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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44화 (343/405)

2부 84화

여름의 무덤

“방금 뭐라고… 하였는가?”

“저희가 식인 괴물을 토벌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튿날 아침.

엘릭은 곧바로 루카스에게 자신들이 마을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주겠다 말했다.

그 말에 루카스는 말을 더듬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만한 돈이 없다네. 자네들도 보지 않았는가?”

으레 이런 일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엘릭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금 전과 같은 말을 내뱉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마을은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은 상태.

그 탓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인데, 당연히 토벌에 대한 값을 치를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엘릭의 말을 듣고 난색을 표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지만 엘릭은 손사래를 치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흰 이미 받았습니다만?”

“받았… 다고?”

촌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로서는 금시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엘릭과 다른 일행은 모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어제 저녁을 얻어먹지 않았습니까?”

“…?”

“숙소도 제공 받았구요.”

“…자네, 설마 그 말은.”

“의뢰비는 확실하게 받았으니 걱정마세요.”

“…!”

엘릭의 말에 루카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션과 타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네. 그러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제 저녁, 정말 맛있었답니다.”

“자네들, 정말…!”

맛난 저녁. 말이 그렇지 사실상 향신료가 좀 들어간 맨밥에 불과했다.

침대? 제대로 정리도 하지 않아 먼지만 가득하고 매트리스는 굳어 딱딱했다.

이런 귀족가의 사람들이 머물 만한 환경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줄 줄이야.

“…면목이 없군. 미안하네.”

루카스는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뭘요. 아, 혹시나 하고 드리는 말씀이지만, 밥에 넣었던 산공독이나 수면제 때문에 사과하시는 거면 괜찮습니다.”

“…!”

루카스가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건 그때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그, 그걸 어떻게 안 겐가?”

* * *

루카스가 사과한 이유는 간단했다.

저녁을 대접해줬다는 이유로 괴물을 잡아준다고 할 만큼 선한 이들을, 음식에 독과 수면제를 넣어 제물로 바치려 한 셈이 되었으니까.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마을 사람들을 제물로 바쳤다간,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도망치려 해도 괴물이 길을 막아 차마 그럴 수도 없었고.

그나마 외지인이라도 갖다 바쳐야 겨우 마을 사람들이 수명을 연명할 수 있었다.

일부러 없는 향신료를 긁어모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약의 맛을 어떻게든 완전히 숨겨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알아차렸으니….

“어제 저희에게 그렇게 힌트를 주셨는데 모른다면 바보겠죠.”

엘릭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사실 저희에게 도망치라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 알고 있습니다.”

“….”

루카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외지인들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목소리도 숨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던 식인 괴물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냥 야밤 중에 도망치라고.

그런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그런 걸 모두 알면서도.”

한숨을 푹 내쉰 루카스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면 어서 이곳을 떠나게. 곧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칠 걸세.”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콰앙!

누군가 집의 문을 강하게 걷어찼다.

완전히 박살 난 문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턱!

문틀을 잡으며 세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멀쩡하네?”

“괜찮아. 금방 약효가 돌 거야. 우리가 준 밥 다 먹은 거 봤잖아.”

마을의 장정들이었다.

누구보다 엘릭 일행을 경계했던 이들.

그들은 각자 밧줄과 연장을 든 채 흉흉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엘릭과 눈이 마주치자, 장정 중 하나가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그래. 너부터 묶어주지.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밧줄을 내려 손에 쥐면에 엘릭에게 다가왔다.

엘릭은 기세등등한 장정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래? 나도 그런데. 【묶어라】.”

촤르르륵!

“이, 이게 뭐야!”

“헉! 마법!”

“독이 돌던 것 아니었… 아아악!”

바닥에서 얼음 사슬이 튀어나오면서 그들의 팔다리를 강하게 붙잡았다.

“너희들, 좀 맞자.”

엘릭이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션과 타샤도 똑같이 일어났다.

촌장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짜증 섞인 얼굴을 하면서.

“우리도 동참해도 되지?”

“저도 한 손 거들어 드릴게요, 엘릭.”

장정들의 두 눈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 * *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장정들을 꽁꽁 묶여서 무릎이 꿇린 채로 일렬로 놓였다. 눈덩이도 하나같이 시퍼런 멍을 달고 있는 상태.

그들은 엘릭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빌고 또 빌었다.

『그래도 꼴에 잘못한 건 또 아니는 모양이구나.』

[모르면 등신이죠.]

사람은 누구나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으레 이렇게 되는 법이다.

『나약한 녀석. 널 죽이려 했던 이들이다. 사지를 찢어도 모자랄 판에 이해나 해주고 있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메피? 이해한다고 했지, 용서해준다고 하진 않았는데요?]

『…음?』

엘릭은 대답 대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한 사내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허리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던 바로 그 녀석.

세 사람에게 두들겨 맞기도 참 많이 두들겨 맞아서 얼굴에 혹이 가득했다.

“저기요.”

“예, 옙!”

엘릭의 물음에 사내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좀 물어봐도 돼요?”

“무, 무엇이든 물어만 주십시오! 제가 아는 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사, 살려만 주십시오!”

“알았어요, 알았어.”

엘릭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검지로 양 귀를 막았다.

“그리고 작게 좀 말씀하시죠? 귀 아프니까.”

“…아, 알겠습니다.”

사내의 목소리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낮아지자, 엘릭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듣기론 이곳에 식인 괴물이 있다던데. 그 녀석 또 언제 와요?”

“그, 그건…!”

엘릭의 질문에 사내는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입을 꾹 다무는 게 쉽게 말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깐 다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것만 빼고 다른 걸 질문 주시면…!”

“무슨 헛소리를 하시나.”

“하지만, 잘못 말했다가 마을이 전멸할 수 있습니다!”

엘릭은 기가 찬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사실 식인 괴물의 등장 시기는 루카스에게 물어봐도 되었다.

하지만 이러는 이유.

기선 제압을 위해서였다.

우선 이 사람들부터 확실하게 제압을 해둬야 뒤로 딴짓을 하지 못 할 테니까.

‘괴물 잡는 중에 이것들이 어떤 개수작을 부릴 줄 알고.’

엘릭은 말없이 장정들이 가져왔던 연장 중에서 대형 망치를 질질 끌고 왔다.

그그그극-

망치가 바닥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뱉어냈다.

“사, 살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뭐, 자기 몸 다치지, 내 몸 다치나.”

엘릭이 대형 망치를 높이 들었다.

“자, 잠깐만! 스톱! 스토오오옵!”

사내가 다급하게 소리치거나 말거나.

쾅!

망치가 바닥에 작렬했다.

“어이쿠!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 버렸네?”

“아아아악!”

황급히 바닥을 굴러 망치를 피할 수 있었던 사내가 사색이 되었다.

오함마가 정말 바닥에 찍혀 있었다!

“이왕에 도망치지 마세요. 그럼 괜히 고통만 더 심해진다니까?”

실실 웃으면서 다가오는 엘릭의 모습은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으아아! 으아! 으아아아아!”

사내가 다가오지 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바지에는 지린내까지 났다.

덜덜덜….

다른 장정들도 똑같은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추위에 떠는 아기새처럼 몸을 떨었다.

“마법사 님들! 제발! 제발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마법사 님! 용서를! 자비를!”

그러고는 션과 타샤에게 달려가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

“…누나.”

“…응. 보지 말자.”

션과 타샤는 그냥 고개를 슬쩍 돌려 그런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 남매도 엘릭처럼 잔뜩 화가 났던 것이, 이제는 이들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릭을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엘릭의 사악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독해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그래. 이 세상 딴 놈들은 건드려도 저놈은 건드리면 안 되지….’

친구라서 참 다행이야. 션이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계속 도망치시네. 안 되겠다. 【들러붙어라】.”

엘릭은 자꾸만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치던 놈에게 가벼운 마법을 하나 더 걸었다.

“아아아악! 안 떨어져! 안 떨어진다고오오오!”

바닥에 빙판이 살짝 깔리면서 얼음 사슬이 빙판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제는 정말 구르는 것도 안 되는 단단한 결박이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갑니다. 두구두구! 엘릭 메르빙거 선수, 이번 목표는 홀인원!”

그의 손에 들린 망치가 아주 높이 올라갔다.

햇살에 비친 망치가 유달리 검붉게 보였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 드릴 테니까 제발! 제바아아아알!”

사내가 다브히 외쳤지만.

“응. 필요 없어!”

엘릭은 있는 힘껏 망치를 휘둘렀다.

* * *

결과적으로 사내의 손은 멀쩡했다.

정신적 충격은 아주 커 보였지만.

부글부글!

입에 게거품까지 물고 기절한 것 같이 제정신 차리는 데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엘릭의 시선이 다른 장정들에게로 돌아갔다.

덜덜덜…!

사색이 된 장정들의 눈에 엘릭은 이제 식인 괴물보다 더 한 괴물로 보였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온다?”

“예!”

“그, 그렇습니다!”

“괴, 괴물은 사흘마다 제물을 받으러 옵니다. 다, 다만, 의외로 경계심이 많습니다. 제물을 바치러 가는 사람들의 구성이 조금만 바뀌어도 안 나타날 정도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마을에 해코지를 할 수 있어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메피스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누가 마족이고 사람인지 모르겠구나. 솔직히 말해 보아라. 네놈의 진명은 무엇이냐?』

[평화와 사랑?]

『…지랄을 해대는구나. 아주.』

[믿기 싫음 말구요.]

엘릭은 짧게 대답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경계심이 많아서 쉽게 나타나질 않는다…? 지능까지 갖췄다는 건데. 사냥하려면 쉽지 않겠는데.’

타샤가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녀석이 나타날 장소에서 기다리다 기습하는 건 어떨까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이 사람들 설명으로는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게 문제네요.”

“그럼 미끼를 던져둬야 할 것 같은데요?”

“미끼라…?”

“네. 제물 역할을 할 미끼요.”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아무나 미끼로 던져둘 수도 없는 노릇.

엘릭과 손발이 잘 맞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로 했다.

그 순간.

거기까지 동시에 생각이 미친 엘릭과 타샤는 똑같이 시선을 마주쳤고.

“타샤 님도?”

“그럼 엘릭 님도…?”

둘은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션이 있었다.

“…뭐야. 왜 날 봐?”

션은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봤지만.

“….”

“….”

엘릭과 타샤는 가만히 웃고만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안함은 아주 정확했다.

“…씨발.”

엘릭이나 누이나.

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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