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너희 메르빙거야말로 ‘반쪽’짜리 일 텐데. 정말 모르고 있어.

그런 생각과 함께.

카앙!

엘릭은 둘의 무기를 쳐내곤 청갑옷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여름의 무덤으로 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고될 것 같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