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349화 (348/405)

2부 89화

여름

엘릭의 급강하.

궁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쇠화살을 날렸다.

퓨퓨퓨퓻!

촤촤촤촤-

정확하게 정면으로 날아오는 수천 개의 화살들.

엘릭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했다.

가주 비전

뇌신의 추(錐)

몸 주변에서 섬광이 크게 터졌고 뇌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콰아아아!

귀를 찢을 것 같은 파공성과 함께 엘릭의 신형이 순식간에 화살 세례를 뚫고 지나갔다.

따다다당!

화살들은 엘릭의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죄다 튕겨났다.

하지만 궁병들은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 앞을 뒤쪽에 배치되어 있던 여러 기사와 검사들이 가득 채웠다.

“방패 들어!”

사령관의 호령에 따라 중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일제히 타워 실드를 앞에다 내세우면서 거대한 철갑 성벽을 세웠다.

그리고 검사들이 저마다 등에 지고 있던 장창을 꺼내 방패 사이로 끼워 넣었다.

방진(Phalanx).

엘릭을 압박하기 위한 밀집 압박 전술.

후웅!

그들이 단단히 쥐고 있던 창날에 오러가 덧씌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이들이 엘릭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엘릭은 가속이 붙은 채로 단숨에 앞 열에 있던 적들을 관통하며 적들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 구름이 높게 치솟았다.

“크으으윽!”

“커헉!”

“버… 텨!”

“어떻게든 버텨라! 놈을 밀어내라!”

“죽여어어어!”

앞부분에 있던 벽의 일부가 완전히 허물어지면서 뒤쪽에 있던 검사와 기사들이 죄다 튕겨났다.

하지만 방진의 무서움은 일부가 무너져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얼마든지 전열을 쪼갤 수 있다는 것.

무너진 곳에 아랑곳하지 않고, 좌우로 있던 방패병들이 작은 방진의 형태를 갖췄다.

그리고… 검사와 창기사들이 일제히 장창과 검을 엘릭에게로 길쭉하게 꽂아 넣었다.

검기 세례가 엘릭을 단번에 난도질 할 것 같았다.

일 대 수백. 아니, 수천.

그 앞에서 엘릭은 금방이라도 압사될 것 같았지만.

“【치솟아라】.”

쿠쿠쿠쿵!

지면이 갈라지면서 튀어나온 얼음벽이 검기들을 튕겨내고.

“【밀어내라】.”

부서진 얼음 조각과 가루들이 돌풍과 함께 방진을 모조리 뒤흔들고자 했다.

콰드드득-

“내 손! 내 소오오온!”

“상대는 마법사다! 억지로 버티려 하지 마!”

“물러나서 다시 전열을 갖춘…!”

“바, 발이 얼었어!”

“안 됩니다! 발이 얼었습니다!”

“뭣이?”

동계의 인장

절대영도

사령관들은 그제야 엘릭의 노림수를 깨닫고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엘릭은 막무가내로 오로지 힘만으로 그들을 밀어내려는 게 아니었다.

다리를 얼어붙게 만들어서 이동에 제약을 걸거나.

혹은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것을 이용해서 아예 동상에 걸리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화산지대일 텐데…!’

사자공가의 기사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이곳 휴크란 화산지대를 전장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엘릭 메르빙거가 이곳, 여름의 무덤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곳이 빙계 마법을 사용하기에 아주 불리한 환경이란 점 때문이었다.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유리한 전장을 선점하는 것.

그런 뜻에서 사자공가의 참모진들은 아주 적절한 판단을 내린 셈이었다.

사자공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장을 확보한 셈이니.

문제는 엘릭에게 동계의 인장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청춘의 인장

육체 강화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 마정석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 마력의 줄기.

세계수의 축복은 엘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으니.

엘릭의 육체가 험난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마력의 환경적 제약도 대부분 ‘무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마력의 중화(中和).

이것이야말로 ‘봄’이 지닌 가장 큰 권능 중 하나일지니.

런치 컨트롤까지 더해지면서 강화된 힘은 이미 일개 인간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쏟아져라】.”

쐐애애액-

엘릭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어느새 얼음창이 형성되면서 바로 근처에 있던 방패를 뚫고, 그 뒤에 있던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기사는 이렇게 허망하게 방패가 뚫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원통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냉기가 순식간에 녀석을 얼음 속에 가둬버렸다.

뒤쪽에 있던 기사와 검사들이 놀라 움찔 물러서는 동안.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뻗쳐라】.”

기사의 몸을 뚫고 나온 창끝에서부터 얼음이 가시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쳐나간 것이다.

촤촤촤촤-

“…!”

“…!”

“끄륵…!”

“컥!”

순식간에 자라난 얼음은 단숨에 뒤에 있던 적들 수십 명의 급소를 꿰뚫었다.

갑옷?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방어용 마법?

역시나 필요 없었다.

엘릭이 심안으로 보고 있는 세계는 그런 것들마저 전부 무시하고 파고드는 결을 정확하게 짚어냈으니까.

풀썩!

그들은 피 끓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엘릭은 재빨리 창을 거두어 쉴 새 없이 창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그럴 때마다 이전처럼 빠른 속도로 얼음이 솟아 적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돌풍.

아니, 맹풍(猛風)이었다.

촤촤촤-

푸푸푸푹!

“버텨! 어떻게든 녀석을 압박해!”

“물러나지 마라! 녀석도 사람인 이상 한계가 나타날 것이다!”

연이어진 공격에 무수히 많은 적들이 쓰러졌으나, 여전히 적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얼핏 보면 죽은 이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은지, 검사가 죽으면 다른 검사들이 곧바로 그 자리를 메꿨다.

흉흉한 안광을 터뜨리며 달라붙는 무수히 많은 적들.

『이것들 완전히 눈탱이가 맛이 갔구만?』

메피스토는 그걸 보고 질린다는 투였다.

그의 눈에도 좀비가 따로 없었으니까.

‘역시 사자공가…!’

엘릭은 엘릭대로 그동안 말로만 듣던 사자공가의 두려운 면목을 알 것 같았다.

기사와 검사들은 주군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을 미덕으로 삼는 자들.

하물며 그 주군이 그들이 닮고 싶어 하는 뛰어나고 용맹한 기사라면?

그렇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사자공가가 마탑이나 감찰국을 제치고 제1세력으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력은 서로 비등비등할지 모르나.

그들의 단결력과 충성심은 다른 곳들과 비견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숨조차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는 놈들을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그 탓에 아무리 창을 휘둘러도 적들의 포위망은 무너지기는커녕 점점 좁혀들고 있었다.

검사들이 그를 향해 덤빈 것은 바로 그때였다.

“죽여라!”

“충!”

전열 속에 숨어있던 별동대가 움직인 것 같았다.

하나 같이 3체인, 혹은 4체인으로만 구성된 이들.

움직임도 일사불란했다.

‘…위험하겠는데.’

아무리 나하트람의 감각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피해 없이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란 무리가 있었다.

엘릭은 그렇게 판단하고 지면을 딛고 있는 각력(脚力)에 힘을 더 한껏 실었다.

“【휘몰아쳐라】.”

휘휘휘휘-

평소보다 곱절은 더 강하게 몰아치는 눈보라.

하지만.

『힘들 것 같은데?』

별동대가 뿌린 검기가 눈보라 사이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절반가량이 엘릭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제길! 【모여라】!”

엘릭은 창을 바닥에다 꽂으면서 머릿속으로 원을 그리는 마력 형태를 구상했다.

적들을 밀어내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던 눈보라가 역회전하면서 이번에는 안쪽으로 밀집되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반구 형태의 보호막.

퍼퍼퍼펑!

다행히 그것으로 검기는 모두 막아낼 수 있었지만.

『마음을 놔서는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파아악-

눈보라를 뚫고 어느새 별동대가 접근해 있었다.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다 정말 죽게 생겼는데 말이다.』

‘거 참,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엘릭은 사사건건 딴죽을 걸어대는 메피스토가 얄미운 나머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원한다면 너의 몸을 본왕에게 넘겨라. 본왕이 대신 놈들을 물리칠 수도 있겠다만?』

원죄의 인장이 깨어나면서 이제 육체 조종도 가능해진 것일까?

저게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저 말 많고 불만도 많은 마왕이 원하는 것은 절대 들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

‘휼!’

어째 이번에도 맛없어 보이는 것들 투성이다만?

흉신의 인장이 빛나면서 그림자가 꿀렁거렸다.

엘릭의 그림자와 별동대의 그림자 전부.

‘잔말 말고 해!’

후후.

순식간에 주변의 그림자들이 모두 지면에서 일어났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서.

푸푸푸푹!

그림자의 기습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별동대 중 상당수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지고.

살아남은 이들도 달리던 방향을 뒤로 꺾으면서 도중에 별동대의 접근이 차단되고 말았다.

엘릭이 노리던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흩어져라】!”

반구 형태로 압축시켰던 눈보라를 다시 해방한 것이다.

그러자 강풍에 별동대가 그대로 뒤쪽으로 쭉 밀려나고.

그 사이사이에 숨어져 있던 얼음화살이며 송곳, 우박 따위가 그대로 놈들을 꿰뚫었다.

도미노처럼 줄지어 쏟아지는 별동대.

순간, 그동안 기세 좋게 엘릭을 압박하던 전열이 동요했다.

엘릭을 해치울 거라고 생각했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상은 입힐 거라고 기대했던 이들이 별다른 효과도 보지 못하고 전멸한 셈이니.

그리고.

엘릭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츠츠츠츠-

그동안 효과적인 타이밍만을 기다리며 소환을 자제해왔던 용아병들을 풀어버린 것이다.

“정신 차려!”

“다시 전열을 세워라!”

장교들은 뒤늦게 상황을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용아병들은 아주 빠르게 방진 곳곳에 나 있는 틈 속으로 난입했으니.

가뜩이나 무력도 강한 놈들이 뛰어다니니 방진이 허물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거기다 휼도 주변의 그림자를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쾅! 콰콰쾅!

거대한 짐승이 앞발을 내려찍을 때마다 주변 일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크허허허헝-

휼의 포효와 함께 퍼져 나간 공포심도 사자공가의 평정심을 크게 흩뜨려 놓았다.

‘지금!’

콱!

그 틈을 타, 엘릭은 바닥에 꽂았던 창을 다시 쥐면서 신성력을 터뜨렸다.

화아아악!

휼과 용아병들이 정신없이 적들의 포위망을 헤집어놓는 사이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