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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34화 (333/405)

2부 74화

신교 동맹

교황의 말에 엘릭이 놀란 눈을 하고 메피스토를 바라봤다.

그 또한 적지 않게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찐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허허. 그래도 배려심이 강한 분이시군요. 엘릭 님과 편하게 대화 나누라는 배려, 감사합니다.”

“….”

『…이, 이 부풀다 만 찐빵 같은 자가 어떻게 본왕을!』

[…그만해요.]

『찐빵같이 생긴 건 맞지 않느냐!』

“허허허. 제가 좀 구수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는 편이긴 합니다.”

『거봐라. 이 찐빵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만 좀.]

엘릭은 이를 꽉 깨물었다.

“마왕께서 저를 괜찮게 보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로군요.”

『그래도 신교치고 사람은 좀 된 것 같…!』

[아, 좀!]

엘릭은 언령을 발동해 메피스토의 입을 막아버리고, 재빨리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모욕을 드릴 생각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읍읍읍!』

“허허허허. 저는 괜찮습니다.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그의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첫인상에 악의가 섞여있느냐 아니냐이지요. 마왕께서는 그러지는 않으셨으니, 그것으로 되었답니다.”

『읍읍읍! 읍읍!』

“정말 면목이 없네요….”

“괜찮대도요.”

『으으으으읍!』

메피스토가 옆에서 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엘릭은 교황이 자신의 손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난 뒤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체 어떻게 그가 메피스토를 볼 수 있는지.

마왕을 무척 증오할 교황이 엘릭을 오해하지 않고 이리 따스하게 대해주는지.

그 점들이 의문이었다.

하지만 교황이 던진 뒷말은 더 충격적이었으니.

“그래도 마음의 빚이 남아있으시다면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사실 이것이 오늘 엘릭 님을 뵙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

“자애 신의 사도께서는 평안히 잘 계시는지요?”

“…!”

엘릭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자애 신의 사도.

그건 겨울 6장 중에서 다미르의 또 다른 명칭이었으니까.

* * *

신교 동맹은 99명의 신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백신전의 종교 기구였다.

즉, 교황은 그들의 맹주와 같은 셈.

그러니 자연스레 큰 권력을 가질 수가 없는 구조였다.

어디까지나 뛰어난 눈과 후덕한 인품을 지니고 있기에 추대된 것일 뿐.

이 때문에 4대 세력의 수장이라 해도, 이렇다 할 존재감이 대륙에 전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엘릭 또한 그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가지고 있는 신성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오직 그뿐.

그만한 실력자는 마탑이나 사자공가에도 많으니 눈여겨볼 게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다미르를 언급하는 순간.

엘릭은 그의 인상이 순간 확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를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

후덕한 가면 아래에 숨겨진 또 다른 얼굴이 있는 것 같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인 걸까?

신교 동맹이 세상에 나아갈 기회를? 혹은 그가 나설 수 있을 때를?

무엇이 되었든 간에 세간에 알려진 평가와는 전혀 다른 야심가의 면모가 있는 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거대한 기구를 여태 큰 소란 없이 끌고 다닐 수 없었을 테니.’

바짝 긴장감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엘릭도 선뜻 자신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 거부감이 들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는 다 보이니까요.”

하지만 교황은 확신에 찬 투였다.

여전히 그는 처음 봤을 때와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모르쇠로 일관해도 마찬가지.

『…그렇군. 그래서 보인 거야.』

어느새 언령의 속박에서 벗어난 메피스토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뭘요?]

『이 교황, 보아하니 <진실>의 성질이 물씬 풍기는군. 그러니 내가 보였던 것이지. 세상 그 어떤 거짓도 이 자의 눈을 가릴 수는 없을 테니까.』

[아…!]

교황이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랍니다. 제가 모시는 분께서는 제게 아주 아름다운 눈을 쥐어 주셨지요.”

교황이 손으로 제 눈가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행여 여기 계신 다른 분들께서 밖에다 떠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오랫동안 다미르 님에 대한 신탁은 저희 동맹 내에서도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니까요. 진실을 맹세한 사제로서 어찌 함부로 신의 말씀을 다른 곳에 옮기겠습니까?”

자애의 신은 신교 동맹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자랑한다.

그만큼 자애의 신을 추종하는 신도들이 아주 많다는 뜻.

그러니 그에 대한 신탁이 신교 동맹에 내려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엘릭은 섣불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교황이나 신교 동맹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다미르의 생각은 어떨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난 괜찮다. 오히려 나 또한 저쪽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

다미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어쩔 수 없겠네요.’

당사자까지 괜찮다고 하니 별수 없을 테지.

결국 엘릭은 내면세계의 문을 열어 다미르를 빙의시켰다.

화아아아-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세 쌍의 날개가 신비로운 서광과 함께 맺혔다.

본관 내부 전체에 다미르의 신성력이 흩뿌려졌다.

그러면서 반투명한 그의 영체가 엘릭의 몸에 자리 잡았다.

“아아!”

그러자 교황은 감탄을 터뜨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른 추기경이나 주교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그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감사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엘릭은 당황해하면서도, 자세를 낮춰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그러자 교황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간 저희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왜…?”

교황은 다미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예를 올린 다음,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신교 동맹은 최근에 큰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대마전쟁 이후. 모든 종파와 교단의 세가 확장되고, 신도들의 수도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정작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가파르게 줄어드는 추세인 탓이었다.

마법사에게 마력, 마족에게 마기가 있는 것처럼, 신교 동맹에는 신성력이 있었다.

그만큼 그들이 ‘세력’으로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신성력 때문이다.

“혹자는 물을지도 모릅니다. 신을 따르는 이들이 어찌 그만한 힘을 필요로 하냐고요. 믿음으로 신도들을 이끌어야 할 이들에게 왜 무력이 필요하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신성력이 저희에게 의미하는 바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신성력은 신도와 사제들이 신을 그만큼 신실하게 믿는다는 증거.

하지만 그것이 줄어든다는 건 곧 신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즉, 신이 신도들에게 실망하여 은총을 거두고 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메피가 말한 게 이거였나?’

세가 많이 약해졌구나, 하고 메피스토가 처음 말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외부에는 전혀 그런 사실이 알려져있지 않은데.

심지어 가이조차 알아내지 못한 사실을 메피스토는 꿰뚫어 본 것이다.

마왕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짐작되는 바가 있었던 걸까?

메피스토에게 고개를 돌리니, ‘봤느냐?’ 하는 식으로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릭은 그 얼굴이 보기 싫어 다시 교황의 말에 귀를 집중했다.

“결국 저희는 적지 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동맹의 결속력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흘러버린다면, 어쩌면 4대 세력의 균형이 흐트러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이리도 순수하고 정갈한 신성력을 봤는데,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은 다미르의 신성력에 그간 한 마음고생이 단번에 싹 사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맹에 미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교황의 눈은 어느새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눈가를 훔치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리고 주교와 추기경들은 모두 이러한 현상이 전부 속세의 권력이 강해지고, 대립과 경쟁의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생긴 결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륙의 정세를 꿰뚫는 말이었다.

감찰국과 사자공가, 그리고 마탑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었다.

마족이라는 공통된 적이 사라지니 그들끼리 권력 다툼에 들어간 셈.

심지어 현재는 서로를 원수 보듯이 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역시 모두 지켜보고 있었어.’

교황은 엘릭의 두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그러던 그때 신탁이 또 한 번 내려온 것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신탁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99개의 모든 교단에 모두 똑같은 내용의 신탁이 내려왔으니까요.”

교황이 말한 신탁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창천과 자애가 선택한 자가 있노라.

“…!”

엘릭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창천과 자애가 선택한 자.

바로 자신을 일컫는 말이었으니까.

<창천>은 동부의 신녀 사르나이가 모시는 신.

<자애>는 다미르가 모시는 신.

그들 모두 메르빙거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이들이었다.

신교 동맹은 바로 이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서 날 이렇게 환영해준 것인가?’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환대해주었는지를.

저들에게 자신은 타인이 아니었던 셈이었다.

“저희는 저희의 눈으로 신탁의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미르 님께 여쭙고자 하는 것도 있고요.”

다미르에게?

“그럴 기회를… 제게… 그리고 저희에게 주시겠습니까?”

교황은 조심스러운 투로 엘릭의 눈을 마주쳤다.

‘괜찮죠?’

-물론이다. 오히려 내가 부탁하지 않았었나.

그 말을 끝으로, 엘릭은 몸의 주도권을 다미르에게 넘겨주었다.

화아아악!

이전보다 더욱 강한 신성력이 본관에 퍼지며, 엘릭의 눈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다미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하라.]

교황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방금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신교의 믿음은 나날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미사를 볼 때보다 훨씬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다미르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회개하라.]

“…?”

다미르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엘릭은 순간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절로 의문이 들었다.

다짜고짜 교황과 주교들에게 회개하라니?

그런데 그런 의문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마치 엘릭이 모르는 무언가 있는 듯했다.

“회, 회개… 말씀이십니까?”

교황이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마치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라는 투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기대와 달리, 다미르는 이번에도 단호했다.

[회개하라.]

“그, 그건…!”

[회개하라.]

“…!”

교황과 주교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

“아아…! 자애의 사도이시여! 정녕 저희에게 남은 방법은 그 방법밖엔 없는 것이나이까!”

[회개하라!]

거의 호통에 가까운 다미르의 목소리에, 몇몇 주교들은 아예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회개할지어다아아!”

바닥에 넙죽 엎드려있던 주교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차례대로 일어나 외쳤다.

“회개하라!”

“회개할 것이다!”

“회개하라아아아!”

“회개! 회개! 회개! 회개! 회개!”

“회개애애애애!”

실내는 금세 그들이 발산하는 열의로 가득 찼다. 흡사 광신도라도 되는 듯한 광기에 엘릭과 메피스토는 식은땀을 흘리며 흠칫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미르는 그제야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니라.]

“회개! 회개회개회개 회애개! 회개! 회개 회개 회개~♪”

“회개애애애애애!”

“회개할 것이다! 회개! 회개! 회개애애애애!”

이제는 아예 이상한 성가까지 작곡해서 마구 불러 댄다.

엘릭과 메피스토는 한참 동안 서로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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