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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46화 (345/405)

2부 86화

여름의 무덤

안트로모프에서 흡수했던 새끼 마족조차, 흉포의 인장을 흉살의 인장으로 진화시킬 만큼 상당한 양의 마기를 품고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마기를 자신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개체가 가진 마기의 양은 아주 방대할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쭈우우우욱!

인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기의 양이 상당했다.

엄청난 속도로 마기를 삼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원죄의 인장이 그 많은 양의 마기를 통째로 삼키고도 여전히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파아아아-

‘왔다.’

엘릭은 예전에 새끼 마족을 흡수하면서 느꼈던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그땐 영혼과 원죄의 인장을 연결해주는 ‘길’이 트인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완전히 동화(同化)가 이뤄지는 느낌이었으니까.

『또 이…!』

…거군.

메피스토가 하는 생각이 엘릭에게도 똑같이 머릿속에서 공명을 울렸다.

마치 엘릭이 메피스토이고, 메피스토가 엘릭인 듯한 기분.

그러다 흡수가 끝났을 무렵.

두 개로 나뉘었던 시야가 하나로 합쳐졌다.

…!

…!

엘릭도, 메피스토도 충격에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눈앞으로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엄청난 속도로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지나갔다.

-메피스토가 새카맣게 물든 하늘을 보며 뭐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

거기서 하늘은 마치 그를 보며 웃고 있는 거 같았다.

까드득!

메피스토는 이가 으스러져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다.

.

.

-메피스토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

메르빙거 가문 특유의 문장이 그려진 로브 아래로 얼굴을 덮고 있던 황금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오토 한, 아르세우스… 사계의 가신들이었다.

시조가 말했다.

“…우리는 하나…. 마를 삼키….”

엘릭은 그 말을 듣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일부 깨져서 전부 듣지는 못했다.

다만, 메피스토는 엄청 화가 난 것처럼 보였고, 시조에게 거세게 달려들었다. 그 뒤로 다른 대마왕들이 따라붙었다.

.

.

-메피스토가 마지막 남은 용왕 샤이나크의 머리를 향해 창을 거세게 찌르고 있는 모습.

.

.

.

엘릭은 각각의 장면 속에서 메피스토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의 편린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그것을 ‘느낀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엘릭의 생각이 곧 메피스토의 생각이었고, 메피스토의 생각이 곧 엘릭의 생각이었으니까.

동화를 넘어선 완전한 일심동체(一心同體)의 순간.

메피스토가 가지고 있던 방대한 지식량에 압도되고 매료되어, 엘릭은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가능할 것 같았다.

전지(全知)도 전능(全能)도.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감각.

사계의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아가 시조님이 닿으셨다던 ‘대자연’에도 이를 수 있…!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파앗!

눈앞에서 펼쳐지던 기억들이 강한 빛에 집어삼켜졌다.

시야를 가득 채운 빛이 사라졌을 때, 엘릭은 강한 빛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메피스토의 지식도 사라졌다.

사막 위에 놓인 신기루처럼.

“…아!”

늑대는 흡수되어 없고, 엘릭이 만들어낸 신성력의 잔재만이 불꽃처럼 날리고 있었다.

“….”

찰나?

혹은 영겁?

짧았다면 짧고 길었다면 길었던 순간의 짜릿한 경험.

그것이 주는 여운에 엘릭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대체 그건…!’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그는 제 몸을 더듬었다.

메피스토와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 워낙 생생해, 원래 자신의 몸이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머리, 얼굴, 어깨, 다리.

모든 부위를 만지고 나서야 엘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머릿속에 드는 의문 하나.

조금 전의 현상은 대체 뭐였는가?

일전에 안드로모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으나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이번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그때처럼 속이 매스껍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우웨에에엑!”

기분이 더러울 뿐.

엘릭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자기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깨끗한 물로 몸을 박박 씻고 싶은 기분이었다.

“엘릭 님, 괜찮으세요?”

타샤는 혹시 엘릭에게 다친 곳이라도 있나 싶어 다급하게 달려왔다.

“괘, 괜찮습니… 우우웁!”

엘릭은 타샤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말이라도 하려 치면 속이 뒤집힐 것 같았으니까.

안색까지 창백했다.

『이놈이, 본왕이 할 말을 대신하고 있… 우욱!』

메피스토도 마찬가지였던지 한쪽 구석에 앉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둘은 서로에게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그냥 이 기분 나쁜(?) 여운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던지고 싶은 기분 뿐.

* * *

“정말 괜찮으신 거죠?”

“네. 괜찮아요. 잠시 익숙지 않은 마법을 쓰느라 그랬… 으윽!”

엘릭은 몇 번이고 그들을 달랜 뒤에야 타샤와 션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더러운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런 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성질의 것이었다.

『그딴 표정 짓지 마라. 그 기억만 도려다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건 본왕이니라.』

[대체 누가 할 소리를…!]

『그러게 누가 본왕에게 묻지도 않고 바로 흡수하라고 하더냐!』

아무래도 메피스토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기랄. 미리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됐잖아요.]

『본왕이 말할 틈이라도 줬어야지!』

엘릭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메피스토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냅다 좋다면서 마기를 흡수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으으, 으!’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몸서리가 쳐졌다.

아무래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각과는 별개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자신이 보았던 것들.

동화가 풀리면서 메피스토의 생각은 모두 지워졌다지만, 환각으로 본 잔상은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었다.

[대체 그것들은 뭡니까?]

『시끄럽다! 본왕도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니까.』

하지만 메피스토는 여전히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단순히 그 감각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이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응…?”

엘릭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타샤와 션도 뭔가를 느꼈는지 똑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늑대가 죽었던 장소.

원래 사체가 있던 그 위로 결계가 조금씩 뒤틀리는 게 보였다.

“엘릭 님.”

“네. 차원 왜곡인 것 같은데요?”

차원 왜곡 현상.

보통 대마법사들이 자신이 창안한 아공간을 숨기기 위해 만드는 위장용 트랩 중 하나였다.

엘릭은 심안을 활짝 열어 그곳을 살폈다.

그러자 그동안 보았던 세상이 반전되면서 푸르스름한 포탈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있던 거지?’

엘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숨겨져 있던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량이 상당한 탓에 좀처럼 모를 수가 없던 탓이었다.

“아, 녀석이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던 거구나.”

그러다 뒤늦게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식인 늑대가 이 마을을 찾아왔던 이유.

바로 포탈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영양가 좋은 만찬이었을 테니까.

엘릭 일행이 이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던 건 그동안 녀석이 엄청나게 삼켰기 때문일 테고.

그러다 죽고 나서 다시 문이 나타난 것이다.

엘릭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늑대도, 피해자들도, 마을 사람들도 결국 살기 위한 발버둥 친 죄밖에는 없었던 거니.

‘일단… 가자.’

엘릭은 포탈을 양손으로 붙잡고 옆으로 확 열어젖혔다.

화아아악!

강한 빛무리와 함께 숨겨져 있던 공간이 활짝 열렸다.

그러면서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숲이 온몸으로 달빛을 받아냈다.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들엔 수많은 보석이 과일처럼 ‘열려’ 있었다.

루비, 다이아, 토파즈 등등. 다양한 보석이 사방에 널려있는 숲.

“와아.”

“정말로… 있었어?”

타샤는 눈을 반짝이고, 션은 목소리를 떨었다.

엘릭과 일행이 그토록 찾던 보석의 숲이었다.

* * *

사방에서 반짝거리는 보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누나, 이거 아무래도….”

“응. 밖에서 봤던 것보다 질이 훨씬 좋은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갈수록 품고 있는 마력량도 커지고 있고.”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하는 게 가능한 거지? 괴짜 마법사가 심심해서 만들기라도 했나?”

“글쎄.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을까?”

“돈이 썩어날 정도로 너무 많은 데다가 심심하기까지 한 마법사인가.”

“…너 아카데미 조교수는 어떻게 한 거야?”

“도저히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감도 안 잡히니 이러는 거지. 그나저나 정말 미쳤네.”

하나 같이 순도가 맑은 것들.

하나만 떼어다 밖에 팔아도 엄청난 값어치를 낼 것 같았다.

타샤와 션은 원하는 보석이 보이는 족족 보석을 떼어다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뒀다.

보석은 마법 재료로도 아주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바.

특히 이렇게 순도가 맑은 것들은 마력 전도율이 높아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이참에 재료 확보를 많이 해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끼유유!

끼유유유!

그들만큼이나, 아니, 그들보다 더 새끼 용들이 이곳을 좋아했다.

엘릭의 품에서 빠져나와 숲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행복에 겨워 보였다.

‘아주 정신이 팔렸네.’

엘릭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녀석들과 연결된 심령을 통해 기뻐하는 사념이 자꾸만 전해지니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새끼 용들은 각자 원하는 보석나무에 달라붙었다.

골드는 토파즈나 다이아몬드, 레드는 루비와 가넷, 블랙은 사파이어에 들러붙는 식이었다.

아작아작!

그러다 다람쥐처럼 보석을 떼어다 갉아먹는 모습이 귀엽기 이를 데가 없었다.

끼유! 끼유!

‘저 단단한 걸 갉아먹는 게 가능한가? 대단하네.’

엘릭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루비를 하나 떼어다 입에 갖다 댔다.

“흠….”

너무 단단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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