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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32화 (331/405)

2부 72화

신교 동맹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네.”

엘릭은 별궁 밖으로 나오면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우리는 아직 친구겠지?”

-네가 아직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친구야. 안 맞는 구석도 많지만, 여전히 친구.

-그렇군. 잘 알겠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는 더 이상 힘이 느껴지지 않았고.

-나 역시 널 아직 친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니 친구지만… 누구 하나가 죽어야만 끝날 악연이 되어버린 친구 사이로구나….

그가 흘린 혼잣말은 문 너머에서도 엘릭에게 너무나 잘 들렸다.

‘악연이 되어버린 친구 관계라.’

어쩌면 감찰국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자공가와 부딪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아직도 선명히 기억났다.

그가 처음 엘릭을 만났을 때에 보여주었던 기행(奇行).

친구가 되고 싶다면 로데오 프란츠의 팔을 잘라달라는 부탁에 크롬헬은 가차 없이 그의 왼팔을 잘랐었다.

그러고 내뱉은 대답도 아주 걸작이었지.

-어떻소? 이만하면 그대의 친구가 될 만하겠소?

‘또라이도 그런 또라이가 없었지.’

피식!

그때를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그와의 친분이 시작된 건.

그런데 이렇게 끝을 맞게 되니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할 거다.』

메피스토가 옆에서 차분한 어투로 충고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네 발아래에 깔리고, 너를 우러러 보게 될수록. 너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 진심으로 하는 충고일 테지.

엘릭은 쓰게 웃으면서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거리고 말았다.

『저 작자가 왜 안보이나 했었지.』

메피스토는 엘릭이 잠시 멈칫거리자 왜 그러나 싶어 같이 고개를 돌리고는 실소를 흘렸다.

3층 테라스 위.

황금사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쪽도 여식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데.』

엘릭은 가만히 자신과 같은 황금사자의 에메랄드 눈동자를 응시했다.

“….”

“….”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침묵 뿐.

황금사자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감정 따윈 모두 마모된 인형 같기만 했다.

그렇기에 엘릭은 더욱더 소름이 돋았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고? 딸바보라 하지 않았나?’

오랫동안 은거할 정도로 엉덩이가 무겁던 양반이 오로지 딸을 위해서 움직일 정도였다.

시로 외에 다른 자식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따로 대공비도 두지 않았을 뿐더러, 가까이 지내는 연인도 없었다.

아니, 심지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여자에게 별다른 흥미를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니 그만큼 하나뿐인 딸이 소중할 수밖에 없을 텐데도.

그는 최소한의 분노나 슬픔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휙!

황금사자는 그렇게 한참 동안 엘릭을 바라보다 조용히 몸을 돌려 사라졌다.

“….”

차라리 화라도 낸다면 나으련만.

딸을 살려내라고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이해가 되겠건만.

오히려 저런 모습을 보이니 엘릭은 괜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엘릭은 황금사자가 어떤 감정인지 깨닫게 되었다.

* * *

“좋지 않은 소식이 있네.”

이튿날, 엘릭은 가이의 부름을 받고 가주실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감찰국의 비밀 연구소에 사자공가의 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네.”

“정말입니까?”

“확인할 필요도 없었어. 아예 대놓고 사자공가를 상징하는 사자갑(獅子鉀)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

엘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으니까.

-선전포고!

이제 숨기지 않고 아예 대놓고 감찰국을 돕고, 마탑과 메르빙거를 적대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감찰국을 돕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어떤 발표가 있었습니까?”

가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도 없었다네.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도 묵묵부답이야. 변명도 없고, 어떤 발표도 없고. 그냥 막무가내로 전쟁이라도 치르자는 분위기일세.”

“….”

“아무리 제멋대로인 사람이긴 했지만, 이렇게 무대포로 나오는 건 또 처음 본다네. 주변 여론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때의 불안감은 그래서였나.’

엘릭은 크롬헬의 별궁에서 황금사자와 눈이 맞았을 때를 떠올렸다.

어째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했더니, 그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었다.

“황실에서는요?”

“그네들이 하는 대답이야 뻔하지.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으니까 알아서 교통 정리하라는 식이지. 백성들에게 피해 주지 말라고 오히려 경고까지 하더군.”

전쟁.

그 단어가 입에 썼다.

황금사자는 모든 기사와 무도가들의 이상(理想).

그가 마탑과 척을 지겠다고 나선다면, 제국은 물론 세계의 모든 무도가들이 마탑과 척을 지려 할 것이다.

절대 쉽게 여길 사안이 아니었다.

“피해는 큽니까?”

가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국지전이 제법 있었으니까.”

가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장 전면전은 위험하다네. 소규모 접전에서는 아무래도 마법사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고, 우리 측 전투 요원들도 상당수가 지친 상태야.”

이미 감찰국의 비밀문서도 꽤 많이 수집했고.

그러니 마탑으로선 이 이상의 피해는 불필요한 피해인 것이다.

“문제는 사자공가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을 거라는 거겠죠.”

“아마 앞으로 더 집요해지면 더 집요해졌지, 절대 약해지지는 않겠지. 음지에서의 전투가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감찰국의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하나, 사자공가가 더해진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마탑과 함께 항상 거론되는 거대 세력.

아니,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사자공가가 오히려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가이가 있다지만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마탑과 다르게, 사자공가는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가진 조직이니까.

거기다 휘하의 기사와 무도가들도 모두 전쟁에 특화된 이들이다.

4대 세력 중 두 곳이 힘을 합쳐 마탑을 견제한다?

그 결과야 뻔하지 않은가.

“그럼 다른 대책은 없는 겁니까?”

“하나 있지. 저쪽에서 두 세력이 뭉쳤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가이는 그렇게 말하며 지도에 시선을 돌렸다.

네 곳 중 세 곳을 빼면 한 곳이 남는다.

엘릭도 똑같이 그곳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신교 동맹.”

『…뭐라?』

순간, 메피스토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 * *

신교 동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들이 뭉쳐져 만든 연합 세력이었다.

저마다 다른 교리를 가진 교단과 종파가 뭉친 만큼, 내부 기강이나 규율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가령 어느 종교는 돼지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나, 다른 쪽에서는 불결한 동물로 취급하는 것처럼.

한때, 어떤 교단에서는 갓 교주 위에 오른 이가 갑자기 유일신 사상을 전면에 앞세우면서 다른 교단들과 마찰을 빚은 전적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집단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절대선이 있었다.

바로, 마(魔)의 절멸.

과거 대마전쟁이 한창일 무렵, 누구보다 앞장서 악마들을 처단하던 이들이 바로 신교 동맹이었다.

몇몇의 신들이 실제로 사도의 몸에 재림하기도 했었으니.

비록 현시대엔 더 이상 그때처럼 신의 재림이 거의 없는 편이었으나, 그래도 그때의 기적은 여전히 동맹 안에 깊숙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니.

메피스토가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게 좀 착하게 살지 그랬어요?]

『시끄럽다!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신이라고 다 깨끗할까?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

[아, 뉘에뉘에.]

『제기랄!』

엘릭은 메피스토의 짜증을 대충 흘려들으면서 가이의 설명에 집중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들만큼 든든한 동맹이 될 곳도 없지 않겠나?”

“음, 확실히 그도 그렇겠네요. 그런데 도울까요?”

“돕지 않겠나. 감찰국이 저지른 일들이 있는데.”

가이가 서류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자, 엘릭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신교 동맹은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철칙.

정교분리(政敎分離)가 제국 통치의 제1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교단을 하나만 손들어줄 폐단이 있어서 그렇다나?

하지만 여기에 마족이 껴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감찰국이 릴림과 손을 잡은 채로 선을 넘었다는 것은 이미 제국민들도 다 알게 된 사실.

그러니 그들을 움직이기엔 충분하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제국 내 내분이 너무 심각해질 텐데.’

지금껏 제국의 평화가 유지된 건 4대 세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 균형이 어긋난다는 것은 곧 제국의 틀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을 테고.

‘어려워, 역시. 정치란.’

엘릭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단 교황청에 미리 언질은 넣어뒀다네. 저쪽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확인했고. 그래서 답변이 오는 대로 바로 교황청을 방문할 생각이야.”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늦어도 내일. 빠르면 오늘 중.”

“예상보다 빠르시네요.”

“빠르게 움직여야 저들이 대응할 시간도 갖지 못할 테니까.”

엘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교황청 일은 전적으로 가이 님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엘릭도 따라 나설 줄 알았는지, 가이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뜨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

“아무래도 남부에 좀 먼저 가야할 거 같습니다.”

“남부?”

“예. 보석의 숲에 볼일도 있고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선조의 무덤이 도굴 당한 것 같은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여름’의 유산까지 눈으로 직접 봤으니 확실한 상황이었다.

엘릭은 용용이들을 성장시켜 여름의 안배로 넘어가며 선조의 무덤을 살필 생각이었다.

“비행선 때문이로군.”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이도 상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잘 다녀오시게.”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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