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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9화 (318/405)

2부 59화

시로

콰아아앙!

갑자기 위에서 들린 폭발 소리에 엘릭과 메피스토의 시선이 저절로 위쪽으로 향했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절벽 위. 가이와 육망성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다른 유령성의 자객들을 상대로 승기를 거머쥐고 있었다.

특히 가이가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기초 마법들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이어볼, 매직 미사일, 마나 볼….

분명히 입문자들이나 익힐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어째 가이의 손을 타고 있으니 웬만한 폭격 마법보다 더 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위력을 잃은 거 맞지?

『어서 빨리 강해지거라.』

그러다 엘릭은 메피스토가 툭 내던진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네놈이 어서 강해져야 나도 저놈과 겨뤄볼 수 있을 거 아니냐!』

그는 엘릭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가이를 바라봤다.

『이 시대는 참으로 특이한 시대인 게 분명하다. 본왕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강자들이 많았던 것이 당연했었다. 신화가 바로 인간과 같이 함께하던 시대였으니까. 용이 살아숨쉬고, 거인이 땅을 뛰어다니던. 신이 인간과 교류를 나누던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때이니까.』

메피스토는 항상 궁금했다.

사계와 대마왕들이 활약하던 천 년 전과 인간과 마족들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현 시대.

두 시대의 차이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용은 멸종하였고, 거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신들도 저들이 있는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고. 미신이 서서히 저물고, 마법은 이제 이성과 합리의 눈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지.』

오랫동안 탐구하였고, 궁구하였으며,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애당초 두 시대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지. 옛 신화 시대에나 있을 법한 실력자들이 이만큼이나 많음이니…!』

가이.

오거스틴.

황금사자.

모두 콧대 높은 메피스토의 호승심을 자극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엘릭은 말했었다.

그들 외에도 아직 만나지 못한 강자들은 수없이 많노라고.

『그러니 어서 겨울과 봄을 완성하고, 사계를 갖추어라. 본왕도… 함께 숨을 쉬고 싶노라.』

“….”

엘릭은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메피스토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같은 공기를 맡고 싶다는 말.

역사 속에서만 살았던 존재가 아닌, 이 시대를 함께 뛰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이 주는 여운은 그만큼이나 강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기에 엘릭은 이를 평소처럼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해야만 했다.

“얼마 안 걸릴 테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곧바로 여름의 무덤을 열러 갈 것입니다.

엘릭은 그 말을 속으로 삭였다.

유령선을 직접 토벌하러 온 것은 어디까지나 저들이 열었을지도 모를 선조의 무덤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한 것.

그가 원하는 것은 가문의 오랜 비원에 대한 완성이지, 권력 따위가 아니었다.

그 목적만 완수하면 곧장 움직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냐.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마.』

메피스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릴 때쯤.

엘릭은 다시 선대 성주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더 이상 그의 녹안(綠眼)에는 장난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선대 성주도 그것을 보고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네가 말해야 할 건 두 가지야. 하나는 디스펠의 관한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너희들이 도굴한 선조님의 무덤에 대한 정보.

엘릭이 그렇게 말하려던 그때였다.

쿠쿠쿠쿠…!

갑자기 엄청난 격진이 협곡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천잠사가 출렁이고, 낙석이 우수수 쏟아졌다. 마법사며 자객들까지 모두 놀란 얼굴이 되어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저갱처럼 시커멓기만 한 협곡의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엘릭의 시선도 저절로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흐, 흐흐흐…! 흐, 하하하! 겨,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러다 갑자기 선대 성주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엘릭은 미간을 좁혔다. 왜 이러나 싶었던 것이다.

실성이라도 한 걸까?

-어떻게 이런 광대역으로, 그것도 최고위 디스펠이 발동될 수 있는 거냐고 물었었지?

선대 성주의 얼굴에는 어느새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공포와 냉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얼굴.

-바로 저것 때문이다.

“뭐?”

유령성의 본단이 아니라 협곡에 따로 결계 술식이 있었다고?

그 순간.

협곡에 깔린 어둠이라는 수면을 뚫고,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협곡이 더 거칠게 떨렸다.

콰콰콰콰콰!

거대한 비행 함선이었다.

“저건 또 뭐야?”

“저런 게 또 숨겨져 있었다고?”

워메이지들은 기겁하면서도, 혹시 비행선에 휩쓸릴까 싶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행선이 가동되는 중에는 디스펠의 적용이 불완전해서 재빠르게 피할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엘릭도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하늘을 나는 배.

공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직접 해낸다고?

더군다나 함선의 크기는 그저 그런 크기가 아니었다.

웬만한 거대 성채 두어 개쯤은 담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

거기서 풍기는 위압감도 장난이 아닐 뿐더러, 함선을 둘러싼 마법 공학들도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깊었다.

“…함선을 하늘에 띄우다니.”

“저게 가능했다고?”

“대체 어떤 원리를 적용한 거지?”

육망성들도 난데없이 나타난 비행선을 보곤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몇몇은 아예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세계 마도 지식을 선도한다는 마탑의 선구자들도 도저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냥 신기해할 수는 없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가이는 어느새 협곡을 완전히 통과하여 하늘에 다다르는 비행선을 보면서 침음을 삼켰다.

어쩌면, 마탑보다 감찰국이 그동안 개발한 마법 실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는 일.

아니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신화 시대의 유물을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기술적인 측면에서 감찰국이 마탑보다 앞서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러한 불편한 진실이 마음을 무겁게 누를 수밖에.

하지만.

놀라고 있는 건 비단 가이와 육망성만이 아니었다.

『…하! 미칠 노릇이로군!』

메피스토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저것에 대해서 뭔가 아시는 게 있어요?]

그가 마탑을 걱정해서 그러는 걸 아닐 테고.

『저 빌어먹을 물건을 또 봤으니까.』

또라고?

순간, 엘릭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자, 메피스토가 퉁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네놈 선조의 무덤이 열린 게 확실한 거 같구나.』

“…!”

엘릭은 주먹을 세게 꽉 쥐었다.

혹시나 했던 사실이 결국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군다나 선조의 무덤에서 발굴한 기술을 바탕으로 저만한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이미 옛 메르빙거의 기술에 대한 복원도 거의 끝났다는 뜻이 되었다.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저 비행선은 원래 ‘여름’이 즐겨 타고 다니던 ‘별장’이다. 가뜩이나 고화력의 마법들을 덕지덕지 처발라서 골치 아팠던 것을, 용까지 질질 끌고 다녀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아느냐?』

여름.

사계 중 한 명이 거론되었다.

엘릭이 이다음에 열려고 했던 안배.

『그러니 기억 못할 수가 없지! 저것이 지나가면 모든 게 쑥대밭이 되고 말았으니!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편하게 쉬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으으으! 지금 생각해도!』

그동안 메피스토에게 단편적으로 전해 들었던 ‘여름’은 사계 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였다.

여름은 곧 뜨거움을 의미하고, 실제로 그녀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화염계 마도사였다.

당연히 그 공격력과 파괴력은 다른 사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시조마저도 그녀 앞에서는 한 수를 접어줘야 했다던가?

그런 여름의 유산이 나타났다.

절대 쉽게 묵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디스펠 때문에 대화를 나눌 순 없으나, 그와 마찬가지로 겨울 6장 또한 분노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함대’를 건설할 정도로 기술을 복원한 건 아닌 것 같지만… 저 하나만 해도 엄청난 건 사실이지.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엘릭이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던 그때였다.

[아, 아아- 마이크 테스트.]

어느덧 하늘 정중앙에서 비상을 멈춘 비행선으로부터 힘찬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릭 메르빙거. 가이 네레스타. 그 외에도 마탑의 다른 육망성들까지. 이곳이 어디인지 알면서도 잘도 모였군.]

엘릭을 비롯한 육망성들과 워메이지들, 심지어 유령성의 자객들도 모두 싸움을 멈추고 멍하니 위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전투는 소강 상태였다.

“저 목소리…?”

『왜? 아는 목소리더냐?』

“네.”

다소 잡음이 섞이긴 했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황자비입니다.”

크롬헬의 부인이자 황금사자의 딸이 저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도 인상을 굳혀야만 했다.

황자비가 나섰다는 것은 사자공가가 나서기도 했다는 뜻. 크롬헬과 사자공가가 나서기 전에 유령성을 접수하려던 그들의 계획이 실패했단 뜻이었다.

[이곳은 황실과 본 공가에서 특별 관리하는 구역. 이곳을 침범하였다는 것은 황실과 본 공가를 능멸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모두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 그러지 않을 시에는-.]

지이이이잉-

비행선에서부터 모터 소리가 강렬하게 울리는가 싶더니, 협곡을 뒤덮고 있던 결계 위로 역장이 더해졌다.

디스펠 마법이 강화되면서 모든 마법사들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흡!”

“크으윽…! 대체 어디서 이런 기술을…!”

마법사들의 두 눈에 핏대가 잔뜩 솟는 가운데.

힘을, 내기가 어렵… 군.

치직, 치지지직!

여태껏 엘릭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휼도 금세 사라질 것처럼 흐릿해졌다.

마력에 이어 마기까지 디스펠이 가동되고 있었다.

철커덩-

엘릭은 마력회로와 인장들 모두가 단단히 빗장으로 걸어 잠긴 것 같은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엘릭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처처처척!

비행선에 매달린 수십 개의 포구가 일제히 협곡 쪽을 겨누었으니.

우우우웅!

포구에서부터 화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거기서 풍기는 열기가 마법사들로 하여금 오한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전원 사살하겠다.]

시로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엘릭은 알 수 있었다.

저 화포들이 노리는 것은 협곡이나 마탑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나야.’

자신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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