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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35화 (334/405)

2부 75화

신교 동맹

“…이게 뭔.”

흡사 만담과도 같은 상황.

엘릭은 어이가 없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문득 광신도들의 현장이 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대체 무슨 의미로 회개하라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통하는 무슨 의미라도 있나….’

혹 메피스토는 알까 싶어 고개를 돌려봤지만.

『…여전히 재수 없는 녀석들이군.』

그의 표정을 보니 전혀 호응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것이나이까!”

“회애애애애 개애애애애애!”

“하라아아아앗!”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은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신인(神人)께서 분부하신 대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겠습니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다미르의 설교로 벌어진 이상한 광경이 마침내 끝이 났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교황과 주교들의 얼굴에는 한 줄기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

절실하게 바라던 무언가를 얻은 모습이었다.

그럴수록 엘릭의 의문만 더 커져 갔지만.

다미르는 이제 자신의 의무가 모두 끝났다는 듯이 도로 내면세계로 되돌아갔다.

엘릭은 이제 좀 사이비 종교 같은 분위기가 끝나나 싶었는데.

주르륵!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미르가 엘릭에게 완전히 빙의를 했던 만큼, 몸이 아직 그의 감정에 동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지금 흘리고 있는 건 다미르의 감정이지, 결코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풉!』

불안한 예상은 언제나 정확하게 들어맞는 법.

『하하하핫! 그렇게도 저들의 연설이 감동스러웠던 것이냐? 아주 대단한 성자가 나셨군!』

[…안 닥쳐요?]

『으음?』

엘릭이 정색하며 경고하자, 메피스토가 순간 웃음을 뚝 그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푸하하하하핫!』

아예 바닥에 누워서는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엘릭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서 신경을 끄고, 다미르에게로 눈을 돌렸다.

대체 저들과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겉보기엔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교황과 무슨 대화라도 나누려면 뭐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엘릭! 너는 정말 순수한 사람들을 만난 거 같다. 이리도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을 만난 것도, 참된 복이자 자애의 신께서 내린 은총이실지니…!]

“….”

그래도 돌아오는 대답은 영 이상하기만 했으니.

엘릭은 슬쩍 다른 겨울 6장들에게 의념을 전달했고.

[몰라. 다미르. 어려워.]

[저럴 때는 그냥 냅둬. 원래 다미르는 한 번 이상한 세계에 빠지면 저러니까.]

[그래도 교황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그래…. 교인들끼리만 통하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엘릭은 깊게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엘릭 님,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교 동맹이 엘릭에게 절대적인 호의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자신의 손을 꽉 부여잡고 감사를 표하는 교황과 주교들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부담스럽게 변해 있었다.

분명 마탑에도 큰 도움이 될 테지.

‘신교 동맹도 황제와 감찰국이 벌이는 짓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분명 마탑과 감찰국이 충돌하게 된 이유도 알고 있을 터.

그 과정에서 마족이 연관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먼저 왔다 간 가이가 설명을 해줬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교황은 엘릭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말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엘릭 님이 떠나실 때 회개를 위해 반드시 성전(聖戰)을 벌일 테니까요.”

대상은 누군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 말은 마탑과 동맹을 맺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다만, 엘릭은 자신이 건드려서는 안 될 무언가를 건드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익!

자신을 마주 보며 웃는 교황의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왠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한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엘릭은 괜히 시선을 피하며 교황이 잡고 있던 손을 뒤로 뺐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뵌다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군요.”

그는 엘릭을 본관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덜컥!

본관의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안으로 쏘아졌다.

빛은 그대로 교황의 얼굴을 감쌌다. 그 탓에 그의 얼굴은 더욱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신의 은총이 있기를.”

“감사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며 마차로 향하는 내내.

엘릭은 어째서인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 * *

교황은 멀어져 가는 엘릭의 마차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인께서 남기신 뜻, 이어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리곤 그는 엘릭을 마중 나온 성기사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들어라.”

신성력이 담긴 목소리가 교황청에 넓게 퍼졌다.

척척!

기사단원들이 각 잡힌 자세로 일제히 교황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과연 4대 세력이라 부를 만한 모습.

교황은 그런 그들을 쭉 훑어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신인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 잘못된 모든 것들을 바로 잡고 회개하라고.”

그러자 기사단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바닥에 내리치며 교황의 말을 따라 외쳤다.

쿵쿵!

“회개하라!”

“회개하라!”

짧고 굵은 두 번의 외침.

그러기 무섭게 무거운 고요가 찾아왔다.

교황은 잠시 이 적막을 느끼곤 말을 이었다.

이전보다 그의 목소리에 더욱 강한 신성력이 담겼다.

“그럼으로써 우린 세계를 다시 순수의 세계로 되돌릴 것이다. 감히 저들이 이 땅에 마(魔)를 남기지 못하게 하리라!”

단숨에 분위기가 고조됐다.

어느새 성기사들의 눈빛이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성전을 준비하라!”

교황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성전!”

“성전!”

“성전!!!”

* * *

“알아서 잘하겠지.”

엘릭은 교황청을 슬쩍 돌아보다가 자리를 바로 고쳐 앉았다.

여전히 그들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신교 동맹이 어디 이름 모를 동네 집단도 아니고, 무려 세계를 대표하는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들이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움직이진 않겠지.

분명 그쪽도 계산기 두들겨 볼 거 다 두드리고 행동할 것이다.

애초에 놀자고 그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기도 했고.

‘그럼 여름의 안배를 좀 빨리 찾아야겠는데.’

감찰국과 마탑 간의 충돌로 만들어진 판에, 이제 사자공가와 신교 동맹까지 들어오게 됐다.

판이 커진 만큼 적들 또한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엘릭은 더 강한 힘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여름의 안배.

사계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했던 인물인 만큼, 그녀의 안배를 통해 얻는 힘은 막강할 테니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아직 봄의 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건데. 겨울도 전부 다 수습한 게 아니고.’

여름의 안배를 얻기 전에 먼저 청춘의 인장을 성장시켜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용용이들도 빨리 키워야 할 테고…. 할 게 너무 많네.’

이쯤 되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엘릭은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생각을 다잡았다.

할 일이 많더라도 전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는 것들.

여기서 하나라도 삐거덕거렸다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고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하나하나씩. 천천히. 단계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따라 천천히 밟아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봤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

‘하르간을 만나자.’

그녀를 만나는 건 사실 아주 중요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지막 두 겨울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아르세우스의 연인이기도 한 사람.

그녀의 힘을 손에 넣어야만 겨울을 좀 더 개척할 수 있을 것이고, 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테니까.

다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하르간을 만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봄의 안배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완성할 필요가 있어.’

엘릭은 타샤와 션에게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호법을 서달라고 부탁하곤 곧장 내면세계로 들어갔다.

화아아악!

내면세계에는 겨울6장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아, 나하트람, 체페슈, 다미르.

그중 미아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하르간. 만나려는. 거지?”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전에 먼저 물어볼 게 있어서요.”

“…?”

미아는 엘릭을 따라 시선을 뒤쪽으로 향했다.

다미르가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게 물어볼 게 있나?”

“…아직도 울어요?”

“울긴. 이건 눈물이 아니다. 아직 이 땅에 따스한 희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이며, 나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니. 깨달음을 추구하고,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순수한 어린 양들을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란 말이냐!”

“….”

그게 그거 아닌가?

‘…역시 종교인들이란.’

엘릭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괜히 말 잘못했다가 시달리기 싫었으니까.

“그래요, 뭐. 그렇다는데….”

“음…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인데….”

“자애의 신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이지?”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미르의 표정도 한결 경건해졌다.

“제가 듣기로 다미르, 교단에서 파문되지 않았었어요?”

“그랬었지.”

다미르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신교 동맹은 현재의 형태를 구축하기 이전이었다.

마족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전성기였고, 이에 따라 각 교단과 종파들도 일정한 연맹체 없이 따로 움직이곤 했다. ‘광신’이라는 단어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자애의 교단에서는 그들의 지도자가 갑자기 메르빙거에 귀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으니.

심지어 다미르는 교단과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는 흑마법사 체페슈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교단에서는 다미르의 파문을 명령했고.

다미르는 별다른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나버렸다.

문제는 교단을 떠나면서도, 자애의 신이 내린 은총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도가 없는 교단?

이보다 역설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그 때문에 자애의 교단에서는 다미르에게서 은총을 거두기 위해서 갖가지 술수를 다 부렸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메르빙거라는 거대한 벽 앞에 부딪히고 말았다.

메르빙거의 목적이 교단과 사뭇 비슷하면서도, 오랫동안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엘릭은 자애의 신이 여전히 다미르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창천의 신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니 궁금한 것이다.

왜 다미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에게 꾸준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자신은 어느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며, 살면서 어느 신에게도 기도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을 딱히 믿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단지 그 정도의 신앙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종교인들과 접촉할 일도 별로 없었고.

“필멸자가 어찌 신의 뜻을 알겠는가. 우리는 듣고, 받아들이고, 전할 뿐이다. 다만.”

다미르가 제 턱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백신전(百神殿)의 신들께서 너에게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백신전이요?”

엘릭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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