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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27화 (326/405)

2부 67화

여름의 유산

화르르륵!

콰콰콰!

강한 불길에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혹여 누군가 뒤늦게 이곳에 오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거구나. 그렇지?”

끼유!

조종석 중앙. 그곳엔 투명한 덮개로 덮여있는 붉은 버튼이 있었다.

타샤의 질문에 용일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타샤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세게 내리쳐 덮개를 부수고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보호하고 있던 마법 결계 역시 용일의 도움으로 모두 해제해버린 상태.

작동은 너무나 쉬웠다.

위잉, 위잉, 위잉!

그러자 척 듣기에도 불길한 경고음과 함께 비행선의 동체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감찰국의 비밀 무기가 타국이나 타 세력에게 넘어갈 것을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지금은 엘릭의 사악한(?) 계획을 위해 마련된 발판일 뿐이었으니.

키이이잉-

쿠쿠쿠쿠-

이제껏 무자비하게 쏘아내던 마법 폭격은 멈춘 지 오래.

뒤이어 내부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함선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콰르르르르!

“…엉망이네.”

창문 너머. 앞쪽으로 쏠린 비행선의 선두 부분에서부터 검은 매연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부서진 동체 파편이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타샤는 그 창문을 깨고 탈출하려다 뒤를 돌아봤다.

“괜찮… 으시겠지?”

순간, 선체에 아직 남아있을 엘릭이 걱정된 탓이었다.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그래. 괜찮으실 거야. 엘릭 님이시니까.”

타샤는 미련 없이 유리창을 깨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끼유유유!

용일이 간만에 즐긴 하늘의 공기가 좋다며 즐겁게 웃으면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 * *

[오오! 우리 용일이랑 타샤 님이 딱 알맞은 타이밍에 임무를 완수한 모양인데요?]

『…저번부터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이다.』

[뭔데요?]

『본왕이 용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다만.』

[…?]

『그 용일인지 용이인지 하는 괴악한 이름 좀 그만 쓰면 안 되겠느냐? 세상에 대체 어떤 놈이 그딴 이름을 쓰냔 말이다!』

[뭘 어때요? 애들이 좋아하면 됐지.]

『미(美)를 추구한다는 용종 놈들의 센스가 미래에는 아주 바닥을 찍다 못해 지하 터널을 뚫겠군….』

골드, 레드, 블랙 드래곤이 각각 받은 이름은 용일, 용이, 용삼.

메피스토가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새끼 용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그새 조종실을 점거한 건가?”

까드득.

시로가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서도록 이를 악물었다.

“동력원실까지 파괴했지.”

“그 결계는 분명히 9써클의 대현자도 쉽게 풀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 암호 체계로 되어 있을 텐데…!”

“내가 누구 후손인지 그새 잊었나 봐?”

“…!”

“후손 앞에서 선조님들의 유산을 마음대로 쓰는데, 참 간이 배 밖에 나왔어. 그렇지?”

놀리듯 웃고 있는 엘릭의 모습에 시로는 잔뜩 분노한 눈빛으로 엘릭을 노려봤다.

정말이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마법사였다.

“표정이 왜 그래? 아까 나 죽인다 어쩌고 할 땐 그렇게 당당하더니.”

“….”

시로는 엘릭의 비아냥에도 침묵을 지켰다.

본래대로라면 엘릭을 처리하는 게 마땅하지만, 상황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탓이었다.

생각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하지만 한번 복잡해지기 시작한 머릿속은 도저히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고.

“안 싸울 거야? 그럼 이쪽에서 먼저 가야지, 뭐.”

엘릭이 자리를 박차고 시로에게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시로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검을 고쳐 쥐었다.

실험체와의 전투에서 힘이 다 빠졌을 거란 생각과 달리, 엘릭에게 엄청난 양의 마력이 느껴진 탓이었다.

“【깃들고】, 【또 깃들어라】!”

콰아아아아-!

다미르의 영(靈)이 엘릭의 몸에 빙의하면서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한 쌍 돋아나고.

나하트람의 영이 양팔에 내려앉으면서 웅혼한 힘이 체내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손끝에 맺힌 얼음창.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세였다.

“…아직까지 여력을 잘도 숨기고 있었구나.”

파지지지직!

시로는 그런 엘릭과 맞닥뜨리면서 검기 위로 뇌기를 있는 힘껏 뽑아냈다.

비행선이 무너지더라도 어떻게든 엘릭을 죽이려는 심산이었다.

“미안한데.”

부딪치기 직전.

“나는 딱히 그쪽이랑 싸우겠다고 한 적 없는데?”

“…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고 질문할 새도 없이.

엘릭이 갑자기 달리다 말고 도중에 몸을 옆으로 꺾으면서 들고 있던 얼음창으로 동체의 벽면을 두들겼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동체의 한쪽 옆구리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드높은 상공에서의 기압 차이는 엄청난 결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있던 모든 공기가 바깥쪽으로 쏠려 나갔다.

그러면서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시로도, 엘릭도.

“엘릭 메르빙거어어어! 이 미친 새끼가아아아!”

강풍에서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었던 시로는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끼고 아끼던 실험체며 비행선을 모두 잃고 이어서 추락까지.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던 많은 것들이 단 한순간에 왈칵 무너지는 광경은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엘릭은 추락하면서도 양쪽 날개로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잘 잡으며 활강하고 있는 것이 더욱더 그녀의 속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쾅! 콰쾅!

쿠쿵!

쿠쿠쿠쿠…!

저 멀리 비행선 동체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조각조각 난 채 협곡으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그녀 역시 마찬가지.

이대로 추락했다간 검은 협곡의 바닥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끝날 수는 없다.”

기존의 목적만 완수할 수 있다면.

“여기서 죽더라도 너만큼은 반드시…! 크롬헬 님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시로는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주변을 빠르게 뒤졌다.

바로 옆에 반 토막 난 자신의 검이 같이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지난 생일에 아버지가 선물 해주신 검.

드워프들이 만든 명검은 이미 기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시로는 그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화아아아-

마지막 남은 기운을 끌어올리자, 칼날을 따라 오러가 쭉쭉 올라왔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서부터 낙뢰가 하나둘씩 떨어지며 검으로 모여들었다.

검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보니 뇌기가 응집될수록 검신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덜덜덜….

그러다 마구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그것으로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번 공격을 마지막으로 끝을 볼 생각이었으니까.

번쩍!

협곡 전체를 밝히는 번개와 함께 시로가 거칠게 검을 아래쪽으로 휘둘렀다.

금사자 비전

사자 발톱

콰르르르르!

우레와도 같은 소리와 함께 수많은 검기가 앞으로 쏘아졌다. 하늘이 번쩍일 때마다 거대한 사자가 포효하며 앞발을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뇌전은 엘릭에게 날아들 뿐만 아니라, 그물망처럼 퍼져 주변의 동체 파편을 모조리 격추시켰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그러자 발생하는 파편들의 연쇄 폭발.

아예 이 폭발 속에다 엘릭을 가둬 폭사시킬 심산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이러고도 끝까지…!”

이 정도면 알아서 포기할 줄 알았건만.

엘릭은 싸움도 끝나고 비행선도 멈췄으니, 비행 마법으로 바로 협곡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아무리 적이라 해도, 저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크롬헬의 아내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래서는 탈출하기가 도저히 쉽지 않았다.

결국 엘릭도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마정석을 쥐어짰다.

엘릭 오리지널

런치 컨트롤, 변형

파아아앗!

기존의 기술에 흉신의 인장을 덧대는 순간, 새하얬던 한쪽 날개가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신성과 마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상반된 힘이 엘릭의 경지를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켰다.

그리고 시도하는 수직 비상.

쐐애애액!

시로가 어떻게든 엘릭을 격추시키기 위해 낙뢰를 동반한 검기를 몇 번씩이나 터뜨렸다.

“【부숴라】.”

엘릭은 얼음송곳들을 잇달아 뽑아 그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일이 격추시키면서… 검기와 폭발이 비어있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더 이상 검기도, 비행선의 동체 파편도 있지 않는 드높은 상공.

“후, 살았…!”

『멍청한 놈아! 거기서 마음을 놓으면 어떡해!』

엘릭은 메피스토의 경고에 반응할 새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열기의 대류(對流)에 몸이 확 뒤집히고 말았다.

“으으윽!”

『이쪽과 아래쪽, 온도 차이가 커서 기류가 불안정할 텐데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하느냐! 저 비행선이 ‘여름’의 것이라는 걸 그새 잊어서 어떡해!』

“젠… 장!”

메피스토의 말이 옳았다.

비행선의 폭발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여름이 남긴 유산의 폭발.

그 결과가 이리 쉽게 끝날 리 없지 않은가.

엘릭은 결국 다시 한 번 더 런치 컨트롤을 중첩 발동시켰다.

런치 컨트롤 - 2단계

쿵…!

심장이 거세게 두들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두 눈이 뜨였다.

활짝 열린 심안의 시야로 난기류의 흐름이 보이고, 머릿속으로 필요한 마력 계산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방법은… 기온 조정뿐이야.’

필요했다.

어느 때보다 강한 마법이.

동계의 권능

절대영도

쩌저저적-

허공이 얼어붙으며 사방에 냉기가 퍼졌다.

‘더.’

치이이이익!

열기가 빠르게 식으면서 수증기가 풀풀 날렸다.

‘더…!’

열류가 쉴 새 없이 파고드는 마력을 밀어내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엘릭은 더 많은 양의 마력을 쏟아냈다.

아니, 강제로 쑤셔 넣었다.

파르르르!

그럴 때마다 이미 한계치 이상으로 힘을 내는 체내의 마정석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엘릭은 멈추지 않았다.

작은 틈 하나라도 절대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이 억지로 마력을 쥐어짰다.

그리고 더 이상 채울 곳이 없게 됐을 때.

엘릭은 손을 앞으로 뻗곤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동계의 권능

설중매

응결되었던 얼음 덩어리들이 일제히 폭죽처럼 터지면서 한순간 얼음꽃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만개한 꽃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듯한 모습.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촤아아아-

점점 안정화된 대류를 따라서 엘릭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땅에 착지했다.

축 가라앉으려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면서 엘릭은 고개를 위로 번쩍 들었다.

세상이.

온통 꽃비로 가득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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