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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48화 (347/405)

2부 88화

여름

엘릭은 예정보다 하루 더 숲에 머물렀다.

용들이 보석을 워낙 잘 먹은 탓이었다.

그토록 많던 보석들이… 아주 싹 다 청소가 되어 있었다.

“…설마 그걸 다 먹을 줄은 몰랐는데.”

처음부터 잘 먹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것들까지 싹 다 치워버린 상태였다.

다행히 나중을 위해 상당량의 보석들을 마법 창고에다 넣어두긴 했지만.

이틀간 용들이 먹은 양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러다가 진짜 파산하는 건 아니겠지?’

평범한 보석도 아니고, 어지간한 성 한 채 값이 나가는 보석을 먹고 있었으니.

끼유유!

끼유!

물론, 새끼 용들은 아주 흡족한 얼굴로 기분 좋게 포효를 지르고 있었다.

빵빵해진 배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덩치도 족히 두 배 이상은 커진 것 같고.’

이미 그 정도만으로도 이제는 더 이상 세 마리 전부를 로브 안에 넣고 다니는 건 힘들어 보였다.

‘시간 날 때마다 종종 와야겠어.’

엘릭은 숲을 나서며 그렇게 생각했다.

* * *

마을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하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들은 엘릭과 일행에게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

그만큼 그들 덕분에 달라진 게 많았으니.

루카스가 다가온 건 그때였다.

“떠나는 겐가?”

“네. 가야죠.”

엘릭의 말에 루카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늑대를 잡아준 덕분에 더 이상 제물을 바칠 필요도 없었고, 마을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농사도 다시 짓기 시작해서 더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됐다.

마을 전체가 엘릭에게 은혜를 입은 셈.

하지만 그에게 받은 것에 비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니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마을 사정이 아직 넉넉지 못해 제대로 대접도 못 해드리고….”

“별거 아닌데요, 뭐. 정 미안하시면 나중에 찾아왔을 때 잘 반겨주세요.”

엘릭은 자신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정들 쪽을 슬쩍 돌아봤다.

움찔!

시선을 느낀 장정들이 몸을 덜덜 떨면서 그의 눈을 피했다.

물론, 그런다고 가만히 있을 엘릭이 아니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땐 정말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허억!

순간, 장정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전에 작정하고 손을 부수려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그들은 엘릭의 경고가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끄덕끄덕!

알겠다면서 마구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찍혀도 하필 메르빙거에게 찍혀버렸으니. 미래가 우중충한 잿빛인 놈들이로군.』

메피스토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엘릭 일행은 곧장 남쪽에 위치한 휴크란 화산지대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엄청난 열기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여전히 분화구에서 연기를 마구 뿜어대는 활화산이 가득한 붉은빛의 산맥.

‘확실히… 이런 곳이라면 ‘여름’의 유산이 있을 만해.‘

이보다 그녀와 어울릴 만한 장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할 겁니다. 제국의 영역이긴 하지만 극동 지역처럼 변경 지대이기도 하고요.”

엘릭은 마차 밖을 보면서 일행들에게 경고했다.

쿠구궁!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산이 크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마차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란 지진.

다행히 폭발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엘릭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언제 감찰국이 덤벼들지 모른다는 겁니다.”

유령성 전투로 인해 감찰국이 여름의 무덤을 먼저 파헤쳤다는 사실은 익히 파악했던 사실.

놈들이 비행선 하나로 만족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 할 게 분명했다.

특히 여름은 사계 중에서도 최강자라 알려져 있던 바.

얻을 게 많은 곳인 만큼, 어떻게든 뺏기지 않기 위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여름의 유산을 탈환하기 위해 나서리라는 것도 예측하고 있을 테고.’

감찰국이 엘릭의 움직임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어쩌면 방어보다 기습을 선호할 수도 있었다.

‘황금사자가 나타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사뭇 진지해진 분위기 속.

타샤가 산맥을 쭉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이 넓은 곳에서 선조 분의 무덤은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그녀의 말대로 산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마차의 속도를 지금 보다 높인다 한들, 이곳을 전부 확인하려면 몇 달은 족히 걸릴 것처럼 보였다.

“아, 그건 괜찮아요.”

엘릭은 품에서 감찰국으로부터 얻은 기밀자료를 꺼냈다.

“이게 있거든요.”

자신의 가문에 대해 적힌 자료였다.

그곳엔 여름의 무덤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대략적인 좌표도 함께 있었다.

또한.

우우웅!

엘릭의 목에 걸린 마도경식도 가볍게 떨리면서 길을 안내하는 중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좌표와 마도경식이 있다면 무덤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타샤도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엘릭 님, 이쪽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부가 이마에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멀지 않은 곳. 지표면을 따라 용암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유황 가스나 열기는 마법으로 어떻게든 물리칠 수 있었지만, 용암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다른 곳으로 마차를 돌려도 마찬가지.

마차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이 많았다.

결국 엘릭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안 되겠네. 두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

“위험하지 않을까요?”

션과 타샤가 놀란 눈이 되었다.

하지만 엘릭은 단호했다.

사실 겉으로 어떻게든 티를 내지 않으려 했을 뿐이지, 두 사람의 컨디션은 이미 난조를 보이고 있었다.

화염 계통의 마법사인 타샤마저 힘들어할 정도로 환경이 지독한 탓이었다.

저런 상태로 억지로 끌고 가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따로 부탁할 것도 있고.’

결국 엘릭은 이런 생각을 두 사람에게 말했고.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조심히 다녀와.”

“조심히 다녀오세요.”

엘릭은 두 사람에게 당부할 부분들을 남기고, 새끼 용들을 데리고 마차를 나섰다.

끼유유!

다행히 녀석들은 화산 지대 환경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새끼용들은 이번에는 또 무슨 모험을 즐길까 눈을 반짝였다.

“가볼까?”

엘릭은 엷은 웃음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파아앗!

* * *

산맥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쿠르르르-

용암이 쉴 새 없이 꿀렁거리며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책으로만 봤던 걸 이렇게 실제로 보니 더 장난 아니네.”

엘릭은 비행 마법으로 하늘을 날면서 혀를 찼다.

분화구에서 나오는 화산재 때문에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

왜 이 넓은 지역을 제국이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마법을 아무리 퍼부어도 이 넓은 지역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손길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대자연의 위력.

엘릭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그 장엄함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우웅!

그래도 다행이라면 마도경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이동을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여름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거의 다 왔어.’

엘릭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근처 어딘가에 감찰국이나 사자공가의 기사들이 숨어 있을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매복…!’

퓨퓨퓨퓻!

아래에서부터 수많은 화살이 정확하게 엘릭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것도 하나 같이 마력이 잔뜩 담긴 철시(鐵矢).

『은신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군. 심안을 속일 정도로 고위 마법이라니. 제법이야?』

난공불락의 요새를 공략할 때에나 쓴다는 공성병기로 그를 노린 것이다.

‘이 미친놈들이!’

엘릭이 다급하게 허공에다 손을 뻗었다.

메피스토의 웃음소리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휘몰아치고】, 또 【휘몰아쳐라】!”

휘휘휘휘…!

거센 눈보라가 엘릭과 화살들의 사이로 불어 닥쳤다.

차차차창!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던 화살들이 모조리 휩쓸리면서 사라지는 동안.

엘릭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당수의 전력이 이쪽을 향해 활의 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문제는 궁수 하나하나 가지고 있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

칼날에 마나를 덮어 검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화살에 마나를 씌워 강도와 위력을 몇 배는 더 상승시키고 있었으니.

저만한 실력을 지닌 궁수들을 동원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밖에는 없었다.

‘사자공가…!’

더군다나 궁수 군단의 최후방엔 누군가가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누구지?’

기세만 봐서는 ‘사자’인 게 분명했다.

청사자나 회사자와 같은 팔사자.

문제는 거리가 꽤 있는 데다, 주변의 검은 연기 때문에 정체를 섣불리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덥지도 않은지 철갑옷으로 완전무장하여 투구를 깊게 눌러쓰고 있기도 했으니.

‘만만치 않겠어.’

문제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끼유유!

새끼 용들이 경고하듯이 엘릭의 주변을 마구 맴돌았다.

엘릭이 감지한 것처럼, 녀석들도 산등성이를 타고 이쪽으로 빠르게 몰려드는 여러 군단을 감지한 것이다.

심지어 사자로 짐작되는 이들도 한둘이 아닌 듯 보였다.

“…아주 작정을 했군.”

엘릭은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무래도 자신 하나 잡자고 사자공가가 주요 전력을 거의 다 끌고 온 것처럼 보였다.

천라지망(天羅地網).

저들이 모두 나선다면, 엘릭이라고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마도경식이 가리키는 방향… 천라지망의 중심지야.’

여름의 무덤을 중심으로 전력을 대거 배치해서 엘릭이 스스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적잖게 머리를 썼군. 여기서 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하긴요….”

후우!

엘릭은 말꼬리를 흘리면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제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는데, 당연히 팬서비스는 확실하게 해줘야죠?”

파아아앗!

빙의가 발동되면서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맺혔다.

다미르의 날개.

그리고 한 손에는 얼음창이 쥐어지면서.

쐐애애애액-

매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수직 낙하 하듯이.

엘릭은 급강하를 시도했다.

엘릭 오리지널

런치 컨트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다른 어느 때보다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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