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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28화 (327/405)

2부 68화

여름의 유산

“무, 뭐야?”

“배가…!”

“폭발한다!”

“젠장! 빨리 피해!”

지상에서 폭파하는 비행선을 지켜보고 있던 마탑의 마법사들은 모두 식겁하고 말았다.

성만한 크기의 배가 잘게 부서진 채로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도 하나같이 엄청난 불길에 휩싸인 채로 쏟아지는데.

마치 유성우라도 떨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딱 한 명.

가이만큼은 제자리에 서서 오히려 잘 됐다는 듯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잘 됐군! 이참에 아예 정리할 수 있겠어.”

가이는 숨을 크게 들이키면서 마력을 있는 힘껏 쥐어짜며 주문을 발동했다.

열려라.

쿠쿠쿵!

순간, 소환한 철문이 더욱더 활짝 열렸다.

끼이이-

그 너머에서 꿈틀거리던 괴물 본체의 일부가 서서히 드러났다.

여러 개의 눈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기괴하면서도 공포스런 외양(外樣).

“저것이…!”

“말로만 듣던 외우주의 괴물….”

“아니, 신의 파편인가…!”

이를 본 마법사들은 숨을 헉 하고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들도 마법사(魔法史)를 공부하면서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태초에 창조신이 존재하였으나, 마신과 대립하면서 그 몸이 부서져 우주 각지로 흩어지매, 그중 일부가 우주 밖으로 흘러가면서 이형의 괴물이 되어버렸노라고.

법칙과 섭리의 손길이 닿지 못한 그들은 온통 고통 속에 허덕이면서 생명이되, 생명이 아닌 특이한 형태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저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는 지금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그 본체가 전부 드러나면 어떻게 될지…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데구르르-

웬만한 장정 십여 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눈동자가 한쪽으로 굴러갔다.

시야가 닿은 곳은 추락하는 비행선.

그러다 비행선이 어느 정도 다다랐을 때쯤.

부숴버려라.

괴물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면서 수많은 촉수들을 한데 꽈배기처럼 꼬아 그대로 비행선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단 한 번의 공격에 부서지던 동체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고.

퍼퍼퍼펑-

뒤이어 달려든 다른 촉수들이 다른 파편들을 허공에서 격추시켰다.

그렇게 잘게 부서진 잔해물들이 협곡 아래로 쏟아졌으니.

잔해가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유령성이 부서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곡과 함께 통째로 어둠 속으로 쏟아졌다.

“…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마법사들은 마치 신화 속에서나 볼 법한 엄청난 광경에 놀라워하면서도, 드디어 전투가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이는 그런 엄청난 위용을 선보이고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찾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잔해물 사이로 천천히 착지하는 타샤는 볼 수 있었으나, 다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엘릭은 어디 있지?”

* * *

“큭…!”

엘릭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현기증에 이마를 짚고 비틀거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고통스러웠다.

『아플 만도 하지. 그렇게 무리해서 쥐어짰는데.』

마정석과 마력회로의 과열(過熱).

몸이 금방이라도 타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황금사자를 상대할 때보다도 더 한 통증.

엘릭이 어떻게든 몸을 다스리려 노력했지만, 정신이 어지러워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뒤집히는 느낌.

『쯧! 귀찮게 만드는군.』

메피스토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다가, 엘릭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만히 있어라.』

뭘 하려고?

엘릭이 반문하기도 전에 갑자기 원죄의 인장이 빛을 뿌렸다.

촤아아-

인장에서부터 시작된 마기가 갑자기 체내를 빠르게 누비고 다니면서 과열된 마정석과 마력회로를 빠르게 식혀나갔다.

덕분에 정신도 맑아져서 엘릭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입마증의 전조이다. 한계 이상으로 몸을 쥐어짜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지. 거기다 ‘여름’의 열기를 감당했으니 몸이 엉망이 될 수밖에.』

[어떻게 한 거예요?]

『뭘?』

『인장이요. 마법까지 사용하고 있잖아요?』

[흥! 이 정도 가지고 뭔 마법씩이나. 쿨링(Cooling) 시스템은 과열을 막는 데 가장 기본적인 스텝이다. 외워 둬.]

엘릭은 묘한 눈길로 메피스토를 바라봤다.

별 것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금 이 작업이 얼마나 세밀한 제어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인장의 마기로 이런 효과를 내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었다.

‘역시 대마왕은 대마왕이라는 건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 엘릭의 눈빛을 읽은 걸까?

메피스토는 평소답지 않게 살짝 콧잔등이 붉어져서는 고개를 돌려서 헛기침을 해댔다.

『흠흠! 본왕의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새삼 메피가 처음으로 대단해 보여서요.]

『대단은 무슨. 고작 이런 걸 가지고….』

[뭐야? 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겁니까?]

『부끄러워하긴 누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냐! 본왕이 젊었을 때는 말이다! 이런 고생을 해도 늘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훌훌 털고 일어났…!』

[아, 눼이눼이.]

『이놈이 그래도!』

어째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양반이 오히려 판을 깔아주니까 기를 못쓰는구나.

뜻밖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엘릭이 신나게 메피스토를 놀릴 쯤이었다.

파각!

갑자기 몸 안에서부터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음?』

엘릭과 메피스토, 두 사람 모두 불길한 생각이 들어 시선을 마주쳤고.

곧 심장 근처에 자리 잡은 마정석에 균열이 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마력 기관이 다쳤다?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자칫 마법을 잃을 수도 있는 일.

엘릭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마정석을 살피려는 순간.

파아앗!

그전에 신아의 인장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그러다 빛이 완전히 사그라졌을 때.

엘릭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맑은 하늘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푸른 동산이었다.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기만 해도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끝.

작은 유목(幼木)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옆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아르세우스…?”

엘릭은 그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던 것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으니까.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초췌해 보이던 첫인상과 달리, 젊은 시절의 그는 확실히 생기가 넘쳐 보였다.

거기다 따스한 봄철처럼 훈훈하기까지 한 웃음.

하지만.

“응? 표정이 왜 그러느냐?”

아르세우스는 반갑게 엘릭을 맞으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릭이 바짝 독이 오른 고양이처럼 그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아르세우스는 뒤늦게 엘릭이 왜 저러는지를 깨닫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 설마 또 내가 저번과 같은 시험을 치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럼 아닙니까?”

아르세우스의 안배.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오토 한의 것들보다, 훨씬.

그러니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아르세우스는 덤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 말거라. 그때 말한 대로 이 이상 ‘봄’의 시험은 없으니까.”

“그럼…?”

“왜 왔냐고?”

끄덕!

“글쎄. 왜 왔을까?”

엘릭은 선문답 같은 아르세우스의 태도에 미간을 좁히다가 뒤늦게 한 곳에 생각이 미쳤다.

마정석의 파괴.

신아 인장의 발광(發光).

‘마정석이 깨지는 소리가 마치 씨앗이 깨지는 소리 같았지…?’

딱히 입마증이라고 하기엔 많은 부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

“…진화로군요.”

“맞다.”

아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춘(靑春). 신아의 새로운 이름이다.”

“청춘….”

엘릭은 어쩐지 심장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내가 이곳에 온 건 일종의 중간보고를 위해서이고.”

“…?”

“이것이 보이느냐?”

아르세우스는 자신의 옆에 있는 유목을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러자 유목이 인사하듯 나뭇가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네가 시험을 마쳤을 땐 새싹에 불과했던 ‘이그’가 어느새 이만큼 자랐단다.”

“이그요?”

“이그드라실. 이 아이의 이름이지.”

“…!”

이그드라실.

다른 이름으로 세계수(世界樹).

세계를 뒤덮는다는 전설 속 나무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마지막 가지가 꺾였었다고…?’

아르세우스는 그런 엘릭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전에 삼킨 씨앗을 기억하느냐? 바로 그것이란다.”

“아.”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용의 둥지에서 삼킨 씨앗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럼 신아의 인장을 키우라는 것도…?”

“그래. 신아의 인장은 여기 있는 이그와 연결된다. 네가 하는 모든 감정, 생각, 사념, 깨달음… 그 모든 것들이 이 아이에게는 좋은 양분이 되지. 그리고 네 내면에서부터 외면으로 점점 그 뿌리와 가지를 뻗어나가고, 너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럼 마정석이 깨진 것은.”

“깨진 게 아니다. 이그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일 뿐. 마력 또한 좋은 양분이 될 테니까.”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기·체. 흔히 마법의 3요소라 불리는 심상·마력·육체를 세계수가 하나로 연결한다는 뜻이었다.

‘심상에 뿌리를 내리고, 마력을 따라 줄기와 가지를 피워서 육체에 꽃을 피운다… 는 건가.’

확실히 심·기·체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면, 한껏 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깨달음이나 사고가 즉각 현실로 구현될 테니.

“어떤 거 같느냐? 네가 키운 이 아이가?”

엘릭의 시선이 이그에게로 향했다.

이그에게 눈은 없었지만, 엘릭은 녀석이 자신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목의 느낌이라.

당연히 청춘이라는 이름처럼 따뜻하고 귀여운, 그런 느낌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는데.

흠칫.

‘어…?’

엘릭은 자기도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이 녀석도….”

그러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천천히 아르세우스를 돌아보았다.

“메르빙거… 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녀석이 어떤 모종의 꿍꿍이를 숨긴 채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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