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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23화 (322/405)

2부 63화

여름의 유산

쾅쾅쾅!

콰아아앙-

쿠르르르!

“….”

시로는 내부에서 들려오는 폭발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것이 어느새 쉴 새 없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 탓이었다.

가뜩이나 길어지는 가이와의 전투 탓에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황인지라,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화를 억누르면서 상황을 확인하러 갔다가 돌아온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 침입자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뭐?”

비서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로는 잔뜩 신경질을 내며 되물었다.

“침입자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여길 어떻게 들어온다고!”

여전히 함선이 공격을 퍼붓고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수많은 마법사와 자객들이 내부에 대기하고 있었다.

거기다 함선이 자체적으로 방어 결계를 두르고 있었고.

안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는 있으나, 밖에서 들어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슨 수라도 쓴 걸까?

시로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찰국과 사자공가가 이 비행선을 마련한 것처럼.

마탑이라고 해서 숨겨둔 패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마법사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죄송합니다.”

“침입자는? 인원은 파악 됐어?”

“아직 정확하게 산출하기 어렵습니다만, 보고로는 소환수도 상당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그 말에 시로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분노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서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침입자 중에 메르빙거가 있다는 겁니다.”

“…메르빙거?”

시로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상대가 그라면 지금껏 부하들이 이 난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의 목표였던 엘릭을 직접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이 풀리려니까 이렇게 또 풀리는군.”

그녀는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껏 가이한테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직접 찾아와 준다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지금부터 이곳 지휘는 네가 맡는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으나, 비서는 각 잡힌 자세로 경례하며 답했다.

“그럼 금사자 님께서는…?”

“메르빙거는 내가 잡도록 하겠다.”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뽑아들곤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릭 메르빙거….”

그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 * *

콰콰쾅!

엘릭이 날린 얼음송곳에 함실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함선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와중에도, 엘릭은 익숙하다는 듯이 빠르게 길을 찾고 있었다.

타샤는 그런 그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엘릭 님, 길은 알고 가시는 거예요?”

“그럼요.”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엘릭은 처음에 들어온 함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심안과 술식 연산으로 함선 구조를 실시간으로 알아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계산이 맞는다면 얼마 가지 않아 동력원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천장에 투명한 상태로 몸을 숨기고 있던 자객들이 나타나 공격해왔다.

“죽어라!”

갑작스러운 기습.

피할 수도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엘릭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휼을 불렀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이 그림자로 뒤덮였다.

콰드드득, 콰아아앙!

엘릭이 주먹을 거세게 내지르자, 충격파와 함께 내부가 완전히 일그러지면서 자객들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타샤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셨어.’

처음 유령성의 자객들을 상대했을 때보다 엘릭의 경지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것을.

그가 비행선에 들어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챘건만, 방금 전의 공격으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분명 아버지의 자기영역을 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거야.’

그렇지 않고서 ‘공간’을 이렇게 확실하게 다룰 수가 없었다.

“어서 가죠. 거의 다 온 거 같아요.”

타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릭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얼마나 갔을까.

엘릭은 더욱 속도를 높여 계단을 올랐다. 그러곤 곧바로 몸을 틀어, 옆에 있던 문을 거세게 발로 찼다.

콰앙!

그러자 엄청난 열풍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바람 마법으로 증기를 거두며 내부를 확인한 순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찾았다.”

넓은 내부 안엔 거대한 마력융합엔진이 증기를 마구 뿜어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찾고자 하던 동력원실을 발견한 것이다.

후우우웅-

그리고.

『느껴지냐, 애송아?』

[…이걸 못 느낄 수가 없잖아요.]

엘릭은 증기 속에 섞인 마력향을 감지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이게 바로 ‘여름’이군요.]

엘릭은 그 증기와 열기 속에 담긴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리는 웅혼한 힘.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

『깨달음이나 경지를 두고서 순수한 ‘힘’만 따진다면… 우리들 중에서도 그녀와 직접 대적할 수 있는 건 나와 아자젤밖엔 없었지. 아니, 아자젤 놈도 그녀 앞에서는 한 수를 접어야 했다. 다른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

『저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힘에 있어서는 너를 당해낼 놈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메피스토의 꾹 다문 입술이 비릿하게 웃는 것 같았다.

메피스토가 빨리 저 힘을 얻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엘릭은 증기 속에 섞인 마력향에서 여름이 주로 사용했을 마력 체계와 순환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하나 같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 뿐이잖아. 방어나 자기 안위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

압도(壓倒).

월등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고 부수는 것만을 상정에 두고 술식을 짠 게 분명했다.

그만큼 자신의 힘에 자신감이 넘쳤던 걸까.

아니면 자신감이 넘쳤기에 여름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저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완성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그에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어쩌면 가이나 오거스틴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아니, 그 이상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

타샤는 타샤대로 크게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엘릭만큼 많은 것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녀 역시 불을 주로 다루는 속성 마법사인 만큼 이 압도적인 열기에 강한 영감을 받는 모양이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황홀경.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 같았기에 엘릭은 굳이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탁!

갑자기 누군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와 다급하게 문틀을 콱 움켜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레펜트가 서 있었다.

방금까지도 적들을 상대하다 왔는지 숨을 크게 헐떡이고 있었다. 옷 역시 숯검댕이로 가득한 상태.

그가 갑자기 왜 온 것일까 싶어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뭘 보고 있는 거지?’

레펜트의 시선은 두 사람이 아닌 마력융합엔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순간, 눈가를 감도는 광기.

“…드디어 얻었다.”

“…!”

레펜트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동력원실에 발을 들이려 했다.

그러나 엘릭은 어깨를 들이밀어 그런 그를 막아섰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그쪽이야말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러나 레펜트는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엘릭을 바라볼 뿐.

“묻잖아요.”

후우웅-

심상치 않은 분위기.

엘릭은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비켜주지 않겠나? 자네가 원하는 것은 이 비행선의 파괴였지. 그건 방해하지 않도록 하지. 나는 물건 하나만 얻어 가면 된다네.”

“싫다면요?”

“싫다면.”

고오오오!

레펜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동력원실의 증기와 비슷한 느낌의 열기.

그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나서는 수밖에.”

레펜트의 발끝을 중심으로 불길이 회오리바람을 그리면서 엘릭을 덮쳤다.

“타샤, 제 뒤에 서요! 【세워져라】!”

엘릭은 재빨리 레펜트와 자신 사이에 얼음벽을 세우며 타샤를 데리고 널찍이 거리를 벌렸다. 타샤는 황홀경에 젖어 있다 말고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콰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얼음벽이 산산조각이 났다.

레펜트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불길이 허공에서 한데 뭉치면서 화염구 여러 개를 만들어냈다.

퍼퍼퍼펑-

엘릭은 뒷걸음질 치며 황급히 얼음벽을 연달아 소환했다.

콰콰콰콰!

화염구들이 얼음벽을 마구 두들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얼음이 사방으로 마구 튀었다.

휘휘휘휘…!

사방에 깔린 얼음조각이 빠르게 녹으며 동력원실 바닥에 하얀 수증기를 옅게 피워 올렸다.

예상보다 강한 레펜트의 힘.

엘릭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오, 힘을 숨기고 있던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요.]

메피스토도 똑같이 느낀 모양이었다. 달라진 레펜트의 기질을 보며 감탄하는 걸 보면.

『웬만한 수작으로 힘을 갈무리한 건 아닌가 보군. 본왕의 눈을 속일 정도라면 말이야?』

엘릭 또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심안을 열었었는데도.

‘게다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법 체계… 파펜 일문의 것과는 전혀 달라.’

그렇다는 뜻은 하나.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육망성이 된 거야.’

어딘지 모를 세력의 세작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여름의 마력 기관인 게 분명했다.

‘일단 제압부터 해야겠어.’

엘릭이 차갑게 눈을 빛내면서 겨울6장의 힘을 개방하려던 그때였다.

오싹!

갑자기 이곳으로 강한 힘을 지닌 존재가 아주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익숙한 기질.

금사자 시로. 황금사자의 딸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뒤통수치는 수상한 육망성에 금사자까지, 아주 개판이네.’

엘릭은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둘 모두 한꺼번에 상대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았다.

나하트람과 미아의 빙의를 끌어내려는데.

“…귀찮은 것이 오는군.”

레펜트도 엘릭과 마찬가지로 시로의 기척을 느꼈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 둘이서 다퉈봤자 저들에게 어부지리밖에 내어주지 않을 테니 빠르게 말하겠다. 내 본 소속은 자유혁명군이다.”

“…?”

그의 말에 엘릭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엔진의 회로 속에 있는 동력원뿐이다.”

“그래서?”

“금사자에게 붙잡혀서야 너나 나나 불편해지기만 하겠지. 그러니 다시 제안하지. 손을 잡자. 서로가 원하는 것만 얻은 채로 갈라서는 거다.”

“동력원이 뭐기에?”

“그건 알려주기 힘들겠군. 사업 기밀이라 말이야.”

“그럼 안 되겠는데. 그게 실은 우리 가문의 유산일지도 몰라서.”

아니,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엘릭이 단칼에 거절하자, 레펜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려 5년이다.”

“…?”

“내가 저걸 얻기 위해서 마법사 행세를 한 게 말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마탑에서 썩었는데, 사정을 봐줄 순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주선해서 우리 혁명군과 메르빙거 간의 공동 연구를 주선해볼 수도 있다.”

“….”

엘릭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5년이라는 단위를 콕 집어 말한 걸 보면, 자유혁명군은 이미 훨씬 그전부터 감찰국과 사자공가의 움직임을 읽었다는 뜻이 되었다.

『여름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도 그쯤 되나 보지?』

엘릭은 이를 악물었다.

감찰국이나 사자공가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이제는 자유혁명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곳들이 가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걸까?

빠드드득!

이가 저절로 갈렸다.

그래도 우선은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엘릭은 숨을 고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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