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61화
시로
콰콰콰콰-
철문 앞에서 꾸물거리던 촉수들이 보호막을 형성하듯 양옆으로 펼쳐지며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돌진했다.
쿠구구궁!
콰르르릉-
촉수들과 마법 포격이 충돌하며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촉수는 어떻게든 비행선을 붙잡으려 하고, 포격은 그런 촉수를 찢고자 했다.
하지만 마법 포격은 금세 명확한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촉수 하나하나가 자기의지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니 전부 맞추기 불가능했던 것이다.
촤르르륵-
함선을 격추시키려는 듯 화살처럼 빳빳해진 촉수가 단번에 함선에 다다랐고.
콰아아앙!
곧바로 비행선을 둘러싼 몇 겹의 보호막이 단숨에 관통되고 말았다.
조금만 더 파고들면 함선에 직접 닿을 만한 거리.
퍼어엉-
그리고 마침내 보호막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남은 촉수들이 보호막을 따라 데굴데굴 비행선을 감싸기 시작했다.
강한 빨판으로 보호막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문 쪽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문 너머로 끌고 들어갈 속셈이었던 것이다.
콰앙! 콰앙! 콰르르릉-
쿠쿠쿠쿠-
비행선이 어서 이 손을 놓으라는 듯이 발버둥을 쳐댔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소환한 이형의 괴물을 다스리는 가이 네레스타의 입가에는 냉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배가 많이 고파졌던 터라.”
가이가 부리는 이 괴물은 사실 정확하게는 ‘부린다’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일부만을 소환하여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것 뿐.
문제는 그것만으로도 가이의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먹는다는 점이었다.
외우주… 저 머나먼 우주보다도 더 너머에 존재한다는 외세계(外世界)에 존재하는 괴물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행위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괴물이 풍기는 부정적인 사념에 휩싸여 광인이 될 수도 있는 일.
혹은 소환 실패로 아예 이 세계에 재해를 풀어 놓거나, 본인이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이는 깊은 깨달음과 오랜 연구로 그것을 해내고 있었고.
이 자리에서 감찰국과 옛 신화 시대의 마법을 제 손으로 끝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잉, 지잉, 지이이잉!
퍼퍼퍼펑-
비행선에서 뿜어져 나오던 광선이 마치 예리한 칼날이 되어 촉수를 잘라 내거나 마구잡이로 구멍을 냈지만.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촉수들이 달라붙으면서 비행선을 꽉 조아댔다.
콰직. 콰지지직. 보호막이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위이이잉. 어떻게든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려 미친 듯이 회전하는 모터 소리가 협곡을 울려댔다.
“이제 끝내자꾸나.”
가이가 손을 높이 들었다가 아래로 거세게 내리쳤다.
콰드드드득!
괴물의 촉수가 더 뱅글뱅글 돌면서 어느새 비행선을 누에고치처럼 감싸 안았다.
* * *
위잉!
위잉!
위잉!
비행선 내부는 온통 시뻘겋게 돌아가는 경고등과 알람음으로 정신이 없었다.
“시, 시로 님!”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출력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어서 방법을 찾아내셔야…!”
승무원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갑판에 서 있던 시로를 애타게 불렀다.
당장에라도 보호막을 부수고 비행선 동체를 덮칠 것 같은 촉수는 직접 가까이서 보는 것만큼 그렇게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빨판 하나하나가 웬만한 장정 두세 사람을 합친 것만큼이나 큰 크기이니, 저 철문 너머에 있을 괴물이 얼마 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을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승무원들은 절망했다.
향후 전장의 판도를 바꿔버릴 절대 병기라 의심치 않았던 신화 시대의 유물이 겨우 한 사람에 의해 가로막힌 셈이었으니까.
그것이 설사 마탑의 탑주라고 할지라도, 절망스러운 것은 절망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호, 호호호호.”
시로는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고만 있었다.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마탑주라 할 수 있겠지.”
그녀의 입가에 어린 것은 호승심이었다.
마탑주. 가이에 대한 호승심.
더 강한 적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큰 승부욕에 불타는 것이다. 황금사자의 외동딸다운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승무원들은 하나 같이 질린 기색이었다.
“더블 코어(Double Core), 작동시켜.”
“하,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엔진이 감당할 수 있는 출력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디스펠 결계에 할당된 리소스를 엔진 쪽으로 돌리면 되지 않나?”
“그래서는 다른 마법사들이 참전하게 될…!”
“이미 디스펠은 끝났어.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시로는 턱짓으로 촉수를 가리켰다.
이미 가이가 자기영역을 구축한 이상, 다른 마법사들이 참전한다고 한들 별 차이가 없을 거란 의미였다.
바닷물에 강줄기 몇 개를 덧댄다고 한들 양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래서야 아직 밑에 있는 유령성의 자객들이 위험해지겠지만.
뭐, 어쩌겠나?
애당초 자신들이 맡은 임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을.
쓸모가 없으면 용도 폐기는 아주 당연했다.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같이 끌려 들어갈까?”
“아, 아닙니다! 해보겠습니다!”
승무원이 다급하게 엔진실로 이동했다.
이것으로 일단 버틸 수는 있겠지.
“문제는 저건데.”
시로의 시선이 촉수들 사이로 얇게 비치는 지상으로 향했다.
엘릭이 이곳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혼자만의 착각일까?
“목표를 눈앞에 두고도 처리하지 못하다니.”
이 기회에 마탑의 마법사들을 왕창 쓸어내고 싶었지만, 그것이 안 되더라도 엘릭만큼은 어떻게든 제거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출정의 의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는 손가락으로 검을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 *
소환한 촉수가 계속해서 함선을 몰아치는 사이.
“음?”
가이는 비행선이 구축한 디스펠의 결계가 점차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력의 대부분을 출력으로 전환시키면서 디스펠의 효과가 떨어진 것이었다.
“이러면 직접 나설 수 있겠군.”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까진 디스펠 마법 탓에 영역을 유지하는 것도 벅찼으나, 이 정도라면 여유 있게 마법을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는 한 발을 뒤로 빼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아아아!
몸에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에 그의 머리가 흩날렸다.
“디스펠이 약해진다!”
“마탑주 님을 도와라!”
육망성을 비롯한 다른 마법사들도 마력이 다시 회전하는 것을 느끼며 저마다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가이의 손아귀로 화염이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그러다 이전에 봤던 파이어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농밀하고 거대한 불바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불바다는 협곡 위를 내달리다가, 곧 저 멀리 있던 자객들마저 불태우며 마치 해일처럼 쭉쭉 뻗어 나갔다.
“크아아악!”
“부, 불이다!”
“도망쳐!”
“숨이… 막혀…!”
“어째서 우리를… 버리는…!”
자객들은 디스펠이 해제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아무 도움도 없이 그들만으로 마탑을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비행선의 엄호나 응원은 없었다.
그들이 내뱉는 비명과 공포, 좌절은 모두 불바다를 더욱더 불태우는 장작밖에 되지 않았다.
<염해(炎海)>
주변을 삽시간에 불의 바다로 잠기게 만드는 8써클의 고위 마법.
육망성과 다른 마법사들도 거기에 마력을 보태자, 염해는 더욱더 강렬한 화력을 선보였다.
그러다 함선의 바로 아래에서 회오리바람을 그리면서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솟구쳤다.
콰아아앙!
비행선의 마지막 보호막 중 일부가 터져나가며 동체가 크게 흔들렸다.
부서진 부위는 금세 복구되었지만, 충격이 제법 컸는지 마법포격의 위력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나도 슬슬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은데.”
엘릭은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다 중얼거렸다.
문제는 어떻게 가이를 도와야 하냐는 것.
비행선과 가이의 싸움에 함부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그만한 화염계 마법을 알고 있지도 못하거니와, 갖고 있는 인장들도 대부분 빙계 계통이니 방해만 될 것이다.
‘그나마 뇌벽의 세가 화력과 가장 가깝긴 하지만… 역시 방해가 될 소지가 크지.’
그러니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저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면 모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엘릭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흐!”
『또 깽판을 치게 생겼군.』
[깽판이라뇨. 그보다 메피, 저 비행선이 ‘여름’의 것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그럼 구조나 장단점도 잘 알고 있겠네요?]
『호오? 네놈이 평상시 하는 짓거리들은 대부분 마음에 안 든다만, 이번에는 좀 재미나겠구나.』
메피는 엘릭의 속마음을 읽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끼유우?
엘릭의 로브 자락에 들어있던 새끼 용은 엉겁결에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두 사람이 짓는 미소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두 사람의 미소가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파앗!
엘릭은 생각을 마치고 협곡 바깥으로 몸을 던져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엘릭 님?”
타샤는 엘릭이 뭔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잘 됐다.”
“무, 뭐가요?”
“타샤, 저랑 같이 깽판 치지 않으실래요?”
“…?”
타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엘릭이 꺼낸 말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비행선 안쪽으로 잠입해서 동력원을 파괴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당연히 타샤의 눈동자가 크게 떨릴 수밖에 없었고.
“일단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엘릭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순간, 타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아버지인 가이가 저렇게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자식으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단호한 표정이 되었다.
“…좋아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다만,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엘릭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령성 자객과의 전투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탓에, 자신감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그뿐이었다면 엘릭도 굳이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빛이 달라.’
바로 타샤의 눈.
그녀의 눈은 최근에 본 어떤 눈보다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돕고 싶어하는 열의.
혹은 갈망.
‘그렇지. 이래야 네레스타지.’
엘릭은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갑시다.”
“네”
그렇게 엘릭과 타샤가 빠르게 비행선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잠깐. 혹시 나도 같이 갈 수 있겠나?”
갑자기 누군가 두 사람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는 육망성 중 한 명인 레펜트였다.
평의회에서 엘릭과 마찰이 있었던.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