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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43화 (342/405)

2부 83화

여름의 무덤

“우리 말이 말 같지 않아? 지금 당장 꺼지라고!”

가장 선두에 선 사내가 낫을 휘두를 것처럼 치켜들며 외쳤다.

그러나 엘릭이 보기에 위협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안쓰러워 보이는 몰골이었다.

장정들은 하나 같이 삐쩍 말라 있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끼니를 먹지 못한 건지, 농기구를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몇몇은 팔이 아예 파르르 떨리기도 했고.

엘릭은 그런 이들과 불필요하게 충돌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마을을 지나 보석의 숲을 찾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최대한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마을에 무슨 짓을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단지 마을을 지나….”

“닥쳐라!”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거 같나?”

하지만 장정들은 전혀 듣지도 않겠다는 듯이 손에 든 무기를 내밀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엘릭이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양 손바닥을 보여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안 된다. 나가라!”

“….”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모습.

엘릭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들의 말투로 보아 절대 비켜줄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심안을 통해 보이는 길은 이곳밖에 없었다.

『그냥 힘으로 밀고 들어가면 되는데 뭘 그리 고민하는 것이냐?』

[미쳤어요? 이 사람들이 무슨 감찰국 요원들인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양민에 불과한데.]

『양민은 무슨. 주제도 모르고 떼쓰는 놈들이지. 죽여라!』

[…좀 가만히 있어 줄래요?]

무고한 이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었다.

엘릭은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필시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러시는지 이유라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도와줄 수 있으면 충분히 도와드릴…!”

“필요 없대도!”

“꺼지라는 말 안 들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말해도 엘릭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예 작정하고 공격하려는 모양이었다.

장정들은 정말로 죽일 듯한 표정으로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엘릭, 우선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어떨까요?”

“맞아. 괜히 이분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잖아.”

타샤와 션도 계속 부딪치는 게 영 부담스러웠던지 조심스럽게 엘릭의 팔을 잡아당겼다.

엘릭도 어쩔 수 없겠다 싶어 이만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이것들아! 당장 멈추지 못해!”

저 뒤에서 우렁찬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빼빼 마른 장정들 사이로 보인 건, 뒷짐을 지고 있는 한 노인이었다.

“초, 촌장님?”

“지금 죄 없는 외지인분들께 뭐 하는 짓인가!”

“하지만…!”

“다들 썩 돌아가지 못해!”

촌장의 호통에, 장정들은 엘릭 일행을 보며 잔뜩 인상 쓰다가 곧 홱 하고 돌아서 버렸다.

마치 두고 보자는 듯이.

그렇게 모든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촌장은 엘릭 일행에게 다가와 사과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근래에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발생했던지라 마을 사람들이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었소.”

촌장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엘릭 일행은 잠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혹시 마을에 발생한 변고라는 것이 보석의 숲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쉽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는 무언의 합의가 지나갔다.

엘릭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일행들을 대신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촌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누추하지만… 머물 곳이 필요하다면 일단 따라오시구려..”

마차는 그렇게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괜찮겠죠…?]

타샤가 슬쩍 메시지 마법을 걸어왔다.

[괜찮을 겁니다. 타샤 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금 전 그 사람들, 따로 병사 훈련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여차하면 그냥 탈출하면 그만이죠.]

[그건 그렇지만… 걱정이네요.]

[혹시 이 지역 근방에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전혀요. 여기는 반란군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과도 거리가 있어서요. 이렇다 할 대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렵네요. 마나 스캔으로도 뭔가를 찾을 수가 없던데.]

전부 평범한 농부들.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해 힘도 없는 이들이다.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별일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행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 * *

자신을 루카스라 소개한 촌장은 엘릭의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작은 가족이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의 조촐한 크기의 집.

루카스는 식탁에 앉은 일행에게 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내가 혼자 산 지 오래되어서 집이 그리 깨끗하지 않네. 이해해주게.”

말을 편하게 하라는 엘릭의 부탁에 촌장은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촌장의 눈에는 세 사람 모두 귀족으로 보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투였다.

아니, 그보다는 ‘지쳐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별말씀을요. 충분히 깨끗해 보이는 걸요?”

타샤가 차를 받으며 말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루카스는 싱긋 웃으면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호록.

그는 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엘릭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별 볼 일 없는 마을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건지?”

“보석의 숲을 찾고 있습니다.”

“…보석의 숲?”

엘릭의 말에 루카스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그건 그저 전설에 불과해.”

그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엘릭은 믿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구나. 감히 본왕이 직접 본 것을 어찌 없다고 하는 건지!』

엘릭은 구태여 그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묵묵히 루카스의 말을 들을 뿐.

“뭐, 숲을 찾는 걸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 예전엔 간간이 그곳을 찾는 모험가들을 보곤 했었으니까.”

루카스가 다시금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식인 괴물이 나타나면서 모두 사라졌다네.”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어두워져 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벌써부터 찻잔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괴물?’

엘릭과 타샤, 션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마을 장정들이 왜 그렇게 외부인들을 경계하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식인 괴물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렵지는 않지. 한 4년 전부터였나? 그림자로 뒤덮인 거대 늑대가 마을 주변을 어슬렁대기 시작했다네.”

엘릭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림자.

늑대.

이 두 가지 키워드가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놈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이 근방을 지나던 객인들도 물어가곤 했다네.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그나마 몇 안 되던 외부인의 출입도 뚝 끊어져서 생필품을 구할 길도 없어져 버렸지.”

확실히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외부와 교류가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하물며 농사까지 제대로 짓지 못한다면 그 위험은 말할 수도 없을 터.

션과 타샤의 눈도 차갑게 빛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산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다네. 배를 불리고 나면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을 물어가지는 않았으니까 말일세.”

노인의 눈가에 시름이 잔뜩 젖었다.

“문제는 그 뒤로 끊임없이 놈이 산 제물을 요구한다는 것이라네. 우리로서는 힘이 없어 물리칠 수도 없으니…!”

노인이 뒷말을 삭였다.

하지만 엘릭 일행은 그 내용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외지인을 제물로 삼은 거로군.’

마을의 지리적 특성상 나가기도, 들어오기도 힘든 위치.

결국 바칠 수 있는 제물은 한정돼 있으니, ‘사람’을 바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외지인을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마을 밖으로 쫓아내면 괴물이 길을 잃은 외지인들을 노릴 수 있게 되니까.

“그런…!”

“…하아!”

타샤와 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걸 두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따지자면 자신들을 제물로 삼으려 했던 셈이지만, 마을 사람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벌인 발악에 불과했다.

그러니 무작정 화만 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엘릭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니 조심하게. 다음 제물은 자네들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이곳에 오래 있지 말고 새벽이 되거든 바로 떠나시게.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야.”

루카스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으니 하룻밤만 묵고, 이른 아침에 떠나시게. 루카스가 그렇게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하늘을 보니 하늘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구름도 잔뜩 낀 탓에 달빛조차 비추지 않았고.

엘릭은 굳이 이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네. 방은 내가 안내해줌세.”

* * *

“미안하네. 그리 넓지 않은 집이라.”

루카스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행이 각자 쓸 정도로 방이 많지 않은 탓이었다.

그나마 같이 방을 쓸 수 있는 엘릭과 션이 같은 방을 쓰고, 타샤는 홀로 건너편에 있는 방을 쓰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그럼 푹 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카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엘릭은 션과 함께 들어온 방을 쭉 둘러봤다.

확실히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지, 루카스가 안내해준 손님방은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티가 났다.

어느 정도 청소를 한 것 같긴 하나, 바닥에 옅게 먼지가 깔려 있었으니.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션과 함께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션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미간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엘릭은 피식 웃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아카데미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항상 현실에 쫓기던 자신과 다르게 녀석은 참 정의로운 성격이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마음을 연 것도 그런 성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 입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을 테지.

“왜? 도와주고 싶어?”

“으, 응?”

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놀란 듯 되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는 거 맞지?”

“뭐… 그렇지.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내가 널 한두 번 보냐? 얼굴에 다 쓰여 있구만.”

엘릭은 그를 놀리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도와줄까?”

“하지만 너…!”

션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말꼬리를 슬쩍 흘렸다.

괜히 여기서 발목이 붙잡혀도 될까 싶었던 것이다.

사자공가와 감찰국이 언제 엘릭을 쫓아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 한시가 급한 이때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됐다.

엘릭도 그런 친구의 생각을 읽고, 그깟 괴물쯤이야 쉽게 처치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애송아.』

메피스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요?]

『…혹시 조금 전에 노인장이 말했던 그 짐승 말이다, 볼 수 있겠느냐?』

[만나러 가긴 할 건데…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확실하진 않은데 일단 봐야 알 것 같다.』

메피스토의 진중한 눈빛을 보면서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촌장에게 들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림자.

늑대.

어쩐지 익숙한 키워드이지 않은가?

늑대는 바로 메피스토의 인장, ‘원죄’의 문장이기도 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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